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30화 (130/252)

130화.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젠장 이게 말이나 되냐고!!”

민지정과 김영호, 임대원은 대치역 인근 호프집에 모여 앉았다.

“임 부장도 봤어?”

“네. 전 수업이 좀 늦게 끝나서 뒤늦게야 보기는 했는데… 인기가 엄청 많아 보였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었어. 작년부터 견제를 했어야 했는데 멍청하게!”

술잔을 집어 던지려는 민지정을 김영호가 겨우 말렸다.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분명 천 이사님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지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민지정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겨우 전화기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시끄러운 호프집 바깥으로 나갔다. 김영호와 임대원도 그 뒤를 당연히 따라 나왔다.

“예 이사니ㅁ….”

[술맛이 나나?]

그 말에 민지정의 숨이 턱 막혔다.

[아주 맛있나 보군. 그렇게 술 마실 때가 아닐 텐데.]

“그, 그게… 이사님 의견을 토대로 저희도 열심히 준비를….”

[내 의견?]

핸드폰 너머에서 천우원이 끌끌 웃었다.

[나는 강명문이 입시준비를 못하게 만들라고 했지, 행정일의 모든 권한까지 넘기라고 한 적은 없는데.]

“아….”

민지정의 짧은 탄식을 들은 김영호와 임대원도 숨을 삼켰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게다가 학부모들이 그렇게나 강명문을 좋아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고.]

“…죄송합니다.”

[아냐. 다음 스탭 준비해. 어쨌든 요점은 강명문의 입시 실적 지분을 최대한 낮추는 거야. 명심하게.]

전화가 툭 끊어졌다. 민지정은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자 임대원이 불을 붙여줬다. 뿌연 담배연기가 그들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 * *

“진짜 미친놈이네 이거.”

“하루에 50명 상담을 다 했어요…?”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태연하게 현수막을 떼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제가 괜찮다고 했지 않습니까. 동석이도 수고했다. 와줘서 고맙다.”

“헤헤, 아니에요 쌤. 어차피 저 이날 공강인 거 알고 준비하신 거죠?”

동석이의 질문에 나는 빙긋 웃었다.

겨우 5분의 상담이었지만, 학부모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1학년도 입시, 강문고에서 가장 실적이 좋고 드라마틱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으니까.

동석이의 존재도 긍정적인 반응에 한몫했다. 실제 합격생이 옆에서 자신이 어떻게 공부를 했고, 발표를 준비했는지 등을 이야기해 주니 대기번호를 받은 학부모들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입시코디 시절에는 이런 설명회, 간담회만 1주일에 서너 번씩 열었으니 뭐.’

그때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준비해둔 책상과 의자를 정리했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상담이었지만, 어쨌든 오늘 내 상담을 받은 학부모들은 내가 말한 입시전략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가 제시한 전략에 맞춰 입시를 준비한다면, 그건 또 하나의 내 실적이 된다.

“흐흐흐흐.”

“쌤, 이상하게 웃어요.”

동석이가 또 그렇게 웃냐며 나에게 말했다. 그 옆에서 박 선생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나저나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민 부장님, 김 부장님 화가 잔뜩 났던데.”

혹시나 일이 틀어지면 어떡하냐며 박 선생이 물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심각하게 답변하지는 않았다.

“곧 저한테 연락이 올 겁니다.”

“연락이요?”

“네. 행정일 다 맡으라고 했던 거 없는 일로 하자고요.”

내 말에 지석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일 폭탄으로 받아서 상담, 특강 다 못 하게 했다 하니까 학부모들이 일어났으니….”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은 북새통을 이룰 테니 오지 말라고 했던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멀리서 지켜봤다. 그래서 릴레이상담 시간에 어떤 소동이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

“아마 정식으로 강 교장이나 한 교감에게 이야기가 들어갔을 겁니다.”

“그럼 그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겠네요.”

박 선생의 말에 나는 맞다고 답했다.

“강문고에서는 입시실적만큼이나 중요한 게 학부모들입니다. 결국 성공적인 입시를 바라는 건 학생도 있지만, 학부모 입김이 더 강하니까요.”

내 말에 두 사람도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강 선생, 이번에도 뭐 하나 했다며?”

