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49화 (149/252)

149화. 첫 봉사활동

그날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 셋이 한자리에 모였다. 태웅, 은솔, 민주였다.

“너희는 쓸 거 정했어?”

태웅이 걱정된다며 둘에게 물었다. 민주와 은솔이는 이미 계획해 둔 에피소드가 있다며 말했다.

“나는 작년 학생회장 때 은장이 언니랑 선배들 도와준 일들 쓰려고!”

“난 이번에 있었던 급식실 이야기. 5월까지는 급식메뉴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으니까 그걸로 할 거야. 태웅이 넌?”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태웅이 팔짱을 꼈다. 그리고 잠깐 고민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난 별거 없어서 걱정되기는 해.”

“그러면 이번에 같이 만들자!”

어느새 왔는지 용희가 태웅의 어깨를 둘렀다.

“아야! 야, 아파!”

“미안미안. 국어 수행 이야기하고 있었지?”

용희가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면서 민주에게 물었다.

“응. 태웅이는 뭘 쓸지 고민 중이래.”

“그럼 해피플레이스 쓰면 되지! 우리 다음 주에 첫 활동 하잖아. 난 그거 쓸 건데.”

해피플레이스 활동을 이야기하자 민주와 은솔이가 그거 괜찮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해피플레이스 봉사활동이면 에피소드도 여러 개 나올 거야.”

“난 학원 때문에 못 갈 거 같은데…. 그리고 시험 전에는 안 하는 걸로….”

태웅은 여전히 친구들의 말에 반박을 했다. 그러나 민주도 물러서지 않았다.

“학교에서 해야 하는 필수 봉사라고 하면 되지. 그리고 5월 수행평가 전에 미리 다녀와야 쓸 이야기가 생길 거 아냐?”

“아니면 이태웅 넌 급식실 식판 봉사나 하고 그거 쓰든가.”

용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태웅은 그건 또 싫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너도 가고 싶잖아?”

태웅의 반응을 확인한 용희가 태웅을 향해 밝게 물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태웅도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태웅도 해피플레이스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었다.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어머니의 표독스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과연 어머니의 학습 스케쥴을 무시하고 봉사활동을 해도 괜찮은 걸까?

“해피플레이스 공식 봉사 인증서도 챙겨줄 테니까 다음 주에 다녀 와.”

그런 태웅의 고민은 뒤에서 나타난 담임의 말에 중단되었다.

“공식 인증서요?”

“그래. 너희들 대학교 간다고 해서 인생 끝나는 거 아니잖아? 단순히 고등학생 때의 스펙으로 끝내지 말고 대학생까지도 이어 가라고. 그러려면 공식 인증서를 받아야 해. 단순히 고등학생 봉사가 아니라, 공식적인 해피플레이스 자체의 봉사활동으로도 만들어 가는 거야.”

학생들이 강명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국제봉사단체에서 활동해 두면 대학생 되어서도 또 할 수 있어. 그렇게 국제봉사로까지 이어 가면 너희들만의 스펙이 되는 거고. 그러면 취업 시장에서도 쓸 수 있다.”

물론 단순히 해외봉사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취업 합격 여부를 결정짓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해나간다는 것 자체가 각자의 장점으로 나타날 수는 있었다.

강명문은 그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학부모도 나름대로 설득할 수 있을 거고.’

태웅의 어머니는 아들의 스펙을 위해, 그리고 자기자랑을 위해 어떤 결과물을 항상 추구해왔다.

수시를 준비하는 것도 아닌데 교내대회 수상도 챙겼고, 태웅의 성적도 챙기도록 했다.

그건, 내신은 못 하는데 모의고사만 잘 본다거나 하는 뒷말이 듣기 싫어서도 있었고, 우리 아들은 내신도 모의고사도 잘 본다, 라는 우월감을 갖기 위함도 있었다.

그리고 이 봉사활동은, 우리 아들이 국제봉사단체로부터 초대를 받아 토요일에 봉사도 하고 왔다, 라며 자랑하기에 적합했다.

-태웅이 어머니는 겉치레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해. 천일이한테 물어보니까 ‘아 그 아줌마, 너무 잘난 척해서 짜증 나요.’ 라며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라.

오늘 점심시간에 윤기준 선생이 강명문에게 전달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박재우 주임에게도 연락해서 공식봉사 인증서와 함께 한 가지를 더 요청했다.

