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24화 (124/252)
  • 124화. 2012년 첫 코스프레

    내 말을 들은 차 선생, 홍 선생은 그게 무엇인지 서로에게 물었다. 박 선생만이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공짜로요?”

    이런 말도 덧붙이면서.

    “잘 되면 이번 입시 끝나고도 한 번 쏘겠습니다.”

    “알았어요. 올해 입시 끝나면 또 기대해 봐도 되죠? 저번에 스키장도 고마웠어요.”

    박 선생은 서늘하게 웃으면서 나를 노려봤다. 올 한해도 아마 박 선생에게 빚질 일이 많이 생길 것으로 예상이 되자 괜히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박 선생님 때문에 제가 주식이고 뭐고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언제 비싼 거 바랬다고. 그냥 평소 씀씀이가 헤퍼서 종잣돈 못 모으는 거 아니에요?”

    나와 박 선생이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자 홍 선생이 황급히 우리 앞으로 갈비를 올려뒀다.

    “후… 고맙습니다.”

    그 갈비를 입에 넣어서 꼭꼭 씹어 삼킨 뒤 홍 선생에게 말했다.

    “홍 선생님은 HSYP 동아리의 담당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네. 기본적으로는 건축봉사동아리인데, 벽화나 급식봉사까지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얼마 전, 학생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HSYP신청서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기게 되었다.

    특히, 학생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보다 분명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목적은 뭐라고 할 거야?

    용희가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민주는 잠깐 고민하더니 서울지역 건축 봉사는 어떻겠냐고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더 들어가야 하는 건, 동네 맞춤형이다.

    내 말에 세 학생이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었다.

    -강남구에도 노후된 옹벽, 담장들이 있다. 그런 벽들에 재능기부형태로 벽화 그리기를 해 볼 수 있겠지. 위험한 벽들은 아예 담장을 새로 쌓는 걸 이야기해 볼 수 있어. 오래된 집을 방문해서 벽지, 장판, 단열제 같은 것들도 바꿔줄 수 있을 거고. 은솔이가 봉사 갔던 그 동네 알지?

    -아 거기도!

    -그래. 그 동네만 해도 노후주택이 많아. 그 동네 어르신들의 주택이나 벽을 수리해드리면서 은솔이는 무료급식을 드릴 수도 있다. 급식이 부담된다면 일일영양간식 같은 걸 챙겨드릴 수도 있겠지?

    설명을 마치고 나는 녀석들을 향해 잘 준비해보라며 자리를 빠져나왔었다.

    그래서 정확히 녀석들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기에 대략적인 방향성을 두고 설명을 한 것이었다.

    “네, 그럼 제가 HSY… 뭐였죠?”

    “HSYP.”

    “네네, 그 동아리 담당을 하겠습니다!”

    홍 선생이 힘차게 대답하면서 집게를 잡은 손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그 전에….”

    내가 말끝을 흐리자 박 선생이 올 게 왔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학생들 학년 바뀌기 전에 학생부 정리 좀 도와주십시오. 박 선생님은 애들 영어교과세특, 차 선생님은 은솔이 동아리, 홍 선생님은 용희 2학년 전체.”

    “2학년 전체요!?”

    화들짝 놀란 홍 선생을 보며 박 선생이 안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홍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게다가 강 선생님이 써달라고 하는 거… 미리 빚 적립해 두세요.”

    “빚이 뭡니까 빚이. 상부상조하는 건데요.”

    “지금 그 말 작년의 나한테도 할 수 있어요? 하루 14시간씩 특강했던 나랑 심 선생님한테도 할 수 있냐고요.”

    이글이글거리는 박 선생의 눈길을 피하면서 열심히 갈비를 쌈에 싸먹었다. 입안에서 고기 양념이 맴도는 감각을 즐기면서 박 선생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차 선생과 홍 선생에게 당부했다.

    “박 선생님 말씀 듣지 마세요. 거의 제 앞에서는 오대천왕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냥 제가 요청드리는 거 몇 개만 해 주시면….”

    “강.명.문.선.생.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박 선생이 입술을 씰룩거리면서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 시선을 모른 척하고서 그녀에게 갈비를 하나 올려 주었다.

    “탑니다. 드세요.”

    “후… 진짜 두고 봐요. 스키장만으로는 안 끝날 줄 알아. 다들 뭐 해요. 빚 메모해 두세요.”

    우리는 한참을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떠들었다. 중간중간 박 선생이 분노에 차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 지나간 즐거운 추억 이야기였다.

    * * *

    용희의 2학년 담임인 홍 선생에게 부탁해서 용희의 학생부를 받아 보았다. 생각했던 대로 녀석의 학생부에는 내용이 많지 않았다.

