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27화 (127/252)
  • 127화. 나를 소개해 줘

    강명문이 한창 다른 교사들과 학생부 기재에 여념이 없을 때, 민지정은 한명심을 만나고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교감선생님.”

    방학 때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해 서운하다면서 민지정이 입을 열었다. 한명심은 그저 허허, 웃으면서 민지정에게 커피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민 부장이 고생이 많아. 요즘 어때?”

    “이미 학생들 상담을 먼저 해 주고 있습니다. 성적 좋은 학생들 순서로 보고 있는데….”

    “역시 수시는 어렵나?”

    한명심의 물음에 민지정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쪽 동네에서는 내신을 따기 힘들다 보니… 수시로 갈 수 있는 학교에 스카이는 없습니다.”

    “그럼 대부분 수능으로 돌리겠군.”

    “네, 맞습니다.”

    민지정의 말처럼 강남서초권의 학교들 대부분은 내신성적을 최상위로 받기 어려웠다.

    학생들의 공부 수준이 높았기에 변별력을 주기 위해서는 시험 문제를 어렵게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모의고사는 올 1등급이어도 내신에서는 1등급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들도 더러 있었다.

    강문고 역시 그런 학생들이 많았다. 수능에서도 1등급 상위권으로 나오면 스카이 중위권 학과 정도는 노려 볼 수 있는 학생들이, 부족한 내신으로 수시를 준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게, 입시 명문이라 불리는 강남서초학교들임에도 불구하고 수시보다는 정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였다.

    그래서 강문고 교사들도 교과로 지원할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면 수시전형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고질병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렇기에 강명문처럼 변하는 입시 제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 교사가 없었던 것이었다.

    한명심은 새삼 강명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속으로 놀라면서 민지정에게 다시금 물었다.

    “큰일이군. 정시만 챙기기는 좀 그런데….”

    “내신 대비 모의고사가 잘 나오지 않는 학생들 정도만 수시로 지원할 것 같습니다.”

    “입학사정관전형은?”

    “그런 편법 전형으로 준비해 봤자 득 될 것도 없고 손만 많이 갑니다. 작년에 강 선생이 며칠씩 애들 옆에 붙어 있는 거 보셨지 않습니까.”

    민지정의 말에 한명심도 알겠다며 이야기를 중단했다. 아무리 들어도 결국, 자신들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없었고, 자신있어 하는 정시에만 집중하려는 것이었다.

    “그보다 교감선생님, 이사진의 움직임이 매우 날카롭습니다. 저희는 거기에 맞춰서 준비를 해야 하고요.”

    민지정은 얼굴에 교활한 미소를 띠며 한명심을 바라보았다. 그 미소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얼추 파악했는지, 한명심의 몸이 살짝 떨려왔다.

    “또… 어떤 게 필요하려나?”

    “우선, 곽형조 이사님 말씀입니다.”

    한명심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적막이 감도는 교감실에서 민지정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일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러면서 민지정은 핸드폰을 꺼내 녹음된 음성파일을 재생했다. 그 안에는 곽형조의 날카로운 음성이 녹음되어 있었다.

    <한명심.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자네가 가지고 있는 부정부패에 대한 증거들을 싹 다 오픈하겠네. 그 증거 모두 우리 손에 있는 건 알고 있지?>

    모골이 송연해진 한명심이 그대로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민지정도 곽형조의 음성을 다시금 들으니 소름이 돋는다며 팔뚝을 쓸어내렸다.

    <어설프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게 걸리는 순간 모가지 날아가는 거야.>

    설마 담임 배정 건 때문에 그러는 건가. 한명심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음성에 집중했다.

    <유학 중인 딸내미 학교 졸업증 똑바로 받고 싶으면 이번에는 실수 없이 하라고. 만약 이번에도 제대로 못 하면….>

    어느새 한명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두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했다.

    <그땐 딸내미 졸업증은 고사하고 평생 가족들과 함께 감방에서 살게 해 주겠네. 알겠나?>

    음성재생이 끝나자 한명심이 떨리는 눈동자를 하고서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

    “지금, 나, 나나, 나를 협박, 협박하는 건가?”

    한명심의 말에 민지정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말이 답답하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이 끝도 없이 공포스럽다는 의미의 한숨이었다.

    “정말…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러다 잘못하면 우리부터 다 모가지입니다. 아니, 감방가는 겁니다.”

    “…증거는 그들이 전부 가지고 있겠지?”

    “네, 그렇습니다. 이사진이 가지고 있는 증거들 절반만 풀려도….”

    그 말을 들은 한명심이 고개를 위로 빳빳하게 세우고 숨을 들이쉬었다.

    “이사장님도 알고 계신가?”

