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47화 (147/252)

147화. 미안하다

내 얼굴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민 부장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우리 집 사정은…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았는지는 영업비밀로 하고…. 민 부장님, 지금 시점에서 퇴직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

“그러니 지금은 제가 말하는 대로 하세요. 그게 부장선생님 가족들을 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민 부장은 내 말을 들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 그리고 정보료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안 주시면… 아시죠?”

“뭐, 뭘?”

“성적 조작, 불법 고액 과외 및 과외 알선, 대회 수상 조작, 교구비 횡령….”

“그, 그만! 알았어! 할게! 내가 다 할게! 그러니까 제발….”

전생에 민 부장이 저질렀던 각종 부정들을 언급했을 뿐인데 저 정도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마찬가지의 부정들을 저지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전생과 똑같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안도를, 그리고 여전히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일었다.

“당연하게도 저와 이런 이야기 나누었다는 것도 비밀입니다.”

“그럼! 비밀로 할게! 아직 내가 은퇴할 수는 없어. 나 좀 살려 줘요, 강 선생. 제발. 응?”

두 손을 싹싹 빌면서 나에게 호소하는 민 부장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사장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강 선생님이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시죠.”

이사장의 확인을 받은 나는 민 부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세요. 이사진에서 수상한 움직임 나오면 남들 모르게 알려 주시고요. 문자는 안 됩니다. 전화도 가급적 핸드폰으로는 하지 마시고요.”

그리곤 구체적인 연락 방법을 덧붙였다.

“웬만해서는 류지훈 선생을 통해 전달 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굳이 ‘이제 같은 처지시니까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류지훈…?”

“그렇게 하실 거죠?”

내가 날카롭게 노려보며 묻자 민 부장이 허둥지둥 답했다.

“아, 알았어, 당연하지! 그, 그렇게 할게!”

여전히 몸을 벌벌 떠는 민 부장을 향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살짝 숙였다. 마치 민 부장을 위에서 내리까는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이 끝나고, 민 부장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사장실을 나갔다.

“거의 악당이던데요?”

둘만 남게 된 이사장실에서 이사장이 말했다.

“악당을 잡으려면 악당이 되어야죠. 그런데 저 정도면 천사 아닙니까?”

“호호호, 강 선생님 정도면 천사 같은 악마일 수도 있겠네요.”

이사장의 알 수 없는 말을 들으면서 이사장의 표정을 살폈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묘하네요. 잡혀가면 기분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군요. 그리고 강 선생님의 활약을 보면 참 기분이 좋은데, 더 큰 도둑을 잡으려면 이런 죄들을 묵인해 줘야 하는 사실에도 아쉬움이 남아요.”

“그때까지 빌드업을 해두어야 합니다. 예상되는 사건들을 미리미리 방어해두어야죠.”

“어떤 사건이요?”

“민 부장도 아까 우리가 했던 말들을 들었을 겁니다. 아마, 그 정보를 흘리겠죠. 분명 이사들을 찾아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입을 떡 벌리고 나를 바라봤다.

“그럼 일부러….”

“어쨌든 한 번 지켜보시죠.”

태연하게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면서 생각했다.

‘어디 마음대로 움직여 봐.’

* * *

태웅은 아침부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어제 떴던 기사였다.

<명문 사립고교 강문고등학교 급식비 횡령 계획. 관련자인 재단 이사, 행정실장 체포.>

“미쳤나 봐. 선배들이 먼저 발견 못 했으면 계속 그런 맛대가리 없는 음식들만 먹었을 거 아냐?”

“응. 내가 영양사쌤이랑 이야기하면서 보니까 엉망진창이더라. 그래도 걱정 마! 조만간 내가 급식 메뉴, 영양사쌤이랑 같이 갈아엎을 거니까!”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하는 은솔을 보면서 태웅이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런데 이거 말고 더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수상실적 비리나 성적 비리도 있다고 하던데.”

“성적 비리…?”

용희의 말에 태웅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 눈을 보면서 민주가 전에 들었던 이야기라면서 말했다.

