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22화 (122/252)
  • 122화. 새로운 구상

    방학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학생들 생기부 자료를 점검해주고 있었다. 은솔이와 민주의 멘토링은 기본이고, 이 둘의 활동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 오 선생이 잠깐 커피나 한 잔 하자면서 밖으로 불렀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오 선생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엑스칼리버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의 옆에서 미래교육의 기사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주에게 추천했던 가군 부산광역대 있지?”

    “합격했죠?”

    “그래. 게다가 철학과는 강 선생 말대로 경쟁률이 엄청났어. 대체 몇 수까지 내다보고 분석하는 건가?”

    그는 진심으로 신기하고 대단하다면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그저 웃을 뿐이었다.

    “어쨌든 현주는 잘 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강 선생 업적이지 내 업적인가. 그리고 그거 봤나? 담임배정되었던데.”

    “네, 그렇지 않아도 점심 때 봤습니다.”

    2011학년도 담임배정. 나는 작년과 똑같이 3학년 3반을 담당하게 되었다.

    왜 강 교장과 한 교감이 그렇게 배치를 했는지는 대략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홍보효과를 노리는 거겠지.’

    내 입지는 이번 미래교육 기사를 통해 한층 더 올라갔다.

    한 교감과 강 교장도 분명 그 기사를 확인했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 중 내가 강조했던 ‘3학년 국어 선생님을 찾아라’ 라는 멘트.

    한 교감은 그걸 생각하면서, 아예 강문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3학년 3반은 강명문 선생의 반!’ 이라는 타이틀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 주면 나야 땡큐지.”

    그 때문에 과거 내가 담당했었던 반과는 다른 반을 맡게 되었지만.

    “응?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학년부장 선생님께는 따로 연락 없었습니까?”

    내 물음에 오 선생이 콧방귀를 뀌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인성 말아먹은 놈한테는 연락 따위 오지 않는 게 더 나아!”

    갑작스런 그의 반응에 나도 움찔 놀랐다. 어지간히 김영호 학년부장이 싫은 모양이었다.

    “혹시나 나중에라도 연락받으시면 알려 주십시오. 우리도 가만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강문고 이사진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선, 스키장을 다녀온 뒤로는 학부모들과 이사장을 통해 이사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힘썼다.

    그들에게도 많은 정보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 가지 유의미한 정보들은 얻을 수 있었다.

    바로 그들이 지금까지 사립고 이사진으로서 누리고 있는 권력과 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이었다.

    ‘흑막이라는 소리지.’

    이사진의 역할이 없었다면 강문고 교사들도 부정부패에 빠질 염려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교사들의 뒤를 봐주는 게 이사진이었고, 그들은 뒤를 봐주는 것을 대가로 권력과 재력을 유지한 것이었다.

    물론 먼저 부정한 일을 저지른 교사들도 문제는 있지만 말이다.

    “담임배정 보니까 확실히 이번에는 베테랑이라 불리는 경력자들이 많이 배치되었더군. 어떻게 보나?”

    오 선생은 진심으로 그게 어떤 양상을 보일지 궁금하다면서 나에게 물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달리 경력이 많은 교사들도 여럿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명단들을 보면서도 딱히 문젯거리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분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걱정이라면 이번 2학년, 3학년 학생들 중에서 해야 합니다.”

    내 말에 오 선생이 무슨 소리냐며 되물었다.

    “일단 2011년 3학년 3반…. 이 학생들부터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

    담임배정표가 게시된 후, 민지정과 김영호는 긴급대책이 필요하다며 회의를 했다. 그러나 둘만으로는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자신들의 책략만으로는 학교의 흐름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지금 두 사람은 천우원 이사에게 조언을 요청했다. 세 사람은 선릉의 한 횟집에 조용히 앉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감사는 무슨. 그나저나 형님이 아니고 왜 나야?”

    솔직하게 묻는 천우원의 물음에 민지정이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그게, 아무래도 곽형조 이사님께 연락드리기가 좀….”

    “그렇지. 전화해 봤자 욕만 먹지 좋은 꼴 못볼 테니까.”

    천우원의 냉정한 말에 민지정과 김영호의 표정이 잠시간 굳었다.

