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44화 (144/252)
  • 144화. 도둑잡기 (4)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카페에 박 선생, 은솔이, 용희가 나와 함께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쌤, 괜찮았어요?”

    민주는 밝은 얼굴을 하고서 카페에 들어왔다. 마치 아까 민 부장 앞에서 씩씩대던 얼굴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했다.

    “굿. 잘했어.”

    나는 민주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그나저나 진짜 놀랐어요. 설마 백발마녀쌤이….”

    “나도 그래. 아니 어떻게 학생들한테 대놓고 촌지로 차별한다고 이야기하냐? 식자재도 그 쌤이 빼돌리는 거 아냐?”

    은솔이도 어이가 없다며 말했다.

    “그나저나, 잘 찍혔어?”

    “당연하지. 내가 열심히 찍었…너는 그 와중에 잘 찍혔는지부터 물어보냐.”

    민주의 말에 용희가 참 신기하다면서 핸드폰을 꺼내서 영상을 틀었다. 영상에는 민 부장의 멘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민주에게 손찌검을 하기 직전의 모습도 들어 있었다.

    “쌤 안 오셨으면 꼼짝없이 맞았겠어요.”

    박 선생의 말에 나도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녀석들을 향해 주의를 주었다.

    “위험했다. 다음부터는 다들 필요 이상으로 대들지 마.”

    이번 작전에서 나는 일부러 학생들에게 여러 일들을 조사해보고, 알아보고, 관찰해 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녀석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이기는 했는데, 그 과정에서 위험한 일이 발생하는 것 역시 좋은 건 아니었다.

    “상대를 너무 자극하지 말고, 침착하게 관찰하도록 해. 잘못하면 정말로 다친다. 알겠니?”

    “네…. 쌤 그런데, 우리가 어제오늘 본 것들 정리해 보면, 학교에 뭐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민주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면서 물었다. 거기에 은솔이와 용희도 지금 강문고 분위기가 이상하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쌤. 혹시 뭐… 횡령하거나 그런 거는 아니죠?”

    “횡령 맞아.”

    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세 녀석의 얼굴이 동시에 구겨졌다.

    “진짜로요?”

    “응.”

    “의심할 여지 없이?”

    “그래.”

    “언제부터요?”

    “아마도 내가 강문고에 오기 전부터.”

    이번 도둑잡기의 주된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무회 이사와 관련된 비리를 수면 위로 드러내서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족쇄를 거는 것.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은, 강문고 학생들에게 현재 학교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저희가 내는 돈들은….”

    “뒷돈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다. 은솔이도 식재료들 빼돌리는 거 봤잖아?”

    전생에서 내가 갖고 있었던 아쉬운 점. 그건, 오직 교사들만 학교 비리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갑작스럽게 생긴 시위와 사건들로 인해 혼란스러워했다.

    당연하게도, 많은 학생들이 한국고를 비롯한 다른 학교들로 전학을 갔고, 남은 학생들은 어지러운 학교 안에서 입시를 준비하다가 대다수 재수를 하는 결과를 낳았다.

    “너희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알려야 한다.

    누군가의 설명으로, 폭로로 알게 되는 게 아닌, 학생들 스스로가 자기들끼리의 이야기로 알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같이 극복해 보자.”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우리 교사들이 강문고의 비리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갈 것이다.

    이번 급식비 횡령은, 그런 비리 척결의 첫 단추였다.

    * * *

    신미나는 의자에 앉아서 하릴없이 펜만 빙빙 돌리고 있었다. 강명문에게서 받은 전화통화가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SNS를 보라고?’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SNS는 필수였다. 작년에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던 선배들도,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SNS 삼매경이다.

    그런 시대가 되었는데, 강명문은 SNS에 특종 사건이 올라갈 거라고 말했다.

    ‘대체 뭐지?’

    한 손에는 핸드폰,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저울질하듯 들고 있던 신미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게….”

    그녀는 한 트위티 글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온몸이 굳었다. 한두 개의 글이 아니었다.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관련된 글들이 수두룩하게 나타났다.

