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솔직한 건 좋지 않아
“오민주, 이태웅 학생을 포함한 강문고 전교 20등까지의 학생들과 학부모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어떤 학생들인지, 성격은 어떤지, 중학교, 초등학교 다닐 때는 어떠했는지, 부모들의 직업은 어떤지, 부모들이 대치동 스타일 부모들인지 등의 사항들이 필요합니다.”
태웅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 무언가 본인이 일부러 잘못한 치부에 대해 들킬까 두려워하는 모습.
‘뒤로 거래가 있었다?’
만약 강문고 학부모들 중 극성인 학부모라면 그 정도의 극단적인 방법도 구상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거기에 더 나아가 만약 이사진으로부터 요청을 받았거나 했다면?
그렇게 되면 정말이지 큰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사장님, 혹시 이사진에서 별도의 움직임은 없었는지도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이사진… 설마 이사진이 꾸민 건가요?]
나는 이사장의 질문에 그렇다며 대답했다. 핸드폰 너머에서 이사장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정보를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리 대처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임을 강조하면서 이사장과의 통화를 끝냈다.
“강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내 뒤로 박 선생이 서 있었다. 그녀는 내 통화 내용을 모두 들었는지, 얼굴이 분노로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라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예요? 강문고에 큰 사건이 생길 거라뇨? 게다가 그게 전교권 학생들 사이에서 생긴다는 건 또 무슨 소리예요?”
“강 선생, 나도 다 들었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박 선생에 이어서 오 선생도 어느새 가까이 와서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지석 선배와 윤 선생까지 포함해서 한 번에 이야기를 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이렇습니다.”
최근 이사진의 상황, 강문고 전교권 학부모들의 특징, 오늘 학력평가가 끝난 직후 태웅이의 표정. 그 모든 일들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을 그들에게 말했다.
윤 선생은 과도한 걱정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에이, 그래도 설마….”
지석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강 선생의 예측이 맞다면, 우리도 이러고 있을 게 아니야.”
반면, 오 선생은 과거 조작 사건을 겪어 본 터라 그럴 수도 있다면서 자기도 나름대로 정보를 모아보겠다며 일어섰다.
“이런 일일수록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지. 뭔가 알아내면 연락할 테니까 자네들도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시게.”
“감사합니다, 오 선생님.”
그는 엑스칼리버를 허리춤에 끼고 서둘러서 교무실을 나갔다. 그를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윤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반에 천일이 있죠? 전교 1등인.”
“한천일? 있지.”
“천일이는 어떻습니까?”
“딱 천재과?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학원은 적당히 자기가 부족한 과목만 다녀. 동석이가 공부를 제때 하지 못한 천재라면, 이 녀석은 대한민국 입시에 최적화된 천재야.”
그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천일이를 공략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주변에서 난리를 피워도, 멘탈이 흔들리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작년의 경우에는 동석이가 그런 학생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흠뻑 빠지면 주위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성격.
그런 성격이 수능, 공부에 맞춰서 발휘되면 바로 한천일처럼 발현되었다. 학원을 빡빡하게 다니지 않아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친구들의 유혹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럼 천일이를 공략하려 하지는 않았을 거고.’
만약 그렇다면 전교 2등은 아닐 것이다. 3등은 태웅이니까 녀석도 제외다. 그러면 4등이나 5등이었다.
민주가 전교 6등이니 그 뒤쪽은 더더욱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전교 20등 안쪽 학생들과 학부모들 정보가 필요합니다. 혹시 반에 그런 학생들 있으면 한 번씩만 확인해 주세요.”
내 말에 박 선생과 지석 선배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류 선생님.”
교무실을 나오면서 류 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학력평가가 마무리되고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 모양이었다.
[어, 강 선생, 무슨 일이야?]
“식사 중이십니까?”
그러자 류 선생이 살짝 당황해하는 눈치를 보였다.
“혹시 김 부장님이나 민 부장님과 같이 드시고 계시면 조용히 듣기만 해 주세요. 최근 이사진들이 저를 공격하려고 가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류 선생님은 두 부장선생님과의 관계를 보다 돈독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 그래. 알았어.]
“오늘 통화는 간만에 테니스나 치자는 이야기였다고 해 주시면 됩니다. 전화 끊으면 이사진 움직임을 알아보세요. 혹시나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시면… 그때는 아시죠?”
