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라떼는 말이야
걸터앉은 몸을 일으키면서 조신자를 바라봤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조신자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자비롭게도, 조신자 이사님이 이번에 행한, 불법 사찰 건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
“대신 이사님께는 딱 한 가지만 요청드릴 겁니다. 이사님? 듣고 계세요?”
나는 앞에서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조신자를 바라봤다. 그녀의 시선은 앞에 있는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내 뒤에 앉은 곽형조 이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사님.”
“…앉아 있어.”
곽형조가 목에 힘을 잔뜩 주고는 조신자에게 말했다. 조신자가 숨을 흡 들이켰다.
“마… 말해.”
조신자의 태도를 보면서 확신했다.
이사진 내에서 곽형조의 권력이 생각 이상으로 높다는 점을 말이다.
옆에 앉은 천우원은 어느새 타왔는지 녹차를 홀짝거리며 앉아 있었다. 여유로운 표정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조신자의 저 행동, 반응.
‘곽형조와 천우원이라….’
흠흠,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뒤에 앉아 계신 두 분은 이미 알고 계시죠? 제가 뭘 말할지.”
“건방진….”
“먼지 하나 털어도 나올 게 없는 저와 먼지 털면 태산을 이룰 만한 여러분들. 누가 더 불리한지는 이제 극명해지지 않았습니까?”
내가 눈을 똑바로 뜨고 곽형조를 바라보자 천우원이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찼다.
“어디서 버릇없이 도끼눈을 뜨고 있나?”
“어디서 경우 없이 학교 교사에게 이따위로 나옵니까?”
“저, 저저저, 저 미친 새끼….”
천우원에게 말대답을 하는 나를 보며 조신자가 손가락을 들고 덜덜 떨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신자 이사님은 오늘 이 시간부로 이사진 퇴진. 다시는 강문고에 발을 들일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나의 입시실적 하락이었다. 더 나아가면 나를 그들처럼 더러운 부정부패의 판에 담그려는 속셈이었다.
이를 위해 내 약점을 어떻게든 찾아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이미 당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작년부터 철저하게 노력해 왔다.
한 번 더러운 사람은 더러움이 묻어 있어도 괜찮았지만, 청렴을 유지하는 사람은 먼지 한 톨 묻어도 물어뜯는 게 이들의 방식이었다.
당연하게도, 세상 사람들 역시도 그랬다.
너만큼은 깨끗할 줄 알았는데 그럴 줄 몰랐다며 비난하거나 하면서 자기들 편한 대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네가 그럴 줄 알았다.
네가 그럴 줄은 몰랐다.
두 문장이 함축하는 의미는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다.
그렇기에 나는 회귀를 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트집잡힐 만한 일들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 그래! 자네 학생들을 가둬 두고 입시준비를 시킨다고….”
“가둬요? 누가요?”
그 말과 동시에 박 선생의 안내를 받은 학생 세 명이 들어왔다.
“쌤! 잘 지내셨어요?”
“이사장님도요!”
“아, 안녕하세요.”
은장이, 정석이, 동석이였다.
“다시 한번 말해 보십시오. 누가 누굴 가뒀다고요?”
“학, 학생들을 가둬서….”
“만약 그렇게 가둬 두고서 공부를 시켰다면, 학생들의 불평불만이 한가득 있어야 할 텐데… 제 제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만.”
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뭐, 그건 특강이었고, 신청도 직접 했고.”
“그 덕분에 저도 목표를 찾았으니까….”
“난 다 같이 모여 있으니까 재밌었는데?”
셋이 한마디씩 거들자 조신자의 얼굴이 한층 더 구겨졌다.
“아마 이사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그림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너, 너….”
“당연하게도, 보여 주신 이 종이에 적힌 조건은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이건 뭐 저한테 이득은 하나도 없고 협박성으로 던지고만 있으니…. 거기에 검증과정은 입결을 알아야 하니까 꼬박 1년 가까이 걸리고 말이죠. 그 사이에 저 압박하시려고요?”
결국 조신자가 나에게 요구한 일들의 결과는 빨라야 올해 11월에나 나온다. 만약 내가 이걸 받아들인다면? 올 1년은 이들의 손아귀에 놀아나야 한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제가 받아들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건 이해하시죠?”
종이를 팔랑거리며 조신자의 앞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조신자가 손을 덜덜 떨며 종이를 붙잡았다.
“이럴… 이럴 리가….”
“그쯤 하지.”
뒤에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던 곽형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우원이 그 뒤를 따라 옷을 고쳐 입었다.
