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도둑잡기 (1)
2011년 학부모회장인 태웅이 어머니는 내 말을 들으면서 눈만 껌뻑거렸다.
“학교는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학교는 대학교를 잘 보내 주는 곳일까요? 아니면 학생들의 사회성을 길러 주는 곳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인성 영역을 키워 주는 곳일까요?”
내 물음에 태웅이 어머니는 잠시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린 듯 말했다.
“지금 그런 게 뭐가 중요하지?”
이제는 아예 대놓고 말을 놓은 그녀를 보면서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가까스로 웃음을 찾으면서 준비한 자료를 꺼냈다.
“이거를 한번 보시죠.”
나는 태웅이의 학생부를 태웅이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전교 3등? 모의고사 전국레벨?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대치동의 학생들 대부분은 수능 공부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눈은 높은데 수시로 준비하기에는 내신이나 학생부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좀 한다고 유세 떠는 학부모들은 자식들을 대치동의 유명 학원, 강사의 수업으로 보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돼지엄마들은 스타강사를 섭외해서 억이 넘어가는 그룹과외 비용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학부모회장인 태웅이 어머니는, 내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저는 학생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그걸 밝혀 주는 가로등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입시를 잘 모르는 학생이 있다면 입시로의 길을 알려 주는 내비게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태웅이처럼 공부만 해 온 학생들이 길을 잃고 헤매곤 한다.
“학교는 대학, 사회성, 인성, 품성, 비판력, 교양, 진로동기 등 모든 부분을 높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이끌어 주는 게 담임교사의 역할입니다.”
2011년, 올해 3학년 3반에서 태웅이가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도와주려 해도 집에서 그딴 식으로 교육을 시키면, 태웅이는 앞으로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겁니다.”
태웅이가 일으킬 사건의 원인. 그건 부모 때문이었다.
“지금 학부모회장님처럼 자식을 대하는 건, 자식을 본인들의 꼭두각시로 키우겠다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대치동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부류들. 내가 입시코디를 하면서도 수도 없이 만나봤던 학부모들.
자식들의 학업을 위해 갖은 애를 다 쓰고, 자식의 성적이 오르면 그걸로 본인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서울한국대요? 경영이요? 학원을 다니기 위해 친구들에게 당번을 미뤄요? 그 모든 사항들에 대해서 태웅이가 동의를 단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 때문에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었다.
솔직하게 상담하자.
팩트를 이야기하자.
“서울한국대를 가기 싫어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가장 높은 학과, 학교여도 안 가겠다는 애들이 있습니다. 스카이에 입학한 후 자퇴하고 대학교 아예 안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부정한 일 했다가 성인 되어서 부정한 일을 했다는 꼬리표를 달고서 평생 일군 업적이 고꾸라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로 회귀한 지금도, 현실을 바탕으로 한, 팩트 중심의 상담을 해 주자.
“학교라는 마지막 울타리 안에서, 저는 학생들을 도와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웅이의 문제는 담임교사, 학교 전체로 퍼질 수도 있었다.
“빨리 태웅이 학원 보내 주세요. 바쁘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내 말에 태웅이의 어머니가 떨리는 손을 들고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당신, 당신 고소할 거야.”
“마음대로 하세요. 고소할 건덕지나 있을까 싶은데. 그리고 고소하면 태웅이는 엄마 때문에 쪽팔려서 학교 못 다니겠다 할걸요? 3학년 되어서 자퇴하고 검정고시랑 수능 준비시키실 거 아니면 가만 계시는 게 나을 겁니다.”
이제는 아예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웃어 보였다. 그 웃음 때문에 기분이 퍽 상했는지 태웅이 어머니의 얼굴이 방금 전보다도 더 붉어졌다.
“…다음에 볼일 없도록 기도나 하시죠.”
“아뇨, 볼일 있을 겁니다. 살펴 가십쇼.”
고개만 까딱하면서 인사를 하고서 교무실 바깥을 바라봤다. 은솔이가 뒷문을 살짝 열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들어와.”
내 신호를 받은 은솔이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태웅이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했어요.”
“잘했어.”
“쌤 괜찮으세요? 들어보니까 저 아줌마가 욕도 하고 그러는 거 같던데.”
은솔이는 걱정이 된다면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숱하게 겪어 봤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이제 급식실 가 봐야지?”
오늘 은솔이를 만나기로 한 이유는 양조민 영양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인터뷰 하러 가자.”
