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25화 (125/252)

125화. 올해 또 보자!

[작년 3월부터 2월까지, 1년간 다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용희의 상담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1년 2월 10일, 강문고 졸업식이 열렸다.

-개학하고 꼭 모시고 와!

용희는 3월에 부모님과 함께 상담을 올 예정이었다. 그때까지는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게끔 은솔이처럼 체크리스트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건축학과 나와서 할 수 있는 직업들 좀 찾아보고. 그래야 부모님한테 네가 고민을 많이 하고 말했다는 걸 어필할 수 있다.

-근데 꼭 공무원이라 해야 해요? 저 공무원은 싫은데….

-내가 입시전략 코스프레라고 했지? 원하는 대학, 학과 진학하고 싶으면 부모님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해. 그러니 포커스는 건축직 공무원에 맞춰.

내 상담이 끝나고 용희는 감사인사를 하면서 돌아갔다.

그리고 용희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3학년 자리를 내줄, 아직은 3학년인 학생들이 체육관에 집결했다.

구정이 지나고 바로 이어진 졸업식이었다.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밝은 얼굴로 집안 어른들을 만나고 왔고,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다시금 투지를 불태우며 돌아왔다.

각자의 사정을 품에 안고,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로, 대학으로 진출하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신설된 장학제도 시상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인 지석 선배의 멘트가 끝나자 안쪽에서 강은숙 이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이사장의 얼굴을 보며 환호했다.

‘이제 애들이 이사장 얼굴을 아네.’

그럴 법도 했다. 무엇보다 작년 입시 관련 특강들을 오픈하면서 자기소개서 시즌에는 노트북을 제공해 준 사람이었다.

그 일은 인터넷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날 정도로 이슈였다.

세상에 그런 이사장이 있느냐는 반응부터, 학생들을 위해 제대로 돈을 쓴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강은숙 이사장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렇게 환호를 하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이사장은 마이크를 잡고 단상 위에 섰다.

[이번에 신설된 장학제도에 따라 장학금 시상을 하겠습니다. 먼저 이 장학제도를 제안한 강명문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이사장의 말에 학생들이 단체로 놀라더니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 반응에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사장을 주목했다.

[통칭 Gangmoon Great Student 장학제도. 줄여서 GGS라 지었습니다.]

이사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 선생이 나에게 왜 GGG로 하지 않았냐면서 타박을 줬다. 그걸로 했다면 배지도 만들기 좋고, 의미부여도 좋다면서 아쉬워했다.

‘그런데 GGG가 뭐야?’

그 단어 뜻을 박 선생에게 물을까 싶었지만, 건프라 이야기를 할 때의 박 선생 눈빛이 나와서 이내 그만두었다.

[먼저, 서울한국대와 의예과에 합격한 학생들입니다. 호명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은장이와 명천이를 비롯해 서울한국대에 합격한 학생들의 이름이 불리었다. 학생들은 단상 위로 올라가서 이사장의 앞에 섰다.

“수고들 많았습니다. 축하해요.”

이사장의 옆에서는 한 교감과 윤 선생이 준비한 부상을 들고 서서 하나씩 건네주었다.

물품은 최신형 노트북 한 대와 장학금 30만원, 그리고 장학증서였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기에 학생들은 어안이 벙벙한 채 이사장과 악수를 나눴다.

특히, 이사장은 은장이 앞에서 몇 초간 시간을 더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정말 축하해요 은장 학생.”

“아닙니다, 이사장님! 이번에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장이가 이번에도 눈물을 훌쩍이며 들어왔다. 울면서 들어가는 은장이에게 명천이가 다가와서 티슈를 챙겨주었다.

‘기특하네.’

내 뒤에서 정석이가 나이스! 라고 외치는 걸 보니 아마 저 녀석이 준비한 것 같기도 했다.

[다음은 고구려대와 연천대에 합격한 학생들입니다. 호명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이번에는 동석이를 비롯한 연천대 합격생들이 앞으로 나왔다.

부상은 최신형 노트북 한 대와 장학금 20만 원, 장학증서였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건 동석이였다.

“이, 이사장님, 이거….”

방금 은장이와 명천이가 받고 들어갈 때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노트북 기종을 확인한 동석이는 놀라서 눈을 왕만두처럼 뜬 채 이사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선생님이 노트북 사양도 직접 골라 줬어요. 이 정도면 공학 공부 하기에도 충분할 거예요.”

동석이에게 노트북 구매 배경까지 이야기한 이사장이 나를 바라보며 호호, 웃었다. 동석이는 노트북 상자를 품에 안고 나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가서 공부 잘 해 보자.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다.”

“네!!”

고구려대와 연천대 합격생 학생들의 시상이 끝나자 장학금을 받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서 아쉽다는 말들이 나왔다. 내 뒤에 서 있던 정석이도 아쉬웠는지 나에게 물었다.

“그럼 스카이랑 의대까지만 주는 거예요?”

“아니, 또 있어. 기다려 봐.”

