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38화 (138/252)
  • 138화. 예상 빌런

    학생들의 폭풍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나와 박 선생, 박 주임은 따로 시간을 가졌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어린 학생들과 같이 이야기 나눠서 즐거웠습니다.”

    박 선생이 치킨, 닭똥집, 맥주를 주문하고 테이블 위에 물컵을 내려놓았다.

    “근데 꼭 여기서 먹어야 했어?”

    “여기가 그렇게 맛있다며? 이 동네 오면 꼭 먹으려고 했지.”

    우리가 들어온 가게는 강문고에서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거리의 치킨집이었다. 양재동 말죽거리 인근에 있는 닭집으로, 치킨을 제외한 치킨무, 양념장, 술, 음료수컵 등은 모두 셀프지만, 서울 3대 치킨집으로 유명한 가게였다.

    “그나저나 강 선생님, 이사들이랑 한 판 했잖아요? 어땠어요?”

    박 선생의 질문에 나는 박 주임이 옆에 있는데 괜찮냐고 눈치를 주었다. 그녀는 괜찮다며 동생을 바라봤다. 박 주임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두 분 같이 계시니 말씀드리기 편하겠네요.”

    “우리가 같이 있어서요?”

    나는 박 주임의 물음에 그렇다며 답했다.

    “이사진들이 본격적으로 저를 방해하려 갖은 노력들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은장이 말로는 이사진이 탈탈 털렸다던데요?”

    “그것도 맞습니다만….”

    은장이네가 들어온 때는 내가 이미 조신자의 공격을 싹 다 방어한 뒤였다. 그렇기에 녀석들은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있었던 이야기들을 박 선생에게 해 주었다.

    “이런 미친… 그런 #$%^&^할 @##$들을 봤나.”

    글로 옮기기도 어려운 욕을 한 사발 쏟아낸 박 선생은 씩씩거리며 맥주 한 컵을 원샷했다.

    “이건 먼지 털어서 안 나오는 놈 없다도 아니고, 하나만 걸려라 식이잖아요! 나중에는 아주 조작까지 하겠어요!”

    “그겁니다.”

    내가 굳이 지금 박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 그건, 몇 가지 예상되는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건 조작, 증거 조작, 협박과 회유.

    “그리고 제 주변인들 조사까지도 들어갈 겁니다.”

    박 선생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박 주임은 들고 있던 닭다리를 내려놓고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부터는 선생님도 대비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박 선생도 이사진의 타겟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3년은 누가 들어도 깨끗한 활동들만 하시고, 트집 잡힐 일 없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공격이 들어올지 모릅니다.”

    전생에서 나는 이사진과 한 교감의 조작된 소문으로 공격을 받았었다. 누군가를 폭행했거나 성추행을 했거나 하는 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때 당시 나는 힘이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 한 명으로 끝내지 않았다. 나와 친했던 교사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가면서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다. 그마저도 안 되면 퇴직을 권고했다.

    -퇴직마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연 퇴직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그랬다더라.

    어떻게든 학교에 남기 위해 애를 쓴 지석 선배는 다른 교사들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사진들의 공격은 생각보다도 더 악랄하고 더럽습니다. 그러니 선생님도….”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박 선생은 내 앞에서 열심히 닭날개를 뜯고는 뼈를 씹고 있었다. 으드득, 으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박 주임도 아무 말 없이 누나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역시 날개뼈는 다 씹어 먹어야 맛있어요. 그쵸?”

    입가심이라며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신 그녀는 나를 향해 씨익 웃었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저 그런 정도로 흔들릴 사람 아니에요. 트집 잡힐 일? 전 불법다운로드 한 번 안 해 봤고, 학교에서도 성실하게 학생들 가르치기만 했어요. 그리고 이사진들이 공격해 오라면 해 오라죠. 나 공격하면 지들이 손해지.”

    박 선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박 주임을 바라봤다.

    “그치?”

    “강 선생님은 모르셔?”

    “응. 내가 말한 적 없으니까.”

    그 말에 박 주임이 아하, 하며 무언가를 납득하고는 혼자 닭똥집을 집어먹었다.

    나는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박 선생을 바라봤다. 그녀는 내 눈빛을 받으면서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법적인 문제가 나오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왜요?”

