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43화 (143/252)

143화. 도둑잡기 (3)

“그게 사실이에요!?”

그럴 리가 없다면서 소리를 지르는 박 선생에게 동석이가 핸드폰으로 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 영상에서 급식업체 탑차 기사들의 대화가 흘러나왔다.

동석이의 핸드폰을 부서질 듯 세게 쥔 그녀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지금 어디 신성한 학교 급식을! 이딴 식으로!”

“자자, 진정하시고요. 그래서 박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생각했던 계획을 박 선생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박 선생이 꼭 그래야겠냐며 인상을 썼다.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어설픈 경찰들의 힘으로는 이사진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를 쉽게 부수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애꿎은 양조민 영양사님 같은 분들만 해고되겠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박 선생님 아버지 같은 검찰의 힘입니다. 그것도 평검사가 아닌, 차장검사급 말입니다.”

“그럼 내가 먼저 말해요? 민간인이 이렇게 뒤따라가면서 조사했다고?”

“아뇨, 익명 제보로 가야죠. 그리고 제일 먼저 터트리는 건 우리가 아닙니다.”

나는 동석이와 정석이를 바라봤다.

“왜, 왜요?”

“오래간만에 공강 때 졸업생 친구들끼리 만나서 PC방에서 놀았는데, 학교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들었지?”

내 말에 동석이와 정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천이는 설마,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둘 다 SNS 하나?”

“저는 해요!”

“저는 아직….”

“그럼 이번에도 정석이가 힘 좀 써 줘야겠다.”

정석이는 류 선생의 어두운 취미를 조사할 때가 생각났는지 아! 하며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쳤다.

“재학생이 졸업생 특강 준비 때문에 학교 근처에서 친구를 만났다가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다음 순서를 떠올리며 민주에게 연락을 했다.

“민주야, 내일은 아마 교무부장님이 또 이상하게 움직일 거야. 내일은 동아리활동에 집중하고 있어. 그러다 뭐 생기면 은솔이, 용희, 태웅이한테 영상 찍으라 하고.”

[급식비는요?]

“내일은 갖고 와.”

민주가 알겠다고 답했다.

[사실 저도 좀 의아하기는 했어요. 교무부장쌤이 계속 닦달하시는데…. 좀 조급해 보이시기도 했고.]

“그래. 그러실 거야. 그리고 분명 이번에는 무언가 급하다면서 과하게 반응할 수도 있어. 혹시 모르니 조심하고. 은솔이는?”

[곧 갈 거예요! 청소 다 끝나갈 시간이에요!]

그럼 은솔이도 곧 이 자리에 올 거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또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잘 지내셨어요?”

[강 선생님!]

미래교육 신미나 기자였다. 그녀는 요즘 특종거리가 없다면서 연신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도 SNS 하시죠?”

[요즘 기자가 SNS를 안 할 수 있나요? 근데 왜요?]

“조만간 특종 거리 올라올 겁니다. 준비해 주세요.”

내 말을 들은 신 기자가 잠시간 말을 멈췄다. 그러다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는 물었다.

[뭔데요? 이번에는 또 뭔데요?]

“입시 준비도 있고, 사건도 있습니다.”

신 기자는 대기하고 있겠다면서 절대 이걸 다른 기자들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겠노라고 답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쌤 청소 끝났어요!”

“고생했다. 어서 앉아.”

은솔이 보고 와서 앉으라며 책상 옆을 고개로 가리켰다. 은솔이가 얼른 달려와서 책상 옆에 있는 간이의자에 앉았다.

“대충 그림은 그려졌습니다.”

홍 선생은 스케치 수업 준비를 위해 교정 어디를 그리게 할까 구상하던 중 급식업체 탑차의 수상한 움직임을 알게 되었다. 졸업생들은 졸업생 특강을 준비하려고 오래간만에 모였다가 PC방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민주는 입시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 급식비를 깜빡하다가 교무부장에게 한 소리 듣는다.

이런 내용들을 각자 SNS에 올린다. 그리고 이 내용을 신 기자가 기사로 올린다.

‘민지정은 불안하니까 나도 대비를 좀 해야겠어.’

만약 민 부장이 감정이 격해져서 반응하면, 그때는 민주가 화를 입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한 후 은솔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은솔이는 시간 좀 지나면 정해진 식재료비용이 불규칙할 경우의 급식 배급 문제점에 대해 보고서를 쓰자. 중요한 건 정해진 비용 내에서 얼마만큼의 영양이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야. ”

“네!”

은솔이의 비교과는 이번 사건을 토대로 좀 더 풍부해질 것이다. 식재료의 규칙적인 배급은 영양을 분석하고, 이에 맞춘 식단을 짜는 데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요?”

내 신호를 마지막으로 각자 맡은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에게 꼭 무슨 일이 있으면 기록, 녹음, 촬영 등을 해서 증거를 남겨두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도둑들의 수장이 나타나겠지.’

그때가 되면, 조신자에 이어서 한무회에게도 한 방 날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강문고 이사진의 비리를 하나씩 보여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 *

“지금 너 때문에 모두가 피해를 보잖아!”

민주는 친구들과 동아리활동을 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교무부장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급식비 냈어요, 선생님!”

“왜 어제 안 냈어! 바로 냈어야지! 너 때문에 친구들이 급식 제대로 못 먹으면 책임이라도 질 거야!”

민지정은 다른 학생들이 듣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서 소리를 꽥꽥 질렀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민주도 억울만 마음뿐이었다.

겨우 두 번 깜빡했고, 제출 기한을 넘기지도 않았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가 제출 기한인데, 1주일 더 빨리 내지 않았다고 욕먹는 그림이었다.

