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46화 (146/252)
  • 146화. 도둑잡기 (6)

    강명문의 여유로운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은 한무회가 곧장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딴 거….”

    곧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무회는 압수수색을 받고 있는 급식업체 사건과 검찰의 수사 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남편과의 전화를 끊은 한무회가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우리 남편이 움직이면 이런 거 무마하는 건 일도 아니야.”

    그 말을 들은 강명문이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면서 끅끅 웃었다. 그런 강명문의 모습이 건방져 보였는지 한무회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무시하는 거야 뭐야!”

    “아, 죄송합니다. 너무 웃겨서 그만….”

    강명문은 웃음을 멈추고 옷깃을 매만졌다.

    “겨우 부부장 검사로 정년퇴직한 전직 평검사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뭐…라고?”

    그때 다시 한무회의 핸드폰이 울렸다. 강명문은 편히 받으시라며 손을 들어 보였다. 한무회는 설마, 하는 눈초리로 핸드폰을 들었다.

    [이건… 안 돼.]

    “무슨… 소리야?”

    [박성혁 검사…. 중앙지검 차장검사가 움직인 건이야.]

    한무회는 남편의 말을 듣자마자 침을 꼴딱 삼켰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건이 아니야. 이건 빨리 발 빼는 게 나아.]

    한무회의 남편은 다급하게 말을 끝내더니 전화를 끊었다. 한무회는 몸에 힘이 쭉 빠진 채 몸을 소파에 기댔다. 방금 전까지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겨우 사학비리 하나로 차장검사가 움직였다고…?”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 이사님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급식업체 압수수색과 더불어 행정실장에 대한 영장도 청구가 되었다. 다만 한무회는 지금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1층 행정실로 검찰이 찾아왔다.

    “네, 교감선생님. 네? 검찰이요?”

    “!!”

    이사장은 한명심의 전화를 받고 몇 번 네, 네, 대답을 하고는 말했다.

    “적극 협조하겠다고 해 주세요. 우리 강문고가 비리 척결에 앞장서고 있다는 모습을 꼭 보여 주세요.”

    [네, 네! 이사장님! 당연히 그래야지요!]

    전화를 끊은 이사장이 한무회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까지의 온화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저는 이사님을 믿고 지금까지 강문고를 맡겼어요. 그런데 이사님은 이런 식으로 뒷돈이나 받고 다니셨군요.”

    “으, 은숙아….”

    “더는 이사님에게 강문고를 맡길 수가 없겠습니다. 공식적으로 이사진 회의를 열어서 한무회 이사님도 퇴진하도록 말하겠습니다.”

    강은숙 이사장은 적이 많았다. 다른 이사들은 모두 강은숙과 달리 비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무회는, 지금 이사진 회의가 열리는 걸 두려워했다.

    이미 기사가 수도 없이 나왔고, 명백한 증거까지 나왔다. 인터넷에는 폭언욕설 동영상, 급식비리 동영상이 떠돌고 있다.

    게다가 급식업체는 물론이고 압수수색 관련자는 영장까지 있는 상태로 체포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문고에서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이사들은, 그들이 살기 위해서 자신을 내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무회는 이사진에서 정말로 퇴진될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그 생각이, 그녀를 두려움으로 이끌었다.

    “한 번,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있어야 법률 자문이나 이런 거도 가능하고….”

    “제 친구들 중에도 법조인들 많아요, 이사님.”

    강은숙 이사장의 말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심겨 있는 듯했다.

    “그, 그래. 나는 지시한 적도 없어. 어디까지나 민 부장이나 업체 직원들이 한 거야. 그리고 얼마 횡령도 안 했잖아! 이 정도면 형량도 얼마 안 될….”

    “추해요, 이사님. 그쯤 하세요.”

    이사장은 한무회를 억지로 일으켜서는 문 앞으로 데리고 갔다.

    “데리고 가세요.”

    문을 열자 언제 왔는지, 수사관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나이가 제법 있는 남성이 사나운 기운을 뽐내며 정면을 노려봤다.

    “중앙지검 박성혁 검사입니다. 한무회 이사님.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박성혁 검사는 옆에 있는 강명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사람이 강명문….’

    그는 딸이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강문고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강명문의 첫인상을 보며 한 가지를 가늠했다.

