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26화 (126/252)

126화. 간이 교사 연수

“지금 시간에 어쩐 일이신가요?”

내가 이사장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다 되어 있는 시간이었다. 이사장은 상기된 얼굴을 하고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앉아요.”

이사장이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소파에 앉으면서 앞에 놓여 있는 사탕 봉지를 뜯었다.

“이사진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고 해요.”

“조신자 이사 이외에 다른 이사들도 움직이는 모양이군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나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할아버지 학교 제대로 간직하고 싶으면 더는 나대지 마>

<강명문과 결탁하는 모습이 보이면 곧장 퇴진이야. 알겠나?>

문자 발신자 이름은 ‘곽형조 이사님’ 이었다.

“곽형조라면 이사진 중에서도 가장 고참 아닙니까?”

내 말에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이사장이 놀랐다.

“맞아요. 지금 이 사람들은 나를 경계하고 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를 경계하고 있군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사장은 내 반응을 보자 안심했는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사실 이것만이 아니에요.”

이사장은 우리가 스키장에 가면서부터 수집했던 이사진의 행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스키장을 다녀온 뒤로 한 교감에게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고도 말했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요점은, 결국 올해는 강문고 입시실적을 ‘다양하게’ 나눠서 갖자, 가 핵심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누는 이유는, 자신들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함이었다.

“그 사람들답군요.”

“그 사람들이요?”

이사장이 그게 누구냐며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팔짱을 꼈다.

“이사장님, 몇 가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네, 말씀하셔요.”

“이사진 사이에서 이사장님의 이미지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사장님이 저에게 원하는 방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내 물음에 이사장이 의자를 고쳐 앉았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예요.”

이사장의 말에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숨을 들이켰다.

“강진 어르신이 세우신 이 학교, 강문고를 지키면서 발전시키기 위해 부정한 일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싶으셨겠군요.”

“네. 반대로 이사진은 강남서초 명문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서 잇속챙기기에 바빴고요. 그래서 저는 이사진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죠.”

강문고 이사진인 다섯 인물은 강은숙 이사장의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사장으로서는 아버지의 지인들이 학교의 이사진에 앉아 있었기에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물론, 이사진들도 이사장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자기들 마음대로 해도 이사장이 딱히 반대하거나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회귀를 하고 시사RPG대회를 보여 준 시점에서부터 이사장의 태도가 바뀌었다. 내 입시 전략을 위해 여러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2011학년도 입시에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 과정들이 다른 이사진들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 학교를, 강진 어르신이 처음 세우실 때의 목적처럼 청렴결백한 인재를 키우는 학교로 바꾸고 싶은 분이니까요. 맞습니까?”

“역시 강 선생님.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셨나요.”

현재 강문고는 여러 불법적인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학교였다. 그건 나도, 이 학교를 몇 십 년을 봐 온 이사장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사립학교 특성상 정교사 선생님들은 자주 바뀌지도 않는다.

부정한 행동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교사들이 이익을 챙겨왔다. 한 번이 힘들지, 두 번부터는 쉽게 하는 게 또 그런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강문고에는 청렴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당장 교무부장, 학년부장 등 부장급 교사들의 행태가 그러하니 뭐.’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사장님이 작년부터 파워를 키우게 된 이유가 바로 제 덕이라는 판단을 한 걸 테고요. 게다가 이 과정에서 이사장님이 지원도 많이 해주셨으니, 제 입시 실적은 이사장님 지원 덕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사장의 개입 덕분에 학교의 이미지가 발전하고 실적도 좋아진 그림이 나온다.

그리고 그 실적의 중심에는 강문고 일타교사인 내가 있었다.

‘솔직히 내가 제일 잘 했잖아?’

그런 생각은 뒤로 하고 아무튼.

이사진은 이런 그림을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올해 생각해야 할 적은 따로 있군요.”

“적이요?”

되묻는 이사장을 향해 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사장님, 작년 시사RPG대회 끝나고 하셨던 말씀, 지금도 유효합니까?”

“어떤….”

“학교가 마지막 보호장치라는 말씀입니다.”

작년 시사RPG대회가 끝나고 회식을 할 때, 이사장은 그렇게 말했었다.

학교란 마지막 보호장치다. 학교에 있을 때, 잘못된 일을 고쳐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바른 길로 이끌어가는데 동참해달라고 하셨던 말씀, 지금도 유효합니까?”

“….”

이사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작년 그날 이후,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건 나도, 이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시점에서 결단이 필요했다.

“네, 유효합니다.”