    그러다 신미나는 누가 먼저 이 사건을 채갈까 싶어 부리나케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얹었다. 빠르게 타이핑되는 소리가 사무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 * *

    “이거 뭐야?”

    민지정은 강남의 한 고급 오피스텔에서 한무회를 만났다. 그곳은 한무회가 개인 서재로 사용함과 동시에 비밀리에 작전을 지시하고 행동하기 위해 만든 아지트 같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민지정은 한무회가 집어던지는 온갖 식기들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년아! 대답해! 이게 대체 뭐냐고! 어?”

    민지정도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한무회가 집어던진 향초가 민지정의 옆에 박히면서 퍼석, 터졌다. 자칫 잘못하면 뺨에 유리 파편이 닿을 뻔했던 민지정은 숨을 헐떡이며 한무회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이사님, 이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그런 게….”

    “네가 그런 게 아니라고? 지금 여기 동영상은 아무리 봐도 넌데? 게다가 왜, 왜!!!! 오민주를 건드려 왜!!!”

    오민주의 아버지는 서울 서초구 2선 국회의원인 오성주였다.

    다른 지역도 아니고 강남서초권 지역구 국회의원의 딸을 건드린 것이다.

    “몰랐어?”

    “아, 아니요, 알았습니다.”

    “알고 있는 새끼가 왜 그랬어, 어!!”

    한무회 이사는 손에 잡히는 대로 민지정에게 물건들을 집어 던졌다. 이제 그녀의 손이 닿는 자리에 집을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

    “걔네 아버지 2선 국회의원이잖아. 오성주잖아.”

    “네, 네네, 맞습니다.”

    “그 오성주한테 부탁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이딴 식으로 들어가면 어떡하냐고!!!”

    민지정의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오민주를 닦달했던 이유는 한무회 이사의 지시 때문도 있었다.

    “그… 그게, 급식비 안 낸 학생들 압박하다가….”

    그래서 민지정은 민주에게도 그렇게 했던 것이었다. 자신도 압박을 받았기에 다소 강압적으로 말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지금처럼 일파만파 퍼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압박할 학생, 하지 말아야 할 학생 구분은 해야지! 그것도 못해!”

    한무회가 모니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댓글도 난리야. 우리 부모님도 촌지 안 줬는데 그래서 내가 쌤들한테 미움받은 듯, 저 정도면 대놓고 촌지 주고받는 학교 아님? 촌지 안 줬다고 차별하는 게 선생이냐? 저딴 학교가 강남 명문이랜다. 어디 돈 없는 애들은 살겠나? 저기 신고해서 학교 폭파해야 하는 거 아님?”

    댓글을 읽다 만 한무회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서 민지정을 노려봤다.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한 거야 넌. 어?”

    “죄, 죄송합니다. 저, 저저, 저도 설마 이런 식으로 퍼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급식비 빨리 내라고 독촉한….”

    “닥쳐!!!”

    한참 변명을 하는 민지정의 말을 한무회가 단칼에 끊어냈다.

    “급식비 관련해서는 안 들켰어?”

    “네, 네, 그건 괜찮, 괜찮을 겁니다.”

    한무회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음료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언론 통제는?”

    “이미 SNS를 타고 다 퍼져서 의미가….”

    “누가 썼는지는?”

    “전부 익명이라 특정할 수도 없고, 학교 학생들을 전부 뒤지기도….”

    “이 신미나라는 기자는 누구지?”

    “그…미래교육 신입기자인데, 강명문과 좀 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강명문이라는 말에 한무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명문…?”

    “네.”

    “또… 또 강명문이야?”

    작년에 혜성처럼 강문고 일타교사로 떠올라 입시 실적의 대부분을 가져간 초임교사.

    그리고 이제는 조신자 이사를 이사진에서 퇴진시키고, 한무회 자신이 하는 일에도 브레이크를 걸려고 하는 교사.

    “급식비만큼은… 걸리면 안 돼.”

    “네, 네 알겠습니다.”