“은장 언니 말로는 언니네보다 더 윗선배 때부터 행해졌었대. 돈 내고 상장 만들어 주고 그랬다던데.”

“진짜? 무슨 비리의 온상도 아니고 뭐야 이게?”

은솔이 기가 막히다며 헛웃음을 날렸다. 민주도 그런 일들이 우리 학교에 있을 수도 있다면서 분노했다.

반면, 태웅만 셋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학교에 많이 기부하고 그러면 성적 올려주는?”

“그랬겠지? 성적 조작해서 등급도 바꿔 줬다고 들었어. 그걸로 수시 전형에 합격하게 해 주고 그랬다고.”

민주의 말에 태웅의 얼굴은 더더욱 심각해져만 갔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태웅은 머릿속으로 지난번 운 좋게 전교 5등을 찍었다는 친구의 얼굴이 떠올렸다. 소꿉친구인 유미.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지만, 특출나게 잘하지도 않았다. 보통은 전교 20위권에서 놀던 친구였다.

‘그런데 갑자기 5등으로 올라왔고….’

-솔직히 내신으로 너 이길 자신은 없어. 전교 5등도 저번에 겨우 찍은 거고. 찍어서 맞은 거도 많았으니 운도 좋았던 게 맞잖아.

게다가 지난번에 잠깐 얼굴을 봤을 때 유미의 말.

스스로도 전교 5등을 우연찮게 받았다고 말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태웅은 머리를 휘휘 저으면서 상념을 떨치고자 했다.

“태웅아, 왜 그래?”

“어? 아, 아니야.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지 마. 수능은 마라톤인데 컨디션 조절 잘 해야지.”

“어, 어. 그치. 아무래도 낮잠이라도 자야 하려나 봐, 하하하.”

어색하게 웃는 태웅을 은솔이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반면, 민주는 태웅의 언행을 예의주시했다.

-태웅이한테 뭐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았지?

등굣길에 만난 담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 * *

‘이태웅… 이태웅….’

나는 방금 내려와서 무언가 수상했다는 듯 말하던 민주의 얼굴을 떠올렸다.

-태웅이가 좀 이상해요.

민주의 말에 따르면 태웅이는 성적비리 이야기가 나왔을 때 유독 이상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그 녀석이 조작했을 리는 없고….”

내신 성적이 아니라 모의고사 성적을 보면 태웅이의 성적은 조작이 아니라 정말 공부를 잘 해서 받는 점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성적조작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친구?’

그럼 태웅이와 친한 누군가가 조작에 관여했을 수 있었다. 친구나 학부모. 그것도 아니면 강문고 교사.

“음… 물어봐야겠네.”

“뭘 물어봐?”

어느새 내 뒤에 다가온 지석 선배가 고개를 불쑥 내밀며 물었다.

“아, 깜짝이야. 선배 오셨어요?”

“그래. 아주 급식 비리 거하게 터트렸더라?”

“선배도 참여할 걸 그랬죠? 아쉬워하시는 거 같은데.”

내 말에 지석 선배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기회가 되면 했겠지만, 이번에는 내가 나설 자리가 없었지 뭐.”

선배는 가족 문제 때문에 이번 일에 함께하지 못했다.

“대신 든든한 아군이 생겼습니다.”

“그거 저를 두고 하는 말씀이시죠?”

홍 선생이 활짝 웃으면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맞죠, 선배님?”

“네. 홍 선생님 덕분에 급식탑차에서 수상한 점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요.”

“최종 구속까지 이어진 건 내 덕인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 선생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사실 이번 일의 최고 공헌자는 박 선생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박 선생의 아버지였지만 말이다.

“아빠가 그러던데요? 강 선생님 괜찮은 사람 같다고.”

“그래서 소개팅이라도 해 보라고 하셨습니까?”

“됐네요. 우리 아빠, 저한테 그런 이야기 꺼냈다가는 뼈도 못 추려요. 그래도 다음에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고는 하셨어요.”