    “뭐, 그럴 수 있어. 형님이 많이 다혈질이시기는 하지. 지금은 그렇게 흥분할 때가 아닌데 말이야.”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영호가 천우원의 말에 꾸벅 인사를 하면서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자존심에 금이 가서 지금 당장이라도 한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뭐라고?”

    “강명문 선생이 3학년 담임교사가 되었습니다.”

    “흠… 그치, 그랬겠지.”

    “알고 계셨습니까?”

    “예측이 되지 않나? 자네들 머리는 장식으로 달려 있어?”

    천우원은 한심하다며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앞에 놓인 회를 하나 집었다.

    “들면서 이야기하지.”

    그가 회를 한 점 입에 물고 우물거리자 민지정과 김영호도 못이기는 척 회를 하나씩 집어 먹었다.

    “지금 은숙이가 가장 신뢰하는 교사가 강명문 아닌가?”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면 철면이는?”

    “교장선생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걔는 강명문에 대해 큰 생각은 없을 거야. 어차피 학교 내부 일은 은숙이랑 한명심이가 더 챙겼지, 걔는 뭐 드러나서 한 게 없잖아.”

    천우원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실상 철면이는 은숙이랑 한명심의 의견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거고. 그러니 강명문이 올해도 3학년 담임을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야.”

    천우원은 그런 당연한 일에 동요하고 있냐면서 둘에게 타박을 주었다.

    “거기에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사실 한명심 교감 정도면 저희들과 의견을 같이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좀….”

    “철면이를 구워삶아서 자네들 원하는 대로 움직였어야 했는데, 이건 구워삶은 것도, 삶지 않은 것도 아닌 뭔가 이상하고 수상하다. 그런 소리를 하고 싶은 거 아닌가?”

    그의 분석에 민지정이 놀라 입을 멍하니 벌렸다. 김영호도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컵의 물을 바닥으로 살짝 쏟았다.

    “에잉 쯧쯧. 이렇게나 상황을 몰라서야. 학교 내부에 있는 자네들이 나보다 파악을 못 하면 어떡해? 이러니 형님이 그렇게 화를 내시지.”

    “죄, 죄송합니다.”

    민지정이 고개를 숙이면서 허겁지겁 말했다. 천우원은 둘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푹 쉬고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내가 볼 때 한명심은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야.”

    “기회라면….”

    “강은숙과 강철면, 그리고 강명문으로부터 벗어날 기회 말이야.”

    “하지만 지금 교감선생님은 그쪽과 너무 가깝습니다.”

    김영호의 의견을 들은 천우원은 답답하다면서 눈을 흘겼다.

    “한명심이 지금까지 했던 부정들이 뭐뭐 있는지 알고 있나?”

    “학생 개인 과외, 상담, 대회 밀어주기, 성적 조작….”

    “당장 자네들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많지 않나. 파고들면 아주 먼지가 산을 이룰 정도로 나올 거야.”

    거기까지 들은 민지정과 김영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런 인간이 그렇게 청렴결백하려는 인간들과 붙어 있는다? 이게 스파이가 아니고 뭐겠냐 이거야.”

    “그럼….”

    “이번에 이렇게 된 건, 한명심이 나름대로 힘을 써서 양측 입장을 적절히 섞은 결과라는 거지.”

    민지정은 태연하게 회를 집어먹는 천우원을 보며 내심 놀랐다.

    ‘이 정도였다고?’

    이사진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천우원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통찰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벌써 일흔을 넘긴 그였기에, 그냥 자기네들끼리 하는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다.

    “뭘 그렇게 놀란 척 보고 있어? 이 정도도 못 하고 사학재단 이사진 딴 줄 알아?”

    그 말에 민지정이 고개를 휘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대단하십니다.”

    “그래. 그럼 그 대단한 의견을 들은 자네들이 이번에는 의견을 내보게. 3학년이 된 강명문을 어떻게 해야 견제할 수 있겠나?”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민지정과 김영호는 심히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담임이 되면 분명 학생들 상담해주면서 대입 방향을 잡아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강명문의 실적이 올라가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담임이 된 마당에 담임 역할을 그만두라고 항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에잉, 학교 일은 나보다 자네들이 더 잘 알지 않나.”

    “예?”

    멍청하게 되묻는 김영호를 보며 눈살을 팍 찌푸린 천우원은 마지못해 이야기를 했다.

