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도둑잡기 (2)
월요일, 홍유진은 후다닥 조회를 끝내고 스케치 수업 준비를 위해 잠깐 나가겠다고 말한 뒤 학교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운동장 한구석에 있는 벤치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천히 앉았다.
-홍 선생님, 도와주실 게 있습니다.
아침부터 강명문이 다가와서 홍유진에게 급식실 부근에 수상한 트럭이 나오지는 않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마침 미술 교과 수업이 월요일에는 별로 없는지라 흔쾌히 알겠다고 말하고 나온 것이었다.
‘나도 박 선생님처럼 선배님한테 빚이라도 달아둘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홍유진의 눈에 탑차 한 대가 들어왔다. 탑차는 건물 뒤쪽으로 들어가더니 급식실이 있는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뭐지?’
다른 사람들이 없는지 주변을 확인한 홍유진은 마치 스파이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움직였다.
벽에 몸을 기대고 슬쩍 바라보자 사람들이 쌀과 각종 야채들, 식용유, 케찹 등 여러 재료들을 탑차에 싣고 있었다.
‘급식용 재료들 아냐?’
처음에는 어디 냉동보관이 더 잘 되는 곳으로 옮기려나 싶었다. 그런데 점차 빼는 물건들이 냉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물건들도 나오자 홍유진의 의심이 더 깊어졌다.
<탑차. 수상.>
문자를 하나 보낸 홍유진은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탑차를 감시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탑차에 물건을 싣던 남성들이 문을 닫고 다시 차에 올랐다. 홍유진은 들키지 않게 다시 벽을 돌아 차량용 도로에서의 사각지대로 들어갔다.
부아앙, 소리를 내며 탑차가 요란하게 교직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빈자리에 주차를 했다. 탑차에 탑승했던 남성 두 명은 유유히 후문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위층에서 파란 넥타이에 흰색 셔츠를 입은 남성이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 * *
“아오, 왜 아침부터 부르고 난리야.”
“너무 그러지 마. 어차피 오늘 공강이잖아.”
“아니, 내가 공강이면 꼭 담임쌤한테 가야 하냐고. 특강 회의도 점심 지나서였잖아.”
“…조용히 해. 나도 간만에 서울 왔는데 아침부터 불려나왔으니까.”
강문고 근처 지하철역에서 세 명의 젊은 남학생들이 수다를 떨며 계단을 올라왔다. 투덜거리는 남학생은 성실성대에 재학중인 이정석이었다. 그 옆에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짓는 연천대 재학생은 최동석, 그리고 오래간만에 서울에 온 남학생은 한목대 의예과 재학생인 나명천이었다.
“갑자기 토요일에 전화해서 이래라 저래라. 어휴. 내가 이번에는 진짜….”
“우리 그때 스키장 문제 때문에 1년간 조교 해야 하잖아. 그리고 후배들 대상으로 진로진학설명회에 참여하는 건데 좋게 생각하자.”
동석은 투덜대는 정석을 다독이면서 말했다. 정석은 여전히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지만,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고개를 폈다.
“알았어! 내가 동석이 때문에 참는다.”
“안 참으면 뭐, 담임 얼굴에 뭐라도 날리려고? 너 성실성대 못 갔으면 여친이랑도 헤어졌을 거라면서.”
실제로 정석은 성실성대에 입학한 덕분에 미란과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둘 다 진학이 결정되고 나서 미란은 정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명문대생 아니면 사귀지 마라고 그랬는데, 성실성대 합격했다 그러니까 계속 만나도 된데!
그리고 그 결과, 지금은 양쪽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즐겁게 연애를 할 수 있었다.
“하… 그것도 그렇지. 아무튼 가자. 근데 빈손으로 가기 뭐하니까 커피라도 사 갈래?”
“말만 그렇지 너도 쌤 진짜 잘 챙긴다니까.”
동석이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멀리 보이는 카페를 가리켰다. 강문고 교문 바로 앞에 있는 카페였다.
“저기는 아침에도 여니까 저기서 사 가자.”
“그래. 야, 대학생이 사 주는 건 먹겠지 이제?”
정석의 물음에 명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모르지. 워낙 아무것도 안 받으려고 하는 분이니.”
셋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문고로 향했다.
“어?”
동석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네 쌤. 저희 거의 다 왔어요. 네? 후문이요?”
동석의 말에 명천과 정석이 후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서 어떻게 봐도 수상한 남성 둘이 걸어 나왔다.
“아, 네. 지금 봤어요. 지금요? 저희가요?”
명천이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동석은 전화를 끊으면서 친구들을 돌아봤다.