“그럼 됐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입안에 남은 사탕을 까득 깨물어 씹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여전히 지금처럼 열심히 가르칠 겁니다. 학생들의 대학입시가 저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올해는 가르치는 방향이 조금 달라질 겁니다.”

그 말에 이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강문고는 학교 특성상 어지간한 불량학생들의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강남서초권의 학교들의 특징은 다른 지역 학교들에 비해 왕따 문제나 폭력 문제와 같은 불량학생 문제가 덜 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학생들은 공부를 잘 못 하는 점을 부끄러워했다.

가끔 막무가내로 학생들을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애들도, 한두 번 해결 과정을 겪으면 꼬리를 내리고 다니기 일쑤였다.

강문고 학생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고위직 공무원이나 대기업 임원, 판검변호사, 의약사 등이었다. 내가 오늘 때린 그 학생의 부모가, 내 부모보다 재력 및 권력에서 더 높은 사람일 수도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강문고에서는 일반적인 폭력사태 같은 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다니는 애들을 대다수의 공부하는 학생들이 왕따를 해 버리는 일들이 많으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은 달랐다.

“그런 강문고지만… 올해는, 큰 사건들이 몇 개 터질 겁니다.”

“큰 사건이요?”

나는 이사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건. 그들 중에서도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몇 있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사건. 그 사건들을 막기 위해, 나는 학교라는 마지막 보호장치 안에서 대비하고 싶었다.

“그 사건들을 제가 막고, 강문고에 변화의 바람을 더 불러일으키겠습니다.”

이사장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 반응에 만족해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당연히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갈 거고요. 그래서 그런데, 올해는 좀 더 제멋대로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이사장은 이내 평소처럼 호호, 웃기 시작했다.

“물론이죠. 강 선생님 원하시는 대로 하셔요. 제가 지원해드릴 수 있는 건 적극적으로 지원해드릴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그럼 우선 첫 번째로 요청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나는 벽에 걸린 캘린더를 확인하고 적당히 일수를 계산한 뒤 말했다.

“간이로라도 입학사정관 전형 대비 학생부 기재법 교사 연수 특강을 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 *

졸업식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 이제 2학년 학생부를 마감할 시기가 다가왔다.

“준비들은 다 되셨습니까.”

교무실에 모인 교사들을 향해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이사장에게 요청했던 그 연수날이었다.

<내일부터 2월 마지막 날까지 학생부 기재 연수(간이)를 오픈하겠습니다. 이사장님, 교감선생님 허가 받았으니 문자 받으신 선생님들은 꼭 참석해주세요 ^^>

라는 문자를 어제 보내뒀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연수를 위해 모인 자리에는 한숨을 푹푹 쉬는 박 선생과 지석 선배가 있었다. 그 뒤에는 긴장한 얼굴의 차 선생, 홍 선생, 윤 선생, 류 선생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준비되셨으면 이제부터 하나씩 정리하겠습니다. 먼저 민주의 경우에는….”

민주는 서울한국대 경영학과를 준비하고 있고, 공정무역에 관심이 많아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도록 정리했다.

이 활동들은 3학년 활동 중에서도 봉사동아리 설립 에피소드로 연결할 수도 있는 중요한 활동이었다.

“은솔이는 부족한 탐구역량을 채워야 합니다. 특히 독서와 행특.”

공부를 잘하는 민주와 달리 은솔이는 적당히 학원 다니면서 공부를 해 온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서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 성적이 다소 부족해도 혼자 탐구를 할 수 있는 독서활동상황이 중요했다. 여기에 이어 담임선생님의 개별 평가 내용이 들어가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역시 교과 성적과 무관하게 학생의 자질을 적을 수 있었다.

“용희는 건축과 한옥에 대한 관심을 이번 학년에 반드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수학, 과학 역량도 보여 주어야 하고요.”

민주, 은솔이와 달리 용희는 자신의 관심분야가 명확하게 보이는 생기부가 아니었다. 입학사정관전형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희망 전공, 진로에 대한 관심도가 서류에 필수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이번 2학년 학생부에는 건축, 한옥에 대한 관심을 융합적으로 보여 주는 내용이 필요했다.

“윤 선생님은 물리 교과 세특에 반드시 건축의 용적률이나 물리법칙, 건물의 하중 등에 대한 탐구를 한 내용을 적어 주세요.”

“수행평가로 제출한 기사 내용도 있었으니까, 그걸 적어 주면 되겠네?”