    “이미 담임이 된 교사를 견제하는 방법은 두 개 아니겠나. 결국 강명문이 입시실적을 제대로 내지 못 하게 하는 게 자네들 임무잖아. 그렇지?”

    “네, 맞습니다.”

    “그럼 입시 준비를 못 하게 철저하게 막아 버려. 행정일을 싹 다 몰아주든, 아무것도 주지 않고서 왕따처럼 보내 버리든.”

    그 의견을 들은 민지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결국 민지정과 김영호가 해야 할 일은 강명문의 입시실적을 최소화하는 일이었다. 아니면, 학생들의 합격실적이 강명문의 실력과는 무관한, 학생의 실력이 원래 좋았다, 식으로만 끝나면 되었다.

    그렇다면 강명문이 입시 준비를 못 하게 하면 된다. 그 생각이 민지정의 머리를 강타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감사는 됐어. 대신 이번에 일 잘 풀리면, 그때는 섭섭하지 않게 챙겨줘.”

    천우원의 말을 새기면서 민지정과 김영호가 그에게 큰절을 올렸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꼭 보답드리겠습니다!”

    “부담스럽게 절은 무슨. 잘들 좀 해봐!”

    어느새 술잔을 든 천우원의 신호에 맞춰 민지정과 김영호도 술잔을 들었다. 쨍-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은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 * *

    “쌤, 책 다 읽었습니다!”

    은솔이는 방학 중에 멘토링을 비롯한 교과공부와 함께 독서도 해 왔다.

    대표적인 독서는 인문학과 교양경영 도서였다.

    “이제 좀 읽을 만하냐?”

    “어… 솔직히 아직은 어렵긴 한데, 그래도 읽어야죠.”

    어쩔 수 없다면서 헤헤 웃는 은솔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3학년 3반 배은솔이라….’

    은솔이는 3학년 3반 학생으로 배정되었다. 아직까지는 내부에서만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에 학생들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민주는?”

    “학생회 일 마무리하고 온대요!”

    덩달아 민주까지 3반으로 배정되었다.

    -강 선생, 올해도 입시실적 잘 부탁하네!

    어제 통화했던 한 교감과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입시실적을 부탁한다면서 3반에 배정된 학생들 중에는 공부를 잘 못 하는 녀석들도 제법 배정되어 있었다.

    아마 동석이나 은장이처럼 역전 사례를 많이 만들어 내라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었다.

    물론 민주처럼 최상위권 학생들도 있기는 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번에 배정된 학생들 대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녀석들이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녀석들은 박 선생이 담당하게 될 1반이나 홍 선생이 담당할 2학년에 있었다.

    그러면 기왕 이렇게 된 바에, 학교 전체를 상담 대상으로 삼아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내 가장 큰 무기는 학생에 대한 미래 정보가 아닌, 미래의 입시 그 자체에 대한 정보였으니까.

    그래서 우선 은솔이에게 몇몇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 보기로 했다.

    “은솔아 너 혹시 한용희라고 알아?”

    내 질문에 은솔이는 책을 읽다 말고 말했다.

    “아뇨, 잘 모르겠어요. 왜요?”

    “용희요?”

    그때 민주가 학생회가 끝났는지 우리가 있는 교실로 들어왔다.

    “아, 민주는 알지도 모르겠다. 용희라고 알아?”

    은솔이의 질문에 민주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용희 저기 있던데?”

    “어디?”

    내가 빠르게 묻자 민주가 살짝 놀라면서 손가락으로 1층을 가리켰다.

    “운동장에서 무슨 그림자 같은 걸 재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학생을 떠올렸다.

    “그림자란 말이지? 흐흐흐.”

    “쌤?”

    고개를 돌리고 몸을 위아래로 움찔거리는 나를 보며 둘이 수상하다며 소곤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새로이 맡게 될 학생들 중에서도 가능성이 엿보일 거라는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었다.

    “잠깐 갔다올 테니 동아리 하나 구상해 봐라.”

    “동아리요?”

    민주가 갑자기 동아리냐고 물었다. 은솔이는 그 동아리냐며 손뼉을 쳤다.

    나는 둘을 향해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해피플레이스 봉사동아리. 초기 멤버는 민주, 은솔이, 그리고 용희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