“11시 정도까지만 저 사람들 가는 데 따라가서 보라는데.”
“왜?”
“모르겠어. 쌤 말로는 수상하다고….”
그 말에 정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아침부터 부르는 게 이상하다 했어. 우리들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 줄 때가 됐다!”
“야, 쪽팔리니까 제발 조용히….”
정석은 얼굴을 감싸는 명천의 어깨를 두르고 호탕하게 말했다.
“쪽팔릴 게 뭐 있냐! 우리는 강문고 졸업생! 학교에 문제가 생길 거 같다면 발 벗고 나서야지!”
“그러다 잘못하면 들켜서 죽도 밥도 안 되니까 제발 조용히 갔다와라. 응?”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포부를 외치는 정석의 뒤로 파란 넥타이에 셔츠를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종이몽둥이로 정석의 엉덩이를 탁 때렸다.
“쌤!”
“무리들 하지 말고, 그냥 그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 하는지 살짝 들어봐. 녹음할 수 있으면 하고. 11시 정도에는 다시 학교로 올 거니까 들키지 않게 학교로 다시 와.”
강명문은 알겠다면서 도수경례를 하는 정석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어째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 시간에 자신이 학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잘들 부탁한다. 다녀오면 회의하자.”
“저희 맛있는 거 사 주세요 그럼?”
“1년간 무상 조교인 거 잊었어?”
악마처럼 웃는 강명문을 보면서 세 학생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기대를 말아야지.”
“가서 연락드릴게요.”
* * *
민주는 지난주까지 제출이었던 급식비를 깜빡하고 두고 왔었다. 그래서 오늘 제출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담임이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그거 며칠만 더 있다가 내. 까먹었다 하고.
부모님도 민주에게 급식비 왜 두고 갔냐면서 잔소리를 했었는데, 이번에도 제출하지 않으면 한 번 더 혼날 게 뻔했다. 그럼에도 민주는 담임인 강명문의 말을 들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나 말고 다른 교사들 중 누가 반응하는지 보고 알려 줘. 영상 찍거나, 다른 친구들 증언 확보해 두면 더 좋아.
바로 이어진 담임의 말 때문이었다.
‘반응을 한다고?’
급식비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언가 반응을 보인다면, 학급회장이나 담임선생님 정도였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오히려 이걸 하라고 지시했고, 학급회장은 본인이었다.
‘그럼 대체 누가 반응을 한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나 해야겠다면서 문제집을 펼쳤다.
“야야야, 오민주! 오민주!”
그때 다른 반 친구인 유미가 들어왔다. 전교 5등까지도 찍은 친구여서 공부도 잘 하고, 성격도 좋아 작년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유미야 왜? 교과서 빌려줘?”
“내가 책 두고 다니는 거 봤어? 그게 아니라, 교무부장쌤이 너 찾으셔.”
“나를?”
민지정 교무부장이 갑자기 자신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학생회도 올해부터는 후배들에게 넘겨주었고, 아직은 대회 준비를 딱히 하지도 않았다.
‘뭐지?’
순간 민주는 이게 담임이 말했던 그 ‘반응’인가 싶었다.
“알았어. 지금 갈게.”
민주는 유미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그렇게 교무실로 잠깐 걸어가는데, 마침 민지정이 다가왔다.
“아, 선생님! 저 찾으셨다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춘 민지정이 온화한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그래 민주야. 급식비 아직 안 낸 거 같던데.”
“…네?”
“급식비.”
민주는 강명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침착하게 답변했다.
“아, 죄송해요. 집에 두고 왔는데, 내일은 꼭 가지고 올게요. 그런데 아직 제출 기한 남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빨리 처리할 수 있으면 좋잖아? 이제 곧 바빠질 시기기도 하고. 그리고 빨리 제출해야 다른 학생들에게도 피해를 안 주지 않겠니?”
급식비 정도의 돈을 내지 못하는 학생은 강문고에서도 드문 편이었다. 게다가 민주의 아버지는 지역구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못 낼 형편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민지정은 민주에게 급식비를 빨리 내라며 재촉하고 있었다.
‘교무부장 쌤도 우리 부모님이 뭐 하는지는 다 아실 텐데…?’
민주는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투성이인 지금 상황에 대해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했다. 그리고는 담임선생님에게 달려가서 지금 있었던 일들을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 * *
“흠… 그렇단 말이지.”
나는 동석이가 촬영해 온 영상을 보면서 연신 감탄했다.
“그걸 이렇게 생각했네? 이런 것도 하려고 하고… 공산품도 있었네? 그럼 이걸 어디로 보내나?”