나는 정석이의 질문에 답하면서 웃어 보였다.

[이어서 학우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은 학생들입니다. 호명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인기를 얻은?”

[3학년 3반 이정석 학생.]

“네?!”

정석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쌤 오늘 오자마자 투표한 게 이거 때문이었어요?”

나는 동석이의 물음에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학생들은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에 간단한 투표를 했다. 반에서 가장 도움이 많이 된 친구는 누구인지, 누가 학급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었는지 등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학생이 이 장학금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중복으로 받지는 못 하게 했으니 은장이는 자연스럽게 후보에서 빠지게 된 거고.

부상은 최신형 노트북과 장학금 10만 원, 장학증서였다.

“와 부럽다…. 나도 정석이처럼 다닐걸.”

“안태성, 너는 어차피 정석이 못 따라 해.”

태성이와 정아가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정석이를 바라봤다.

이사장과 인사를 한 정석이는 이사장의 옆에 세워진 마이크를 붙잡고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미란아!!!! 나 장학금 받았다!!!!!]

체육관이 떠나가라 들려오는 정석이의 외침에 모두가 귀를 막았다.

“어휴 저 미친놈….”

근데 아직 안 헤어졌나? 체육관 뒤쪽을 보니 미란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원래 이쯤이면 헤어져야 하는데.’

이것도 어쩌면, 정석이가 성실성대에 입학하게 된 결과에 따른 변화일까.

확실히 이전과는 많이 달라지는 지금을 보면서 괜히 기쁜 마음이 들었다.

[이상으로, 강문고 3학년들의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윤 선생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2011년 2월 10일 졸업식이 마무리되었다. 학생들이 와아- 환호성을 질렀다.

[아아, 이제 교실로 돌아가서 담임선생님께 졸업증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선배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윤 선생이 내려가자 행사를 준비한 학생회, 방송부 학생들이 올라왔다. 그사이에서 마이크를 잡은 민주가 안내방송과 함께 인사를 했다. 은장이가 그 소리를 들으면서 민주에게 장학증서와 노트북을 흔들었다.

교실로 올라온 학생들은 자리에 경건하게 앉아 있었다.

많은 학생들의 눈에서 아쉬움이 비쳐 보였다.

“너희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그리울 거다.”

“저희도요!”

“회귀라도 할 수 있으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 하루 12시간, 14시간씩 특강을 하던….”

““그건 하나도 안 그리워요!!””

대놓고 짜기라도 했는지 학생들이 단체로 소리를 질렀다. 귀를 양 손가락으로 막으면서 녀석들을 향해 인상을 썼다.

“됐다, 됐어. 아무튼 다들 1년간 고생했다.”

지금 이 앞에 앉은 학생들 중에는 동석이 같은, 개천에서 용이 된 케이스는 극히 드물었다.

강문고에는 부모님의 학벌이 좋고 돈도 많은 집에서 태어난 학생이 많았다. 그들은 보고 자란 세계부터 달라 은장이처럼 부모로부터 강요 아닌 강요를 받아온 녀석도 있었다.

정석이처럼 자수성가한 부모 밑에서 자라 학벌 콤플렉스를 극복하도록 강요받은 녀석도 있었다.

명천이처럼 의사인 아버지와 대치동식 학업에 물든 어머니 밑에서 자라, 의사가 되는 게 당연한 목표인 것처럼 생각했던 녀석도 있었다.

태성이나 정아처럼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라 꿈도 목표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채영이처럼 공부가 안 된다 싶으면 아예 손을 놓고 외모에만 신경을 썼던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이, 이제는 한결 달라진 모습을 하고서 교실에 앉아 있었다.

-그나저나 너희들, 대학 가면 뭐부터 할 거냐?

스키장 인근 펜션에서 저녁을 먹다가 별생각 없이 물었던 내 물음에 정석이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 제대로 경영 배워 볼 겁니다 쌤.

-복수전공 하려고?

-그것도 있는데, 아버지 회사에서 경영시스템부터 배워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졸업하면 제가 원하는 기업을 세워 보려고요.

쑥스럽게 웃는 정석이를 보면서 은장이도 말했다.

-저는 인문학 공부부터 하려고요!

-광고랑 방송은?

-학교 방송부랑 광고동아리 들어가기는 할 건데, 인문학 공부는 지금부터도 할 수 있잖아요? 입학 전까지는 책도 많이 읽으려고요. 오늘도 한 권 들고 왔어요!

그러면서 나한테 지금 읽고 있는 철학책을 소개했다.

-전 먼저 하동기 교수님한테 먼저 연락드리고, 연구주제도 논의해 보려고요! 입학하면 연락하라고 하셨어요!

동석이는 목표가 확실했으니 더 물어볼 것도 없었고.

-저도 경영 배워 볼 건데, 진짜 그거 해 볼까 싶어요. 연애 조언 사이트 같은 거요.

태성이의 답변에는 다들 깔깔 웃기도 했다.