-애들 많이 데리고 가도 되죠?

박재우는 사전에 신청이 안 된 인원들이지만, 공식 봉사로 하는 거라면 괜찮을 것 같다며 명단만 정해지면 미리 보내달라고 말했다.

‘인증과 함께, 태웅이를 봉사에 보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명분을 준비해야지.’

그런 속내를 숨기고서 강명문은 태웅을 향해 태연하게 말했다.

“이번 봉사활동 하면서 수행평가도 준비하고, 학업 스트레스도 풀어. 그리고 수능 준비가 더 빡쎄지는 5월보다는 지금 가는 게 낫지 않겠냐?”

강명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태웅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 가득한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엄마가 분명 반대할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이야기 잘 할 테니까.”

계획이 있다면서 강명문이 씨익 웃었다. 수업시간이었다면 그 웃음이 오대천왕의 웃음으로 보였겠지만, 지금의 태웅에게는 든든하게만 느껴졌다.

* * *

다음 날, 태웅의 어머니는 전교권 학부모들과 번갈아 가며 통화를 했다.

“뭐? 천일이도 간다고?”

“연수? 이번에 학생회장 된 애? 2학년도 가?”

“오민주도? 난 들은 적 없는데?”

전교권 학생들이 다음 주 토요일에 해피플레이스라는 유명한 해외건축봉사 단체로부터 초대를 받았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실제로 전화를 돌려보니 자기 아들인 태웅을 제외한 전교 20위권 내의 학부모들은 모두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감히 우리 아들만 빼고….”

해피플레이스라면 언론에도 오르내리고, 건축봉사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봉인 국제봉사단체였다. 게다가 국제봉사활동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활용하기 좋은 활동이었다.

‘공부시간이 하루 줄어들기는 하지만….’

다른 전교권 학생들 여럿이 참여하는데, 태웅만 빠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존심도 상했다.

그래서 태웅의 어머니는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강 선생님?”

[아, 태웅이 어머님.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강명문의 말에 태웅의 어머니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전화하니까 이제야 생각난 건 아니고요? 됐고, 우리 태웅이도 해피플레이스 봉사 넣어 주세요.”

[이번 봉사는 제 주관이 아니라 영어 교사인 박은환 선생님 주관인데….]

“그 선생님 번호는 몰라요. 담임이면 이 정도는 해 줘야죠. 다른 전교권 학생들은 다 초대받았는데 왜 우리 태웅이만 빠져 있죠? 당장 추가해 주세요.”

태웅의 어머니가 이야기하자 강명문은 괜찮냐면서 걱정하듯 말했다.

[태웅이 학원 시간이나 학업 공백은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분명, 이번 봉사를 다녀오지 않으면 다른 학부모들에게 무시하는 듯한 이야기가 들릴 게 뻔했다.

‘하루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 태웅의 어머니가 강명문에게 한 번 더 강조했다.

“꼭 태웅이 넣어 주세요. 전교권 다른 학생들에게 밀리면 안 되니까요.”

그 말을 들은 강명문은 핸드폰 너머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 * *

시간이 흘러 해피플레이스 봉사일인 토요일이 되었다. 이번 모집 때 힘을 써 준 박재우 주임이 학생들을 인솔했다.

“오늘 모인 여러분들에게 우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박 주임은 어려운 길을 와준 학생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봉사정신으로 가득한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에 기쁩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민주와 은솔이 수근거렸다.

“근데 담임쌤이 전교권 애들 꼬셨다고 하지 않았어?”

“나도 그렇게 들었는데…. 이거 안 하면 후회할 거라고.”

특히 민주는 교우관계도 좋아서 전교권 학생들과도 친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잡담은 그쯤하고, 슬슬 따라 가자.”

옆에서 녀석들을 지켜보던 내가 신호를 보냈다. 박 주임도 내 신호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많이들 왔으니까 됐지 뭐.’

전교권 학생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모든 학생들이 온 건 아니었다. 이들 중 진짜 전교권 학생은 겨우 다섯 명 남짓이었다.

그중에는 민주와 태웅이도 있었다. 유미는 당연하게도 빠져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3학년 3반 학생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 봉사하러 온 곳은 한국어 교실을 열었는데, 너무 오래된 건물에 열 수밖에 없는 사회단체의 건축물 보수다. 여기 현지 인솔자, 반장님 이야기 잘 들으면서 봉사하자!”