영상에는 동석이, 정석이, 명천이가 게임을 하는 영상 뒤로 급식납품업체 트럭기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약 두 시간가량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인근 PC방에 들어갔다. 오전 시간이라 PC방 이용객이 많지 않았기에 그들이 떠드는 소리가 제법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럼 이렇게 몇 달간 하면 되나?
-몇 달은 무슨. 5년은 할 거야.
-5년이나!? 우리 수당은?
-멍청아, 목소리 낮춰.
-아, 미안. 그럼 우리는 얼마 받고?
-용역비 청구서 보면 없는 이름들도 들어 있었잖아? 그거 명의만 빌린 거라 그 사람들 명의 통장으로 들어오면 그거 우리가 먹으면 돼.
-그럼 월급이 두 배가 되는 거네?
-그렇지. 그리고 식재료들 일부는 다른 사업장에서 쓰면 되고. 그러면 우리는 원가 절감하고, 남는 건 다 갖는 거야.
영상은 여기에서 멈췄다.
“그렇단 말이지….”
동석이가 핸드폰을 다시 집으면서 말했다.
“쌤, 이 사람들 불법 저지르려는 거 맞죠?”
“맞아.”
“혹시 횡령입니까?”
명천이의 질문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 새끼들이 미쳤네. 그럼 작년에 우리 급식 먹을 때도 이랬어요?”
“아니, 올해부터 그런 거 같다.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고.”
이사진들이 2011년에 와서야 급식비 횡령을 저지른 이유는 별게 아니었다.
그저 준비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강문고 행정실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나름대로 학교에서 자리를 갖추기 위한 준비과정이 필요했으니까.
그 이유는 모른 척하고서 녀석들에게 말했다.
“아무튼, 너희는 이제부터 진로특강 계획표를 같이 짜도록 한다.”
“네. 저는 입학사정관제, 정석이는 논술, 명천이는 의예과죠?”
“잘 기억하네. 각자 15분씩 맡아서 발표한다고 생각해. 어려운 거 아니고, 3학년 때 어떤 걸 준비하면 좋을지에 대한 부분으로 이야기해 봐.”
나는 녀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5월 초에 있을 <선배들이 들려주는 입시 이야기> 특강을 준비했다.
‘이렇게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강문고 선후배 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그 구조 자체가 강문고만이 가지는 경쟁력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구조를 만든 사람이 바로 강문고 국어교사 강명문이라고 알릴 수도 있고.
“이번 일 끝나면 삼겹살에 소주라도 사 주마.”
“진짜죠!?”
동석이가 눈을 빛냈다.
“저희 집은 고기 자주 먹어서 별로….”
“재수 없기는. 먹기 싫으면 말아라. 은장이도 부를 건데.”
“…가겠습니다.”
농을 주고받으면서 특강 준비를 했다. 종례를 하고서도 녀석들은 자리에 남아서 특강 때의 발표 내용들을 시뮬레이션 하기도 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네, 이사장님.”
[찾았어요. 강문고 이사진의 꼬리.]
이번 급식비 횡령 사건은 강문고의 대표적인 비리로 수면 위에 드러나게 된다. 전생에서는 죄 없는 영양사나 급식 담당직원들만 처분을 받고, 민지정과 행정실장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건 전말에 대해 전혀 모를 때고.
“누구였습니까?”
[한무회 이사. 그 사람의 주치의의 아들이 강문고 행정실장이더군요.]
이사장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양쪽 입꼬리를 한껏 올렸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이 사람들을 잡는 건 우리가 할 게 아닙니다.”
[그럼요?]
나는 어디까지나 학교 교사다. 학생들의 인성을 키워 주고 입시를 도와주는 사람이지, 이런 불법들을 적극적으로 탐정처럼 찾아내고 밝혀내는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움직인 이유는, 애초에 이러한 횡령 행위들의 싹을 뽑아내기 위해서였다.
“이사장님.”
[네.]
“좀 화끈하게 가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이사장은 뭔가 불안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내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좋습니다. 이야기해 보세요.]
“먼저 오늘 있었던 일들을 쌓아두고, 내일이나 모레쯤 터트릴 겁니다.”
[터트려요?]
“네. 어디까지나 우리는 터트리는 역할만 할 겁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러면 나머지는 전문가들이 움직일 겁니다.”
“너희들! 오늘도 고생하네!”
“영어쌤도 잘 지내셨어요?”
박 선생이 졸업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간만에 얼굴을 봐서 반가웠는지, 그녀의 입이 귀 끝에 걸려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빙긋 웃으면서 바라봤다.
“빽은 쓰라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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