“제출 기한 아직 남았는데….”

“나도 알아!”

“아니, 선생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그럼!”

민주도 지지 않고 민지정의 말에 반박했다. 민지정은 그저 혼자 화가 쌓여 있는 듯 씩씩거리기만 했다.

‘한무회한테마저 찍히면 안 된다…!’

민지정은 어제 한무회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왜 빨리 급식비가 걷히지 않느냐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거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하나? 한몫 챙기려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지, 이렇게 굼떠서야 쓰겠어?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받아오겠습니다.

-가서 소리를 지르든, 협박을 하든, 체벌을 하든, 떼인 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오란 말이야.

-하지만,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그렇게는….

-볼멘소리 할 거면 당장 여기서 꺼져. 그러면 식충이처럼 살고 있는 네 아들 하나 돌봐주기도 힘들겠지만 말이야.

한무회는 민지정의 아들을 들먹이면서 그녀에게 당장 급식비를 모아오라고 채근했다. 그 일이 아침 출근 길에서도 떠올랐고, 지금도 민주를 보면서 떠오르는 중이었다.

-그리고 배려를 해줄 학생과 해줄 필요 없는 학생 정도는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건….

-성의표시를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차별을 둬야지. 급식비 같은 비용이라도 다른 애들보다는 빨리 내야 하지 않겠어? 평소에는 잘도 구분하더니 이번에는 왜 이리 어려워해?

-…알겠습니다.

민지정은 한무회와의 통화 내용을 떠올리면서 생각했다.

‘받지 못하면 우리 가족이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민지정은 입술을 까득 깨물며 민주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야, 요즘 백발마녀 이상하지 않냐?”

“민쌤? 왜?”

“아니, 우리 반에도 와 가지고 급식비 안 낸 애들 불러다가 엄청 잔소리하더라고. 뭐라더라, 너희 때문에 학교가 안 돌아간다고 했었나.”

“진짜? 왜 그러지?”

용희와 은솔이가 이상하다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장 선생님, 아직 기한이 며칠 남아 있는 시점에서 급식비를 모두 제출했으니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그렇게 강조하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태웅은 민주를 노려보는 민지정에게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태웅 딴에는 최대한 돌려서, 민지정이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그런 배려가 통했는지, 민지정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태웅이는 괜찮아. 너는 며칠 늦어도 괜찮지.”

“…네?”

“아무튼, 그런 게 있어. 민주는 늦으면 안 되는 아이야.”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자리에 있는 학생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태웅은 민지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주를 돌아봤다. 태웅의 예상대로, 민주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민지정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엄마아빠가 촌지 안 준다고 지금 이렇게 차별하는 거예요?”

“민주야 참아!”

옆에서 영상을 찍던 은솔이가 깜짝 놀라 민주의 양어깨를 붙잡고 뒤로 당겼다. 용희와 태웅도 사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해졌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둘은 민지정이 민주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오히려 그 태도가 민지정의 성질을 긁게 만들었다.

“알고 있으면 거기에 맞게 행동해야지, 어디서 말대꾸야!”

“우리 부모님이 왜 학교에 안 오는지 알아요? 선생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어디서 싸가지 없게!!”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민지정의 손이 민주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민주는 눈을 질끈 감고서 민지정의 손이 얼굴로 날아오는 걸 대비했다. 그러나 민지정의 손바닥이 민주의 뺨에 닿는 일은 없었다.

“쌤!”

민지정의 손바닥을 강명문이 맞잡고 있었다.

“그쯤 하시죠.”

“강 선생. 이거 놔.”

“놓으면 손찌검이라도 하실 겁니까?”

강명문이 서슬 퍼런 눈으로 민지정을 노려봤다. 그제서야 민지정도 흥분한 손을 아래로 내리면서 옷깃을 고쳐맸다. 그리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이 파들파들 떨려오는 눈동자로 강명문을 응시했다.

“뭐가 어찌 되었건, 그쯤 하셔야 될 겁니다.”

강명문은 교실 밖에 모여있는 학생들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큰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기 때문에 하교를 하려던 학생들이 교실 뒤쪽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 학생들 중에는 문경필도 있었다.

“또… 자넨가?”

“뭐가 말입니까?”

“이거, 다, 자네가, 노린 거 맞냐고.”

“그런 건 모르겠고, 지금 말씀 나누시는 부분들 전부 동영상으로 찍어 뒀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그는 민주를 비롯한 학생들을 돌아봤다.

“괜찮냐?”

“…네.”

용희와 태웅이 간신히 대답했다. 은솔은 자리에 쓰러질 듯 앉은 민주를 부축했다.

“민주야!”

문 앞에 몰려 있는 학생들을 제치고 박은환 선생이 들어왔다.

“민주야, 너 괜찮아?”

박은환은 곧장 민주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는 민지정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교무부장 선생님. 오늘 일 기억해 둘 겁니다.”

박은환의 목소리를 차갑고 서늘했다. 이미 급식비 횡령 등의 비리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급식비 횡령을 주도한 것이 강문고 이사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민지정도 가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문고는, 이사진은 물론이고 상위 교사들로 인해 오염되어 있다.

오늘의 사건은 그러한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 주었다.

동아리 활동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갑작스런 잔소리를 들은 민주도, 학원 가기 전에 잠깐 들른 태웅도, 급식비 횡령 문제를 영양사를 통해 알게 되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은솔도,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려다 이번 사태를 알게 된 용희도.

그리고 밖에서 이 일들을 지켜본 학생들 모두가, 민지정의 만행들을 보고, 알게 되었다.

학생들의 표정과 반응만 봐도, 학생들의 마음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확인한 강명문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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