그렇게 우리는 양조민 영양사를 만나러 급식실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태웅이가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 차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의 표정이 놀라움과 걱정이 뒤섞인 표정이었지만, 적어도 두려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도 저 정도면 다행이네.’
멀어지는 차를 잠시간 바라본 후 다시금 급식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 * *
“네!? 진짜요!?”
은솔이는 양조민 영양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은솔이의 반응에 이어서 양조민 영양사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래. 그래서 은솔이랑 인터뷰는 가급적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해 주셔야 했습니다. 오늘 귀중한 시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조민 영양사의 말에 따르면 강문고 급식 체계가 작년부터 바뀌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급식 시스템이 바뀌다 보니까 식재료 수급도 쉽지 않아. 그래서 매번 학생들 영양에 맞게끔 식단을 짜기가 어려워.”
“그 시스템 변화가, 오전에 예비자재라면서 일부 식재료들을 다른 곳으로 빼두고, 그 빼둔 재료들이 오후에는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말씀이죠?”
내 물음에 양조민 영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십니까?”
“네. 관련해서 교감 선생님께도 말씀드려 봤고, 교무부장 선생님께도 말씀드렸는데 답변이 따로 없으세요.”
양조민 영양사는 미안하다면서 은솔이를 바라봤다.
“도와주고는 싶은데, 지금은 정말 최저 예산에 맞춰서 할 수밖에 없어. 급식비가 4천 원이라면 지금 내부에서는 2천5백 원어치로 만들어서 해야 하거든.”
“저 괜찮아요! 급식봉사 할 때는 끼니당 1천 원 정도에 맞춰서 식단 짠 적도 있는걸요! 할 수 있어요!”
은솔이는 손을 번쩍 들면서 자신 있게 외쳤다. 그 모습을 본 영양사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듯 웃어 보였다.
그런 은솔이를 보면서 내가 한 가지를 제안했다.
“그럼 은솔이는 제일 먼저 이렇게 해 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 있지? 그걸 기점으로 생각해 보는 거야.”
만약 양조민 영양사의 말이 맞다면, 지금 강문고 급식 체계는 올해가 되면서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학교 영양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항이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한 교감이나 민 부장은 별다른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역시나.’
사학비리가 폭로되던 시점에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급식비 횡령.
당시에는 이미 3년 째 횡령을 해 오고 있었던 때였다.
범인은 급식비를 주관했던 행정실장과 이를 모른 척했던 민지정 교무부장이었다.
그때 그 범인들은, 당연하게도 이사진의 작업 덕분에 횡령 의혹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그 화살은 나를 비롯한 비리 폭로 교사들에게로 돌려졌었다.
때문에 급식비 횡령이 시작되는 이번 년도부터 조사를 하고, 막을 필요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번에도 급식비 횡령의 주범을 엄한 사람으로 지목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사실들을 은솔이와 영양사에게는 비밀로 하고서 말을 이었다.
“어두운 급식실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꿔서 친구들이 맛있게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인테리어를 바꿔 봐. 여기에는 용희를 좀 꼬드겨 봐. 건축인테리어 관련해서 활동하는 거라고 하고. 식단은 양조민 선생님과 같이 의논해서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음식을 줄 수 있도록 계획 짜 봐. 단순히 좋은 재료만을 가지고서 하는 게 아니야. 비쥬얼을 예쁘게 해 보라고. 급식판에도 데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해 봐. 그러면 그걸 은솔이만의 매력포인트로 생기부에 남길 수 있어.
영양사님은 식단 구성할 때 영양 기준이라든가, 인원수에 따른 식재료 예산 편성 같은 것들을 은솔이에게 간단하게 알려 주세요. 은솔이는 아직 영양을 세부적으로 고려해서 만들어나갈 정도의 지식은 모르니까요. 옆에서 많이 알려 주시고, 은솔이가 요리도 곧잘 하니까 급식 메뉴 요리는 어렵더라도, 서비스용 디저트 같은 거 만들어 보는 정도는 도와주셔도 돼요.”
거기에 몇 가지 더 양념이 추가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일단은 이 정도로 설명을 멈췄다. 내 설명을 들은 은솔이와 양조민 영양사가 입을 떡 벌리고 앉아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뇨…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이런 분인 줄은….”
“어떤 소문이요?”
