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35화 (135/252)

135화. 딜 교환

경필이 상담이 끝나고 밤 10시가 넘어서 이사장의 연락을 받았다.

[강 선생님, 조만간 이사진에서 연락이 갈 거예요.]

“이사진이요?”

나는 별로 달갑지 않다고 중얼거렸다. 이사장이 그 말을 들었는지 핸드폰 너머로 호호, 웃었다.

[다른 게 아니라, 강문고 작년 입시실적이 좋았던 이유가 강 선생님 덕분이었잖아요?]

“그건 그렇죠.”

[그래서 이사진이 선생님을 견제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방향을 바꾼 거 같아요.]

이사장은 조용한 목소리로 핸드폰에 대고 속삭였다.

[강 선생님에게 딜이 들어올 수 있어요.]

“딜이요?”

내가 무슨 딜이냐며 묻자 이사장이 다시금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 선생의 실력을 검증해 보겠다, 라고 하네요.]

“이사진에서요?”

[네. 자기들이 강 선생님을 이기지 못하니까 아예 깎아내리려는 거죠. 그리고 깎아내릴 건수를 찾으면 그걸 두고서 딜이 들어갈 거예요.]

이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들이 어떤 딜을 할지 예상해 보았다.

‘대충 그런 식으로 올 거 같은데.’

생각되는 지점이 하나 있었다.

“마음대로 하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저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이사장이 잠시간 침묵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하죠. 이번에는 또 어떤 마법을 보여 주시려고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제 소신껏 하려고 합니다.”

내 말에 이사장이 한껏 기대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이사장에게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잠깐 연락처를 뒤적인 뒤 그중 한 명의 번호를 선택했다. 그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쌤!]

반가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핸드폰을 고쳐 잡았다.

“다음 주에 애들 데리고 학교 좀 와라.”

* * *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곽형조 이사와 천우원 이사, 조신자 이사는 오래간만에 강문고를 찾았다.

“학교가 변한 게 없구만.”

곽형조가 혀를 끌끌 차며 건물로 들어갔다.

“이, 이사님!”

마침 복도를 걸어가고 있던 민지정이 곽형조를 비롯한 이사진들을 발견하고는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하, 학교에는 어쩐, 어쩐 일이십니까?”

한껏 긴장한 목소리를 한 민지정을 향해 곽형조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건 뭐, 우리가 조폭인 줄 알겠구만. 너무 딱딱하게 인사하지 말게.”

곽형조의 말에도 민지정의 손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뒤에서 다른 교사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는 이사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복도에서만 대여섯 명의 교사들에게 인사를 받은 이사들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천우원은 그들을 보면서 고생들이 많아요, 하며 격려를 해 주었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야. 신자야, 알고 있지?”

길을 걸으면서 천우원이 상냥하면서도 냉랭하게 말했다. 조신자는 그의 말에 흠칫 놀라면서 정장을 고쳐 입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 어이 민 부장. 강명문을 이사장실로 데리고 와.”

민지정은 천우원의 말을 듣고는 알겠다며 허리를 한 번 더 90도로 숙였다. 그리고는 강명문을 찾으러 교무실로 달려갔다.

이사진은 그 길로 이사장실에 들어갔다.

“은숙이 오래간만이다?”

곽형조의 인사에 강은숙 이사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나 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일찍 오실 줄 알았으면 준비라도 해두는 건데요.”

“아냐, 됐어. 이따 강명문이 오면 커피나 내려와.”

소파에 털썩 앉으면서 명령조로 말하는 곽형조를 보며 이사장이 입가를 씰룩거렸다.

“왜? 불만 있어?”

“…아니요, 그럴 리가요.”

이사장이 천우원, 조신자를 보면서 말했다.

“강 선생님을 털 생각이겠지만, 유의미한 결과는 얻지 못할 거예요.”

“그건 터는 우리가 판단해. 넌 조용히 있어.”

조신자가 이사장을 노려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사장은 조신자를 보며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은퇴 준비는 잘 되고 계세요?”

“이 년이 미쳤나.”

“지금 이 자리가 조신자 이사님 퇴진을 결정짓는 자리인 건 알고 있어요.”