    ‘괜찮아 보이네.’

    살짝 웃음을 보인 박성혁은 이내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서 수사관들에게 명령했다.

    “체포해.”

    “네!”

    끌려가는 한무회를 향해 강명문이 태연하게 말했다.

    “강문고는 걱정하지 마십쇼.”

    그러자 한무회가 고개를 휙 돌렸다. 강명문을 씹어 먹을 것처럼 눈동자는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입은 금방이라도 험한 욕이 나올 것처럼 보였다.

    “그 어떤 학교보다도 청렴하게 만들 테니까.”

    그건 한무회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강은숙 이사장의 귀에도 한 번에 꽂혔다. 최고의 우군을 갖고 있다는 확신에 강은숙 이사장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한껏 올라갔다.

    그리고 그 말은 박성혁 검사가 강명문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갑시다.”

    박성혁은 수사관과 함께 계단을 내려가면서 씨익 웃었다.

    강남 8학군의 명문 사립고등학교, 강문고에 근무 중인 강명문.

    그라면, 그가 생각하는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한무회 이사가 검찰에게 체포된 후, 나는 이사장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형량을 많이 받지는 못할 거예요.”

    “네. 실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실제 횡령된 금액이 많은 건 아니니까요.”

    사실 한무회 이사를 감방으로 넣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급식 비리가 오래도록 저질러진 후에 일을 터트려야 했다. 그래야만 더 정확한 증거들을 확보할 수 있고, 형량도 더 높게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한무회 이사가 감옥에서 오래도록 썩는 게 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이사진이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니까.

    두 번째 이유는, 대외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금 내 이미지는 학교와 학생들을 위하는 교사다. 만약 비리가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면?

    오히려 그렇게 되었을 때가 더 대처하기 곤란해진다.

    ‘이 정도면 이사진에게 확실하게 보여 줬겠지.’

    실제 이사진 회의에서 한무회 이사의 퇴진이 결정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었다. 이사진이 강문고의 행정적인 비리를 쉽게 건드리지 못하게 막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까딱 잘못 건드리면 검찰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무기가 된다. 그것도 그냥 검사도 아니고 중앙지검 차장검사.

    ‘박 선생님 순댓국 세트라도 사줘야겠네.’

    이번 일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박 선생을 생각하면서 이사장이 건네는 차를 받았다.

    “한무회 이사를 이사진에서 내쫓을 수 있을까요?”

    “아마 곽형조 측에서 먼저 버릴 겁니다.”

    찻잔을 들어 향기를 맡았다. 방금 한무회 이사에게 건네준 녹차가 아닌, 루이보스 차였다.

    “잘 마시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나는 차를 한 모금 하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한무회 이사는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니 고양이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그런 취급이나 받을 게 뻔합니다. 조신자 이사가 사고를 한 번 친 이후에 이사진으로부터 밉보였던 것처럼 말이죠.”

    “그럼 한무회 이사 구속이 빠르게 풀려도….”

    이사장은 이제야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차피 강문고 재단의 이사진 자리에 남아 있기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 곽형조와 천우원의 압박을 이겨 내지 못하겠죠. 스스로 그만두겠다 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조신자 이사가 나에게 크게 당한 뒤, 곽형조를 비롯한 강문고 이사진들은 조신자 이사를 눈엣가시처럼 여겼었다. 그들에게 있어, 능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조신자는, 자신들의 부정한 행위를 고발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내쫓았다. 설령 고발을 당하더라도 그들이 강문고를 위해 불법한 행위를 벌인 이사들을 정리하고 있다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기 위해서.

    “한무회 이사도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겁니다.”

    나는 여유 있게 차를 마시면서 앞으로 있을 일들을 생각했다.

    “그럼 당분간은 급식비리 건으로 조용하겠네요.”

    “아뇨, 그렇지도 않을 겁니다.”

    이사장은 뭐가 또 남았냐면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이사장을 향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저를 건드리지 못한다면, 이제 제 주변을 건드릴 겁니다.”

    나는 박 선생에게 했던 말처럼, 내 주변을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주변이요?”

    “네. 하지만 이사장님이나 선생님들은 아닙니다. 그들이 조금만 조사해도 박은환 선생님 아버지가 차장검사인 걸 알게 될 겁니다.”

