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40화 (140/252)

140화. 후회하지 않을 1년

서울 대치동의 한 아파트. 그 동네 토박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입시 명품 아파트의 한 집에 서리가 시릴 듯한 적막감이 맴돌고 있었다.

“고개 들어라.”

“….”

“고개 들라 했다.”

태웅은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말에 겨우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성적이 이게 뭐냐?”

태웅의 아버지는 3월 학력평가 가채점 종이를 팔랑거리더니 꾸깃 구겨서는 아들을 향해 집어 던졌다. 마구잡이로 접힌 종이뭉치가 태웅의 가슴팍으로 날아와 박혔다.

“예상백분위가 뭐? 97?”

가채점 결과 태웅은 전 과목 1등급이었다. 하지만, 1등급도 1등급 나름이었다. 백분위가 97이냐, 99냐에 따라 최상위권 학교와 학과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태웅의 점수는 겨우겨우 1등급 커트라인 수준의 성적이었다.

당연하게도 서울한국대 경영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태웅에게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점수였다.

“이따위 성적으로 재수생들까지 들어왔을 때 감당이나 되겠어?”

이번 3월 학력평가는 고3 학생들만 치른 시험이었다.

재학생들끼리의 경쟁.

따라서 3월 학력평가 점수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실제 수능에서는 1개 등급씩 내려갈 수도 있었다.

그런 변수까지 고려했을 때, 이번 태웅의 성적은 결코 서울한국대에 합격하기에 넉넉한 점수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수능에서의 재수생을 비롯한 N수생이 합류하는 걸 고려했을 때는 스카이는커녕 서성한을 가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 요즘 정신 딴 데 파는 거 같던데.”

태웅의 어머니는 아들이 최근 차에서 했던 이야기들, 유미에 대한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이전부터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던 이야기들이라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번 학력평가 성적이 엉망으로 나온 것이다.

“유미랑 뭐 있었지?”

“아,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유미 만나서 이상한 이야기 들은 거 아냐? 아니다, 내가 유미 엄마한테 전화해 둬야겠어.”

태웅은 핸드폰을 집어드는 어머니를 손으로 막아섰다.

“그런 거 정말 아니야. 하지 마.”

그런 아들의 모습을 처음 봤는지 태웅의 어머니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태웅의 아버지도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아들에게 물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냐?”

“아니라니까. 간만에 친구 만나서 그냥 잘 지내냐는 인사만 한 거야. 그리고 이번 학평은… 아침에 배가 아파 가지고 컨디션이 안 좋았어.”

“컨디션이 안 좋아?”

태웅의 말에 태웅의 어머니가 그러면 안 될 일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요즘 학교에서 청소도 하고, 담임도 바뀌고 하니까 정신없어서 그런가 보다. 안 되겠다. 내가 강명문 선생 만나서 우리 아들 수능 때까지 컨디션 관리해야 되니까 그런 당번 같은 거 다 빼달라고 해야겠어.”

“뭐!? 엄마!”

“얘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당번 빼 주면 좋아해야지. 안 그래?”

태웅은 어머니의 말에 답답함을 느꼈다.

학급 친구들 전체가 당번을 맡아서 하게 되는 건데, 여기에 자기만 쏙 빠진다?

어떤 눈총을 받을지는 뻔했다.

게다가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던 봉사동아리활동도 못하게 된다.

이번 3학년, 봉사동아리와 동아리 친구들인 민주, 은솔, 용희와 같이 추억을 쌓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길이 모두 막히게 된다.

“엄마, 친구들 눈치 보이게 어떻게 그래? 제발, 내가 학교 창피해서 못 다녀!”

“친구? 너 지금 학교에서 친구 사귀니?”

태웅의 어머니는 친구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리고는 식탁을 세게 내리쳤다.

쾅! 소리가 울리자 태웅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내가 친구 사귀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 특히 3학년 때는 친구가 아니라 다 적이라고 적!”

어머니의 말에 태웅의 아버지도 역정을 냈다.

“너희 엄마가 하라면 그대로 해! 지금까지 엄마 말 들어서 잘못된 적 한 번도 없었잖아!”