중앙지검 차장검사가 나를? 무슨 이유 때문일까 생각해 보는데 한 교감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 선생, 그….]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급식비리 건만 다루니까요.”

[그, 그렇지?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역시 강 선생이야! 하하하!]

한 교감은 검찰이 들이닥쳤을 때 강문고의 전체 비리를 조사하는 줄 알고 덜컥 겁을 먹었었다. 사실 검찰이 오기 전에 미리 언질을 해 주기는 했는데, 그래도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교감 선생님만 믿습니다.”

[나, 나를? 커흠, 그래, 나만 믿게! 내가 이번 급식비리 문제는 깔끔하게 언론과 인터뷰, 검찰 조사 모두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겠네!]

한 교감의 전화를 마무리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참, 혹시 태웅이에 대해 좀 아시는 거 있으십니까? 제일 친한 친구라든가, 학부모회와의 관계라든가.”

“태웅이라면 내가 좀 알고 있지.”

엑스칼리버를 어깨 위에 걸친 채 걸어온 오 선생이 한쪽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섬뜩하게 보였는지 다른 교사들의 몸이 흠칫 놀라는 듯했다.

“태웅이 잘 알고 계십니까?”

“담임을 한 적은 없지만, 학부모회에서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은 있지. 그래서 태웅이에 대해 알고 있다기보다는 태웅이 어머니에 대해 알고 있어.”

어느새 엑스칼리버를 땅에 꽂듯이 세운 오 선생은 나를 향해 몸을 숙였다.

“태웅이 어머니가 학부모회장이라는 건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학부모회장을 하기 전에도 극성으로 유명했어. 아들이 공부하는 데 방해를 받으면 안 된다거나 하면서. 그것 때문에 다른 학부모들과도 언쟁이 있었지.”

오 선생은 경력도 많았고, 실적도 강문고에서 가장 좋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교사였기에 학부모들에게 인기 교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모회가 있을 때면 회의 자리에 잠깐이라도 참석해서 향후 강문고 교육 방향 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태웅이 어머니가 하는 이야기들,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 멘트들을 듣게 된 것이었다.

“한 번은 심하게 다툰 적도 있네. 태웅이 소꿉친구가 있는데 그 학생 어머니와 다퉜었지.”

“소꿉친구 이름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지. 송유미야. 지금은 3학년 6반.”

“작년 전교 5등 아니었습니까?”

이사장에게서 들었던 이름 중 송유미라는 학생도 있었다. 작년 전교 5등 학생이었기에 태웅이 문제와 엮일 가능성이 높아 주목하고 있던 학생이었다.

“맞아. 그런데 그게 말이 좀 있어.”

“성적조작으로 단번에 전교 5등까지 올라갔다. 이런 건가요?”

내 말에 오 선생이 크큭, 비열한 듯 아닌 듯한 목소리를 내며 웃었다.

“강 선생은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내는 것 같네. 맞아. 유미는 성적조작이 있었어.”

“네!?”

“그게 진짭니까 선생님!?”

박 선생과 지석 선배가 놀라면서 소리를 냈다. 그런 둘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며 주의를 주었다.

“조작에 관여한 사람은 누굽니까?”

“그것까지 명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뻔하지 않겠나? 유미 어머니와 민지정, 임대원이겠지.”

“유미도 그걸 알고 있습니까?”

성적조작은 두 가지 부류가 존재했다.

하나는 학생은 모르고 학부모 혼자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성적을 조작하는 경우였다.

또 하나는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조작에 관여하는 경우였다.

“그건 잘 모르겠네. 아마 유미는 모르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것도 모르고 좋아만 했거든. 더 상세히 알지 못해 미안하구먼.”

“감사합니다. 말씀 주신 정보들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유미가 만약 그런 사실을 모른 채 학부모만의 행동으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태웅이에게 그런 선택까지 강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미가 본인의 성적을 조작한 사실을 알고 있다면 가능했다. 그렇다면, 전생에 태웅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알고 있었군.’

내가 움직여야 하는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남은 건 다른 교사들에게 행동 방향을 정해주는 일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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