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50화 (150/252)

150화. 각자의 영역

학생들의 업무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다들 안전수칙에 유의하면서 대학생 선배들과 몸을 움직였다.

“좋아. 거기 지탱하고 있어 줘.”

“표시 확실하게 하고!”

“여기 기둥 옆에 단열재 쌓아 줄래요? 이따 안쪽 바닥에 작업 들어갈 거예요.”

동석의 대학 친구들과 같이 전체 활동을 지휘해 나갔고, 그 옆에서 용희가 열심히 보조를 맞췄다.

“시멘트조는 열심히 저어!”

“헉, 헉….”

“열심히! 걸쭉한 느낌이 들도록! 포대 더 가지고 와!”

“헉헉, 여기서 더요!?”

태웅이 놀라면서 묻자 현장반장이 우는소리 하지 말라며 태웅의 등을 팡 때렸다.

“으악!”

“아직 멀었다! 저기 보이는 시멘트 포대 다 해야 해!”

“네!?”

“세상에….”

태웅과 민주가 쌓여 있는 포대를 보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미친 듯이 저어! 쉬면 굳는다!”

“네, 네! 헉헉.”

열심히 시멘트를 젓는 태웅에게 용희가 다가왔다.

“잠깐 쉬어. 선수교대하자.”

“헉, 헉. 땡큐.”

용희와 바톤터치를 한 태웅은 공터에 주저앉아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그 옆으로 은솔이 다가와서 간식 봉지를 내밀었다.

“너만 안 받아 가길래 갖고 왔어.”

“아, 고마워. 당 떨어진다 이제.”

태웅은 봉지 안에 들어 있던 초코바를 뜯어서 한입 물었다. 달콤한 초콜렛이 입안에 가득 퍼지면서 지친 몸을 위로해 주었다.

“와, 살 것 같다!”

“할 만해?”

은솔의 물음에 태웅이 웃으면서 답했다.

“생각보다 더 힘든데, 재미도 있어.”

“와… 재밌어? 진짜?”

“응.”

태웅은 그렇게 말하면서 시멘트를 젓고 있는 용희를 바라봤다.

“근데 쟤만큼은 아닌 거 같기는 하다….”

용희는 시멘트를 저으면서 현장반장에게 벽돌 쌓는 법을 물어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벽돌 쌓을 때의 간격, 수평 맞추는 법, 기준점으로 삼을 하얀 실선 설치 등의 작업을 직접 해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작업들을 하는 용희의 입가에는 종일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천성이 건축이다….”

어느새 민주도 와서는 놀랐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쟤 혼자 다 짓겠는데?”

어느새 시멘트 작업을 대학생 선배에게 넘긴 용희는 목조건축물의 뼈대를 만드는 인원들에게로 가서 망치질을 했다.

“한용희라고 했지?”

“네!”

“너 오늘 최고 에이스다. 이따 장판도배랑 트러스 올리는 것까지 다 해 보자!”

그 말에 용희가 눈을 빛내면서 허리를 바짝 세웠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뚱땅뚱땅 망치질을 이어나갔다.

친구들은 그런 용희의 모습을 보면서 어안이 벙벙한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네.”

그 모습을 담임인 강명문도 지켜보고는 감탄했다.

“쌤, 용희가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줄 알고 계셨어요?”

“대충은. 그래도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지.”

그렇게 말하는 강명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학생들은 그 미소를 보면서 이제 담임이 겸손을 떤다고 생각했다.

“참, 이따 점심 메뉴는 수제짜장면과 만둣국, 김치로 준비했습니다!”

은솔이 안전모를 쓴 머리를 매만지며 힘차게 말했다.

“좋아. 그렇게 준비한 이유는?”

“인원이 총 50여 명, 혹시 모를 예비 음식까지 생각했을 때 60여 명분은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어야 하고, 몸을 쓰는 작업을 해야 하니까 열량도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적당히 자극적이기도 해야 지친 몸에 활력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영양적으로는 문제없고?”

“그건 양쌤한테 여쭤봐야 할 거 같기는 해요. 시간이 없어서 미리 준비를 못 했거든요….”

강명문의 질문에 은솔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까지 당찼던 목소리와는 대조되는 모습에 강명문이 피식 웃어 보였다.

“괜찮아. 다음 봉사 때는 그런 부분을 고쳐나가면 되니까. 그것도 학생부에 넣자.”

“아! 네! 그렇게 할게요!”

은솔의 답변을 들은 강명문은 민주를 향해 말했다.

“설문지는 준비했지?”