    “흠….”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홍 선생이 옆에서 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선생님, 진짜 용희 괜찮은 거 맞아요?”

    “으으음…. 네, 나쁘지는 않네요. 무엇보다 1학년 때 한옥에 대한 관심을 보여 준 발표 내용이 있어서, 이걸 살리면 되겠습니다. 독서는 이번에 많이 채워야겠네요.”

    용희의 1학년 학생부는 대체적으로 평범 그 자체였다. 어떤 학생에게도 도입할 수 있는 학생부. 소위 말하는 복붙 가능한 학생부 수준이었다.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활동이 바로 ‘한옥, 현대인의 쉼터가 되다.’ 라는 제목으로 발표였다.

    “용희의 관심사는 한옥이고, 퓨전한옥에도 관심이 많을 테니까 이걸 연결해 주면 됩니다.”

    “쌤 어떻게 아셨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용희가 놀라면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며 설명해주었다.

    “한옥으로 이사를 가고 싶으면 당연히 가족들과 다 같이 가고 싶은 걸 테고, 현대 건축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으니까 퓨전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지.”

    “와… 족집게시네요 정말.”

    홍 선생도 덩달아 놀라면서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 시선들을 즐김과 동시에 용희에게 말했다.

    “어쨌든, 준비할 수 있겠다 용희야.”

    “어디를요?”

    “고구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네!?””

    용희와 홍 선생이 동시에 놀라서는 소리를 질렀다.

    “왜?”

    “쌤, 저 등급 안 되고, 모의고사도 안 나와요.”

    용희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나는 옆에 놔둔 종이몽둥이로 녀석의 허벅지를 탁 때렸다.

    “인마, 등급이 안 나오기는, 잘만 나왔구만.”

    홍 선생과 용희가 처음에 말했던 등급은 2등급 후반에서 3등급 초반이었다. 실제로 용희의 1학년 성적과 2학년 성적은 그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2학년 때는 성적이 2등급 초반으로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고구려대 지역우수인재전형… 아니지, 올해는 학교장추천전형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추천전형은 교과성적은 20%, 40%, 40% 반영해. 그러니까 3학년 성적만 1등급 중반으로 찍으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그래도 1차에서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아냐. 추천전형은 일괄 면접이야. 서류60%, 면접40%.”

    고구려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대 2012학년도 전형계획> 파일을 다운받아서 모니터에 띄웠다.

    “와… 진짜네.”

    “그러니까 2학년 학생부를 확실하게 채워둬야 해. 홍 선생님께서 담임선생님이시니 작성 권한도 많으십니다. 용희 내용 잘 부탁드립니다.”

    홍 선생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고구려대를 목표로 하자. 서울한국대는 넣어 볼 수는 있지만, 최상향이야. 위험부담이 커서 추천은 안 한다. 그래도 넣어 볼래?”

    “아, 아뇨. 전 고구려대도 우주상향이라고 생각하는걸요.”

    “좋아. 그럼 다음에 목표로 할 곳은 중문대야.”

    “네? 한영대나 성실성대가 아니고요?”

    홍 선생의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사실상 한영대는 특기자들 아니면 선발하지 않습니다. 성실성대는 사정관제로 보면 교과를 70%나 반영해서 용희에게 불리합니다. 논술 따로 공부한 적은 없지?”

    “네. 그냥 친구들 풀 때 따라 풀어 본 정도?”

    “그럼 이번에도 수리논술 특강 열어 줄 테니까 류지훈 선생님에게 들어.”

    이번에도 특강은 필수로 오픈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홍 선생이 다시 물었다.

    “중문대는 어떻게 선발해요?”

    “중문대는 건축학과로 4명 선발하는 갈릴레오 전형이 있습니다. 여기는 서류100%로 1단계 3배수 선발, 2단계에서 면접과 서류를 종합 평가합니다. 봤을 때 용희는 한옥에 대한 관심도 관심인데, 기본적으로 건축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맞지?”

    내 물음에 용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답했다.

    “평소 주변 건물들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하지? 이 건물은 주변 경관과 어울리는지, 왜 디자인을 이렇게 했는지, 지반은 어떤지, 기초공사할 때는 무엇을 구상했을지 같은 것들.”

    용희는 이번에도 맞다면서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왜 선배들이 쌤하고 상담하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이것도 다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나 들어가는 이야기야. 싹이 보이지 않으면 이런 상담도 힘들어.”

    “그럼 전 진짜 가능성이 있는 거예요?”

    “당연하지.”