그때 뒤에서 오 선생이 다가왔다. 그의 상징인 엑스칼리버도 들려 있는 상태였다.

“김영호, 민지정 그 미친놈들이 잡짓거리 해서 강 선생을 엿먹이려 한 것 같았는데, 맞나?”

“표현이 조금 강하기는 하지만, 얼추 맞기는 합니다, 하하하.”

“그리고 그걸 강 선생이 더 미친 짓거리로 받아쳤고. 이것도 맞나?”

오 선생이 씨익 웃으면서 엑스칼리버를 붕붕 좌우로 휘둘렀다.

“어…네, 그런데 미친 짓거리는 아닙니다.”

그러자 오 선생이 껄껄 웃으면서 엑스칼리버를 땅에 터엉 세웠다.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봤다니까! 김영호 그 자식 면상 좀 확인했어야 했는데! 크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오 선생을 보면서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박 선생과 지석 선배는 지금의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린다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오대천왕이 둘 모이면 이러나 봐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박 선생을 무시하고 오 선생이 말을 이었다.

“다음에 또 그런 일 생기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게! 내가 그냥 다리몽둥이를 분질러뜨려서….”

“아니아니, 그렇게 해결하려 하시면 안 되고요. 아무튼, 진짜 괜찮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뒤에서 김영호 3학년 학년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 선생, 잠깐만.”

그는 나를 붙잡고 교감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그에게 이끌려 걸어갔다.

예상대로 교감실 안에는 민 부장과 한 교감도 있었다. 거기에 강은숙 이사장도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자 헛기침을 한 번 한 김 부장이 말했다.

“우리가 생각을 해 봤는데, 역시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네?”

“행정일 우리가 다시 나눠서 하기로 했으니까 오늘부터 평소처럼 근무해.”

김 부장의 말에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면서 눈동자를 동그랗게 만들었다.

“갑자기요?”

“거 말로 하면 좀 들어! 자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민 부장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에이, 다 학생들, 학부모들 위해서 하는 거고, 학교를 알리기 위해서 하는 건데요. 게다가 후기가 다 좋았는데, 괜찮지 않나요?”

“후기?”

멍청하게 묻는 그들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강 선생님, 오늘 너무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습니다. 꼭 다음에는 길게 상담받고 싶어요. 이벤트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상담 감사했습니다. 이벤트 당첨되면 한 번 더 해 주시는 거죠?>

<이벤트 신청합니다! 오늘 말고 다른 날로 해서 1시간 무료 컨설팅 해 주시는 거 맞죠? 꼭 저희 애랑 같이 가겠습니다!>

김영호와 민지정은 나에게 온 문자를 하나하나 확인하고는 입을 떡 벌리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 이벤트?”

“네. 오늘 5분 상담은 아무래도 너무 짧은 것 같아서요. 저에게 문자로 오늘 릴레이 입시컨설팅 후기 올려주시면 추첨을 통해 3분께 1시간 입시컨설팅 해 주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즉석에서 생각하기는 했지만, 학부모님들 반응이 아주 좋아서 다행입니다, 하하하하!”

순진하게 웃는 나를 보면서 이사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좋네요, 좋아요.”

“이, 이사장님!”

“왜요? 지금 강 선생님 말씀처럼 학부모들을 위한 깜짝이벤트 같은 거 아닌가요?”

이사장의 말에 나 역시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 그래도 이제는 그만해! 이게 뭔가, 사전 공지도 없으니까 우리도 복잡하게 서 있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이사장의 반응 때문에 민 부장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싫은데요?”

“아니 왜!?”

김 부장이 머리를 감싸 쥐면서 나를 노려봤다.

“아, 제가 권한 갖고서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은데….”

“강 선생 너무 바쁘지 않겠어?”

한 교감은 조심스럽게 내 안위를 걱정했다.

“주말 갈아서라도 상담하면 됩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긴 하루 14시간 특강을 몇 달을 했으니….”

중얼거리는 한 교감을 민 부장과 김 부장이 싸늘하게 노려보고는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지금처럼 이렇게 독단적으로 하고 그러면….”

“독단은 아닙니다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사장에게 물었다.

“이사장님, 제가 연락드려서 허락 받지 않았나요?”

“받았죠.”

“강철면 교장 선생님께도 컨펌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죠?”