“네. 지역 주민분들도 계시니까 주민분들을 위한 설문지 준비를 했고, 한국어교실 관계자분들이랑 이곳 학생들 대상의 설문지도 준비했어요!”

“민주가 준비한 설문은 이번 봉사 끝나고 1주일은 지나야 답변을 다 받을 수 있을 거야. 바로 성과 안 나온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천천히 가 보자.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지?”

그 말에 민주 역시 은솔처럼 힘차게 답했다.

“네!”

강명문은 태웅에게는 별다른 걸 묻지 않고 곧장 다른 학생들에게로 향했다. 3학년 3반의 구성원들 모두를 한 명 한 명 만나면서 이번 봉사의 장단점을 파악해 나가고 있었다. 학생들은 고3이 되어서 이런 봉사를 할 줄은 몰랐다며 투덜대다가도, 저들끼리 즐겁게 봉사를 해 나갔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태웅은 잠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입시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부럽냐?”

갑자기 나타난 강명문 때문에 태웅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으악!”

“귀신이라도 본 줄 알겠네. 부럽냐고.”

담임의 질문에 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부럽기는 해요. 친구들이랑 이렇게 밖에서 뭘 해 본 적도 거의 없었고…. 수학여행 가서도 학원 숙제만 했으니….”

“빡빡하게도 살았네.”

태웅은 강명문의 말에 딱히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온 게 맞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오늘 봉사활동 이야기로 발표 준비해. 중간에 힘들면 쉬고. 무리해서 하다가 아프지 마라.”

어깨를 살짝 토닥이고 걸어가는 강명문의 등을 보면서 태웅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 * *

“강문고 해피플레이스 동아리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점심시간이 되자 은솔을 중심으로 식사준비를 도운 학생들이 급식을 세팅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리고 한쪽에는 봉사단을 위한 급식뿐만 아니라, 한국어교실 학생들과 관계자들을 위한 급식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걸 다 준비했어?”

“헤헤, 네! 제가 단체 급식에는 일가견이 있거든요!”

“아니 예산은 어디서 나고?”

“예산은 이사장님이 지원해 주셨어요!”

“학교 이사장님이 봉사동아리 지원도 해 주셔?”

박재우 주임이 놀라며 묻자, 은솔이 그렇다며 답했다.

-이번에 해피플레이스 봉사 간다면서요? 급식비 횡령 문제도 있고 했으니까, 이번 동아리 급식, 내가 지원해 줄게요. 학생들에게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주세요.

담임과 함께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했던 일을 떠올린 은솔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음식을 나르고 배식준비를 했다.

“선배!”

은솔이 멀리서 다가오는 동석을 반갑게 맞이했다. 지난번 ‘라떼는 말이야’ 상담이 인상적이었는지, 은솔은 동석을 유독 따랐다. 동석이 은솔의 인사에 화답하면서 식판을 들어 음식들을 받았다.

“잘 먹을게요.”

마찬가지로, 동석과 함께 온 대학생들도 배식을 받아 준비된 음식을 먹었다.

“오,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동석을 비롯한 대학생 선배들의 피드백이 긍정적이자 은솔의 입이 귀에 걸렸다.

“뭐야 진짜 맛있잖아?”

“배은솔, 너 요리 잘 한다?”

친구들의 평가도 긍정적이었다. 은솔은 어깨를 한껏 펴며 으스댔다.

그런 은솔에게 예정되지 않은 손님이 나타났다.

“그거 우리도 먹을 수 있니?”

지역에 거주 중인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 몇 분이 호기심을 갖고 다가온 것이었다.

“네! 당연하죠!”

은솔은 예비용 식판을 꺼내서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배식을 했다. 이미 지역 급식봉사를 해 왔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어르신을 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거랑 이걸 여기 받으시고… 음료는 옆에서 받아주세요! 다 드신 식판은 한곳에 모아 주시면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건축현장에서의 리더가 용희였다면, 급식현장에서의 리더는 은솔이였다. 강문고 학생들은 물론이고 대학생들도 그런 사실을 알게 모르게 인정하고 있었다.

* * *

“잘 먹었습니다!”

점심시간도 후다닥 지나갔고, 학생들의 봉사활동도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는 벽돌을 쌓아 담벼락도 형성이 되었고, 건물 내부의 단열재 작업도 일부 진행이 되고 있었다.

“으으….”

“젊은 놈이 왜 이리 힘이 없어? 힘 좀 써 봐!”

현장반장은 자재를 나르는 태웅의 뒤에서 꼬박꼬박 잔소리를 했다. 태웅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열심히 봉사를 했다.