    사실 지금 용희 정도면 입학사정관 전형을 준비하는 데 있어 최적의 조건이라 볼 수 있었다. 분야에 대한 확신, 확고한 진로 목표, 상승하는 성적에 습관처럼 잡혀 있는 분야의 호기심을 탐구하는 역량까지.

    더할 나위 없이 발전가능성, 성장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전공적합성도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런데도 용희가 저렇게까지 자신감이 없다는 건 본인의 마음가짐 이외에 다른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너, 뭐 있구나.”

    그게 무엇일지 대략 예상은 되었지만, 먼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

    “용희야 말씀드려.”

    “….”

    홍 선생은 무슨 일인지 아는 듯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고맙다는 눈짓을 하면서 용희에게 다가갔다.

    “혹시 부모님이 건축분야에서 일하셨냐?”

    “….”

    “이야기를 해 주지 않으면 나는 네 상황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해도 될까?”

    용희는 그래도 된다면서 작게 대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원하는 전공분야가 다른 거지?”

    “…네, 맞아요.”

    “그 이유가 아버지 건축사업 형편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거고.”

    “사실은….”

    용희의 아버지는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했지만, 점차 일거리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아예 파산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용희의 어머니는 아들이 건축이 아닌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차라리 인문계열로 바꿔서 공무원 준비를 하자는 이야기도 할 정도였다.

    “그래도 저는 건축설계사를 하고 싶어요.”

    용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쥐었다.

    “이 동네 오기 전에는 한옥에서 살았어요. 초등학교 때까지는요.”

    용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울에 있는 좋은 동네에서 아들을 키우겠다고 강남서초권으로 이사를 왔다.

    IMF여파에도 불구하고 용희의 아버지 회사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한 번의 사기를 당하고, 이어서 두 번의 사기를 당하면서 회사는 결국 파산을 하게 된 것이었다.

    “쌤들도 아시잖아요. 이 동네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 그래서 여기로 이사 온 뒤로 부모님은 계속 일만 하세요.”

    한옥에서 지낼 때는 화목했던 가족이, 강남서초로 이사를 오면서 무너졌던 것이다. 용희는 그런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고,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방안 중 하나로 생각한 게 바로 옛날, 화목했던 가족들이 지냈던 한옥이었다.

    “제가 한옥을 직접 설계하고 지으면, 부모님이랑 같이 그 집에서 살 거예요. 그럼 다시 화목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야기를 들은 나는 말끝을 흐리는 용희에게 웃어 보였다.

    “역시, 입시는 코스프레야.”

    “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는 홍 선생에게 그런 게 있다고 넘기고는 용희에게 말했다.

    “언제 한번 부모님 모시고 학교 와라. 3월에 새학기 시작하고 나서가 좋겠다. 그리고 용희 너 국어, 영어 성적이 다른 과목보다 아쉬우니까 은솔이랑 같이 민주한테 배워.

    학교 나오는 김에 부족한 비교과 활동 채우자. 부모님한테는 친구한테 멘토링 받는다고 이야기하고 학교로 공부하러 와. 학원이나 과외는 언제야?”

    “수학이랑 과학 월수금 나가요.”

    “그럼 학원 안 가는 날 맞춰서 민주한테 멘토링 받아. 아쉽게도 수학은 이과라서 민주한테 받기는 어렵겠다. 3학년 반은 어디로 됐어?”

    “저 14반 됐어요.”

    용희의 답변에 나는 14반 담임을 생각하며 씨익 웃었다. 14반이면 류 선생이 담임인 반이었다. 그림이 점차 그려졌다. 류 선생이라면 3학년 학생부도 제대로 적어 줄 터였다.

    내 부탁 같은 협박을 받으면서 말이다.

    “좋아. 그리고 집에 가면 아버지한테 설계 관련 도움을 좀 받으면 좋겠다. 새학기 들어가면 하게 될 거야.”

    “어떤 걸요?”

    “학교에 도입할 수 있는 사고 예방 시스템을 건축과 연관 지어 바라보기, 교실 내 에어컨 자리 선정을 위한 내부 책상 배치 설계, 학교 건물 벽돌 성분에 따른 친환경소재 비교 ….”

    나는 용희에게 추천 주제들을 마구 던져주었다. 용희는 내가 하는 말을 열심히 메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한테는 이렇게 이야기해.”

    “뭐라고요?”

    “건축 공부해서 건축직 공무원 되겠다고.”

    “네!? 공무원이요?”

    용희가 입을 떡 벌렸다.

    녀석의 반응을 보면서 나는 뒷말을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전략적으로. 전략적 코스프레다.”

    2012학년도 입시 준비생 중 첫 번째 입시전략 코스프레가 시작되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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