    박 선생은 누가 들을까 걱정된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아버지가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거든요.”

    말을 끝낸 박 선생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닭똥집을 집었다. 나는 황당하다는 어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면 왜 그때는… 아니, 지금은 왜 부정부패들을 눈감아주고 계십니까?”

    “제가 검사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해요? 그리고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여기 쑤셔달라 저기 쑤셔달라 하면 되겠어요? 회사 일로 아버지 부르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박 선생이 전생에 했던 선택을 떠올렸다. 그런 문제라면, 박 선생은 조용히 자신이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게 마음 편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박 선생님은 걱정 안 해도 되겠군요.”

    “가능하다면 아버지를 부르지 않는 선에서 끝내야죠. 그래도 이사진들 작전 알려줘서 고마워요. 오늘 치킨은 내가 살게요.”

    “원래 박 선생님이 사기로 했잖습니까.”

    “내가 그랬나요?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는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면서 안주와 맥주를 흡입했다.

    그나저나 박 선생의 아버지가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라니. 생각지도 못한 아군이 생긴 기분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박 선생님.”

    내가 장난스럽게 허리를 굽히며 맥주를 건네자 박 선생 역시 거들먹거리며 잔을 들었다.

    “앞으로 잘 하도록 하세요. 알겠어요?”

    그런 우리를 박 주임이 낄낄 웃으면서 바라봤다. 테이블에 놓인 안주와 맥주가 빠르게 사라져 갔다.

    * * *

    태웅은 학원을 마치고 어머니의 차에 올라탔다.

    “엄마, 나 오늘 유미 봤어.”

    “유미? 웬일이래?”

    태웅의 어머니는 유미의 이름을 듣자마자 인상을 썼다. 태웅은 그런 어머니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책을 보면서 말했다.

    “걔도 근처 학원 다니나 봐. 그래서 지나가다가 만났어.”

    “그래. 유미는 신경쓰지 말고, 한천일이 이길 생각만 하자.”

    “어차피 난 정시파인데 이기고 말고 할 게 없지 않아? 천일이는 이과기도 하고… 엄마! 조심해!”

    태웅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가 신호등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그래서 넌 그 정도 마인드로 공부하고 있는 거니?”

    “어, 어?”

    “정시파든 수시파든 상관없어.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 아들이 전교 1등 찍는 거야. 강문고에서 전교 1등이면 수능도 잘 볼 테니까. 내일 학력평가도 열심히 봐야 하고. 그래야 다른 엄마들한테 무시 안 당하지. 알아들어?”

    어머니의 강압적인 태도에 태웅이 몸을 살짝 움츠렸다.

    “아, 알았어….”

    “그래. 유미네 엄마는 왜 우리 아들이랑 같은 동네 학원 보내서 괜히 애 흔들어? 이따 전화라도 해둬야겠어.”

    유미도 같은 동네 살잖아… 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태웅은 책 속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내일 시험 준비나 똑바로 해. 다른 사람들한테 휘둘리지 말고. 알았어? 유미고 뭐고, 그런 여자애한테 마음 주지 말고. 설마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아, 아니야. 공부해야지 응.”

    태웅은 그렇게 말하면서 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유미와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야, 태웅아. 근데 이번 모의고사만 어떻게 양보 안 돼?

    -왜?

    -우리 엄마 알잖아. 엄청 극성인 거. 모의고사에서라도 한 번 이겨야 내신에서 져도 할 말이 있을 거 같아서. 솔직히 내신으로 너 이길 자신은 없어. 전교 5등도 저번에 겨우 찍은 거고. 찍어서 맞은 거도 많았으니 운도 좋았던 게 맞잖아.

    -그래서 모의고사를 나보다 잘 봐야 한다는 거야?

    -응. 어떻게 안 될까? 그때 5등 한 번 찍었다고 엄마 기대가 엄청 커. 한 번만 좀 봐주라.

    그때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태웅은 고민에 빠졌다. 이미 책에 있는 문장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꿉친구였기에 유미가 어떤 학생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미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다.

    극성으로 따지자면 자신의 어머니 뺨칠 만한 사람이었다.

