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정의로운 학생
“제가요!?”
홍 선생이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선생님밖에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유사시에 일반인들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수영선수기도 했고, 시민수상구조대원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그녀는 고향인 경상도 지역에서 시민수상구조대원을 했었다. 시민들을 몇 번 구하기도 했고, 피서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기도 했다.
“그렇기야 하지만… 선배님 생각처럼 그렇게 고수는 아니에요.”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올해 경필이, 정말 케어 잘 해 주셔야 합니다.”
만약 경필이 사건이 잘못해서 퍼져나가면, 강문고에 대한 이미지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 문제의 화살이 나에게 돌려질 가능성도 높았다.
<입결에만 신경쓰는 교사들의 실체>
따위의 기사가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비슷한 제목의 기사들도 있었고.’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서 잠깐 눈을 감자마자 박 선생이 내 어깨를 마구 때렸다.
“진짜, 이거 진짜죠?”
“어디까지나 경필이 성격상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내가 회귀했다고 말해 봤자 그런 걸 믿어 주지도 않을 사람들이었기에, 적당히 에둘러서 이야기했다.
“흐으음….”
“왜, 왜요?”
“강 선생님은 진짜 한 번씩 이상할 때가 있다니까요. 뭐 궁예라도 돼요? 미래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강 선생이 말한 미래가 현실화 되기도 했고 말이지.”
“그런 거 아닙니다. 아무튼, 조심할 수 있으면 조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나는 얼굴을 들이미는 박 선생을 옆으로 밀어냈다.
“아, 알겠습니다. 저도 준비를 좀 해야겠어요. 후우후우, 다시 공부 좀 해둬야겠네요.”
홍 선생은 긴장한 얼굴을 한 채 주먹을 꽉 쥐며 의지를 표했다. 오 선생도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엑스칼리버를 바닥에 꽂으며 말했다.
“나도 올해 선도부 녀석들 관리 철저하게 하겠네. 정신교육을 똑바로 시켜야겠어. 수학여행지에서 실수로라도 물에 빠지거나 절벽 가까이라도 가는 일이 없도록 말이야.”
나는 세 사람을 향해 꼭 부탁드린다면서 오늘 이야기는 반드시 우리 셋만의 비밀로 해달라고 강조했다.
* *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금요일이 되자 태웅이가 나를 찾아왔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30분만 시간을 내주라는 이야기를 기억한 모양이었다.
“잘 왔다. 따라 와.”
나는 태웅이와 함께 한 층 위로 올라가면 있는 빈 교실로 들어갔다.
“태웅아!”
먼저 와 있던 용희가 태웅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태웅이는 용희의 어깨동무를 마다하지 않고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민주야, 여기가 어떤 곳인지 소개 좀 해줘.”
“네!”
동아리부장이 된 민주가 태웅이에게 봉사동아리 ‘해피플레이스’에 대해 소개를 했다. 소개를 듣던 태웅이의 표정이 알게 모르게 변해갔다.
“결국 봉사동아리 아닙니까. 저는 공부할 시간도 부족합니다.”
“우리가 봉사하러 갈 단체 중에 ‘한국어 교실’ 단체도 있어.”
내 말에 가방을 다시 메려는 태웅이의 몸이 굳었다.
“일본인 청소년 대상의 한국어교실 단체. 거기에서 각종 행사를 하는데, 그 행사를 지원하러 나가기도 할 거야.”
“….”
“그때 태웅이 네 일본어 실력과 일본 문화 지식들을 발휘해 줬으면 하는데. 어때?”
태웅이는 건담을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된 학생이었다. 그리고 일본어 원서 소설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생활기록부 내용이 사실이라면 말이지.’
일본어 세특에 적힌 내용 그대로라면, 태웅이의 일본어 실력은 믿을 만했다.
“그리고 뭣보다 혼자 다니면 심심하지 않냐? 자주는 아니어도, 한 번씩만이라도 시간 내서 같이 다니면 좋을 거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태웅이 곁으로 다가갔다.
“입시 속 작은 힐링 시간이라고 생각해.”
“힐링…이요?”
“그래. 마음 둘 곳이 없으니까 더 힘든 거 아니야.”