이사장의 말에 세 사람이 말을 멈추고 이사장을 조용히 응시했다.

“이번에 강 선생님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조신자 이사가 자리를 떠나겠다는 조건. 맞죠?”

“…맞다면?”

조신자의 말에 이사장은 빙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사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맞다면 오늘 당장 떠나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문을 열고 들어온 강명문이 소파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저 한 명을 보기 위해 이렇게 높으신 분들이 오시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이 사람인가?”

곽형조가 불쾌하다는 눈빛을 하면서 이사장을 돌아봤다.

“이런 무례한 인간이 강문고에서 제일 잘 나간다니 허허.”

천우원도 강명문을 보면서 어이가 없다며 중얼거렸다.

“저도 이렇게 무례하고 개념 없는 분들은 처음 뵙네요. 보통 이분들 나이 정도면 참 예의도 바르시고 성인군자인 분들도 많은데 말입니다. 그렇죠?”

강명문이 이사진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조신자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강명문을 향해 테이블 위에 종이를 올려두었다.

“아 최진원 원장님 사모님이시군요. 원장님은 잘 지내십니까?”

“닥치고 이거부터 펼쳐 봐.”

조신자의 말을 들으면서 강명문은 테이블 위에 고이 놓여 있는 종이를 펼쳤다.

“여기 있는 걸 올 1년간 다 이행하면 자네 실력을 인정해 주지.”

종이에는 3가지 항목이 적혀 있었다.

(1) 강문고 학생이 아닌 다른 학교 학생을 상담해서 스카이에 합격시킬 것.

(2) 강문고 학생들 중 내신 5등급 이하 학생을 한 번 더 스카이에 보낼 것.

(3) 3학년 담임교사 세 명의 실적보다도 더 많은 실적을 낼 것.

그 종이를 보면서 강명문은 헛웃음을 날렸다.

“안 하겠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럼 자네가 지금까지 저지른 더러운 일들을 세상에 알려야지. 그러면 강문고에서는 물론이고 교육계에서 매장될 거야. 언론에도 뿌려지겠지. 강남 명문고등학교 교사의 실체, 이런 제목으로 말이야.”

조신자의 말에 강명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을,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당해 당황한 것으로 해석한 조신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더러운 일들이요?”

강명문이 묻자 조신자가 자신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교육부 사람들과 내통하고 있는 걸 모를 것 같아? 강명문, 자네에 대한 소문은 다 알고 있어. 감사단이나 대학과의 커넥션도 알고 있고. 지금까지 자네가 했던 입시 분석, 역량들이 자네 실력이 아니라 그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빼낸….”

“하세요.”

조신자의 말을 끊은 강명문이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조신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라고?”

“해 보시라고요. 제가 저지른 더러운 일? 한 번 먼지 한 톨 남지 않게 털어 보시죠. 뭐라도 나오나.”

예상치 못한 강명문의 태도에 조신자는 당황한 얼굴을 역력히 보였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만 말하는 건 너무 재미가 없죠. 수지타산에도 안 맞고. 만약 먼지 한 톨 문제 될 거 없으면 어떻게 하실래요?”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사람은 없어. 그러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는 게 좋을 텐데?”

“진짜 없다니까 그러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사장실을 빙빙 돌았다.

“정신 사나워. 빨리 앉아!”

“아 잠시만요. 곧 연락 올 때가 됐습니다.”

강명문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였다. 리듬을 타듯이 움직이는 모습이, 이사진에게는 매우 거만한 걸음걸이로 보였다.

그때 조신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땠어?”

전화를 받는 조신자를 향해 강명문이 제안했다.

“다들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하시죠? 어차피 제 뒷조사를 의뢰했을 거 아닙니까?”

그의 말에 조신자가 피식 웃으면서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볼륨을 최대치로 키웠다.

[…없습니다.]

“뭐?”

[이 사람, 아무것도 없습니다. 방금 교육청도 쑤셔 봤는데 나오는 게 하나도 없어요. 가족관계도 뒤졌는데, 대학생 되면서 부모님 돌아가셨고, 형제자매 없는 외동입니다. 친척들과 교류 끊어진 지는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온갖 내역들 다 뒤져 봤는데 나올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이런 사람이 다 있냐면서 신기한 구경이라도 한 듯했다. 강명문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사장을 향해 씨익 웃었다. 이사장도 소리 내어 웃으면서 화답했다.