    ‘유미가 많이 힘들 거야.’

    생각을 마친 태웅은 고개를 들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나둘 피기 시작한 꽃들이 어두운 밤 거리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 * *

    2011년 3학년들의 첫 모의고사가 마무리되었다.

    학생들은 저마다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이제 모의고사도 봤으니까 각자 어떻게 전략을 짜야 할지는 알지?”

    학기 초에 상담을 해 주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한 가지를 고민해 보라고 이야기했었다.

    수능과 수시, 어느 쪽에 더 집중할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당연하게도, 모의고사 성적이 괜찮다면 수시와 정시를 동시에 준비하는 것이 좋았다. 반면, 내신은 낮은데 모의고사만 잘 나온다면 수능 준비에 더 힘을 써야 했다.

    이번 3학년 3반에 모인 인원들은 대부분 수시와 정시를 함께 준비할 녀석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늘 모의고사 결과가 좋으냐, 아니냐에 따라 수시 올인이 나올지, 정시 올인이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각자 가채점 제대로 해 보고, 빠르게 전략들 세워 봐라. 궁금하거나 상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나는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태웅이에게 시선이 향했을 때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다. 녀석의 눈동자가 평소와 달리 불안함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웅아.”

    “….”

    “이태웅!”

    “네, 네네, 네!”

    태웅이는 전에 없이 당황해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래? 모의고사 망쳤어?”

    “그, 그건…. 아닙니다.”

    녀석의 불안한 눈빛을 뒤로하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설마?’

    나는 태웅이를 적당히 격려해 주고는 곧장 교무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지석 선배, 오 선생, 윤 선생을 만났다.

    “예전에 모의고사 성적 조작이라던가 그런 걸 했던 사례가 있습니까?”

    내 질문에 지석 선배는 풍문으로만 들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윤 선생도 강문고에서는 그런 사례가 없었다고 했다.

    반면, 오 선생은 엑스칼리버를 손에 꽉 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 10년쯤 전이었나, 한 번 있었네.”

    “어떤 일이었죠?”

    “전교 10등권 학생들끼리 기싸움한 적이 있지.”

    오 선생은 아직도 그때의 분함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런데 웃긴 게, 딱 한 명 빼고는 점수가 다 떨어진 거야. 그 한 명이 전교9등이었고, 백분위가 1~2씩 올라갔지.”

    “다른 학생들은 점수가 많이 내려갔습니까?”

    “많이 내려간 녀석 중에는 등급이 1개씩 떨어진 경우도 있었어. 아무튼, 그때 학교 분위기도 이상했는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학부모들끼리 작업했다는 소리도 있었네.”

    거기까지 듣자마자 확신했다.

    태웅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명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 녀석의 마음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설마 그런 낌새가 있나?”

    “아직 물증은 업고 심증만 있습니다.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세 교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네, 강 선생님.]

    “이사장님, 혹시 정보통 좀 있으십니까?”

    다짜고짜 정보통을 묻는 내 질문에 이사장이 잠시 당황해했다. 그러나 이내 내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었다.

    [괜찮은 정보통들이야 있죠. 무슨 일인가요?]

    “제가 올해 큰 사건이 몇 개 생길 거라고 말씀드린 거 기억하십니까?”

    [네. 기억하고 있어요.]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그 중 하나가 상반기에 생길 것 같습니다.”

    이사장이 핸드폰 너머에서 걱정스럽다며 말했다.

    [그럼 정보통들은….]

    “네. 제가 말씀드리는 학생들에 대해, 아니 정확히는 학부모들까지도 조사를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

    태웅이는 전교 3등 학생. 그런데 모의고사를 이번에 망쳤다.

    물론 망칠 수는 있다. 시험이라는 게 잘 못 볼 수도 있고, 잘 볼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시험이 끝난 후에 관찰한 태웅이의 표정. 그건, 시험을 잘 보지 못해서 부모님에게 혼날까 봐 걱정하는 학생의 눈빛이 아니었다.

    또 다른 무언가가 들통날 때 갖게 되는 눈빛. 바로 죄책감으로 인한 두려움이었다.

    “학부모 빌런을 좀 밝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 역시도, 강문고 최고 빌런은 학부모들 중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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