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나의 아름다운 고교시절 에세이
나는 정보를 알려 준 오 선생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홍 선생을 불렀다.
“경필이 학생회장 선거 못 나가게 막으셨죠?”
“네, 그렇지 않아도 왜 못 나가게 하냐면서 난리를 피워 가지고 원….”
“경필이는 다음 달에 경찰공무원 준비하는 학생들 인터뷰하러 가도록 할 겁니다. 청소동아리 준비는 다 되었죠?”
“그럼요.”
홍 선생의 말을 들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가장 급한 건 역시 태웅이군요.”
나는 태웅이가 어떤 일을 언제 저지를지 가늠했다. 만약 내가 미래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데 영향을 주었다면, 태웅이의 일도 분명 전생보다는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었다.
“선생님들, 당직 서시면서 태웅이 예의주시해 주세요. 특이사항 있다 싶으면 저한테 꼭 연락 주시고요.”
“태웅이가? 왜?”
“불안합니다. 소꿉친구가 성적조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태웅이가 어떤 일을 겪게 될지…. 그리고 유미도 행동 같은 거 수상하면 꼭 알려 주시고요. 오 선생님은 유미 어머니에 대한 정보 좀 모아 주시겠어요? 이사장님께도 요청드리겠지만, 학부모회에서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으면 꼭 부탁드립니다.”
“알았네. 나도 좀 더 알아보도록 하지.”
태웅이 성격상 분명 유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어볼 게 뻔했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풀어가자고 권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게 말처럼 잘 풀리면 다행인데….’
게다가 유미가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면, 태웅이에게 어떤 액션을 취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 혼자서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었기에 다른 교사들에게 요청을 한 것이었다.
하나씩 자리로 돌아가는 교사들을 보면서 3반 학생들의 생기부를 펼쳤다. 역시나 올해는, 이게 채워지기에 앞서서 여러 일들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 *
삼성동의 한 일식집. 민지정은 천우원과 마주 앉아 있었다.
“무회가 그렇게 잡혀갔다?”
“네….”
“그리고 자네는 강명문과 강은숙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게 되었다?”
“…네.”
천우원은 기가 막히다면서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크크큭, 웃는 천우원을 보며 민지정은 온몸에 서리가 낀 듯 오들오들 떨었다.
“지정아.”
“네, 네 이사님.”
“그런 이야기를 굳이 나에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나는 아직 당신들을 위한 충견이니 버리지 말아달라, 그런 뜻이냐?”
민지정은 천우원의 말을 들으면서도 수치심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다면서 엎드려 고개를 숙였다.
“마, 맞습니다! 그 녀석들은 제가 정보를 받아서 팔 거라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바, 반대로! 제가 이사님들께 더 많은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사건은 있었지만, 아직 교무부장입니다. 강문고등학교에서 교무부장이면….”
“그만. 됐다.”
천우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겼다. 행여나 그를 놓칠까 봐 무서웠던 민지정은 부리나케 달려가 천우원의 앞을 가로막고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이사님! 제가 잘 하겠습니다! 제발….”
“아, 됐다고 하지 않나. 계속 그렇게 정보를 주도록 해.”
재킷에서 답배를 하나 꺼낸 그는 다시금 재킷을 옷걸이에 걸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얘기해. 뭐라고 했지?”
“네, 네!”
한무회 이사가 잡혀가고, 본인도 어렵게 자백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강명문과 이사장이 나누는 이야기는 똑똑히 들었다.
그래서 민지정은 강명문이 이제 자신을 건드리기보다는 주변 인물을 건드릴 거라 예상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중에서도 학생을 건드릴 거라 생각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학생을 건드린다?”
“네,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에 천우원이 끌끌 웃으며 잔을 집었다. 민지정이 후다닥 술병을 들어 천우원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 녀석도 아직 멀었군 그래.”
“무슨 말씀이신지….”
“서윤주와 접촉해.”
서윤주의 이름이 들리자 민지정이 숨을 삼켰다.
“학부모회의 서윤주 말씀이십니까.”
“그래. 강명문 그자는 역시 초짜야. 학생을 상대한다? 그리고 학교가 학생을 위한다? 그러니까 딱 거기까지만 생각이 미치지.
천우원이 끌끌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건 학생이 아니다. 학부모를 움직이는 거야.”
그는 강명문이 이건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며 자신 있게 작전을 이야기했다.
“학부모를 꼬셔서 강명문이 담임으로 있는 3반 학생들이 사고를 치도록 유도해. 직접 치도록 하는게 어려우면 간접적으로 관여하도록 움직여. 그러면 녀석의 교사로서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지.”
