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릴레이 입시 컨설팅 (1)
-<3학년 나를 소개해 줘> 종이다. 이걸 토대로 앞으로의 입시방향성에 대해 상담을 해줄 거야.
“라고 말한 게 불과 어제였는데 말이지….”
나는 교무실에 앉아서 학생들의 학생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지금 3반으로 들어온 녀석들은 과거의 학생들과 겹치는 애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벌써 이렇게 다 제출했다고?”
순식간에 녀석들이 개학 첫 숙제를 제출하자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다른 애들도 받아야 할 텐데.”
상담 전 사전조사는 나뿐 아니라 다른 3학년 학급 담임교사들도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박 선생, 지석 선배, 윤 선생, 류 선생, 차 선생, 오 선생도 이 자료들을 학생들에게 받아오고 있었다.
“전에 없이 적극적인데요?”
박 선생이 옆에서 사전조사지를 정리하며 말했다. 지석 선배도 정말 그렇다며 맞장구를 쳤다.
“우리에 대해 좀 이상한 소문이 들리는 건 신경쓰이기는 하지만요. 뭐, 시간의 마왕과 마계백작들이라나.”
“잘못해서 SNS 타고 퍼지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차 선생이 중얼거리자 박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도 작년에 동석이 한 달 만에 성과 냈다고 아주 공학계열로 가려는 애들이 상담받으려고 줄을 섰어.”
윤 선생이 작년과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있다면서 사전조사지를 확인했다.
“그러다 보니 영, 이상하게 준비하려는 애들도 있고.”
“뭐 코리아 파브르니, 풍뎅이소녀니 이딴 거 아닙니까?”
“자기가 코리아 파브르를 꿈꾼다느니… 뭐!? 어떻게 알았어?”
역시나.
동석이의 합격 사례는 어떻게 보면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동석이가 천재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지금까지 로봇공학분야에 한해서만큼은 스스로 학습을 열심히 해 온 과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과정은 생각 안 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시결과에서 주목하는 건 숫자와 대학교의 레벨이었다.
여기에서 숫자는 내신 성적이었고.
그렇다 보니 세간에는 ‘평소 로봇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연천대에 합격!’ 이 아니라, ‘5등급도 연천대에 합격!’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래서 많은 학생, 학부모들이 자신도 동석이처럼 특출난 무언가를 하나 잡아서 준비하면 성공할 것이라 착각하곤 했다.
그 대표적인 컨셉이 곤충 매니아, 공룡 매니아, 화석 전문가, 야생식물통달자 등이었다.
“그런데 얘네 이렇게 준비를 해도 괜찮나?”
“아마 대회 수상도 조작하려고 할 거고, 돈이나 빽으로 어떻게든 결과를 낸 다음에 연천대 창의IT인재전형으로 지원할 생각일 겁니다.”
그 말에 박 선생이 한숨을 푹 쉬었다.
“강문고답네요. 여기면 과학대회 같은 거 주관할 수 있는 학부모들도 많이 있을 테니….”
실제로 강문고 학부모들 중에는 대기업 연구원은 물론이고 각종 마케팅, 인사 담당자, 대학 교수, 기업체 사장 등 강문고에는 공학계열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민간 대회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개최할 수 있고, 거기에서의 수상 실적 역시 원하는 대로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기는 합니다만….”
“나도 그래서 고민이야. 동석이야 뭐, 어지간한 과고 최상위권 애들보다 더 잘하는 애였으니까 가능했지, 얘네들은… 부정적이란 말이야.”
윤 선생의 고민에 이어서 박 선생도 벌써부터 상담 내용을 물어보는 녀석들이 있다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저도 작년에 논술로 보냈던 애들이 제법 있으니까 학생들이 물어봐요. 자기도 논술로 최상위권 학교 보내달라고.”
“학원이 아니라 학교 선생님에게 그런 걸 물어보다니, 분위기가 많이 변하기는 했구만 그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박 선생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교감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작년 합격 결과 때문에 나한테도 문의가 자주 와. 어떻게 하면 자기 자녀들 스카이 갈 수 있냐먼서.”
한 교감은 그런 변화가 매우 긍정적이라면서 밝게 웃었다. 그러다가 이내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더니 근심 어린 얼굴을 했다.