“조신자는 이사진에서 퇴진시키겠네.”
“이사님!”
“난 자네에게 충분히 기회를 줬어. 어떤 방법이라도 좋으니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 이 꼴을 보게.”
조신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에 서서 이게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려는 학생들이 있었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내 얼굴과 함께 통쾌하다며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이사장이 서 있었다.
그리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서 조신자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천우원이 있었다.
“이빨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자네를, 우리가 계속 데리고 있어야 하겠나?”
곽형조는 조신자를 보며 혀를 찼다.
“가지. 다른 인원들에게도 오늘 일 알리고.”
“네.”
천우원의 대답을 끝으로 곽형조와 천우원은 이사장실을 나갔다. 조신자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양손을 꽉 쥐고만 있었다.
* * *
“와, 쌤 방금 뭐예요? 분위기 무슨 느와르 영화처럼 장난 아니던데.”
은장이가 매점 앞 벤치에 앉아서 물었다. 정석이와 동석이도 이게 무슨 일이냐면서 나에게 설명 좀 해달라며 부탁했다.
“어떤 일이냐면….”
나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녀석들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아니 진짜요!?”
“왜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래요?”
은장이와 정석이가 펄펄 뛰며 내 대신 욕을 해 주었다. 동석이도 지금 상황에 화가 나는지 눈에 불길을 담고서 방금 나온 이사장실을 올려다봤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 있을 거야. 그때도 부탁한다.”
“당연하죠 쌤. 이게 말이나 되는 건지 참나.”
“이러다 후배들은 우리처럼 입시 준비 못 받는 거 아니에요?”
정석이와 은장이가 기특하게도 후배들을 걱정했다. 나는 녀석들의 그런 마음 씀씀이에 미소를 지었다.
“아 맞다. 오늘 무슨 인터뷰 하자고 하셨잖아요?”
동석이가 이제야 생각났다면서 말했다.
“그래. 오늘은 후배들을 위한 합격생 인터뷰를 할 거다. 방금 은장이가 말한 입시 준비 도와주는 거야.”
오늘 녀석들을 부른 이유는 조신자를 비롯한 이사진들의 공격에 대비한 방어책이기도 했지만, 인터뷰 시간을 가지려는 이유도 있었다.
우선은 우리 반인 3학년 3반부터였다.
녀석들을 데리고 교실로 올라갔다. 그러자 무료하게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3반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잘들 하고 있다. 누가 종 쳤는데 퍼질러 잠만 자라 그랬어?”
“헐 쌤!”
“오민주. 친구들 공부 안 시켜? 너 혼자만 공부하면 되나?”
“죄, 죄송합니다!”
민주가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옆에서 자고 있는 친구들을 깨웠다. 은솔이도 덩달아 앞뒤자리 친구들의 어깨를 흔들었다.
“오늘은 깜짝 손님들이 왔다. 너희들의 입시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줄 녀석들이야. 들어와라!”
내 신호에 맞춰 은장이, 정석이, 동석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와 변한 게 없네, 중얼거리면서 녀석들이 들어오자 학생들 몇 명이 이들을 알아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들 잘 알지? 작년 3학년 3반 학생들이었던 너희들의 선배, 대입역전신화를 일궈낸 너희들의 롤모델들이다.”
거창한 소개를 받은 셋이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 국어 수업은 선배들 인터뷰를 하고 자신의 진로진학 목표를 작성하는 수행평가를 주는 걸로 마무리하겠다.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려는 녀석들은 은장이와 동석이에게, 논술을 준비할 녀석들은 정석이에게 붙어라. 비단 입시가 아니라 다른 고민들 있으면 편하게들 이야기해 봐.“
은장이, 동석이, 정석이가 앞에 빈 책상을 두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3반 학생들에게 각자 희망하는 선배 뒤에 줄을 서도록 시켰다.
“그럼 지금부터 합격한 선배들 인터뷰, ‘라떼는 말이야!’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줄을 서 있던 건 앞자리에서부터 은장이를 향해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던 민주였다.
“언니!”
“민주야! 공부 잘 하고 있어?”
은장이와 민주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물어봤다.
“생각보다 서울한국대는 면접이 힘들어. 너 이런 거 답할 수 있어? 문학의 허구성은….”
작년 서울한국대 기출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은장이가 민주에게 한껏 겁을 주기도 했고.
“좋아하는 분야가 없으면 이 전형은 준비하기 힘들 거예요. 그래서 우선은 대입용으로라도 희망 진로랑 학과를 정하고…”
후배들에게도 높임말을 사용하는 동석이는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었다.