“그 키맨으로 학부모를….”
민지정이 중얼거리자 천우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녀석은 실적 좋고, 인성도 좋은 교사로 소문이 났어. 그런 소문에, 제대로 학생들 인성을 돌봐주지 못해 도둑질, 강간, 폭력 등의 사고를 치는 학생을 방치했다고 한다면?”
잔에 든 술을 탈탈 털어넣은 천우원이 한 번 더 잔을 들었다. 민지정이 다급하게 잔에 술을 채웠다.
“사람이 착하게만 살면 안 되는 이유가 이런 거야. 아주 작은 흡집만 있어도 사람들은 물고 뜯기 바쁘거든.”
“그렇게만 되면 강명문의 입지가 죽겠군요!”
천우원이 생각하기로 강명문의 최대 약점은 청렴결백, 모범교사 이미지였다. 그런 이미지가 있는 사람은 정말이지 작은 먼지 하나만 발견되어도 다수의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윤주에게 연락해서 딸 내신 성적 올려주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결국 학생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학부모야. 학생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새파랗게 어린 녀석들이야. 부모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부모가 하라는 대로 행동하는,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녀석들이지. 그런데 우리가 학생을 상대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천우원이 히죽거렸다.
“말한 대로 움직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강명문에게는 거짓 정보를 흘려. 예상대로 학생을 타겟으로 삼았다고. 그러면 녀석은 학생들에 집중하느라 학부모들의 움직임은 캐치하지 못할 거야.”
천우원의 웃음소리가 작은 밀실 안에 울려 퍼졌다. 민지정도 다시 이사들의 라인을 잡아냈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가볍게 웃었다.
‘다시, 다시 잡을 수 있어!’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다면, 지금의 권력과 돈, 아니 권력은 이제 갖기 어렵더라도, 돈만큼은 다시금 챙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나도 먹고 살자. 미안하다 강명문.’
민지정은 속으로 흐흐, 웃으면서 기분 좋게 술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강명문이 이미 서윤주와 송유미에 대한 정보수집을 완료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 * *
“이번 년도 학생회장이 결정되었습니다!”
시끌시끌하던 사이 학생회장이 결정되었다. 2010년 학생회장이었던 민주의 뒤를 이을 학생은 최연수였다.
‘최연수라….’
연수는 공부를 최상위권 수준으로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하고 싶은 공부도 나름대로 명확했다.
‘기회가 되면 상담을 한번 해야겠네.’
연수의 당선 소감을 들으면서 녀석이 갖고 있는 장점으로 무엇이 있었나 생각해 봤다.
“강 선생!”
그때 오 선생이 나에게 다가왔다.
“아, 안녕하세요, 오 선생님.”
“그래. 좋은 아침이네. 정보를 좀 얻은 게 있어서 말이야.”
오 선생은 다른 교사들이 듣지 못하게 몸을 조심스럽게 기울였다. 덩달아 나도 몸을 살짝 숙였다.
“이번 태웅이 모의고사 성적이 조금 떨어진 거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모의고사 보기 전에 태웅이와 유미가 만나는 모습을 본 학생이 있더군.”
“둘이 소꿉친구면 그 정도는 언제든 가능하지 않을까요?”
정말 둘이 친한 소꿉친구라면 가끔 학원 가기 전에 만나는 정도는 평범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 선생은 그런 게 아니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걸로 끝날 일이 아니니까 그런 거야. 태웅이와 유미는 소꿉친구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더군. 둘 사이가 나빠졌다, 라기보다는 양쪽 부모 때문에 말이야.”
“학부모끼리 원수지간이라도 되었나 보군요. 한두 번 싸운 정도로 그렇게 틀어졌을 리는 없을 텐데.”
태웅이 어머니가 유미 어머니와 크게 다툰 적이 있다는 사실은 지난번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 큰 어른이 그거 한 번만으로 그렇게 틀어진다고?
그림이 이상하게 그려졌다.
“맞아.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게 성적조작을 해서 태웅이 자리를 유미가 위협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오 선생은 그 이상으로 이야기를 잇지는 못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알아보고 분석을 해 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아니야. 또 뭐 생기면 알려 주도록 하지.”
멀어지는 오 선생을 보면서 출석부를 겨드랑이 사이에 꼈다. 미리 인쇄해둔 종이 뭉치, 그리고 종이몽둥이를 들고서 3학년 3반으로 올라갔다.