“….”

“고작 1년, 아니 8개월이다. 그 8개월만 참으면 어차피 강문고 친구들하고 만날 일은 없어. 오히려 서울한국대 친구들과 더 만나겠지. 강문고에서 서울한국대로 진학한 친구들이면 더 좋고. 인관관계라는 건 그렇게 위치가 바뀌면 또 변하게 되는 거야. 8개월 남짓한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수능을 망치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야.”

태웅의 아버지는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씨익 웃었다.

“아버지 회사 직원들처럼 말이지.”

그 말에 태웅의 눈빛이 돌변했다. 지금까지는 두려움과 억울함이 뒤섞인 눈이었다면, 이제는 분노가 살짝 내포된 눈이 되었다.

“…알았어.”

하지만 그뿐이었다. 태웅은 적극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따지고 들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왔고, 그렇게 공부했기에 지금의 성적을 만들 수 있었다.

적어도 태웅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엄마가 학교 끝나는 시간 맞춰서 학교로 갈게. 가서 청소당번 같은 이상한 잡일 빼달라고 이야기할게. 그리고 유미 엄마한테도 전화해서 수능 끝나기 전까지는 서로 얼굴 안 보게 하자고 해야겠어.”

하지만, 그런 태웅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게 맞나?’

그런 아들의 생각은 알지 못한 채 태웅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렇게 좀 해 줘. 태웅이가 지금 수능 앞두고 있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 거야. 이럴 때 우리가 서포트해야지.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태웅의 어머니는 태웅의 아버지에게 고맙다면서 손을 맞잡았다.

태웅은 그런 부모님을 보며 쌓이는 화를 속으로 식혔다.

‘친구들한테 쪽팔려서 뭐라고 하지?’

‘쌤들 보기도 쪽팔리고….’

‘내가 그렇게 미안해하면서… 대학을 가는 게 의미가 있나?’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이날 생애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 * *

“강 선생!”

출근하자마자 한 교감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아침에 급하게 나왔는지 머리도 덜 말린 상태였다.

“그… 자네에게 부탁이 있는데.”

한 교감이 쭈뼛거리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인상이 팍 써졌다.

“어떤 건데요?”

“작년처럼 올해도 특강 열 거잖아. 그렇지? 그때 나도 같이 수업을 했으면 해서 말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다.

이사진은 강문고에서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다닌 한 교감을 가만두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민 부장, 김 부장 같은 부장급 교사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네가 저지른 비리를 눈감아 줄 테니 강명문 작업 좀 쳐라.

이런 이야기가 그들 사이에서 돌았을 테니까.

그럼에도 한 교감은 오늘 나를 찾아왔다.

민 부장, 김 부장이 된통 당하고, 조신자까지도 이사진에서 퇴진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 한 교감이 나를 찾아왔다?

‘방향을 바꿨네.’

나는 한 교감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요 교감 선생님. 특강 때 교감 선생님도 수업 하나 하셔야죠.”

“좋네, 아주 좋아! 그러면 나는 어떤 걸….”

“아, 어려운 건 아니고요, 애들 공부 제대로 하는지 감시만 해 주시면 돼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이야기를 했다. 한 교감은 그 분위기를 읽었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허, 허허허. 그렇지, 그렇지. 내가 애들 공부 하고 안 하고 감시는 잘 하지!”

“그럼 부탁드립니다.”

작년에 류 선생이 우리 팀에 합류하면서 나는 그를 직접적인 입시 준비로 들어가게 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한다면 수리 논술 정도였고.

한 교감에게도 자질구레한 일들을 시키고, 정작 자신이 입시 특강을 하는 일은 없도록 만들 셈이었다.

‘실적 올리려고 나랑 손잡는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네.’

어차피 한 교감의 권력은 아직까지는 필요했다. 교감이 가지는 힘이 사립고에서는 꽤나 강력하다.

그러니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한다.

나중에 쓰레기 치우듯 버려 버리면 되니까.