    옆에서 민지정이 헉!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 반응을 재미있다며 잠시간 살피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 구속도 차장검사님이 실행했으니 그들은 교사들에게 접근하는 걸 꺼려할 겁니다.”

    “그럼 누구를 건드리게 될까요?”

    지금 시점에서 이사들은 내 주변을 어떻게든 흔들기 위해 애쓸 게 뻔했다. 하지만, 가족도 없고, 친척과의 왕래도 없는 나를 쉽게 건드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는 무엇이 있을까. 친구들이나 지인들? 애초에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고, 가장 친한 게 지석 선배다. 교사? 박 선생 한 명 때문에라도 교사는 쉽게 건드릴 수 없다.

    그럼 남은 건 이들뿐이다. 교사가 반드시 만나야 하고, 그 누구보다도 대화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관계.

    “학생들을 건드릴 겁니다.”

    이사장이 들고 있던 찻잔을 허공에서 멈추며 나를 바라봤다. 이사장의 눈에 이글이글 불꽃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학부모까지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서 벌벌 떨고 있는 민지정 교무부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민 부장님.”

    “어, 어쩌지, 이제, 이제 난… 이사님들이 분명 날 버리고… 바, 박 선생 아버지가 차장검사… 잘못하면 구속….”

    “민 부장님!”

    넋이 나가 있는 민 부장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민 부장이 헉! 하며 고개를 들었다.

    “민 부장님이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민 부장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나를 바라봤다.

    “민주를 부당한 이유로 체벌하려 하고 압박한 것부터, 당신은 지금 당장 해임으로 들어가도 됩니다.”

    “그, 그건….”

    “하지만, 저는 한무회 이사만 조사에 들어가도록 이야기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민 부장은 곧장 해임으로 들어가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민 부장을 학교에 남겨두는 이유가 있었다.

    “민주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시고, 다시는 그런 불법적인 일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참고인 조사 정도로만 이어지고 끝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시점에서 한 교감도 할 수 없고, 나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대신, 이사들에게 말해서 부장직은 유지하도록 선처해달라 비십시오.”

    “왜, 왜? 하다못해 부장에서 내려가기라도 해야 자네 속이 편할 텐데….”

    강문고 이사진은 강은숙 이사장에게도 정보를 숨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누구보다도 가깝게 있는 사람이 바로 민지정 교무부장이었다.

    “교무부장 타이틀 없어지면 이사진에서 끼워 주기라고 할 것 같습니까? 그러니 교무부장 타이틀은 유지하게 하시고, 더 충성하겠다 하세요.”

    “…스파이짓을 해라?”

    “아뇨. 정보를 파는 겁니다. 저는 민 부장님과 같은 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는 건 거래입니다.”

    물론, 지금만 잠깐 행해지는 짧은 거래였지만 말이다.

    ‘시간 지나면 싹 다 처벌 받게 해야지.’

    그런 마음 속 칼날을 숨기고서 민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이 지금까지 저지른 비리들 다 합치면 교사직 유지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아드님 취업 걱정도 하고 계시고….”

    “!!”

    민 부장에게 있는 단 하나뿐인 아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딱히 뛰어난 역량을 보이거나 열정이 있지도 않았다.

    학점도 3.0을 겨우 넘겼고, 출신 대학교도 고만고만했다.

    남들이 공모전 수상을 목표로 공부하거나 해외 봉사를 하는 등 스펙을 쌓아갈 때도, 친구들과 술만 마시면서 놀기에만 바빴다.

    그래서 항상 민 부장은 자기 아들이 콤플렉스였다. 강남 8학군 명문고등학교 교무부장인 자기와 달리 아들은 부끄럽다고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심지어 미성년자와도 술을 마시려 했다. 다행히 현장에서 발각되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잘못했으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역시 류 선생을 거기 남겨둔 보람이 있네.’

    류 선생이 김영호 부장, 민지정 부장과 어울리면서 알게 되는 정보들은 나에게도 들어왔다. 그리고 그중에서 활용하기 좋은 정보 중 하나가 민 부장의 아들에 대한 정보였다.

    “그러니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는 제 말을 듣는 게 좋을 겁니다.”

    내 경고에 민지정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 표정을 만족스럽다며 바라본 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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