[아 그럼! 당연하지, 하하하….]
나는 류 선생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류 선생이 적절하게 부장들 사이에서의 작전이나 이사진의 협박성 정보들을 알아내면 그 역시 도움이 될 테니까.
* * *
같은 시각, 류지훈은 민지정과 김영호의 앞에서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끊어진 핸드폰을 붙잡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뭐야? 강 선생이 왜?”
“아, 아닙니다. 간만에 테니스나 같이 하자고 그러네요.”
류지훈은 이마로 흐르는 땀을 그들 모르게 닦으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요즘 이사님들은 별말씀 없으십니까?”
류지훈이 앞에 놓인 반찬을 어색하게 집어 먹으며 김영호에게 물었다. 김영호는 류지훈의 어색함은 눈치채지 못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요즘은 연락이 없으셔. 그런데 그거 알고 있냐? 조신자 이사님이 이사진에서 퇴진하셨다더라.”
“정말요?”
“그래. 아까 점심 먹다가 연락받았어.”
김영호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하릴없이 공깃밥 위에 푹푹 반복해서 찔러 넣었다.
“조신자 이사님은 갑자기 왜….”
“아마 지금까지 여러 일들이 노출되다 보니까 곽형조 이사님이 쳐냈을 거야.”
민지정의 말에 김영호와 류지훈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우리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몰라.”
언젠가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민지정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사님들이 무언가 준비하시는 것 같아. 거기 휘말리지 않게 조심하자고.”
김영호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류지훈에게 속삭였다.
“이번 모의고사 성적, 등수가 바뀌려는 모양이야.”
“그걸 왜 이사님들이….”
“나라고 그분들 생각을 알겠어? 그렇게 해서 반사이익이 생기는 모양이지. 아니면 뒷돈 받으셨을 수도 있고.”
김영호의 실없는 말에 류지훈은 별 대꾸를 하지 않고 남은 반찬들을 하나씩 입에 털어 넣었다.
류지훈은 그날 식사자리가 끝나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정리했다. 이전처럼 ‘하루최고’ 사이트에 한탄하는 글을 올릴 수는 없었다. 강명문에게 잘못 찍히기라도 하면 그날로 교사 옷 벗는 건 물론이고 아예 교육계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차선책이 기록이었다.
‘미치겠네 진짜.’
하나하나 지금까지의 일들을 적어내려 가면서 류지훈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나하나 할 때는 몰랐는데, 전부 모아 보니 상당한 양의 사건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간 한글파일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우측상단에 자리한 엑스 표시 박스를 클릭했다. 그의 떨리는 손은 마우스를 붙잡고서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선배님들 미안합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류지훈은 핸드폰을 열어 강명문에게 연락을 했다.
“아, 강 선생. 오늘 들은 정보가 있어서 연락했어. 에이, 허튼소리? 아니야 그런 거. 아무튼 들어 봐. 이사들이….”
* * *
다음 날, 나는 태웅이와 상담을 잡았다. 태웅이의 어머니와의 상담은 별도의 일자로 잡았고, 오늘은 태웅이와 단둘이서 하는 상담이었다.
“….”
“왜 아무런 말이 없어? 궁금한 게 많을 텐데?”
내 앞에 앉은 태웅이는 여지껏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나는 녀석을 재촉하지 않고 종이몽둥이를 들고 테이블을 탁, 탁, 박자에 맞춰 두드렸다.
“선생님, 저는 솔직하게, 경영을 열심히 공부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고 은장 선배… 아니, 누나처럼, 인문학도 좋아해서 다른 학과로 진학한다거나 하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그래. 그래서?”
“제가… 어문학을 전공해도 괜찮을까요? 일문학이 아니라 국문이나 영문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묻는 태웅이의 이마를 종이몽둥이로 가볍게 때렸다. 녀석이 이마를 붙잡고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했다.
“당연하지 인마. 그걸 왜 못 할 거라고 생각해?”
“네?”
“지금 네가 못 할 거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 그거 부모님 때문 아니야?”
이사장과 한 교감을 통해 얻은 태웅이 집안의 정보를 토대로 봤을 때, 태웅이는 생각보다 더 강압적인 집안에서 자라왔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자신이 가고자 하는 학과 하나조차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서는 불안하게 눈동자를 떠는 태웅이를 보면서 말했다.
“태웅아. 너는 은장이나 정석이와 달라.”
