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45화 (145/252)

145화. 도둑잡기 (5)

민주와 인터뷰를 마친 신 기자는 진짜 특종이라면서 펜을 열심히 놀렸다. 그리고는 주변 사람들은 신경 쓰이지도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서초구 국회의원인데 학교에 촌지를 단 한 번도 보내지 않았고, 그 딸도 그런 대쪽 같은 청렴결백 정신을 이어받아 학교 선생님에게 이야기했다가 학교 선생님은 되려 학생을 때리려 하면서 혼내고… 스토리가 완벽해! 그럼 헤드라인은 뭘로 하지? 이런 건 어떠려나? <촌지? 우리 부모님은 그런 거 취급 안 해요> 아니야. 처음부터 오성주 국회의원을 보여 줄까?”

“신 기자님.”

“아니면 부녀 동반 인터뷰? 아니지, 이럴 거면 별도로 의원님만 따로 인터뷰를….”

“신 기자님!”

“헉, 네, 네, 선생님!”

“애들 봅니다.”

그제야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인 신 기자는 학생들을 향해 어흠, 헛기침을 했다.

“미안 얘들아. 그런데 진짜 좋은 소재여서 그래. 민주는 아버지 이야기 기사에 써도 괜찮아?”

“네. 아빠한테는 아빠 이름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아마 이걸로 이미지 메이킹 더 들어가실걸요?”

그런 세부적인 이야기까지는 할 필요 없다고 내가 핀잔을 줬다. 민주는 이게 왜요! 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니 급식비 횡령 문제 밝힌 주인공들은 어디에 있어요?”

“지금이야 각자 학교에 있겠죠. 인터넷에 그런 걸 올린 직후라 정신 없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신 기자를 만나기 직전, 정석이가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쌤! 기자들한테 DM 엄청 와요!

그 DM들에 답변하지 말고, 일단 기다리라고만 해둔 상황이었고 말이다.

“걔들 인터뷰도 하시겠어요?”

내 말에 신 기자가 눈을 빛냈다.

“저만 단독이죠?”

“물론입니다.”

신 기자는 연신 주먹을 허공에 내지르면서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오늘만 특종이 몇 개야!”

그런 신 기자를 겨우 진정시키고는 자리에 앉혔다.

“대신 약속해 주실 게 있습니다.”

“그럼요. 뭐든 들어드릴게요!”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제자들이다.

지금 시점에서 이런 문제들을 폭로하는 주체로 삼고, 기사의 메인으로 뜨는 건, 어떻게 보면 가혹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녀석들의 도움도 도움이지만,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도록 조율하고자 했다.

“학생들에게 너무 많은 걸 물어보지는 마시고, 정말 어쩌다 우연히 발견한 정도로만 해 주세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SNS에 올려서 의견을 물었고, 예전에 인터뷰 해 주었던 기자님이 생각나서 전화한 정도로 해 주시고요.”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의도적으로 탑차 기사들을 따라간 정황이 생긴다. 자칫 잘못하면 이사진은 물론이고 네티즌들에게도 공격받을 수 있었다.

물론 세 녀석이 그 정도로 멘탈이 흔들릴 녀석들은 아니었지만, 위험한 일이라는 점은 맞았다.

“네 당연하죠. 저도 오며가며 얘들한테 정들었는데 그 정도는 해야죠!”

“그럼 잘 부탁합니다.”

다음 날, 신 기자는 동석이와 정석이를 인터뷰했다. 명천이는 학교 수업 때문에 서울로 오기가 애매했기에 이번 인터뷰에는 빠졌다.

동석이와 정석이는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신 기자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학교로 오면서 봤던 수상한 사람들의 모습들까지도 모두 알렸다.

“제가 제대로 공론화해 볼게요.”

신 기자의 말에 나는 고맙다고 답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면서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거 때문에 공격받는 거 아니에요?”

“누구한테요?”

“그… 비리 대가리요.”

누굴 말하는 건지 이해했다.

그녀는 꼬리들을 알린다 해도 윗선을 잡기는 쉽지 않을 거고, 자칫 잘못하면 협박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대가리들은 저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확신하시는 근거가 있나요?”

이번 급식비 횡령을 주도한 사람은 한무회 이사의 주치의의 아들. 그렇다면 한무회에게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한무회가 주치의 아들로까지 이어지는 건너건너의 인물을 행정실장으로 앉힌 것도 다 그 때문이었을 테니 말이다.

