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23화 (123/252)
  • 123화. HSYP 준비

    3학년 학생들이 잔뜩 빠져나간 학교 운동장에서 한 남학생이 건물 그림자의 길이를 재고 있었다.

    “여기에 비례식을 도입해서….”

    학생은 미리 준비한 클리노미터를 사용해서 건물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 각도를 기억해두었다가 옆에 아무렇게나 펼쳐둔 노트에 메모를 했다.

    “으으음….”

    그렇게 식을 대입하고 계산까지 마친 학생은 결과값을 두고서 고민했다. 한참을 끙끙대고 있는데, 학생의 뒤로 정장을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왜 건물마다 높이가 다른지가 궁금한 거지?”

    남자의 말에 학생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이미 수십 번은 재 봤을 건물들의 높이를 굳이 방학 때 다시 재 보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용희 맞니?”

    강명문은 눈을 꿈뻑꿈뻑하는 용희에게 다가갔다.

    “사실 건축물은 건축법에 따라서 건폐율, 용적률이 달라지고 이용자와 이용목적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건축물을 설계하려면 이용자의 삶을 배려하는 게 필요하니까.”

    용희는 강명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번 더 놀랐다. 그가 생각하고 있던 건축설계자의 모습이 바로 그런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강명문 선생님이세요?”

    “어떻게 알았니?”

    “와. 쌤 지금 인터넷에서 스타잖아요. 선배들이 쌤 찾아가서 상담받으면 뭐 다 붙는다나 뭐라나.”

    그렇게 말하는 용희의 눈은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기대도 안 하지만요. 그런데 건축공부하셨어요? 엄청 잘 아시네요.”

    용희의 물음에 강명문은 대답을 하지 않고 빙긋 웃기만 했다.

    강명문이 입시코디를 하던 시절, 건축학과를 꿈꾸는 학생이 있었다.

    -준비만 잘 하면 충분히 인서울 상위권 학교 노려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학생부종합전형이 한창 유행을 할 때였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을 건축으로 보내고 싶지 않다면서, 반드시 컴퓨터공학과에 보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당연하게도 학생의 학생부는 건축 이야기만 가득했기에 종합전형을 준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억지로 정시 준비를 했고, 그 학생은 재수에 이어 삼수까지 하고, 인서울 어딘가의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용희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는 바로 그런 기억 때문도 있었다. 강명문은 자세를 고치면서 물었다.

    “좋아하는 분야가 있냐?”

    강명문의 질문에 용희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말하면 놀리실 것 같은데….”

    “괜찮아, 말해 봐.”

    그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용희가 말했다.

    “저는 한옥건축설계사가 되고 싶어요.”

    용희의 말을 들은 강명문은 잠시간 답을 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게 자신의 목표가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판단한 용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나. 잊어 주세요.”

    “할 수 있겠는데?”

    “네?”

    “할 수 있겠어. 동아리는 뭐 하고 있니?”

    “저 마라톤 동아리요.”

    그 말에 강명문이 한숨을 푹 쉬었다.

    “책은 좀 읽고?”

    “사실상 놓았는데….”

    “내신은?”

    “2등급 후반에서 3등급 초반 정도요. 그런데 왜 이리 자세하게 물어보세요?”

    용희가 경계심을 갖고서 강명문에게 물었다. 강명문은 헛기침을 하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다시 한옥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거 아냐?”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담임이었던 홍유진 선생님한테 물어봐서 알고 있지.”

    용희는 2학년 때 홍유진 선생의 반이었다.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 잘 하는 편도 아닌 학생이었다.

    -건축에서만큼은 진짜 덕후예요 덕후.

    홍유진은 강명문에게 용희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알려 주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거야. 홍 선생님이 너 입시 방향 좀 잡아달라고 그러시더라.”

    “담임이요? 갑자기?”

    용희는 강명문의 말에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홍유진은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입시 상담을 해 주었던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학생들은 홍유진에게 속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많았다.

    특히, 미술이라는 비주류 교과목을 담당하고 있다보니, 공부가 어중간한 학생들이 더욱 홍유진에게 호감을 보였다.

    -주요 교과 쌤들은 바빠서 자기들 이야기 잘 들어주지도 않는다고 불평하니까요. 저라도 들어줘야죠.

    스키장에서 술을 마시면서 홍유진과 나눈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강명문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네가 좋은 대학 갔으면 좋겠다면서 나한테 부탁하셨어.”

    “전 솔직히 인서울만 가도 땡큐죠 뭐. 모의고사는 2등급 나오지만, 수능은 한 개 등급씩은 더 떨어진다면서요.”