“강 선생이 보기에도 수시는 답이 없는 것 같나?”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작년처럼 드라마틱한 합격생이 나올 수 있겠냐, 물어보는 거네.”
나는 한 교감의 눈을 보면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했다. 그러다 추측되는 하나의 가정이 떠올랐다.
“내신이나 모의고사 성적이 조금 부족해도 스토리 나올 수 있는 학생들은 올해도 있습니다.”
내 말에 한 교감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그럼 됐네. 나랑 이런 이야기한 건 비밀로 하고… 잠깐 민 부장, 김 부장 좀 같이 만나줄 수 있겠나?”
크흠, 헛기침을 하는 한 교감의 행동이 다소 어색했다. 그런 느낌을 나 이외에 다른 교사들도 느낀 모양이었다.
“교감 선생님,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같이 논의를 하면….”
지석 선배가 조심스럽게 묻자 한 교감이 팔을 휘저으며 안 될 말이라고 반대를 했다.
“이건 강 선생하고만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사안이네. 이상한 이야기 아니니까 걱정 말고.”
‘이상한 이야기 같은데?’
나는 다른 교사들과 눈빛을 교환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일 있겠습니까. 방금 수시 말씀 나눈 것처럼 학기 초 학생들 상담방향 같은 것들이겠죠. 다녀오겠습니다.”
한 교감을 따라 교감실로 들어가니 민 부장과 김 부장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건 올해 처음이네?”
“작년에도 없었던 걸로 기억하니 제가 강문고에 온 뒤로 처음입니다.”
김 부장의 말에 가볍게 반박하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김 부장의 얼굴이 파들파들 떨리는 느낌을 받으면서 나도 소파에 앉았다.
“이번 년도, 강문고에 기대를 갖는 학생, 학부모들이 많아.”
“네, 그건 제가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런 건방진… 험험, 아니야. 어쨌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가 상담에 힘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아.”
이야기를 하는 김 부장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나 역시 아무래도 교무부장이다 보니까 학부모들 문의 전화도 많이 오고 그래.”
“3학년 학년부장은 말할 것도 없지. 안 그렇겠어? 교감 선생님도 그렇고.”
“그, 그렇지. 나도 요즘 정신이 없어 허허허.”
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대충 어떤 그림인지 상황이 그려졌다.
확실히 작년보다 상담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학기 초이기는 했다.
특히 작년 강문고의 입시 실적을 알고 있는 현 3학년 학부모회의 경우는 그 문의 정도가 더욱 심했다.
졸업한 학생들의 학부모들로부터 여러 정보들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명천이 어머니로부터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게 뻔했다.
그런 시점이다 보니 학교에 이런 변화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빠르게는 이번 학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상담을 시작한 모습도 지난달에 목격했었고.
‘근데 그뿐만은 아닐 텐데?’
내가 묘한 얼굴로 미소를 보이자 민 부장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럼 제가 부장선생님들을 많이 도와드려야겠군요. 그렇지요?”
“그래. 심 선생이나 류 선생 같은 년차가 좀 쌓인 선생들도 학기초 상담 진행에 정신이 없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민 부장이 김 부장과 한 교감을 한 번씩 돌아봤다. 세 사람은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강 선생에게 3, 4월 행정 업무들을 많이 부탁 좀 하려고 해.”
“행정일이요?”
내가 되묻자 김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회 준비나 학생들 자료 정리, 그리고 작년에 감사 시즌에도 활약하지 않았나. 그래서 올해 이런 행정일은 강 선생이 주도적으로 맡아서 가 줬으면 좋겠어.”
김 부장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민 부장과 한 교감이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제가 주도적으로 말씀입니까?”
내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서 묻자 민지정이 답했다.
“그래. 학생들 상담해 주고 상담내역 적는 거야 우리가 하겠지만, 수행평가 정리, 학생들 배부용 종이 인쇄 및 배부부터 모두 좀 부탁하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강 선생이 해 보고. 뭐든 해두면 강 선생에게도 나쁠 건 없을 거야. 어차피 교사 생활 오래 하려면 행정 일에도 익숙해져야지?”
민 부장과 김 부장이 서로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만 피식 웃었다.
“그럼 제가 정말 ‘주도적으로’ 하면 되는 거죠? 필요한 거 있으면 제가 이것저것 시도해도 괜찮고요?”