나는 박 주임과 함께 학생들에게 안전모를 나눠 주었다. 그리고 현장반장님의 안전교육을 받았다.

“선생님들도 같이 들으셔야 합니다.”

현장반장의 말에 나도 안전모를 올려쓰고 그의 안전교육에 귀기울였다.

“학생 여러분은 지붕 위로 올라가는 작업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작업은 대학생 선배들이 할 거예요.”

대학생 선배로 참여한 학생들은 연천대 학생들이었다. 동석이가 공학계통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서 초대를 했던 것이었다.

“헤헤.”

대학생들끼리 모여 있는 장소에서 동석이가 나를 보며 순진하게 웃었다. 나도 동석이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화답했다.

“강문고 학생 여러분은 판넬을 옮기고, 목조주택을 짓는 대학생 선배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그리고 바닥의 온돌 작업과 벽의 단열재 작업을 하게 될 거예요. 어렵지 않은 작업이니 이 반장님만 믿고 따라오세요!”

당차게 가슴을 팡팡 치는 현장반장의 말에 학생들이 짝짝짝 박수를 쳤다.

“그나저나 이 건물 전체를 보수하는 건가요?”

“네, 그래서 필요하면 몇 번 더 할 수도 있습니다.”

박 주임의 말을 들으면서 안전수칙 종이를 챙기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녀석들의 얼굴에 한층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물론, 용희만큼은 직접 건축물을 지어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반장님, 학생들이 모든 작업 다 해 볼 수 있습니까?”

내 물음에 현장반장이 껄껄 웃었다.

“그거야 기본 아니겠습니까. 이따가는 지붕에 들어갈 트러스도 올리고 할 겁니다.”

“저걸 지붕 위로 그냥 올릴 수 있어요?”

은솔이의 질문에 그가 별것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기계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올리는 게 더 정확하지. 사람도 많으니까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거다!”

은솔이는 안전모를 고쳐 매며 침을 꼴딱 삼켰다.

“어차피 넌 후방지원이잖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야죠!”

나는 멀리 떨어져서 급식을 준비할 은솔이를 보면서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왜요! 무서워할 수도 있죠!”

“그래, 그래. 안전 챙겨서 나쁠 거 없으니까. 간식이랑 급식 제대로 챙겨줘.”

은솔이가 알겠다면서 같이 급식을 준비할 친구들과 함께 움직였다.

“용희야 잠깐.”

그리고 용희를 불러서 한 가지를 요청했다.

“제가요!?”

용희가 깜작 놀라며 물었다. 나는 저 멀리서 민주와 함께 안전수칙을 한 번 더 확인하고있는 태웅이를 슬쩍 바라본 후 말했다.

“가급적 다양한 일들을 겪게 해 주고 싶어서 말이야. 그리고 건축에 있어서만큼은 네가 강문고에서는 탑이다. 자부심을 가져.”

“네, 네!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나는 용희와 나눈 대화를 그대로 현장반장에게 전달했다. 현장반장이 알겠다고 사인을 보냈다.

“강문고 학생들은 여기 한용희 학생의 지시를 따라 움직입니다. 우선 인원 배정부터!”

각자에게 임무가 하달되었다. 벽화작업, 아스팔트 보수, 단열재 작업, 바닥온돌공사는 물론이고 자재 나르기와 같은 단순 업무까지.

현장반장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다들 군기가 바짝 들어가서는 차렷 자세를 했다. 그런 와중에 용희는 현장반장이 이야기하는 사항들을 꼼꼼하게 메모했다.

“학생 대표로 움직일 만하네! 하하하!”

그 모습을 기특하게 여긴 현장반장이 거친 손으로 용희의 어깨를 토닥였다.

“마지막으로, 시멘트 만들기! 오민주, 이태웅, 한용희!”

제대로 인원이 배정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번 한국어교실 건축봉사의 목적.

공부만 해 온 학생들에게 세상의 무서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그리고, 수학여행으로도 얻을 수 없는, 멋진 추억과 성취감을 만들어 주는 것.

마지막으로, 그 성취감과 추억을 토대로 남은 3학년 기간 동안, 주체성을 갖고 입시준비를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