“우와…죽겠다….”

결국 태웅은 들고 있던 시멘트를 옮기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냐?”

용희가 다가와서는 태웅에게 물을 건넸다. 태웅은 한치의 거절 없이 물병을 훽 빼앗고는 벌컥벌컥 마셨다.

“크! 좀 낫네. 넌 안 힘들어?”

“힘들기는 한데 재밌어. 현장 와 보니까 완전 다르네!”

아버지 현장을 견학 갔을 때는 직접 작업에 뛰어들지는 못했었다. 그저 공사장의 인부들이 하는 일들을 구경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용희는 직접 건축 제작 과정에 참여해 보고 싶어했다. 오늘 봉사활동에서 여러 작업들에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명문쌤이 이거 하자고 하셨을 때는 깜짝 놀랐다니까.”

용희는 강명문이 운동장에서 자기를 불렀던 일을 기억하면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

“응. 그래서 지금 봉사동아리 하는 거야. 해피플레이스 봉사가 하기 쉬운 게 절대 아니거든.”

태웅은 용희의 말을 들으면서 이 자리도 강명문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워했다.

“담임쌤 능력자네.”

“그렇다니까. 아, 나 저기 가 봐야겠다. 바닥 온돌 공사 한다고 해서!”

용희는 그 말을 하자마자 쏜살같이 내부로 들어갔다.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태웅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빨리 와. 벽돌 쌓자.”

민주의 부름을 신호로 태웅은 정해진 위치에 낮은 담벼락을 만들어나갔다. 시멘트를 듬뿍 발라서 수평을 맞추고, 그 위에 차곡차곡, 일정한 간격으로 벽돌을 쌓아나갔다.

꽤 많아 보였던 벽돌도 시간이 지나자 점차 소진되어 갔다.

“끝!”

마지막 벽돌을 쌓으면서 태웅이 외쳤다. 민주를 비롯해 벽돌 작업을 도와준 동석도, 다른 대학생들도 기지개를 쭉 폈다.

“내부는?”

“거의 끝났습니다!”

용희가 문 바깥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소리쳤다. 실제로 내부 단열재, 온돌공사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에이, 트러스는 못 올리겠네.”

하지만, 현장반장은 아쉽다며 팔짱을 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된 탓에, 아쉽게도 목조건축물을 마무리 짓지는 못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저건 우리 전문가들이 해야겠구만. 어차피 오늘 학생들에게는 최대한 위험하지 않은 작업들 위주로 할 거였으니까.”

“나중에 오면 목조건축물 꼭 올려보고 싶습니다! 너희도 그렇지?”

용희가 친구들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그러나 트러스의 크기를 본 친구들은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

그 모습을 현장반장이 껄껄 웃으면서 바라봤다.

“자자, 이제 건축봉사 마무리되었으면 마지막 봉사로 들어가자!”

작업을 마무리하고 쉬고 있는 학생들에게 강명문이 다가왔다. 학생들은 또 무슨 봉사가 있냐면서 자리에 드러누웠다.

“고3 착취하지 마세요!”

민주가 먼저 반항했고

“요리하느라 힘 다 뺐어요….”

은솔도 자리에 누워서는 죽는소리를 했다.

학생들의 그런 모습을 본 강명문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꼴랑 하루 해 놓고 이렇게들 늘어져? 이것들이 맨날 공부만 하니까 체력이 엉망이구만? 너희들 앞으로 매일 아침마다 운동장 세 바퀴씩은 돌아야….”

““쌤은 봉사활동 하지도 않았잖아요!!””

학생들의 항의 섞인 외침을 들은 강명문이 귀를 손가락으로 막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이 한층 더 얄미워 보여서 학생들이 한 번 더 투덜거렸다.

“어차피 너희가 할 건 아니니까 쉬면서 정리나 하고 있어. 이태웅.”

“네?”

“네가 나설 차례다.”

그 말에 태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요?”

“그래. 내부 공사는 끝났으니까 기념으로 거기에서 한국어교실 한번 열어 봐야지?”

강명문이 씨익 웃으면서 태웅에게 한국어교실 수강 명단과 함께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한국어 회화를 공부하는 일본인들을 위한 교재(초급)>

책을 건네받은 태웅이 실내를 바라봤다. 그러다 태웅의 수업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세 명과 눈이 마주쳤다.

“네가 가진 일본어 실력 마음껏 뽐내 봐. 이번 봉사에서는 이게 태웅이 너만의 에피소드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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