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돼지엄마와 아들
“그래, 여기 앉아라.”
테이블 옆에 놓인 간이 의자를 가리키며 태웅이에게 말했다. 태웅이는 의자를 끌고 와서 내 앞에 앉았다.
“모의고사도 최상위 백분위 나오고, 내신도 좋고.”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아무튼, 태웅이 열공하고 있네. 그런데 경영학과를 가서 아버지한테 경영을 배우고 싶다고?”
내 질문에 태웅이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정말 가고 싶은 거 맞아?”
태웅이가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경영학과와 아버지의 사업. 나는 그 둘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태웅이야 뭐 전교권에서 노는 애라서 걱정 안 하지.
지석 선배는 태웅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모범생. 이 의견에는 오 선생도, 류 선생도 이견이 없었다.
“내가 볼 때는 다른 거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아서.”
태웅이는 과거 김영호 학년부장이 맡았던 학급의 학생이었다. 당시 김 부장은 전교권 학생인 태웅이가 서울한국대, 못가도 연천대나 고구려대에는 합격할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스카이에 합격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수능시험조차 치지 못했다.
“용희한테 이야기 들었어. 너희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며?”
“… 그런데요?”
깍듯하던 녀석의 말투가 조금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반응을 무시하고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부터 일본어 공부하고 싶다 그랬다던데.”
“그건….”
한용희,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중얼거리던 태웅이를 보며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태웅아. 괜찮으니까 이야기해 봐. 경영학과에 가고 싶은 이유가 있니?”
“…그냥 가고 싶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끝까지 말을 아끼는 녀석을 향해 싱긋 웃었다.
“1, 2학년 동아리 활동은 프라모델부, 다른 과목보다도 일본어 교과목 세특에서는 가고 싶은 일본 지역의 문화를 분석한 내용을 일본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관심을 보였고, 읽은 도서 목록 중에도 일본 고전 문학들이 들어 있어. 게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는 용희의 증언까지.”
내가 잠시 말을 멈추자 태웅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네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네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숨기려고 했고, 잊으려고도 했을 거다. 하지만.”
인쇄해둔 학생부를 펼쳤다. 그리고는 체크해둔 영역들을 태웅이에게 보여 주었다.
“여기 있는 여러 기재 사항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어. 이태웅, 이 녀석은 경영이나 사업에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이야.”
태웅이의 학생부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대부분 공부 잘 하는 학생들에게 복사 붙여넣기 수준으로 넣어 주는 의미 없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런 천편일률적인 내용들 사이에서 태웅이의 이점을 보여주는 영역이 바로 일본어 교과목 세특과 독서, 그리고 동아리였다.
“프라모델부에 가입한 건, 동석이처럼 로봇이 좋아서가 아니야.”
녀석이 좋아하는 건 로봇이 아니었다.
“넌 건담이 좋았던 거야. 그래서 건프라를 만드는 활동을 하려고 했던 거고.”
프라모델 동아리의 담당 교사인 박 선생은, 태웅이가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프라모델을 만들면서 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석 선배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이제 제대로 상담 받을 준비가 됐냐?”
“하지만 저는 동석 선배와 다릅니다. 수시가 아니라 수능으로 갈 거니까.”
녀석은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슬며시 내려놓은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학원 때문에 그런데, 이만 일어나도 괜찮겠습니까?”
“수능으로 대학을 가건, 수시로 대학을 가건 뭐든 좋아. 대신, 이거 하나만 기억해둬라.”
나는 가방을 챙기라고 손짓하면서 태웅이를 노려봤다.
“양보는 그만하자.”
“!!”
내 말에 놀란 태웅이가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야. 양보는 그만하고 살라고. 너 그렇게 살다가 숨 막혀 죽는다.”