“맞습니다. 다른 선생님들도 수행평가 내용 중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으면 꼭 기재해 주세요.”

내 지휘에 맞춰 다섯 명의 교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들의 타이핑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컨펌을 해주었다.

“여기에서는 이 문장을….”

“좀 더 계열적합성이 드러나면 좋은 단어를 넣어주세요. 이를 테면….”

피드백을 받으며 내용을 정리하던 차 선생과 윤 선생이 가장 먼저 생기부 기재 작업을 마무리했다.

“다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다른 학생들 내용 챙겨주세요.”

“아.”

짧게 신음하는 윤 선생을 보면서 손가락을 하나 들어보였다.

“오늘 하루 다 투자하셔서 맡은 반이든 동아리든, 전체 학생들 생기부 정리해 주셔야 합니다. 이거 어차피 2월 28일 전에는 마무리하셔야 해요.”

내 말을 들은 윤 선생이 절망감에 휩싸인 듯 머리를 감싸쥐었다.

“하… 맞아… 이제 곧 마감이었지. 오늘 약속 취소해야겠구만….”

“가급적 2월 남은 1주일은 모두 학생부 정리에 투자하시는 게 좋습니다. 한두 명 적어 주고 끝날 일도 아니고 해서요.”

그때 박 선생이 자기는 모든 작업을 마무리했다면서 기지개를 폈다.

“역시 미리 적어두기를 잘 했네요. 방금 민주, 은솔이, 용희 내용도 다 적어 줬어요. 우리 반 애들도요.”

영어를 가르치다 보니 박 선생도 모든 학생들의 내용을 정리해 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전부터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순식간에 학생부 기재를 마무리했다.

“역시 박 선생님. 대단하십니다.”

“류 선생님은 오늘 처음하시나요?”

류 선생은 멋쩍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 류 선생님은 집중케어 들어갈 겁니다.”

그 말에 류 선생이 금시초문이라며 펄쩍 뛰었다. 그런 그를 내버려두고 류 선생이 작성하던 내용들을 확인했다.

“엉망이군요. 학생의 역량은 온데간데없고 어디에나 컨트롤 C, 컨트롤 V 해도 되는 내용들뿐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더 어떻게 적을 수 있는데? 나도 이게 최선….”

불만을 표시하는 류 선생을 향해 눈에 불길을 담고서 노려봤다. 내 이글대는 눈동자에 흠칫 놀랐는지, 류 선생은 다시금 꼬리를 내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본인만의 공부법을 보여 주고 있었는지가 중요합니다. 판서하는 습관이 있는 학생은 하다못해 판서하면서 정리했다, 정도는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연히 그 내용만으로는 부족했지만, 류 선생이 작성하던 내용은 그런 내용마저도 없었다.

‘생각보다 작업 시간이 좀 걸리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류 선생에게 말했다.

“이틀 안에 다 못하면 남은 1주일 내내 학생부 기재 집중 과외 들어가겠습니다. 이번 입시 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제 정시만으로는 답 없는 거 아시죠?”

“헉… 아, 알았어. 배울게, 배우면 되잖아.”

잔뜩 겁 먹은 듯한 류 선생을 향해 씨익 웃으며 나도 내가 가르친 2학년 학생들 교과목 세특을 적어 주었다.

지석 선배, 윤 선생은 그래도 한번 해 봤다고 감을 잘 잡아가는 편이었다. 차 선생, 홍 선생은… 아직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선배님! 저도 그 과외 들어도 되나요?”

“학생부 기재 과외요?”

“저도 부탁드립니다. 잘 모르는데 학생들에게 필요하다면 꼭 익히고 싶습니다.”

적극성도 좋고.

두 사람을 우리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 사실에 뿌듯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습니다. 그럼 세팅을 제대로 해야겠네요!”

나는 한쪽에 밀어뒀던 에너지드링크와 커피가루들을 챙겨왔다. 지난 ‘오금프로젝트’ 때 사용하고 남은 간식들이었다. 간식들을 프로젝트 때처럼 잔뜩 교무실 책상에 세팅을 해 주고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걸로 조는 일도 없을 겁니다. 1주일, 죽었다 생각하고 달려봅시다!”

“미리 다 써두길 다행이다…. 다들 힘내세요, 화이팅.”

“이건 죽은게 아니고 죽는 거야. 세 사람 모두 고생해라.”

“힘내. 그래도 한번 해 보면 훨 나을 거야.”

박 선생과 지석 선배, 윤 선생의 덕담을 들으면서 자리에 앉은 세 사람이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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