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릴레이 입시 컨설팅 (2)
다음 날, 민지정과 김영호는 마지막 교시 수업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인파로 가득한 교무실을 발견했다.
“뭐, 뭐야?”
“지선이 어머님? 동훈이 어머님도….”
교무실 입구는 올해 3학년 학부모들로 인해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학년부장 김영호입니다. 오래간만에 뵙….”
“대, 대기번호 13번 어머님, 앞에서 대기하셔야 해요! 어디 계세요?”
안에서 들린 남성의 목소리에 앞에 있던 학부모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대기표 15번이에요! 안녕하세요, 부장선생님. 제가 지금 바빠서요!”
학부모들은 마치 한정판 물건이라도 구매하듯이 긴 행렬을 만들고서 교무실 안쪽을 들여다보려 애썼다. 민지정과 김영호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인파를 뚫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게….”
“무슨….”
그들이 들어간 자리에는 넓은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올해 2월에 졸업한 최동석이 대기번호표를 정리하고 있었다.
안쪽에는 하얀색 셔츠와 푸른색 넥타이를 맨 젊은 남성이 노트북과 펜을 놀리며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딱 봐도 학부모로 보이는 여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가 보여 주는 노트북 화면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작은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내신 5등급 연천대 합격 신화! 강문고 일타교사, 강명문의 1:1 릴레이 입시컨설팅!>
마치 대치동 학원가 설명회 홍보문구처럼 정리되어 있는 멘트. 팔짱을 낀 채 일타강사처럼 포즈를 취한 젊고 잘생긴 남성의 사진. 그 두 개가 적절히 믹스되어 인쇄된 현수막을 보면서 김영호는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선주 같은 경우에는 논술 시험을 준비하기에는 많이 아쉽습니다.”
“그럼 논술 공부 하지 말까요?”
남자가 보여 준 화면을 확인한 여성이 불안한지 목소리를 떨었다. 남자는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시점에서는 논술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정관제로 준비하기에도 활동이 빈약하고, 1학년과 2학년 때도 내용이 특별하다 할 활동은 없습니다. 다만, 모든 걸 포기하고 놓을 수는 없겠죠?”
“그렇죠. 어떻게 할까요? 정시만 바라보기에도 어려워요. 우리 애가 멘탈이 약해서 실전에서 얼마나 내려갈지…. 혹시 올해도 특강 여시나요? 작년에 합격한 선배 어머니한테 들었거든요.”
앞에 앉은 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겁니다. 올해도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여름 논술 특강, 자기소개서 특강을 오픈할 겁니다. 그 사이에 비교과를 채울 수 있는 만큼 채우고, 내신 성적을 올려야 합니다. 옆에 있는 동석이도 3학년 때부터 준비했는걸요. 담임선생님이 지금 누구시죠?”
“김영호 학년부장 선생님이에요.”
그 말을 들은 남성의 입꼬리가 살짝 비웃는 듯이 올라갔다. 김영호는 그 입꼬리를 발견하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크흠, 학년부장 선생님이시면 잘 챙겨 주실 겁니다. 보니까 선주가 그렇게 모나게 학교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부장 선생님께 잘 말씀드려서 사정관제를 준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 보세요.”
그렇게 말하던 남성이 고개를 들었다. 김영호는 눈동자에 불길을 이글이글 담아두고서 남성을 노려봤다.
“강명문 선생!”
“아, 김.영.호. 학년 부장 선생님 오셨습니까.”
“어머, 우리 아들 담임선생님 오셨네요!”
여성이 김영호를 붙잡고 방금 전에 있었던 상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우리 아들 입시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뭔지 좀 알려 주세요. 여름에 하는 특강은 무조건 들을 거고요.”
“아, 아니 어머님, 잠시 이거 좀 놓고….”
“5분 끝났습니다.”
동석이 스톱워치를 체크하면서 말했다. 김영호는 상담을 해달라고 달라붙는 여성을 떼어내지 못하고 자기 자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2차 상담을 받는 여성을 보면서 강명문이 말했다.
“네, 다음 분 대기번호 14번 어머님!”
“선생님, 14번이에요 안녕하세요!”
대기 번호 14번 학부모가 밝게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때, 민지정이 학부모가 자리에 앉는 걸 막으며 강명문을 노려봤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뭐가요?”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화를 이기지 못한 민지정은 앞에 놓여 있던 강명문의 노트북을 밀치며 책상을 쾅! 내리쳤다. 충분히 강명문이 화가 날 법한 상황이었고, 당황해할 만했다.