    용희는 나름대로 자기도 찾아본 게 있다면서 자신의 현실적인 목표를 이야기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강명문은 용희에게서 다른 불안을 감지했다.

    한옥을 이야기하기 주저했던 사실. 모의고사 이야기를 하면서 자조 섞인 듯 웃는 모습.

    그러나 혼자서 호기심을 해결하겠다며 각종 건물의 높이를 재는 탐구력.

    모순된 행동들에서 강명문은 어떤 상황이 있을지 대략적으로 예상을 해보았다.

    “불안 요소들이 뭐가 있을지는 대충 예상은 되는데, 그거 불안하다고 해서 손 놓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돼. 민주 알지?”

    “오민주요?”

    “그래. 민주도 요즘 입시 준비한다고 나한테 상담받고 있는데, 어때? 용희도 나한테 오는 게.”

    강명문은 그렇게 말하면서 용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용희는 이걸 잡을까말까 고민했다.

    “만약 하기로 하면 내가 건축봉사도 할 수 있게 해 줄게.”

    그러자 용희가 선뜻 강명문의 손을 맞잡았다.

    “쌤, 진짜 저 그거 시켜 주셔야 해요.”

    “알았어. 걱정말고 따라만 와.”

    짐을 챙긴 용희는 강명문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강명문은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용희가 갖고 있는 불안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교실로 향했다.

    * * *

    “그러니까….”

    “요리랑, 건축이랑….”

    “경영까지 생각할 수 있는 동아리를 만들라는 거예요?”

    교실에 모인 민주, 은솔, 용희가 나를 향해 한 번씩 질문을 던졌다.

    녀석들은 자기소개를 한 번씩 하고서 3학년 활동을 서로 잘 부탁한다며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그 어색함이 무색하게도 녀석들은 나에게 아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질문을 했다.

    나는 그런 변화에 피식 웃으면서 과자봉지를 뜯었다.

    “자율동아리로 만들어. 최소 인원은 작년에 열 명이었으니까 올해도 다르지 않을 거야.”

    “쌤, 봉사단체 아는 데 있으세요?”

    “나는 추천만 해 주는 거야. 너희가 뚫어 봐.”

    “에이, 쌤 또 마음에도 없는 말씀 하신다.”

    언제 왔는지 은장이가 손을 흔들면서 민주 옆에 앉았다.

    “언니!”

    “민주야 준비 잘 하고 있어?”

    은장이가 절친한 후배에게 인사를 하면서 은솔이와 용희를 돌아봤다. 두 사람도 은장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역시 (전) 학생회장 출신다웠다.

    “알고 있으니 다행이네. 은장아, 얘들 동아리계획서 준비 좀 도와줘라.”

    나는 자리에 앉아 과자를 입안에 넣었다.

    “봉사단체 하나 알려 줄 테니까 여기에 연락을 해서 너희가 뚫는 거야. 그리고 이걸 뚫는 역할은 민주가 하고.”

    “제가요?”

    “그래. 이것도 경영활동의 일종이야. 너희를 영업해 보는 거지.”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민주가 잠깐 고민하더니 대충 알겠다고 답했다.

    “목표할 봉사단체는 국제단체. 그중에서도 해피 플레이스 코리아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해피플레이스 동아리라고 하셨는데, 거기가 어디예요?”

    해피플레이스를 모르는 민주와 은솔이와 달리 은장이와 용희는 헉 놀라며 물었다.

    “쌤, 저희가 거길 어떻게 뚫어요!”

    “용희야 어딘지 알아?”

    “건축봉사로 유명한 단체잖아!”

    용희는 ‘해피플레이스’가 어떤 단체인지 신이 나서는 친구들에게 설명을 했다. 용희의 설명에 이어서 은장이가 부연 설명도 해 주었다.

    “거기 학생동아리도 있고, 주거빈곤퇴치나 자립지원 같은 것도 해 주기도 해. 가면 판넬 나르고 조립하고, 시멘트 만들고 그런다고도 해. 쌤은 아마 학생동아리 말씀하신 거 같은데?”

    “와…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가서 힘써야 하는 거죠?”

    설명을 들은 민주가 고민을 했다. 은장이는 그런 후배를 향해 걱정할 거 없다면서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럼 인원 모집할 때 3학년만 하지 말고 후배들 중에서도 모아 봐. 공대 생각하는 후배들은 건축 관련으로 관심도 있을 거야. 그리고 봉사활동 나가면 정말 그 봉사만 딱 하는 거 아닌 거 알지? 서기라든가 행정담당할 친구도 있으면 좋고, 홍보포스터 같은 거 만드는 부원도 좋아.”

