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33화 (133/252)

133화. 유일한 사람

강문고등학교. 강남 8학군의 학교로, 강남서초권에서의 명문고등학교.

이 학교에는 다른 지역 학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폭력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폭력이나 불량한 일을 하는 학생들을 더 우습게 알았다.

“야, 10반에 걔 담배 피우다 걸렸대.”

“병신 아냐? 담배 피우면 머리 나빠지는데 무슨.”

이런 반응도 있었고,

“한심하다 한심해. 야, 분위기 챙겨가면서 해라.”

“공부 못 하니까 저런 걸로 관심 끌려고 그러는 거 같은데?”

이렇게 반응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평범한 불량 학생들은 강문고에 적응하기를 어려워했다. 심지어 공부하는 학생들을 방해하기라도 하면, 학급 반장부터 시작해서 전 학생들이 득달같이 들고 일어섰다.

“너 때문에 수능 망하면 책임 질 거야?”

“아 제발! 오늘 학원에서 레벨테스트 있다고. 이번에는 올라야 하니까 조용히 좀 해 줄래?”

“우리가 너처럼 한가한 줄 알아?”

그래서 강문고를 비롯한 강남서초권의 학교들 대부분은 그런 불량학생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불량학생들이 설 자리가 없음으로 인해 할 일이 없는 학생이 또 생기게 되었다.

“흐아암….”

강문고 2학년 1반 문경필 학생은 오늘도 아침일찍 선도부원으로서 교문지도를 하기 위해 문 앞에 서 있었다.

복장 불량, 흡연 등 학교의 선도부라면 마땅히 하게 되는 일들.

그 일들이, 강문고에는 없다시피 했다.

‘아니 무슨 학교가 이래?’

처음 1년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중학생 때와 달리 고등학생도 되었으니 다들 부끄러움이라는 게 뭔지 알게 된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동네가 아닌, 다른 지역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 선도부가 하는 일들이 많았다.

-오늘도 흡연자만 열 명 잡았어.

-담 넘어서 오는 애도 있더라.

그러나 강문고에는 그런 학생이 없었다.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래서 우리 학교 선도부가 꿀빨잖아.”

선배들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설렁설렁 적당히 교문지도를 마무리하기만 했다.

물론, 학교에 이런 학생들이 적고, 말썽을 피우는 학생이 없다는 건 학급 분위기 차원에서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다만, 경필은 선도부원이 하는 일 없이 서 있기만 하는 데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이게 학교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본 것이었다.

어쨌든, 오늘도 등교시간이 끝날 때까지 지각하는 학생은 겨우 두 명이었다. 그것도 10초 차이로 지각한 학생들이었다.

“문경필!”

무료한 교문지도를 정리하고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담임인 홍유진이 달려왔다.

“오늘도 선도부? 열심히 하네?”

마치 친한 친구처럼 대하는 홍유진을 보며 경필이 밝게 인사를 했다.

“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경필아 이번 주에 상담인 거 기억하지?”

경필은 기억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억하죠!”

“좋아좋아. 선도부 활동 마무리하면 바로 교실로 오렴!”

“알겠습니다!”

도수경례를 하는 경필을 보면서 홍유진이 키득키득 웃고는 교무실로 올라갔다. 교무실로 올라가면서 홍유진은 강명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상담 요점은 ‘괜히 나서서 사고 치지 말자’입니다.

-문경필. 이 녀석, 정의감 넘치는 경찰 지망생입니다.

그런 정의감 때문일까, 경필이 선도부를 하는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강문고에서는 할 게 없을 텐데.’

그런 의문을 품으면서 홍유진은 강명문에게 상담 방향에 대해 한 번 더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경필이를요?”

홍 선생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나를 찾아서는 경필이 상담을 같이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안될 건 없습니다만… 금요일에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까?”

“네 당연하죠! 선배님 감사합니다!”

홍 선생이 꾸벅 인사를 했다. 얼떨결에 경필이 상담에 같이 들어가게 되어서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강 선생님, 뭔가 음흉한 계획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경필이 올해도 선도부 하던데 선도부 관련해서 이야기해 줄 게 좀 있거든요.”