그러나 그 장면에 화를 낸 건 강명문이 아니었다.
“이것 보세요. 그쪽이야말로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네?”
“지금 내 상담 차례인데 왜 행패를 부려요 행패는! 강쌤한테 상담받고 싶으면 다음 릴레이상담 신청하세요!”
“맞아! 우리도 겨우 신청했다고!”
“당장 가세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민지정의 얼굴을 모르는 학부모들인지 주변에서 민지정을 야유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민지정이 되려 당황해했다.
“저…선생님, 죄송한데 50명 한정 상담이라 오늘은 상담 못 받으세요.”
조용히 다가온 동석에게 민지정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왜 상담을 받아!”
“다들 진정하시고요, 민지정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교무실에 인원이 많아 조금 당황하신 것 같네요. 조금만 옆으로 길을 좀 만들어 주시겠어요?”
강명문의 지휘를 받은 학부모들이 자기들의 줄이 다소 난잡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러면서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줄을 다시 섰다.
“네, 됐습니다. 그럼 14번 어머님, 아니죠, 지은이 어머님, 앉으시겠어요?”
“잠깐, 내 얘기 안 끝났어!”
민지정이 정신을 차리고는 강명문에게 소리를 질렀다.
“누가 이런 걸 마음대로 하라 그랬어!”
“뭐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되려 당당한 강명문의 태도에 민지정의 말문이 막혔다.
“분명 저에게 ‘모든’ 행정일을 맡길 거고,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는데요.”
“…뭐야?”
“저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겁니다. 마침 학기 초기도 하니까 지금 시점에서 입시상담을 받아야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거든요.”
강명문은 당연한 일을 한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강명문이 하는 말처럼 입시 준비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준비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다.
그는 회귀하기 전, 입시컨설턴트로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학생, 학부모들과 상담을 했다.
‘학교에서 학급 학생들 이외에도 상담을 더 해야 하는데….’
강명문에게 필요한 실적 중 하나는 바로 이공계열 합격생이었다. 작년에는 명천과 동석처럼 예외적인 이공계열 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3학년 3반에는 이과 학생들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건축학과로 가려는 용희가 있다는 점이었다.
‘한 명만으로는 부족해.’
그래서 그는 학교의 다른 학생들과도 상담을 할 계획을 세우려 했다. 5분이든, 10분이든 상담을 해 주기만 하면 자신의 실적이 되는 게 입시판이었다.
따라서, 상담을 길게 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학교의 모든 학부모들과 자신이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한다면 교내에서 실시하는 입시설명회 정도였다.
그 외에는 명분을 내세울 만한 활동이 딱히 없었다.
때문에 강명문은 모든 행정업무가 떠넘겨지는 걸 노렸다.
‘미리 홍보포스터랑 문구도 만들어뒀고.’
민지정과 김영호, 한명심이 행정일을 떠넘겼을 때, 강명문은 심지석, 박은환과 이야기를 나누고 곧장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준비해둔 릴레이입시컨설팅 포스터를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어서 동석에게 문자를 보내 내일 학교로 오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작년 학부모회장에게 연락을 해서 한 가지를 요청했다.
-올해 3학년 학부모회에 이 내용으로 문자 뿌려주실 수 있습니까?
아들 명천의 한목대 의예과 합격 사례가 있었기에 (전)학부모회장은 자신의 후배 학부모들에게 강명문이 알려 준 문자내용을 전달했다.
그걸 받은 학부모회 소속의 학부모들은 눈을 빛냈다.
강명문이 담임으로 있는 3반이 아니어도 강문고 일타교사의 입시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거기에 작년 내신 5등급 연천대 합격 신화의 주인공, 최동석까지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강문고 학부모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너 혼자 50명 괜찮겠어?
심지석의 걱정 어린 말에 강명문은 그저 웃어보이기만 했다.
입시 코디 시절, 설명회나 간담회 이후 질문 받은 것까지 합치면 100명이 넘는 인원을 6시간 동안 연이어서 상담한 적도 많았다.
그렇기에 이번 1인당 5분 한정, 총 50명 상담은 오히려 쉬운 편에 속했다.
-걱정 마시고, 내일 방과후에는 교무실 오지 마세요. 북새통을 이룰 겁니다.
그 말 그대로, 지금 교무실에는 강명문을 찾아온 학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홈페이지 게시하고 문자 뿌리고 1시간도 안 되어서 50명이 모두 마감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하하.”