나는 태웅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은장이와 정석이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나름대로 뻔뻔하다는 점이었다.
은장이는 아주 뻔뻔하지는 않았지만, 차선책으로 준비할 수 있는 학과가 은장이의 관심분야였기에 코스프레가 가능했다. 정석이는 특유의 뻔뻔함을 무기로 삼아 부모 앞에서 코스프레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태웅이는 달랐다.
이 녀석은 코스프레를 하라고 지시하면 십중팔구 헛소리를 하면서 거짓말이 들통날 녀석이었다.
정직하고 또 너무 정직해서, 착하고 착해서, 항상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챙기던 학생. 부모의 말에 반항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효자의 얼굴을 하고서 살아온 학생.
그게 바로 태웅이였다.
“그래서 나는 너한테 코스프레를 하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다. 대신.”
나는 태웅이의 얼굴을 향해 하나의 종이를 내밀었다.
“이거 지금 작성해 봐.”
내가 내민 종이에는 <나의 진로설계도> 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지금요?”
“너, 대학교 졸업하면 뭐 할 거냐?”
“아버지 회사를 이어서….”
“그게 아니라, 진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태웅이는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종이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외국어를 전공해서 타국의 문화를 우리나라식으로 변형한다거나, 우리 문화를 타국으로 전파하는 국제문화교류 전문가가 되고 싶은 거 아냐?”
태웅이는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건 녀석의 생기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추가로 얻은 정보들을 모아 보니, 태웅이는 지금까지 다양한 해외 문화들을 접하고, 관심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녀석은 아시아권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 중국, 인도, 베트남 등. 그런 문화들을 공부하고, 접하면서 녀석은 나름대로 자신의 공부 스트레스를 풀어내고 있었다.
프라모델 동아리 활동에서 잠깐이나마 건프라를 만졌던 것도 그런 스트레스 풀이의 일종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태웅이의 스트레스 풀이 활동은 올해가 되어서 중단되었다. 3학년이 되면서 동아리 활동조차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빡빡한 학습 스케줄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태웅이 너는 미래에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은지, 진로를 명확하게 설정 해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올해 수능까지 못 버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태웅이에게 필요한 건,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동기였다.
“단, 부모님께는 목표 학과를 비밀로 해.”
“네? 하지만….”
“굳이 알릴 필요 있냐? 설령 알리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지원 막판까지도 숨길 수 있으면 숨겨. 아니면 수시는 일문과 넣고, 정시는 경영 넣을래?”
그 말에 태웅이가 그건 더 어려울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현실은 잘 알고 있네. 넌 수시가 아니라 정시파야. 경영학과? 그딴 데 안 가면 장땡이지. 정 불안하고 겁나면 최종 지원할 때 집에서 하지 말고 학교로 와. 여기서 지원하게. 내가 원서비도 내준다.”
“정말 와서 지원해도 됩니까?”
나는 녀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인마. 학교는 학생들 거야.”
태웅이가 고개를 한 번 숙이면서 감사인사를 했다.
“아, 그래도 모의고사 봐주거나 그러지는 마. 내가 양보는 그만하고 살라니까, 또 양보했어?”
내 말에 태웅이가 고개를 들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쌤 그걸 어떻게… 아, 아니, 저 그런 적 없습니다.”
“거짓말 못 하는 거 봐라 으이그. 부모님 앞에서 잘도 거짓말하겠다, 그치?”
손에 쥔 종이몽둥이로 녀석의 허벅지를 한 대 때렸다. 펑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너희들끼리 장난삼아 그러는 거여도 하면 안 되는 일이야. 학부모님들 중에는 모의고사 성적에 사활을 거는 경우도 있어. 알아?”
태웅이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마 성적 보여드리면 난리가 날 거다. 그런데 태웅아.”
떨어진 성적을 보여 주고 벌벌 떨고 있을 태웅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술을 까득 깨물고는 녀석을 향해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때 주눅 들지는 말자. 혹시 오늘이나 내일 혼나게 되면 다 혼나고 친구들이나 선배들한테 연락해. 정 없으면 나한테 해도 되고. 알았냐?”
태웅이는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는지 떨리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는 한 번 더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됐다. 얼른 학원 가 봐.”
교무실을 나가는 태웅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역시, 너무 솔직한 건, 입시에서는 좋지 않아.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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