“저한테 칼 들이대다가는 본인 머리가 싹 다 잘릴 수 있으니까요.”

신 기자는 그래도 걱정된다면서 무슨 일 생기면 꼭 경찰에 연락하라고 말했다. 어차피 말단 경찰들이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걱정해 주는 신 기자가 고마웠다.

“다음에 또 뭐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녀와 헤어진 후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적였다. 그리고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왔어요.]

“벌써 왔습니까?”

[네. 곧 도착한다고 하네요. 강 선생님도 오실 거죠?]

당연히 참석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이번 도둑잡기의 대장 도둑을 만나러갈 차례였다.

* * *

강명문과 통화를 마친 강은숙 이사장은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거의 다 왔다고 했으니 이제 곧 도착할 시간이었다.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강은숙.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한무회 이사가 눈을 부릅뜨면서 이사장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사장은 그 기세에 눌리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시고… 녹차 한 잔 드실래요?”

녹차를 준비해 온 이사장이 한무회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한무회는 이사장의 말에도 진정하기는커녕 목소리를 더 높였다.

“너 요즘 왜 그래?”

“예?”

“작년 초까지만 해도 조용했잖아. 우리가 뭘 하든, 네가 신경쓰지 않겠다고도 했잖아. 우리를 믿고 학교를 맡긴다고도 했었고.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요즘 이러는 거야?”

이사장은 조용히 찻잔을 들어 녹차를 마셨다. 따뜻한 녹차 향을 느끼면서 이사장이 한무회를 바라봤다.

“학교를 운영하는 데 있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말씀드렸지 않나요? 할아버지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강진 어르신이 돌아가신 지 벌써 한참이야. 그걸 아직도 지키려고 해?”

한무회가 생각할 때 강진의 목표는 매우 편협하고, 시대착오적이었다. 요즘 시대에 청렴결백이라니. 게다가 공립학교도 아니고 사립학교에서 말이다.

모름지기 사립학교라면, 설립자를 비롯한 이사진들에게도 권력과 자금이 분배되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는 그러라고 있는 거야. 그리고 이사진이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입결도 나쁘지 않았잖아.”

“돈 주고 시험지 빼돌리고, 성적 조작하고 하는 것들이요? 게다가 개인 과외까지 돌리고 있던데.”

이사장의 말에 한무회가 이빨을 뿌득 갈았다. 그리고는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쾅! 소리와 함께 위에 놓인 찻잔이 살짝 흔들렸다.

“지금 대놓고 공격하겠다는 거야 뭐야?”

“공격이 아니라 사실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는 저희 할아버지, 아버지와 인연이 있으신 이사님들을 믿고 지금까지 왔어요. 하지만 지금 보여 주시는 일들은 썩 좋은 모습이 아니더군요.”

한무회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좋은 모습의 기준이….”

“학생, 학교를 위하는 모습입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사장실 문 앞에 푸른 넥타이에 흰 셔츠를 입은 남성이 서 있었다.

“강 선생님 오셨어요?”

“네, 이사장님. 한무회 이사님이시죠?”

강명문의 질문에 한무회가 커흠, 헛기침을 했다.

“그쪽이 강명문?”

“초면인데 말이 짧으시네요.”

“내가 자네보다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데 말 정도는 편하게 해도 되지 않나?”

한무회가 당당하게 말하자 강명문도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까지 강은숙이가 이상해진 이유, 강명문 선생이 있어서라고 들었어. 왜 저런 초짜랑 같이 일하는 거야?”

“강 선생님은 초짜가 아니에요. 입시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학생들을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대하는 분이시죠.”

이사장이 눈을 감고 천천히, 하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한무회는 기가 막히다면서 강명문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이번 사태에 대해 이사님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어려우신 것 같습니다.”

“흥. 뭐 나올 게 더 있나? 급식비 횡령? 그건 아래 직원들끼리 한 거야. 행정실장 잘못이 아니지.”

그녀의 말에 강명문이 코웃음을 쳤다.

“행정실장이 잘못했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만?”

무언가 찔리는 듯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한무회를 향해 강명문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근데 이거 진짜 해도 되는 거야?

-학교 실장인가 하는 사람이 비밀 보장해 준다 그랬어.

-아 그래? 믿을 만한 사람인 건 맞고?

-맞다니까. 재단 이사랑 아는 사이라 그랬어. 사립학교는 이사가 제일 힘 쎈 거 알지?