“그럼요. 교장 선생님도 좋다면서 흔쾌히 허락했어요.”

“봤죠? 독단 아니네요 그럼?”

의기양양한 내 대답에 민 부장과 김 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치 옆에 부수기 적당한 유리병이라도 있었으면 벽을 향해 집어 던졌을 것 같은 눈빛이었다.

“…날개를 달아 준 격이었네.”

“네?”

“아냐 혼잣말이야. 아무튼, 우리가 너무 강 선생한테 다 맡기는 것도 아니다 싶어서.”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지금 정~~~말 행복하거든요.”

실제로도 정말 편했다. 차라리 나에게 학교 행사나 행정일 전반을 맡기고, 원하는 건 마음껏 오픈할 수 있게 해 주면, 학생들 입시상담을 더 많이 해 줄 수 있을 터였다.

학급 학생들 이외에는 상담을 해 주기 어려운 한계를 넘어설 수 있으니까.

“아 쫌! 우리가 하지 말라 그러면 좀 하지 말자 응? 왜 그러는 건데!”

이제는 아주 초등학생처럼 떼를 쓰는 김 부장을 보면서 나는 검지손가락을 하나 올려 보였다.

“그냥 이대로 제가 포기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죠. 저는 부장선생님들의 요청 때문에 어제 오늘 맘고생 해가면서 학부모들 릴레이 컨설팅해 줬는데요? 여기에 따른 노력과 시간도 있고….”

“알았어. 좋아. 뭘 해줄까? 뭘 어떻게 해 주면 되겠어? 인센티브라도 요청해 볼까?”

나는 민 부장의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씨익 웃었다.

“제가 요청하는 거 몇 가지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좋아. 말해 봐.”

“먼저, 지금 시간을 기점으로 해서 제가 준비하는 모든 입시 관련 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인정해 준다.”

첫 번째 조건을 제시하자마자 민 부장, 김 부장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한 교감도 불안한 듯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반면, 이사장은 즐거워서 미치겠다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번째, 올해 2학년 수학여행 기획에 제가 관여한다.”

“그걸 자네가 왜 해?”

“아니면 제가 가겠다고 할까요?”

민 부장은 내가 수학여행에 따라가는 건 더 싫었는지 이빨을 뿌득 갈았다.

“…좋아. 이제 됐지?”

“한 가지만 더. 역사 교사인 차석기 선생님, 미술 교사인 홍유진 선생님, 이 둘의 교육 및 업무파트너를 저에게 맡긴다.”

“뭐야!?”

김 부장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담배라도 내뿜듯이 숨을 내쉬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데 그거도 안 하면 더…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김 부장을 보며 민 부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건 좀… 그래. 강 선생도 바쁜데 두 선생을 케어한다고?”

“그럼 뭐, 저는 다음 주 릴레이 입시컨설팅 준비랑 학생들 비교과 활동, 1:1 진학컨설팅들 기획하러 가야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민 부장이 손사래를 쳤다.

“조, 조금 더, 그, 합리적인 방법 없을까?”

“충분히 합리적인 것 같은데요? 제가 뭐 두 분께 저를 엿 먹이려고 하신 거에 대한 돈이나 지위 등의 보상을 바란 건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까지와 달리 날을 세워서 말하자 두 사람이 흠칫 놀랐다. 나는 자리에 다시 앉지 않고 둘을 번갈아 노려봤다.

“두 분이 지금 누구와 일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사진의 움직임이 이딴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스타일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곽형조 이사를 비롯한 이사진의 인원들. 그리고 한 교감과 부장급 교사들. 그들이 지금 나에게 행하는 수법들은, 전생의 기억 속에 있는 방식이었다.

없는 일을 만들거나, 아예 대응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대항할 의욕을 꺾는 수법.

“그러니 애먼 데 힘쓰지 마시고, 지금 제가 말씀드린 조건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진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민 부장, 김 부장의 모습에서도 그런 방식이 나타났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어떤 거래가 오가는지, 내 머릿속에서 이미 수도 없이 정리가 되고 있었다.

“올 한 해, 손가락만 빨다가 옷 벗게 될 겁니다.”

내 서슬 퍼런 경고에 두 사람과 함께 한 교감까지 눈동자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적막감이 맴도는 교감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내 구두소리만이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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