    “모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붙어야 할 사람은 이사장님이 아닙니다. 제발 정신 차리십쇼, 교감선생님!”

    민지정은 답답하다면서 가슴을 퍽퍽 쳤다. 그러나 한명심은 민지정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나 주위를 빙빙 돌기만 했다.

    “…알았네.”

    한명심의 대답에 민지정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단 강 선생의 입시실적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강 선생이 입시 관련 업무를 볼 수 없도록 최대한 바쁘게 만들 생각입니다.”

    “아예 일을 안 주는 게 아니고?”

    “네. 일이 없으면 분명 개별적으로 무언가 움직일 게 뻔합니다. 그럴 바에는 학교 행정일을 몽땅 몰아 주면서 입시 관련 업무는 손도 못 대게 바쁘도록 만드는 게 효과적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명심은 조용히 생각했다. 만약 강명문이 이번 2012학년도 입시 준비에서 제외된다면, 강문고의 실적의 큰 축이 빠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한국고와의 경쟁에서는 다시금 밀리게 되고, 결국 전체 실적이 2011학년도보다 하락하게 될 게 뻔했다.

    ‘그러면 교장 승진이고 뭐고 다 나가리야. 아니, 유학 간 딸도….’

    그렇다고 강명문에게 입시준비를 전적으로 맡기자니 그의 부정부패 행적이 이사진에 의해 드러나는 위험이 있었다. 특히나 곽형조 이사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자를 길바닥에 물 버리듯 쉽게 내던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그것만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판단했다.

    “어쩔 수 없구만. 그럼 그렇게 하세.”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차석기, 홍유진 선생도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어떻게 말인가?”

    민지정은 그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품에서 봉투를 두 개 꺼냈다.

    “이사진에서 지원해 주셨습니다.”

    “이사진에서 왜?”

    “그쪽도 강은숙 이사장의 파워가 강 선생에 의해 강해지는 걸 원치 않는 모양입니다. 직접적으로 나서기를 꺼려 하니 저희가 움직이는 거고요.”

    한명심은 민지정으로부터 봉투를 받아 그 안을 열어 봤다. 성적조작을 의뢰할 때 받는 금액만큼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이사진의 손자손녀를 가르칠 때 받는 월 페이 수준은 되어 보였다.

    “이 큰 걸… 그냥 줬다고?”

    “그래서 저도 무서운 겁니다. 그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까지 준비하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공포에 질린 민지정의 눈을 보면서 한명심은 생각에 잠겼다. 이사진이 지금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 강명문과 강은숙을 견제하는 이유. 여기에 아마 견제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을 강철면 교장에 대한 인식까지.

    모든 사항들을 고려한 한명심은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진행하지.”

    민지정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김영호 부장, 임대원 부장에게도 전달하겠습니다.”

    민지정이 교감실을 나간 자리에 한명심은 조용히 소파 위에 앉았다. 민지정이 남긴 커피를 바라보면서 강명문과 이사장에게 이걸 알릴지 말지를 고민했다.

    <딸내미 졸업증 똑바로 받고 싶으면 이번에는 실수 없이 하라고.>

    그러다 곽형조의 말이 떠오른 한명심은 결심한 듯 핸드폰을 쥐었다. 그리고는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곽형조 이사님. 저 한명심입니다.”

    * * *

    학생부 기재 특강이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 되자 차 선생, 홍 선생, 류 선생 모두 어느 정도의 작문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게 일반 글쓰기 실력하고는 또 다르니까 어렵네요.”

    차 선생의 말대로 입시용 글쓰기 실력은 소설을 잘 쓰거나, 에세이를 잘 쓰는 그런 글 실력과는 달랐다.

    얼마나 입시 맞춤 용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학생이 평가될 수 있도록 문장을 구성하는가. 그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어려워.”

    “류 선생님은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제가 수도 없이 피.드.백. 해드릴 거니까요.”

    내 말에 류 선생이 울상을 지으며 조용히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홍 선생님, 2학년 1반 학생들 명단 받으셨죠?”

    “네 받았어요. 왜요?”

    “혹시 잠깐 볼 수 있겠습니까?”

    홍 선생은 교무실 자신의 자리에서 2학년 1반 학생들 명단이 적힌 종이를 꺼냈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들고 찬찬히 이름들을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한 이름을 찾고서는 심각한 얼굴을 했다.

    “홍 선생님, 이 학생 아시나요?”

    “아뇨, 저도 이번에 처음 맡아 봐요. 그런데 왜요?”

    “학기 시작하자마자 이 녀석부터 상담해 주십시오. 상담 요점은 ‘괜히 나서서 사고 치지 말자’입니다.”

    그 말에 무슨 소리냐며 홍 선생이 물었다.