이어서 칠판에 해피플레이스 동아리의 목적을 하나씩 정리했다.
“자, 여기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일 중 하나가 뭐다?”
“건축봉사!”
“무료급식!”
“지역 경제 활성화!”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학생들이 한 마디씩 소리를 질렀다.
“태웅이는?”
용희가 태웅이를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태웅이가 ‘나?’ 하면서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같이 하는 거 아니었어?”
용희가 순진한 척 묻자 태웅이가 잠시 당황해했다. 나는 녀석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같이 하는 게 어때? 다들 너랑 같이 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민주와 은솔이도 전교권 학생인데다가 일본어에 능숙한 태웅이가 동아리활동을 함께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같이 할 수 있다면 분명 큰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태웅이가 어떤 학생인지에 대해서는 용희가 이미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그래서 민주와 은솔이도 태웅이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고등학교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고 싶어 했다.
“같이 하자!”
“오면 내 공부도 민주랑 같이 좀 봐주고!”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태웅이가 고민했다.
“…시험기간엔 안 갈 거죠?”
“아싸!!”
태웅이의 말에 용희가 크게 소리쳤다. 나는 용희의 어깨를 종이몽둥이로 가볍게 툭 치고는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한국어교실은 시험기간 들어가기 전에 갈 예정이다. 그 이후에는 다른 봉사야.”
“저 학원 때문에 다른 봉사들은 잘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봉사 에세이 쓰기 활동 같은 걸로도 대체할 수 있도록 해 줄게.”
내 말에 민주가 ‘쌤 저희는요?’라고 물었다.
“너희는 수시 준비해야 하니까 당연히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지. 태웅이는 정시파잖아.”
그러자 정시파인 학생인 자신이 왜 봉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은 태웅이가 말했다.
“저, 이거 진짜 왜 해야 하는 건가요?”
녀석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가끔은 학교 바깥에서 바람도 좀 쐬고 그래야지. 내가 말했지? 너 그렇게 양보 하나 안 하고 살다가 숨 막혀 죽는다고.”
태웅이는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니까 중간중간 숨돌린다 생각하고 참여해라.”
내가 생각했던 해피플레이스 동아리의 목적은 다른 게 아니었다.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매력적인 비교과 활동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이 활동을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대입 합격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잠깐의 쉼터가 되어줄 수 있다.
이를 통해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재능을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을 길러 가는 것이었다.
경필이처럼 정의감이 넘쳐흐르는 학생이 아닌 이상, 이러한 정신은 고3 때 잊어버리고, 공부만 잘 하는 괴물로 커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물론, 그것만 노리는 건 아니기도 하지.’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생각해 보면서 녀석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 * *
태웅이는 해피플레이스 동아리 활동을 하겠다고 답하고 교실을 나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오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잘 해 보자.”
“네, 선생님.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듯이 예의를 차리는 태웅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용희야, 태웅이 잘 챙겨줘라.”
그 말에 의아해한 사람은 용희가 아닌, 뒤에서 듣고 있던 은솔이였다.
“쌤, 오히려 저희가 태웅이한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너희들이 챙겨줘야 해. 저 녀석, 생각보다 여리다.”
그러자 용희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쌤 감사합니다. 제 부탁 들어주셔서요. 그리고 그 보답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태웅이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나는 용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말했다.
“조만간 HSYP 담당자인 박재우 님이랑 미팅이 잡힐 거다. 학교로 오시라고 초대 드렸으니까 다들 긴장하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네, 준비할게요. 근데 누구시라고요?”
“HSYP. 해피플레이스 학생동아리 담당자분이야.”
그러자 민주와 용희가 헉 놀라며 숨을 삼켰다.
“워, 원래 담당자분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으면 만나보는 게 좋지 않겠냐? 어렵게 만든 자리니까 봉사 관련해서 궁금한 거 있으면 많이들 물어봐라.”
민주가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더니 알겠다며 노트에 무언가를 마구 적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은솔이와 용희도 달라붙어서 학생봉사동아리에 대한 궁금증을 정리했다.
‘그럼 여긴 됐고.’
나는 민주에게 남은 시간도 잘 준비하라고 격려를 해 준 뒤 다른 교실로 향했다.
그 교실에는 상담을 끝낸 홍 선생이 경필이와 함께 앉아 있었다.