태웅이의 생기부 내용, 용희와 지석 선배, 박 선생으로부터 들은 녀석에 대한 정보. 모든 걸 조합해 보았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전형적인 대치동 학생>
녀석은 부모님이 만들어 주는 학원 수업을 가라고 하면 갔고,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않았다. 과외도 누가 좋다더라 하면 그 누군가와 했고, 또 누가 좋다더라 하면 바로 선생을 바꿔왔다.
즉, 철저하게 사교육으로 키워진 수동적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과연 과거에도 그랬을까?
적어도 용희에게 들은 태웅이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예전에는 같이 영화관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보러 가고 그랬어요.
-지금은?
-요즘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다녀요. 엄청 예의 바르고 착하기는 한데….
그렇게 말하면서 용희는 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태웅이, 저희랑 같이 활동하게 해 주세요.
사교육에 점철된 학생은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태웅이가 최상위 성적을 받는 학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했다.
남들의 도움만 받아온 학생들은 혼자만 남게 될 경우, 멘탈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녀석은 수능을 보더라도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었던 것이다.
“…저 숨 막히지 않습니다.”
“그래? 내가 볼 땐 지금 당장에라도 산소호흡기 끼고 다녀야 할 것처럼 버거워 보이는데.”
나는 태웅이를 보면서 얼른 나가라고 고갯짓을 했다.
“가 봐. 오늘도 바로 학원 있지? 금요일에는 학원 몇 시냐?”
“월화수목금 모두 방과 후 바로입니다.”
“금요일 하루는 30분만 시간 빼. 청소하느라 늦었다 하고. 나랑 어디 좀 가자. 알겠냐?”
태웅이는 잠깐 고민하더니 생각해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무실을 나가는 녀석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제발, 우리 여기에 목숨만은 걸지 말자.”
* * *
밤 11시가 넘은 시각, 태웅은 한 아파트에서 걸어 나왔다.
태웅이 향한 곳은 아파트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검은색 승용차였다.
“아들, 타.”
“…응.”
미리 나와서 대기하던 태웅의 어머니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태웅은 그대로 차 뒷좌석에 앉아 몸을 뒤로 뉘였다.
“오늘은 어땠어?”
“괜찮았어. 잘 가르치셔.”
“그렇지? 역시 너투스 선생님 모시고 오기를 잘 했다니까. 그룹수업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애썼는지 아니? 그래도 잘 가르치신다니까 다행이다.”
태웅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응?”
“만약에, 만약에 있잖아.”
“응, 왜?”
“내가 수능 날 감기라도 걸려서 시험을 좀 못 봐서 서울한국대 경영학과를 갈 성적은 아니야. 적당히 국문과나 일문과 정도 갈 수는 있는데, 경영은 못 갈 성적이야. 그러면 엄마는 국문과나 일문과 넣으라고 할 거야?”
태웅이 말을 마치자마자 태웅의 어머니가 득달같이 화를 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니? 오늘 수업하신 선생님이 그러셨니? 너희들 수능 망치는 일도 생각해야 한다고?”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내가 그 인간 데려오려고 쓴 돈이 억이 넘는데, 지금 장난치나. 예인이 어머니한테도 연락해서 그 선생 수업 당장 폐강을 시켜야겠어. 왜 애들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아냐 엄마. 꿈에서 그런 일이 나와서 그래.”
태웅의 말에 태웅의 어머니가 핸들을 부서질 듯 잡고 있던 손을 풀면서 그러니? 하며 물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재수해야지.”
“반수가 아니고?”
“반수를 뭣하러 해. 사람이 어설프게 걸쳐 있으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야. 궁지에 몰려 있어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지. 네 아빠 회사 사람들도 보면 그렇잖니.”
태웅은 아버지의 회사를 생각해보면서 침을 꼴딱 삼켰다. 태웅에게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대하기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알았어.”
“그래. 우리 아들도 지금처럼 이렇게 노력하면 서울한국대 경영학과 입학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아빠 사업 물려받는 건 일도 아니고.”
벌써부터 자식의 성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지 태웅의 어머니가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태웅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담임? 강명문? 그 사람이 입시를 그렇게 잘 본다며?”