“암, 그렇고 말고. 대신 우리들 행정 일 좀 맡아서….”
“알겠습니다. 제가 행정일 도맡아서 하겠습니다.”
내가 의외로 흔쾌히 대답했는지 세 사람이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었다.
“고맙네! 올해 아무래도 우리가 정신이 없을 것 같아. 강 선생이 작년에 좀 고생했나? 올해는 우리에게 맡기게!”
“교무부장 타이틀을 걸고 학생들 합격 제대로 시켜 줄 거니까 걱정 말고.”
“3학년 학생들 상담과 함께 학업 분위기부터 잡아갈 생각이야. 자네는 대신 우리나 다른 3학년 담임교사들이 못할 행정일들 좀 해 주게.”
나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앞에 놓인 사탕 봉지를 뜯었다.
“대신.”
“대신?”
한 교감이 멍청한 표정을 하며 물었다.
“정말 제가 ‘주도적으로 하는 일’들에 책임 제대로 져 주시는 겁니다? 저, 올해 3년차라 잘 모르는 행정일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알았네, 그런 건 걱정 말라니까 그러네.”
민 부장이 걱정 말라며 고개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런 웃음을 맞받아치면서 똑같이 웃어 주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서로의 웃음소리가 교감실을 가득 채웠다. 세 사람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야, 뭐야 뭐야!”
내가 나오는 걸 목격한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내 손을 붙들고는 매점 뒤쪽 공터로 끌고 나갔다.
“아 왜요!”
“이번에는 뭐야. 무슨 일인데?”
“또 뭐라고 해요? 뭔데 이번에는? 또 사고 쳤어요?”
선배와 박 선생이 다급하게 물었다. 마치 나를 해코지라도 할 생각이었다면 대신 가서 복수라도 해 줄 것처럼 교무실을 향해 입을 중얼거렸다.
나는 두 사람에게 교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달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박 선생이 말이 되냐면서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대놓고 강 선생님 보고 입시에서 빠지라는 거잖아요!”
“지들이 해야 할 일을 왜 너한테 미뤄! 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라 네가 다른 일 못 하게 막으려는 거잖아! 이게 무슨 경우야!”
“자자, 진정들 하시고요. 일단 저를 위해서 이렇게 화를 내주시는 두 분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누가 강 선생님을 위해요!”
“누가 너를 위한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의미의 말을 내뱉으면서 두 사람이 나를 노려봤다. 둘의 시선을 받으면서 태연하게 기지개를 폈다.
“으하암.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가 몸이 뻐근했습니다.”
“지금 그렇게 있을 때야? 너, 3학년 담임교사들 행정일, 이거 혼자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 알잖아!”
“아뇨, 이건 오히려 기회입니다.”
그 말에 박 선생과 지석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요?”
“왜?”
“이미 다 생각하고 있는 게 있었거든요.”
이사진 중 한 명인 조신자 이사의 은퇴 이야기. 아직 은퇴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곧 은퇴의사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이사진에서 읽고, 방학 중에 움직임을 보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뭘까?
‘세력을 키우는 거겠지.’
강남서초권 학교에서는 입시실적이 전부였다. 그 입시실적을, 2011학년도 입시에서 초임교사가 대부분 가지고 갔다.
그것도 강은숙 이사장의 라인에 서 있는 교사가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애초에 저를 견제하려고 했을 겁니다. 3학년 담임이 되는 건 막을 수 없었으니, 제가 입시에 관여를 아예 못 하게 막으려 했겠죠.”
“아니, 그래서 지금 관여를 못 하게 됐잖아!”
“아니요, 그분들은 제가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도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내 말에 박 선생이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봐야지요. 이제 그만 들어갈까요?”
“잠깐만요 강 선생님, 또 이상한 걸 꾸미려고… 심 선생님도 같이 말려 주세요!”
“강명문! 야 잠깐만!”
박 선생과 지석 선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컴퓨터를 켜고 열심히 글을 적어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강문고 교무실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오게 되었다.
나는 그 인파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앉아 미리 준비한 미니 플래카드를 자리 뒤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내신 5등급 연천대 합격 신화! 강문고 일타교사, 강명문의 1:1 릴레이 입시컨설팅!>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