흐흐흐, 웃는 나를 보면서 박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오 선생이 지나가다가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엑스칼리버로 내 테이블을 탁탁 때렸다.

“어떤 건데?”

“아, 이 부분에서는 오 선생님께서 도움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선도부 하시죠?”

오 선생은 2011년 선도부 담당 교사였다. 내 말을 들은 오 선생이 악마처럼 웃었다.

“내가 올해 선도부 생활지도 교사지. 아주 눈에 걸리는 놈 있으면 이걸로….”

“엑스칼리버를 사용하실 일은 없으실 겁니다. 혹시 선도부 학생들 중 봉사정신이 뛰어난 학생들 없습니까?”

내 물음에 오 선생이 눈을 잠시 깜빡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딱히 떠오르는 학생은 문경필이 하나뿐이네.”

“다른 학생들은요?”

“강문고에서 선도부 해봤자 제대로 된 활동도 못 하는데, 사명감 갖고 하는 애들이 얼마나 있겠나. 다들 봉사점수나 받으려고 하는 거지.”

오 선생의 답변을 들으면서 나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의외였는지 홍 선생이 물었다.

“혹시 경필이가 선도부를 하니까 봉사활동도 하라고 말씀하시려고요?”

“비슷합니다. 그런데 봉사활동이 아닙니다.”

그러자 박 선생도 궁금하다면서 의자를 가까이 하고 앉았다.

“문경필이라는 학생이 정의로운 학생이라 하셨었죠?”

“네 맞습니다. 정의감이 높다 못해 하늘을 치솟아 버리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봉사정신을 물어보시면서 봉사활동은 아니다….”

박 선생이 팔짱을 끼고 정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다면서 손뼉을 쳤다.

“알았다! 희생정신!”

“정답입니다.”

경필이가 해야 하는 활동은 다른 게 아니었다. 녀석의 정의감을 해소할 수 있는 여러 활동들을 찾아서 활개 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녀석의 정의감이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발현될 수 있었다.

“경필이와 상담하시면서 녀석에게 강문고의 단점을 먼저 알려 주세요.”

지금쯤, 경필이는 자신의 넘치는 정의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선도부가 꼭 불량학생 잡는 식의 활동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려 주셔야 합니다.”

오 선생은 내 말이 맞다면서 맞장구를 쳤다.

“무슨 자기네들이 슈퍼히어로라도 된 줄 알아! 선도부가 그러라고 있는 부가 아닌데!”

“어린 학생들은 정의감이 넘치다 보면 그게 잘못 발현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더 과해지기 전에, 경필이에게는 새로운 미션을 주어야 합니다.”

이제는 박 선생, 홍 선생, 오 선생 세 명 모두가 내 앞에 가까이 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세 사람의 얼굴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살짝 의자를 뒤로 뺐다.

“그러니 청소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하라고 해주세요.”

그러자 세 사람이 서로를 돌아보면서 그게 무슨 소리인가 되뇌었다.

“청소….”

“동아리…?”

“…왜?”

멍하니 중얼거리던 박 선생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휘휘 흔들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시금 물었다.

“설명 좀 해 주세요.”

“경필이가 선도부를 하는 이유는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함이 아닙니다. 녀석은 아마 드라마나 영화처럼 선도부가 불량학생을 선도하는 그런 걸 생각하고 지원했을 겁니다.”

하지만 강문고에는 그런 학생들이 별로 없었고, 있다고 해도 사실상 잡범이나 다름없는, 그런 류였다.

“그래서 지금 그 녀석은, 자기의 정의감을 어떻게든 표출하고 싶어 할 겁니다. 문제는, 강문고 선도부에서는 특별하다 할 활동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대입 면접에서는 사례로 꺼내기도 민망하죠.”

내 말을 들은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문고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게 모두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녀석의 선도부 활동이나 정의감 넘치는 성격을 학생부에 최대한 담아 줄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그에 가장 적합한 활동이 바로 청소동아리입니다.”

내 말에 홍 선생이 알겠다고 답했다.