태연하게 웃는 강명문을 보면서 민지정이 미간을 좁히며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뭘 해도 민 부장님이 책임지시겠다고 하셨으니 마음 놓고 이렇게….”
“내가 언제 그랬어!”
“네? 어제 그러셨잖아요. 제가 행정일 잘 모르는 거에서는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거에 대한 책임을 민 부장님이 대신 져 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강명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녹음되어 있는 파일을 재생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어제의 일이 떠올랐는지 민지정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럼 저 다시 상담 진행해도 되죠? 한 분당 5분 제한을 두고 있는지라 빠르게 하지 않으면 밀립니다. 총 50명, 간단히 계산해도 250분은 쉬지 않고 달려야 해서요. 지금 두 분 때문에 15분 정도 지연된 거 같으니 넉넉잡고 280분은 지나야 하겠네요.”
민지정은 순진하게 웃는 강명문을 보니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에서 액션을 취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너… 나중에 보자.”
“아, 죄송한데 제가 행.정.일.이. 너.무.바.빠.서. 아무래도 이번 50명만 하고 추가 릴레이컨설팅 프로그램을 잡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저와의 미팅시간도 예약을 하셔야….”
“아니, 강 선생님 그게 진짭니까!?”
강명문의 말을 들은 대기번호 16번 아버지가 놀라서 테이블 앞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바쁘셔서 제대로 상담을 못 하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아, 네. 아무래도 올해는 경력자 선생님들도 많이 상담을 해 주기로 하셔서 저는 행정일이나 하다가 1년 허공에 날리게 생겼, 아니 하기로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여름방학 특강은… 전략 상담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16번 아버지가 아쉽다면서 묻자 강명문이 싱긋 웃으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특강이나 상담도 열리기는 하지만, 제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저기요! 여러분들!”
16번 아버지는 뒤를 향해 작금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학부모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섰다.
“작년에 가장 실적 좋은 선생님이 왜 상담을 못 합니까!”
“우리 애는 어쩔 건데요! 정시는 답이 없는 애들은 방치할 겁니까?”
“제대로 된 선생님이 계신데 왜 이런 쓰잘데 없는 짓을 합니까! 우리보고 대치동 학원이나 가라, 이런 겁니까!”
“안 되겠습니다. 학부모회장님께 정식으로 학부모회의를 요청드리겠습니다!”
학부모들이 민지정과 김영호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두 사람이 당황해서 제대로 답변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아, 저, 저희는 그….”
“교감, 교장 어딨습니까!”
“맞아! 당장 나오라고 해!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학부모들의 흥분도가 점차 올라갔다. 그런 그들 앞을 막아선 건 민지정이나 김영호가 아닌 강명문이었다.
“다들 진정하세요. 제가 어떻게든 짬을 내서 그나마 지금 릴레이 컨설팅을 해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중간 상담 없이 괜찮을지….”
그 질문에 강명문은 걱정할 것 없다면서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저와 같이 입시를 연구하시는 선생님들이 또 계십니다. 그 선생님들과 같이 이번 입시에서도 작년처럼 학생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도록 하겠습니다.”
강명문의 말에 학부모들이 그 약속 꼭 지켜주셔야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강명문은 마치 선거유세라도 하듯이 손을 들며 알겠다고 답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런 강명문의 모습을 보며 민지정이 눈동자를 파들파들 떨었다.
“강 선생 지금… 장난쳐?”
“장난치는 거 아닙니다, 민지정 부장님. 하실 말씀 있으시면 이따 릴레이컨설팅 끝나고 하시죠.”
강명문 옆에 서 있던 동석이 다가와서 줄을 다시 정리하며 대기명단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옆에 세워둔 스톱워치를 눌렀다.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해서 5분 딱 되면 끊을게요!”
동석의 말을 신호로 강명문은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 학부모는 강명문의 상담을 받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대기 중인 학부모들이 혹시나 상담 내용을 들을까 싶어, 동석은 합격생 신분으로 대기 중인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제가 준비했던 주제가 로봇과 인간의 공존이었는데요, 아무래도 문과 친구들이 많아서 융합주제를 생각해야 했어요. 마침 수행평가로 발표했던 학술지 논문도 있었고….”
“논문이요? 논문은 사이트를 알려드릴게요.”
“어문학 전공은 잘 모르겠어요. 은장이나 정아한테 전화해 볼까요?”
이제는 능숙하게 여러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답변하는 동석을 보며 강명문이 속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직 민지정과 김영호만이, 릴레이상담 현장에서 이빨을 뿌득 갈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