-전 진짜 스튜어디스 해 볼 거예요! 한항대 합격하니까 아빠가 승무원 정장도 사 준다고 했어요!

-저는 일단 학과 공부부터 해 보려고요. 어문계열이라 은장이랑 같이 독서 스터디 하고 있어요.

-야, 근데 너 요즘 열심히 안 읽잖아!

-미안미안. 이번 여행만 끝나면 제대로 읽을게.

채영이와 정아도 나름의 방향을 찾아서 정진하고 있었다.

-명천이는?

-저는….

-일단 여자친구부터 사귀고?

-아 쫌! 아니에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투덜대던 명천이가 헛기침을 하면서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상식을… 더 쌓으려 합니다.

-상식?

-네. 제가 모르는 분야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앞으로 의료기술 발전에도 뛰어들 수 있을 테니까요.

명천이가 그렇게 말하면서 동석이를 바라봤다. 동석이는 그 시선을 받으면서 왜? 라며 태연하게 답했다.

그렇게 각자의 목표를 이야기하면서 녀석들과 즐겁게 술자리를 가졌었다.

불과 한 달 전의 일.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너희는 좋든 싫든 사회, 대학으로 나가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변했던 학생들이 다시금 변하지 않았으면 했다.

“고등학생 때와는 차원이 다른 아픔이 기다리고 있을 거고.”

이제야 목표를 잡고, 자신의 길을 찾기 시작한 녀석들이, 이 교실에만 해도 잔뜩 있었다.

“또한, 고등학생 때와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도 기다리고 있을 거다.”

각자가 정한 길에서, 비록 입시 준비를 위해 부모 앞에서 코스프레를 했다 해도, 이제 녀석들의 앞에 펼쳐질 세상은 무궁무진해진다.

“그러니 강문고에서의 이번 1년이 너희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의미 있는 연습게임이었기를 바란다.”

회귀하고 처음 맞이하게 되는 이번 졸업식까지, 나는 녀석들이 세상에 나가서도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키워 주고 싶었다.

오로지 공부만을 강조하는 동네인 강남서초권. 학원가로 유명한 대치동. 부모의 과보호 아래에 잠들어서 강요받아왔던 수능, 내신에 집중된 공부. 공부를 못하면 도태되고 잠식될 수밖에 없는 세계.

그렇게 챗바퀴 돌리는 삶에서도 학생들은 조금씩 성장했고, 부모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애썼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학생들이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래야 내 평판에 ’인성교육도 완벽한 만능 교사‘라는 타이틀도 생길 거고.’

이런 속내는 숨기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갑자기 대학 때려치우겠다면서 나 찾아오면 죽는다.”

농담으로 던진 말에 몇몇 녀석들이 흠칫 놀랐다. 그랬다 이거지? 누군지 딱 외웠다.

“아무튼, 다들 1년간 수고가 많았다! 이제 마무리하자!”

그 말에 학생들이 환호를 지를 듯 말 듯 하면서 누군가의 눈치를 살폈다. 잠시 후, 동석이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검은 박스를 건넸다.

“뭐야 이건?”

“쌤, 이거 저희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동석이가 건넨 박스 안에는 작은 카드가 들어 있었다. 그것도 한 장이 아니었다. 열 장이 넘는 카드들. 자세히 세어 보니 딱 우리 반 학생들 수만큼의 카드가 들어 있었다.

나는 곧장 이 이벤트를 누가 생각했을지 교실을 돌아봤다. 그러나 은장이는 자기가 아니라며, 동석이를 가리켰다.

“이야, 동석이 네가 준비한 거야?”

“헤헤, 네. 친구들한테 롤링페이퍼처럼 하나씩 다 받았어요.”

옆에서 정석이가 동석이에 이어서 말했다.

“쌤은 저희한테 자판기 커피 하나 안 받으려고 하시잖아요? 그래서 머리 좀 썼습니다.”

“카드편지는 괜찮죠? 이거 쓰느라 오래 걸렸어요 쌤!”

은장이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박스를 받아주라고 재촉했다.

“저도 그거 쓰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명천이까지 이 카드를 작성하려고 애썼다는 소리를 들으니 색다른 기분도 들었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웃으면서 박스를 높이 들어 올렸다.

“고맙다! 올해도 또 보자!”

내 말에 동석이, 은장이를 비롯한 학생들이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위아래로 쓱쓱 닦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들이 준 박스를 챙기면서 이 녀석들을 올해 어떻게 굴려 줄까 구상했다.

* * *

졸업식이 끝나고 퇴근한 후 침대에 몸을 뉘었다. 2011년 학교 생활에 걸림돌이 될 사항들을 정리하다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우웅-

“네 강명문입니다.”

[강 선생님, 잠깐 괜찮아요?]

핸드폰 너머에서 이사장이 다소 긴장한 듯 말했다.

[지금 이사장실로 올 수 있어요?]

“밤 8시가 넘었는데요?”

그러나 내 말에도 이사장은 자신의 의견을 고집했다.

[네, 보셔야 할 게 좀 있어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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