* * *

방과 후, 나는 세 명의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한 명은 은솔이. 오늘 양조민 영양사를 만나러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은솔이가 교무실을 찾아왔는데, 그 뒤로 태웅이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머니와 함께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태웅이 어머님. 일이 바쁘셔서 뵙지를 못했는데 오늘에라도 봬서 다행입니다.”

태웅이 어머니는 내가 몇 날 며칠을 연락을 해도 받지를 않았다. 전교 3등 학생의 어머니. 대치동 스타일 그대로인 대치동 학부모.

당연히, 담임과의 상담 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시파인 태웅이는 수능 준비가 더 중요했으니까.

“그러게요. 요즘 일이 많이 바빴네요. 선생님, 시간이 없으니까 짧게 말씀드릴게요.”

“네 말씀하시죠.”

“태웅이 청소당번 같은 것들 11월까지 싹 다 빼 주세요. 아니, 수능 끝날 때까지 다 빼 주세요.”

짐짓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태웅이 어머니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태웅이가 전교 3등이고 모의고사도 전국 레벨인 거 아시죠? 우리 아이 서울한국대 가야 해요. 그런데 요 며칠 청소당번 있다고 학원 1시간씩 늦게 가고 그래서 애가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졌나 봐요. 이번 학평 점수 들으셨어요? 태웅이 점수요. … 저기요?”

태웅이 어머니가 말을 하다 말고 나를 바라봤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좀 어이가 없을 때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습관이 있거든요.”

“뭐라고요?”

나는 은솔이에게 태웅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고 신호를 보냈다. 눈치를 챈 은솔이가 태웅이와 함께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얼른 나가자.”

은솔이의 손에 붙잡혀서 밖으로 나가는 태웅이가 간절한 눈빛을 하고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눈을 보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 움직였다.

“일단 좀 앉으시죠.”

“지금, 지금 뭐라고 했어요? 어이가 없다고요?”

태웅이 어머니는 자리에 앉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당번이라는 건 모든 학급 학생들이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겁니다. 거기에서 일부는 빼고 일부는 더 돌린다? 차별을 대놓고 하라는 거랑 뭐가 다릅니까?”

“아니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그리고 그건 차별이 아니에요. 자기네들보다 공부를 더 잘 하는 친구를 위해 도와주는 거죠.”

“그럼 태웅이도 친구들을 위해 도와주는 게 있나요? 뭐 대학교 합격하면, 우리 반에 있던 애들 재수하라 그러고 싹 다 공짜 과외라도 해 줄 겁니까?”

내 말을 들은 태웅이 어머니의 주먹이 세게 쥐어졌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얼른 들어가세요. 시간도 없다는 분이. 그리고 저도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다음부터는 상담 시간 확실하게 정하고 찾아오십쇼.”

자리에 있는 서류를 몇 개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옆을 지나가려 하자 태웅이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그리고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쾅 내리쳤다.

“지금, 학교에서 조금 유명하다고 이딴 식으로 나오는 거야 뭐야? 내가 누군지 알고….”

“알고 있습니다, 2011년 학부모회장님.”

나는 서류더미를 겨드랑이 사이에 낀 채 올해 학부모회장의 앞으로 다가갔다.

“태웅이 성적 하락 이유가 컨디션 난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그래! 학교에서 이상한 당번 일이 자꾸 생기니까, 평소 바이오리듬이 깨져서….”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내 마지막 말에 학부모회장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아까부터 뭐가 어이가 없다고….”

“이것 보세요, 학.부.모.회.장.님.”

태웅이가 방금 나가면서 나에게 했던 눈빛. 그건 간절함이었다.

지금 이 자리를 모면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아닌. 어머니가 걱정되어서나, 자신에게 닥칠 후환이 두려운 것도 아닌.

-도와주세요.

지금의 이 삶에 대한 고통. 그 고통을 이제라도 누군가가 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태웅이에게 평생 후회할 1년을 안겨 주고 싶다면, 지금처럼 하십시오.”

“뭐…라고?”

학부모회장의 눈동자가 파들파들 떨려왔다.

“저는 반 학생들 모두가 후회하지 않을 1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거니까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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