“아, 오셨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면서 홍 선생이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에는 경필이가 차렷자세를 하고서 나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뭔가 혼자 텐션이 최고조로 올라가 있는 경필이를 보면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홍 선생이 내 표정을 읽었는지 허둥지둥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그래서 청소동아리를 만드는 거에는 찬성을 했다는 거지?”
“네 맞습니다! 지금까지 선도부원은 무조건 불량학생들을 잡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경찰을 꿈꾸는 학생이라 그런가 어째 목소리에서도 군기가 느껴졌다. 나는 녀석을 향해 헛기침을 크흠, 하고는 설명했다.
“먼저 도서관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자습실이 부족하다 보니 도서관에도 독서실처럼 책상들을 비치해 두고 있어. 그래서 정리정돈이 하나도 안 되고 있다. 게다가.”
내 이야기를 열심히 메모하던 경필이를 향해 종이몽둥이로 복도를 가리켰다.
“이것들이 공부만 열심히 했지, 쓰레기를 항상 마음대로 버리고 다녀.”
“교내 질서 유지를 위해 선도부원 문경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슴을 팡팡치며 호언장담하는 경필이를 향해 종이몽둥이를 날렸다. 녀석의 어깨에 팡 소리가 나자 경필이가 몸을 움찔 움직였다.
“너무 힘주지 말고 가볍게 생각해, 가볍게.”
“네 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 경찰대 모집요강과 경찰행정학과를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 경필이 너는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
“저는 경찰, 군인 모두 건강한 정신부터 깃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 말을 듣자마자 종이몽둥이로 녀석의 이마를 탁 때렸다.
“아야! 왜 때리십니까!”
“지금 네 정신무장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정신이 어쩌고 하는 거, 공부 못 하니까 하는 핑계로밖에 안 들리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홍 선생에게 받은 경필이의 성적표를 펼쳤다.
경필이의 성적은 4등급. 어지간한 경찰행정학과도 넘보기 힘든 성적이었다.
“그… 그게….”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경필이가 2학년이라는 점이었다. 2학년, 3학년 성적을 끌어올리면 경찰대 준비할 실력으로도 올림과 동시에 경찰행정학과도 준비할 수 있다.
“너, 동건대 경찰행정학과 가고 싶지?”
“네 맞습니다! 경찰대와 동건대, 제 꿈입니다!”
“그럼 제대로 준비하자.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거 전부 적고, 실천해라.”
경필이가 노트와 펜을 꺼내 메모할 준비를 했다.
“먼저, 청소동아리 부원을 모아. 방향성은 부원을 모은 후 정해라. 둘째로, 친구들 위한답시고 괜히 가서 껄떡대지 마. 셋째로,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는 정의감이나 희생정신은 청소동아리를 통해서만 보여 주도록 한다. 대신, 과하지 않게.”
과하지 않게, 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경필이가 대답했다.
“네. 그런데… 제가 그렇게 부담스럽나요?”
경필이가 진지하게 묻자 홍 선생과 내가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하지 인마. 여기 강문고야. 성적 낮은 학생 이야기를 친구들이 듣겠어? 내신 성적 2등급까지 올리고, 모의고사는 1등급 중반대를 찍어야 친구들이 네 말을 좀 듣지. 안 그래?”
그러자 경필이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러니까 열심히 해 보자. 아직 기회는 많다.”
그리고 이어진 상담에서 나는 경필이에게 스무 가지의 숙제를 내주었다. 메모를 하던 경필이가 입을 떡 벌리고 메모하던 손도 멈추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녀석에게 숙제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해 본다.”
“경찰을 인터뷰 하는 게 아니라요?”
경필이는 경찰이면 아버지 인터뷰하면 되는데, 라며 중얼거렸다.
“그래. 지금 넌 경찰공무원이 되는 길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어. 기본적인 공부습관조차 잡혀 있지 않으면서 경찰을 꿈꿔? 꿈 깨라. 내가 학원 하나 소개해 줄 테니까 거기 가서 학원 수강생 형, 누나들 만나고 와.”
내 말에 경필이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녀석의 입시가 성공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 과정에 있어서의 예상될 문제들도 제거하면서 말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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