“아 담임쌤? 응, 작년 실적 엄청났대. 동석 선배도….”
태웅은 동석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어머니의 제지에 막혔다.
“겨우 연천대 들어간 애가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서 나 이번에 너희 담임 릴레이 상담인가? 그거도 신청 안 했다.”
룸미러로 아들의 얼굴을 살핀 태웅의 어머니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인사는 드리러 가야지. 명색이 학부모회장인데, 얼굴 좀 비춰야 하지 않겠어? 선물이라도 들고 가야지.”
“그러고 보니 명천이 형은 잘 지낸대?”
명천의 안부를 묻는 태웅의 질문에 태웅의 어머니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돌렸다.
“아들.”
“어, 어.”
“엄마가 뭐라 그랬어? 의대여도 다 같은 의대가 아니라고 했지?”
“응….”
“5대 의대에도 못 들어간 명천이나 겨우 연천대 들어간 동석이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입에 담기도 기분 나쁘니까. 알았어?”
“알았어….”
태웅의 대답을 들은 올해의 학부모회장인 태웅의 어머니가 다시금 밝은 미소를 만들었다.
“그럼. 그래야 내 아들이지.”
어머니의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태웅은 생각했다.
-양보는 그만하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태웅은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알고 있었다.
-너 그렇게 살다가 숨 막혀 죽는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지 숨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들여왔던 노력, 돈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너투스 일타강사 그룹과외도 그랬다. 지금까지 태웅은 총 억이 넘는 그룹과외비를 지불하면서 어지간한 일타강사 수업을 전전했다.
대치동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학원들은 모조리 섭렵했다. 어머니가 학교에 바치는 돈도 기본 천만 원이 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태웅은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해왔고, 어머니가 시키는 일들은 그대로 해왔다.
성과도 좋았다. 강남서초권 명문고에서 내신 최상위권, 모의고사 백분위 모두 99로 1등급 극초반.
태웅은 이 결과가 모두 어머니의 학업 스케줄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치동식 과외, 학원, 뒤로 들어가는 일타강사 수업 등. 여기에 어머니의 픽업과 집안 분위기, 영양조절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가 자신의 성적표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서울한국대가 아니면 학교가 아니다. 의대도 레벨이 있다. 급이 낮은 사람들과는 상종도 하지 말고 이야기도 꺼내지 마라. 궁지에 몰려 있어야 발버둥 친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급이 높을까?
아니면 지금 자신은 궁지에 몰려 있는 수험생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직은 궁지라고는 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고등학생일까.
태웅은 담임인 강명문과 나눈 이야기를 생각했다.
-여기 있는 여러 기재 사항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어. 이태웅, 이 녀석은 경영이나 사업에 관심이 전혀 없다고 말이야.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의식할 생각도 없었던 활동들이었다. 그냥 좋아서 했고, 관심이 있으니까 했던 것들이다.
그런데 담임인 강명문은 그 기록들을 보자마자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간파한 듯 말했다.
-넌 건담이 좋았던 거야. 그래서 건프라를 만드는 활동을 하려고 했던 거고.
-산소호흡기 끼고 다녀야 할 것처럼 버거워 보이는데.
피곤한 얼굴을 가방에 기대면서 태웅은 잠깐 눈을 감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태웅은 그 쪽잠 시간이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이었다.
‘나는….’
잠깐의 시간. 태웅은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태웅의 어머니는 주차에 집중하느라 한숨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들, 일어나. 이제 가자.”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머니와 강명문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오면서 태웅은 눈을 떴다.
“아, 응.”
태웅은 허둥지둥 가방을 챙기고 차에서 내리면서 어머니를 살폈다. 어머니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얼추 들어보니 또 자식자랑 시간으로 들렸다.
그런 어머니의 통화소리를 들으면서 태웅은 손에 들린 가방끈을 전에 없이 꽉 쥐었다.
“지금 갈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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