급식업체 직원들이 PC방에서 수다를 떠는 영상이었다. 영상의 소리를 들은 한무회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강명문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살짝 흔들었다.

“이건 기자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인터넷에도 올리지 않은 영상입니다.”

“너….”

“급식비를 실제로 다룰 수 있는 실장은 행정실장이죠. 거기에 사립학교 이사와 아는 사이? 김상엽 주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건 금방일 겁니다.”

한무회는 불안한 듯 손가락을 놀렸다. 그리고는 그런 사실은 전혀 모른다며 연기를 했다.

“나는 그게 누구인지 몰라. 김상엽? 그런 사람도 있었나?”

“모르는 사람입니까? 이사님 절친인 거 같은데.”

“나는 그런 사람 몰라. 어디서 생사람 잡고 있어!”

강명문에게 소리를 지른 한무회는 머릿속으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까 구상했다. 그런 한무회를 보면서 강명문이 피식 웃었다.

“열심히 짱구 굴려 봤자 소용없습니다.”

“…뭐야?”

“들어오세요.”

강명문의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한 중년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민지정…?”

민지정은 벌벌 떨면서 강명문 앞으로 다가갔다. 강명문의 얼굴을 본 민지정이 고개를 푹 숙였다.

“민 부장님. 저한테 이야기했던 것들 여기서 말씀해 주세요.”

“….”

“민 부장. 지금 설마 나를 음해하려는 건가? 지금 여기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모, 모든 건 여기 있는 한무회 이사가 시킨 겁니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쳐진 민지정의 말이 이사장실을 가득 메웠다. 강명문은 만족스러웠는지 핸드폰으로 녹음을 한 파일을 한무회에게 보여 주었다.

“저, 저는, 그, 급식비 횡령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그저 한무회 이사님이 시키는 대로! 급식비 제출일이 여유가 있는데도, 학생들을 닦달했습니다!”

“민 부장, 그게 무슨 소리야!!”

한무회가 소리를 질렀지만, 되려 민지정의 목소리만 커지는 효과를 낳았다.

“이사님이 시키지 않았습니까! 저는, 저는 어디까지나 협박을 받아서….”

“무슨 협박이었습니까?”

불안한 눈동자로 강명문을 바라본 민지정이 어렵게 입술을 열었다.

“혀, 협조하지 않으면, 부장 자리에서 쫓아내겠다, 학교 못 다니게 할 줄 알아라, 같잖은 교사 따위….”

“그만 닥쳐! 내가 뭘 했다고….”

“자리 가지고 협박을 했군요. 악질 중에서도 악질입니다 정말.”

강명문은 눈을 날카롭게 하고서 한무회를 바라봤다. 한무회는 강명문의 눈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고발이라도 하려고? 내 남편이 검사 출신이야. 고발해 봤자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맞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말에 한무회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겼다, 아무도 날 건드릴 수 없을 거다, 라고.

그러나 이어지는 강명문의 말에 한무회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그런 건 전문가들에게 맡겼죠.”

“전문가…?”

강명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무회의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핸드폰에는 ‘김상엽 의사’라고 적혀 있었다.

“김상엽이 누군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 닥쳐!”

핸드폰을 서둘러 가방에 넣은 한무회가 말을 버벅였다. 그러나 연이어서 핸드폰이 울려왔다.

“급한 전화 같은데 받아 보시죠.”

한무회는 불안한 눈으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누님! 지금 어딥니까!]

핸드폰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전화를 받지 않는 강명문, 민지정, 강은숙 이사장의 귀에도 들어왔다.

“왜, 왜?”

[지금 급식업체 압수수색 들어갔습니다! 아들놈도 수사 들어간다고 하고요! 누님이 어떻게 좀 해 주십쇼!]

“아, 압수수색?”

한무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강명문은 테이블에 놓인 사탕을 한 봉지 뜯어서 입에 쏙 넣었다.

“말했잖습니까. 전문가들에게 맡겼다고.”

지금 움직이고 있을 검찰측 검사가 누구일지 알고 있는 강명문이 여유로운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아버지가 기사 보고 저한테 전화해서는 대노하셨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감히 내 딸이 근무하는 곳에서 이런 더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냐며, 당장 압수수색 가겠다고 하셨어요.

-좋네요. 익명제보죠?

-당연하죠.

강명문은 이사장실에 오기 직전, 박은환 선생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분들이 본격적으로 뒤집어엎을 겁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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