“시간의 마왕이라더니 이거군요. 잔소리 같지만 사실 상냥하고, 일장연설 같지만 하나하나 모두 주옥같은 설명들…. 역시 강문고 일타강사….”
양조민 영양사의 말을 들으면서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 헛기침에 다시금 두 사람이 나를 집중했다.
“시간의 마왕이니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타강사는 인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런 활동이 은솔이에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족한 비교과 활동을 올해 꼭 채워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은솔이 대입을 위해서인데 도와줘야지요.”
나는 약속이라도 한다면서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그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도 뭔가 새로 만들거나 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예산 때문입니까?”
“예산도 있지만…. 방금 말씀드린 그런 변수들 때문에 식재료가 항상 간당간당합니다.”
오전 일찍 식재료를 다른 곳으로 빼두고, 나중에는 어딘가로 이동을 한다. 그리고 그 식재료들의 행방은 모른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장은 어렵겠지만, 한 달 정도면 정상궤도에 오를 겁니다. 은솔이가 대입 준비하기에는 충분합니다.”
그 횡령을 지시한 사람이 누구일지,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으니까.
* * *
늦은 밤, 자리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었다. 이사장의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답장을 하지 않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여쭤볼 게 좀 있습니다.”
[문자 내용에는 답하지 않고 이렇게 바로요?]
“아, 문자 내용은 확인했습니다. 한 교감과 민 부장이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요.”
[맞아요. 요즘은 좀 조용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이사장에게 묻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사장님, 혹시 강문고 이사진들 중 친인척, 가족이 강문고 직원으로 들어와 있는 경우가 좀 있습니까?”
이사장은 잠깐 생각에 잠겼는지 음, 하는 신음소리만 들릴 뿐 답변을 하지 않았다. 수초가 지나자 이사장이 말했다.
[아마 없을 거예요. 그런 건 다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럼 이번에는 친구들이나 건너건너의 관계일 수 있겠군요.”
최진원 원장은 조신자 (전)이사의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퓨쳐컨설팅을 대놓고는 아니지만, 뒤에서 알게 모르게 수도 없이 홍보를 했다.
그렇게 유학을 불법으로 보내다가, 더 넓은 판에 뛰어들려던 그를 내가 막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족이나 친인척이 아닐 수도 있었다.
“몇 가지 조사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도 정보망이 필요한가요?]
이사장이 웃으면서 물었다. 나는 그 웃음에 화답하듯 살짝 소리 내면서 말했다.
“하하, 맞습니다. 이번에도 필요합니다. 이사진들의 주치의의 친인척, 단골 카페 사장의 친인척 등 주변 인물들에 대해 알아봐 주세요. 아마 강문고 행정실장이나 용역업체 직원들이 이사진과 커넥션이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잠시간 침묵했다. 그러고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이것도 올해 일어난다는 강문고의 큰 사건 중 하나인가요?]
“그렇습니다.”
나는 이사장에게 급식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이사장이 펄쩍 날뛰며 핸드폰에 대고 화를 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아니지, 강문고라 말이 되는 걸 수도….]
“어찌 되었건, 학생들의 급식비가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면 녀석들의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식용유 같은 걸 재활용해서 사용하면 위생의 문제도 발생하고, 자칫 잘못하면 식중독으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막아야죠. 아니,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이사장의 단호한 말을 듣자 확신이 들었다. 확실히, 이사장은 사학비리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이사진이 타락하는 걸 눈감아 주고 있었을까.
그리고 이사진은 어떤 걸 빌미로 이사장을 밀어냈을까.
아직까지 그 부분은 해소가 되지 않았다.
“이사장님이 같은 팀이라 든든합니다.”
어쨌건, 지금 이사장이 우리 팀이라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었다.
[제가 할 소리를…. 아무튼, 그럼 이번에는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인가요?]
“도둑을 잡으려면 함정을 파야지요. 그리고 적당한 스파이도 필요합니다.”
나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인원들을 정리했다. 그 사람들이면 충분히,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내가 도와줄 일은요?]
“교장 선생님께도 알려 주세요. 교감 선생님은 모르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사장님은 헤어랑 메이크업이라도 받고 오세요.”
농담처럼 들렸지만, 꽤나 진지하게 말했기에 이사장도 진중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그런 이사장을 향해 핸드폰 너머로 크큭, 웃으며 말했다.
“학교에 있는 도둑놈들 한 번 잡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당연히 입시 준비를 하면서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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