    민지정은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는 떨리는 입술로 간신히 대답했다. 그런 민지정을 뒤로하고 한무회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주치의이자 친한 동생인 김상엽이었다.

    “여보세요.”

    [이사님! 크, 큰일 났습니다!]

    지금 민지정이 오민주에게 손찌검을 하려하고, 촌지를 받았다고 대놓고 소리를 지른 일보다 더 큰일이 있을까. 한무회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또 왜!!”

    [그, 그, 타, 탑차 기사들! 탑차 기사들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식자재비 횡령한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한무회는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는 민지정에게 손짓을 해서 당장 포털사이트 뉴스를 열어 보라고 신호를 보냈다. 민지정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연신 놀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지정의 얼굴도 얼어붙었다.

    “망할….”

    그녀가 클릭한 뉴스의 헤드라인에는 대문짝만 하게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화제의 강문고, 자라나는 아이들 식사에 손을 댔나?>

    * * *

    하루 사이, 포털사이트 뉴스들은 강문고의 급식비 횡령과 교사의 폭언 폭행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신 기자는 내가 알려 준 대로 헤드라인은 반드시 자극적인 제목으로 하되, 학생들이 했다는 이야기는 최대한 뺀 채 기사를 작성했다.

    [익명의 제보자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의 기사들이 이런 식으로 작성되었다.

    “편집장님에게 욕 안 먹었어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제 기사가 단독으로만 몇 개가 나갔는지 몰라요. 지금도 온몸이 떨려오는걸요!”

    학교 인터뷰를 하러 찾아온 신 기자가 내 앞에서 몸을 부르르 떠는 시늉을 하며 깔깔 웃었다.

    “다들 내가 기사 올리고 나서야 부랴부랴 쓰는 꼴이 아주 볼 만했다니까요, 깔깔!”

    “그러다 미움 사겠습니다. 아무튼, 이번에 좋은 기사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 기자가 작성한 기사들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강남 명문고등학교 교무부장의 폭언!>

    <교육자의 만행과 급식비 횡령 문제,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자>

    이러한 주제의 기사들이 벌써 몇 개나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인터넷도 시끌시끌해요. 지금 저 손찌검 맞을 뻔했던 학생은 괜찮냐, 그걸 막아낸 남자 교사가 강명문이냐, 난리도 아니라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

    신 기자가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게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똘망똘망하게 떴다.

    “여기 이 학생 인터뷰 좀 하면 안 될까요? 제발요, 부탁드려요.”

    “안 됩니다.”

    “선생님도 인터뷰 해드릴게요. 제자가 다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정의의 강문고 교사 등장!”

    “됐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제발 좀 해달라며 사정하는 신 기자를 어렵게 떼어냈다. 그때 나와 신 기자가 있는 교실 문이 열렸다.

    “쌤, 저 해도 괜찮아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 잘못하면 얼굴 팔려.”

    “사진만 안 찍으면 되죠. 그리고 아빠한테는 허락받았어요.”

    민주가 활짝 웃으면서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그 뒤로 은솔이와 용희도 따라 들어왔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막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녀석들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됐어. 민주야 너 진짜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쌤. 저 인터뷰 할게요.”

    나는 신 기자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녀가 내 옆으로 가깝게 다가왔다. 녀석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작은 소리로 신 기자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민주가 아직 충격이 있기는 할 겁니다. 그러니 너무 민감한 문제들을 물어보지는 말아주세요. 표면적인 것만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그 정도 눈치는 저도 있다고요. 작년에 은장이랑 동석이 취재할 때 잊으셨어요?”

    신 기자는 나만 믿으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 모습이 내심 더 못 미덥게 느껴지기도 해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한 시간쯤이 지났다.

    “어… 그러니까… 아버지가 지역구 국회의원인 오성주 의원님…?”

    “네, 맞아요.”

    신 기자는 두 눈을 빛내면서 또 하나의 특종이 들어왔다며 흥분했다.

    “강 선생님….”

    “네?”

    “특종 또 내도 괜찮죠?”

    그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나는 신 기자가 어떤 기사를 낼지 예상이 되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작성하세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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