    은장이의 의견을 들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생각나는 후배들 있어요. 걔네들이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어 갈 것 같고….”

    은솔이와 용희는 어느새 은장이와 민주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나는 경영학과, 은솔이는 호텔경영, 아 외식경영이었나? 아무튼 요리분야, 용희는 건축이잖아? 그럼 내가 영업해서 뚫을게. 용희는 건축봉사니까 딱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은솔이는 봉사자들이랑 지역주민분들 대상 무료급식제공 어때?”

    이제는 민주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가지고 갔다. 은장이는 민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빠져나오더니 내 옆으로 왔다.

    ‘눈치가 좀 생겼네 이제.’

    은장이의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한창 회의를 하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민주의 리더십, 은솔이의 아이디어, 용희의 행동력. 이 세 학생이라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적절할 것이었다.

    나는 세 학생을 보면서 녀석의 학생부에 적어 줄 내용들을 구상했다.

    “그런데 쌤, 여기 저희가 그냥 막 들이대도 괜찮아요?”

    “일단 해 봐. 되면 좋고, 아님 말고.”

    학생들은 어느새 동아리 계획서 양식까지 만들어가면서 내용을 채워 갔다. 설립목적, 최소인원 등 여러 항목들을 작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2011년 3학년 학생들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거기 동아리 신청서 양식 따로 있어.”

    그러자 민주가 나를 원망하듯이 바라봤다.

    “그러니까 말 끝까지 듣고 준비하지. 내가 양식 줄 테니까 그걸로 다시 작성해둬.”

    민주와 은솔이가 헛되이 시간 보내게 해서 시간의 마왕이냐며 뜻모를 소리를 은장이에게 중얼거렸다. 은장이는 오대천왕은 변하지 않는다며 속닥였다. 용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배들의 말이 이해가 되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그런 녀석들을 보며 사악하게 웃고는 미리 인쇄해둔 ‘해피플레이스 고교연계동아리신청서’ 종이를 건네주었다.

    * * *

    세 학생들의 방학 중 활동 채우기 작업이 한창일 때, 박 선생, 차 선생, 홍 선생과 약속을 잡았다.

    “선생님들이랑 식사라도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장소는 언젠가 지석 선배, 박 선생과 함께 작년 대회 준비를 도모했던 갈비집이었다.

    “담임배정표 보니까 다들 담임선생님 되셨던데, 친해지기도 할 겸….”

    “질질 끌지 말고 이야기해 봐요. 이번에는 뭘 꾸미고 있는 거예요?”

    박 선생이 속셈 다 안다면서 재촉했다. 차 선생과 홍 선생은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적당히 고기를 굽고만 있었다.

    “성격 급하기는…. 알겠습니다. 박 선생님께는 동생분 소개를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내 말에 고기를 굽던 집게를 멈추고 차 선생이 나를 바라봤다.

    “소개팅이요!?”

    그 말에 홍 선생도 마시던 물이 목에 걸렸는지 켁켁거렸다.

    “아니 무슨 공개적으로 소개팅 요청을….”

    “그게 아니라… 다른 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박 선생님 동생 남자예요.”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박 선생은 다른 두 교사의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깔깔 웃었다.

    “재우요? 재우는 왜요?”

    “올해 3학년 학생들 중 세 명이 봉사활동 동아리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민주, 은솔이, 용희가요.”

    “벌써 애들 만나셨어요?”

    차 선생과 홍 선생이 정말 빠르다면서 놀라워했다.

    “네. 며칠 전에 만났습니다. 그런데 얘네들 준비하는 학과가 다 달라요. 한 명은 경영학과, 한 명은 외식경영, 한 명은 건축학과.”

    “그런데 같이 봉사동아리를 만들었어요?”

    박 선생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었다. 그 미소 안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알아챈 박 선생이 눈을 흘기면서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동생 이야기한 거예요?”

    “맞습니다. 역시 박 선생님. 이제 잘 아시네요.”

    우리 둘만 이야기를 하자 차 선생과 홍 선생도 무슨 말인지 알려달라고 졸랐다.

    “박 선생님 동생분 직장이 ‘해피플레이스’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준비하는 동아리는 봉사동아리고요. 얘네들 동아리가 해피플레이스 학생동아리인 HSYP(High School Youth Program)에 들어가도록 부탁드립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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