“논술 공부해 본 적은? 없어? 기본 글 실력 평가부터 해야 할 거야. 담임쌤한테 해달라고 요청드려. 나도 3학년 때 바짝 준비해서….”
정석이는 자기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도 나와 상담을 먼저 받아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요리를 좋아한다고요?”
“네. 그래서 담임쌤이랑 상담도 하고 지금 준비하고 있기도 해요. 그래서 봉사동아리도 만들었어요!”
“어떤 봉사동아리요?”
동석이와 은솔이는 제법 죽이 잘 맞았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동석이가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서 나를 돌아봤다.
“쌤, 봉사동아리 활동, 대학생들이 도와줘도 괜찮아요?”
“왜? 연천대에서 도와주려고?”
그 말을 하자마자 은솔이가 진짜요!? 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희 과에 공학 매니아들이 많아요. 고등학생들 멘토로 하면 어떻겠냐 이야기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공학 교육 봉사 같은 것도 가능할 것 같고요. 학과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는 해야 하겠지만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는 동석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중에 물어보고 알려 줘라.”
“네, 알겠습니다!”
사실 오늘 인터뷰를 준비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입시를 준비하는 데 있어 필요한 건 학생들, 교사들의 노력만이 아니었다.
바로 합격한 선배들의 도움도 필요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 입시에 대한 궁금증은 물론이고 현실적인 고3으로서의 어려움 같은 부분들.
이러한 부분들은 아무리 친한 교사라고 해도 교사가 해 주는 말과 또래 선배가 하는 말은 또 달랐다.
“너무 그러지 마. 나도 3월에는 방황했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때는 여친 사귄다고 부모님한테 혼만 났다니까?”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그래. 그러다가 담임쌤이 방향 잡아 주셔서 정신 차릴 수 있었고. 지금 시점에서 고민하는 건 당연한 거야.”
이 앞에서 후배들을 봐주고 있는 작년 3학년 3반 선배들의 존재가 바로 그러했다.
“선배, 저 사실… 공부는 하기 싫어요.”
“바로 취업하려고요?”
“네. 근데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죠?”
“아마 지금 시점에서 고민을 많이 할 거 같아요. 그런데 너무 빠르게 결정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걸 잘 할 수 있는지를 찾아보세요. 내가 해야 하는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서….”
고3이라는 가장 가까운 세월을 거쳐왔던 학생들. 그들의 존재가, 올해 3학년을 보내게 되는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태웅아!”
“아, 안녕하세요, 학생회장님.”
“에이, 회장은 작년부터 안 했고 졸업도 했는데 무슨 회장이야. 그냥 누나라고 불러!”
“누, 누나요?”
그렇기에 지금 현장에 나와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래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최근에 겪은 당사자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
그런 성격의 여러 이야기들이, 지금 합격 선배들인 은장이, 동석이, 정석이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그래! 누나라고 해!”
“그… 그, 누… 나.”
태웅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었고.
“…원래 인문계열로 가려고 하셨어요?”
“나? 아냐, 나는 마케팅이나 광고, 방송쪽에
더 관심이 많았어. 관심분야랑 맞추면 미디어학과나 신문방송학과 같은 곳들이 더 어울렸겠지?”
“그런데 왜 인문계열로 진학했어요?”
은장이는 태웅이의 질문을 듣자마자 무슨 고민인지 알겠다면서 나를 잠깐 바라보며 웃었다.
“담임쌤이 알려 주셨어. 진학을 하려면 현실적인 코스프레가 필요하다고.”
“코…스프레?”
“응. 지금은 인문광역이지만, 난 나중에 광고 분야로 진출할 거야. 부모님은 여전히 광고는 안 된다고 반대하셔. 그런데 이제 나도 성인이잖아? 하고 싶은 거 준비해야지.”
태웅이는 은장이의 말을 들으며 입을 그저 벌리고만 있었다.
“아, 인문학 공부도 재미있기는 해.”
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나와 했던 상담 내용들 일부를 꺼내면서 상담하는 모습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태웅이는 어느 학과로 가고 싶은데? 작년에 경영학과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게….”
태웅이가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은장이는 녀석의 눈치를 보더니 나에게 눈빛으로 물어봤다. 나는 고개를 살짝 저어 보였다.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답변을 고민하는 태웅이의 주변이 음소거가 된 듯했다. 나 역시 녀석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싫어요.”
“응?”
“경영이 싫어요.”
태웅이의 진심이 웅성거리는 학생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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