“그럴, 그럴 리가 없어. 제대로 뒤져 본 거 맞아?”

[아, 제대로 해 봤다니까요. 누님 말대로 다 찾아봤습니다. 검찰, 경찰, 교육청, 강남서초교사연합회, 교총, 고구려대 교수들 싹 다 돌려봤어요. 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만 하고, 여자 관계도 하나도 없고, 뒷돈 받거나 과외해 주거나 한 것도 없습니다. 학원 강사도 잠깐 알바로 한 거라 문제될 게 하나도 없어요.]

“주, 주식 거래는? 부당이득은?”

[주식도 하나도 안 하고 있어요. 통장도 깨끗합니다.]

그 말을 들은 조신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런 조신자의 얼굴을 보면서 강명문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게 말했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강명문은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음료수 하나, 자판기 커피 하나 받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받았다고 한다면 학생들이 만들어 준 졸업식 선물인 카드편지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정도를 가지고서 부정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이럴 줄 알고 먼지 하나 남기지 않았지.’

강명문은 전생에 자신이 어떤 이유로 강문고에서 밀려났는지 생각했다.

없었던 성적조작을 했다고 소문이 났고, 뒷돈 받고 대회 수상 밀어주기 의혹에 여학생에게 손을 댔다는 찌라시까지도 나왔었다.

이번에도 그런 식의 조작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사진의 네트워크와 기존의 권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조작할 수 있다고 자신할 테니까.

물론, 이사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이것보다는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조신자를 데리고 있을지, 버릴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생기는 하나의 테스트 게임 정도였다.

그렇기에 강명문은 이사진이 강경하게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공격을 해도 딱 조신자의 레벨 정도까지였다.

그 예상대로, 조신자를 제외한 곽형조와 천우원의 표정은 차갑고 냉정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제가 이 종이에 적힌 일들을 수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조신자의 핸드폰에 걸려온 전화는 어느새 끊어져 있었다. 그녀는 손을 덜덜 떨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강문고 교풍을 따라가지 않았을 리가 없어. 아무리 그래도….”

“아, 마침 저도 기다리던 전화가 왔네요.”

강명문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스피커폰으로 돌려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어, 왔어?”

핸드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쌤 저희 교문 앞이에요! 그냥 들어가면 돼요?]

그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강은숙 이사장이었다. 그녀는 반가운 목소리라면서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졸업생들이 뭘 그렇게 망설이고 있어?”

[에이, 마음대로 들어갔다가 욕먹으면 어떡하나 고민했죠 뭐! 그럼 저희 교무실로 갈게요!]

강명문은 전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게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조신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뭐, 뭐 하는 거야?”

“명색이 강남 8학군인 강문고의 이사라는 분들이 학교라는 현장을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아서요. 제가 특별한 손님들을 초대했습니다.”

그 말에 조신자는 물론이고 곽형조와 천우원도 눈썹을 꿈틀거렸다.

“여러분들이 놓치고 계신 게 있습니다.”

강명문은 그들의 표정을 즐겁다는 듯 바라보고는 테이블에 놓인 사탕을 뜯어 입안에 넣었다.

“교사들에 대한 평가와 신뢰는 검찰이나 교육청으로부터 나오는 게 아닙니다.”

강명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무게감이 있었다. 짓눌릴 듯한 압박감을 느끼면서 조신자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다.

“바로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나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저를 가장 신뢰하는 학생들을 불렀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신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앞에서 사탕을 까득 깨물었다. 그 소리에 조신자가 화들짝 놀라 낮게 비명을 질렀다.

“걱정하지 마세요. 학부모회를 부르지는 않았거든요.”

창문 밖을 주시하던 강명문은 졸업생 세 명이 학교로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신자가 앉은 소파의 팔걸이에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이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날카로운 칼날을 품은 강명문이 조용히 조신자를 응시했다.

“제가 딜을 걸 차례군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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