“청소동아리를 만들어서 강문고 내의 여러 ‘실’들을 청소하라고만 해도, 올 1년간 여러 에피소드들이 생길 겁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녀석의 정의감, 희생정신도 보여 줄 수 있을 거고요.”

독서실, 과학실, 급식실 등 교내의 각종 ‘실’들만 청소를 해도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희생과 봉사정신이 필요한 활동으로 포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청소활동을 하면, 1년 내내 꽤 바쁘게 활동해야 할 수밖에 없다.

경필이가 바쁘게 살아야만, 녀석이 일으킬 작은 사건들 정도는 무마할 수도 있을 거고.

“만약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박 선생이 경필이가 대체 무슨 짓을 할 걸로 예상되기에 그러냐고 물었다.

“당연히 대입 준비에 문제가 생기죠. 그 녀석은 경찰대를 가고는 싶지만 공부를 잘 못 해서 못 갈 겁니다.”

내 말에 홍 선생이 경필이 성적이 높지는 않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필이는 경찰행정학과를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경찰대도 겸사겸사 준비를 해야겠지만, 그것만 바라보기에는 그 녀석, 공부를 잘 안 합니다. 정의감만 앞서 있죠.”

무엇보다도 경찰대는 문제풀이에 익숙한 학생들이 유리했다. 하지만, 경필이는 정의로운 마음만 앞섰지, 제대로 공부를 하지는 않고 있다.

“홍 선생님이 경필이를 잘 컨트롤 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청소동아리가 그 녀석을 컨트롤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될 겁니다.”

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잠시간 침묵했다.

“네, 알겠어요. 그럼 경필이는 그 부분을 가장 주의하면 되는 거죠?”

홍 선생의 질문에 나는 답변을 머뭇거렸다. 경필이의 미래가 어떤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심각한 어투로 말하자 홍 선생이 긴장감이 서린 채 침을 꼴딱 삼켰다.

“잘못하면 사고가 나기도 할 겁니다.”

“사고…요?”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경필이 성격이 워낙 특이하니….”

내가 대충 얼버무리자 당연하게도 박 선생과 홍 선생의 질문폭탄을 받아야 했다.

반면 오 선생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나에게 물었다.

“강 선생. 혹시 그 사고가… 학생의 신체가 위험해지거나 하는 일을 말하는 건가?”

그가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시선을 받으면서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허어….”

“네!?”

“진짜로요!?”

오 선생, 박 선생, 홍 선생이 각기 다른 리액션을 보이며 심각한 얼굴들을 했다.

“저도 어디까지나 예측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건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그럼 그때 말씀하신 수학여행도….”

나는 겁에 질린 홍 선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경필이는 경찰인 아버지와 육군 준장 출신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군기가 바짝 들어간 채로 성장한 녀석이었다.

그 영향 때문이었을까, 경필이는 항시 정의감이 넘쳤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어려움을 발 벗고 나서려는 준비가 항시 되어 있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그런 성격과 인식은, 수학여행지에서의 한 사건으로 연결되었다.

<수학여행 온 고등학교 남학생, 물에 빠진 친구 구하려다 의식불명>

당시 수학여행 지도로 현장에 있었던 임 부장을 비롯한 여러 교사들은 이때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친구가 물에 빠지자마자 학생이 달려나갔습니다. 말릴 새도 없었어요!

-갑자기 경필이가 달려나갔어요. 저도 멀리서 보기만 해서….

그리고 그 결과, 의식불명에 빠지게 되었다.

녀석이 눈을 뜨는 건 그로부터 2년쯤 뒤의 일이었다.

제대로 된 대입 준비를 하지 못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수학여행지에서 홍 선생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내가 이번에 홍 선생을 2학년 담임으로 넣어달라고 한 교감에게 부탁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경필이에게 발생할지도 모르는, 수학여행지 계곡 사고.

강문고에는 그런 비상 상황에서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었다.

오직 딱 한 명.

전문구조장비에 대한 지식, 응급상황 조치, 유사시에 필요한 수영실력.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수학여행지에서 발생할 사고를 막거나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기간제로 들어온, 수영선수이자 시민수상구조대원 출신의 미술 교사 홍유진 선생.

“선생님의 실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녀가, 강문고에서 경필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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