    “문경필. 이 녀석, 정의감 넘치는 경찰 지망생입니다.”

    “정의감이 넘쳐요?”

    홍 선생이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당연한 질문이었다. 나도 그 녀석이 그런 사고를 치기 전까지는 그런 성격인 줄 전혀 몰랐으니까.

    “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는 친구들을 도와주려고 하고, 부당한 일을 겪는 친구들이 있으면 가서 훈계도 하고 그러는 녀석입니다.”

    “그 정도면 선도부 아니에요?”

    “네, 그래서 작년에 선도부도 했습니다.”

    문경필은 이번에 2학년이 되는 학생이기에 내가 직접적으로 마주칠 일은 없었다. 대신, 이번에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홍 선생이 담임을 맡게 되는 학생이었다.

    녀석의 성격이 잘못되었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경필이의 경우에는 쉽게 말하면, 눈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한테나 가가지고 들이대고, 그게 또 강하게 들어가면서 상대는 피곤해하고….”

    “아…그러다 잘못하면 싸우기도 하겠네요.”

    뭐, 경필이가 수학여행지에서 싸운다는 건 아니지만.

    홍 선생이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아아… 하필이면 가장 관리하기 어려운 스타일의 학생이 저한테….”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수학여행 때 생길 겁니다.”

    수학여행이라고 말하자마자 이야기를 듣던 홍 선생은 물론이고 차 선생과 류 선생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말했다.

    “확실히 사고 치기 좋은 환경이기는 하지.”

    “수학여행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2학년 담임이면 도와드렸을 텐데….”

    아쉬워하는 차 선생을 뒤로하고 나는 홍 선생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그날, 제가 지원군을 보낼 겁니다.”

    “지원군이요?”

    “네. 그러니 그 지원군이 오기 전까지는 선생님 혼자 모든 걸 케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탈 납니다.”

    홍 선생은 내 말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는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알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강 선생님은 학생들을 어떻게 그리 많이 알고 계십니까? 이제 3년차이신데….”

    “아, 아하하, 저도 아무래도 학교에 관심을 많이 가지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지석 선배나 윤 선생님에게도 많이 물어봤고요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차 선생에게 답했다. 그리고는 빨리 이 상황을 넘겨야겠다는 생각에 헛기침을 한번 했다.

    “아무튼, 마저 작성해 봅시다! 며칠 안 남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학생부 기재 연수와 함께 다른 학생들의 학생부를 채우는 데에 집중했다.

    * * *

    어느덧 2월이 지나 꽃 피는 봄, 3월이 되었다.

    은장이와 동석이는 새학기를 맞아 학교에 들어가면서 교정 사진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왔다.

    <덕분에 서울한국대생!>

    <연천대 예쁩니다 쌤. 놀러오세요!>

    사진을 보면서 미소를 머금고 교무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새롭게 바뀐 3학년 3반 교실 문을 활짝 열었다.

    “반갑다! 내가 너희들의 1년을 책임질 강명문이다!”

    나를 본 은솔이와 민주가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하긴, 녀석들에게는 내가 담임이라는 걸 밝히지 않았으니까.

    녀석들을 향해 살짝 웃어 보이면서 다시금 학생들을 쭉 둘러보았다.

    ‘가능성이 있는 녀석들도 있고… 사고 칠 녀석도 있고….’

    그렇게 내가 전생에서부터 알고 있는 정보들과 지금까지 모아둔 정보들을 토대로 학생들의 상담 방향을 구체화해나갔다.

    “일단 이거부터 작성하자!”

    학생들은 내가 내민 종이를 보면서 의아해했다.

    “<3학년 나를 소개해 줘> 종이다. 이걸 토대로 앞으로의 입시방향성에 대해 상담을 해줄 거야.”

    3월 시작하자마자 이런다며 학생들 몇몇이 투덜거렸다. 또 다른 학생들은 이거 또 부모님이랑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서 골치 아프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단, 조건이 있다. 꼭, 너희들이 직접 써올 것. 그 누구와도 이 종이에 대해 공유하지 마라.”

    올해 3학년들은 작년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작년 강문고 합격생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다.

    “오로지 나와 상담할 때만 쓸 종이니까, 부모님이나 과외선생님, 학원선생님 등등!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마.”

    누구는 몇 등급에 어디를 갔다더라, 누구는 언제부터 준비해서 갔다더라. 입시결과에 예민한 강문고 학부모들은 그런 소문에 민감했고, 자기 자식들도 그런 방식이 가능할 거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학기초 상담에서 학부모들이 학생에게 잘못된 방향으로 상담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엔 그렇게 안 되지.’

    아, 물론 그렇다고 작년 합격 사례들을 활용 안 할 생각은 없고.

    “그럼 1년간 잘 부탁한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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