“오늘 1교시는 아름다운 독문(독서와 문법) 시간이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자 학생들이 깜짝 놀라면서 자리에 후다닥 앉았다.
“오늘 학생회장도 정해졌고, 이제 수학여행 일정도 나온다! 작년 수학여행 다녀왔을 때가 생각나지?”
학생들이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희들은 거기에 해당사항 없으니까 미친 듯이 공부하고, 입시 준비를 하도록 한다.”
이어진 내 말에 고개를 추욱 내리는 건 당연했고 말이다.
녀석들을 보면서 나는 준비해 온 종이를 나눠 주었다.
“우선 수행평가 예고부터. 주제는 ‘너의 추천도서는?’이다.”
수행평가 주제를 보여 주자 학생들 사이에서 탄식이 울려 퍼졌다. 반면, 민주, 은솔이는 눈을 빛냈다.
“아 쌤, 고3인데 무슨 독서예요.”
“과목명 자체가 독서와 문법이거늘 이게 무슨 소리일까? 잔말 말고 준비해. 작년에 너네 선배들도 이거 준비하면서 입시 성공했어.”
실제로 작년에 동석이, 은장이, 정석이도 추천도서 발표 수행평가를 하면서 한층 더 성장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독서 수행평가를 제시했다.
“참고로 추천도서 수행평가는 전체 평가 중 일부다.”
“네!?”
“뭐라고요!?”
이번에는 민주와 은솔이도 놀랐다.
“또 하나의 수행평가는 이거다!”
내가 펼친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나의 아름다운 고교시절 에세이>
주제: 고1~고3까지의 ‘교내 활동’ 중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발표하기
형식: A4 1장 분량의 에세이 작성. 글씨 포인트 10pt, 기타 설정 기본, 발표 3분 이내
제출일: 5월 16~20일 사이 수업 때 발표
주의점: 반드시 교과서 문법 지식 중 1개를 선정해서 어떤 문법 지식으로 분석할 수 있는지 설명할 것.
평가기준
(1) 주어진 형식과 시간에 맞게 발표했다.
(2) 발표 주제의 의미를 청중에게 정확하게 전달했다.
(3) 문법 지식 분석 내용이 올바르다.
(4) 맞춤법 오류가 10개가 넘지 않는다.
(5) 친구들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 5개 모두 만족 10점
→ 4개 만족 8점
→ 3개 만족 6점
→ 2개 만족 4점
→ 1개 만족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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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지표는 기존 발표 수행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문법적 지식을 요하는 것과 진정성 있는 주제. 이렇게 두 가지가 달랐다.
우선 문법. 독서와 문법이라는 교과명에 걸맞도록 학생들의 문법 지식을 수행평가로 확인할 생각이었다.
작년, 명천이의 맞춤법 실력을 보고 놀랐기 때문에, 올해는 미리 녀석들의 맞춤법 실력을 확인해볼 계획이었다.
실력 떨어지는 녀석들이 많으면 은장이에게 특별 멘토링을 요청할 계획이었고 말이다.
“쌤, 주제는 아무거나 상관없나요?”
손을 들고 물어본 학생은 신유현이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 사학과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었다.
나는 유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거나 상관없어. 단, 꼭 학교에서의 활동이어야 한다. 축제 때의 에피소드, 수학여행, 조별 토론, 대회, 급식, 체육대회 등, 뭐든 괜찮은데 학교에서 했던 활동이어야 해. 아무리 좋은 활동이어도 학교 바깥에서 했던 일들, 예를 들면 중학교 때의 이야기라든가, 가족여행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일들, 이런 건 아웃이다.”
“진짜요?”
“큰일 났다…. 나 뭐 없는데.”
“나도…. 학교 끝나면 학원만 갔는데….”
“너무해…. 그냥 적당히 지어 와도 되나요?”
여기저기서 볼멘소리와 함께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까지 들려왔다. 준비해 온 종이몽둥이로 교탁을 팡팡 쳤다.
“시끄럽다. 학교 수행평가인데 어디 외부 일들을 끌어오려고 해. 내가 일부러 기한도 5월 중순으로 해 줬잖아.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으면 그사이에 만들도록 해라! 정 없으면 급식실 가서 친구들 식판이라도 정리해주면서 보람 있었다고 하든가. 알았냐!”
내 말에 3학년 3반 학생들이 너무한다며 한 번 더 항의를 했다. 그 소리를 다시 한번 종이몽둥이로 제압하면서 소리쳤다.
“잘들 준비해 봐라!”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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