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21화 (121/252)
  • 121화. 나부랭이 쟁탈전

    “뭐라고!?”

    한명심은 민지정의 연락을 받고 기겁을 했다.

    […그래서 이런 그림이 필요합니다.]

    민지정이 이사진 회의에 참석한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어떤 이야기가 돌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었다.

    그래서 오늘의 전화는 그 과정과 방법을 설명 듣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명심이 생각하기에 이 건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꼭 그렇게 해야 하겠나?”

    강명문을 고3 담임에서 제외하겠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싶었다.

    [이사진에서 그렇게 결정을 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 자리가 위험하다, 그런 거 아닌가.”

    [맞습니다, 교감선생님.]

    민지정은 큰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한명심에게 이야기했다.

    [저희도 강 선생을 제외하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만, 이사진의 결정이 그렇습니다.]

    “허허, 강 선생을 빼면 실적이 수직하락 할 것 같은데….”

    실제로 한명심은 여태껏 강명문처럼 드라마틱한 입시실적을 낸 교사를 본 적이 없었다. 최동석과 김은장, 나명천, 이정석. 이 넷만 해도 엄청난 성과였다.

    게다가 이 중 둘은 언론에도 오르내렸고, 특히 최동석은 수많은 곳에서 인터뷰를 하지 않았나. 마음만 먹었으면 온갖 방송에도 출연했을 녀석이었다.

    ‘그런 실적을 낸 사람을 올해 뺀다는 건 말도 안 돼.’

    그렇게 생각한 한명심은 우선 한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일단 이사장님과도 논의를 해 보겠네. 이런 상황인 걸 교장선생님과 이사장님도 아셔야….”

    [교감선생님! 이사장님은 안 됩니다!]

    다급한 민지정의 외침에 한명심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아시지 않습니까. 강문고 이사진과 강은숙 이사장님과의 관계 말입니다.]

    민지정의 말에 한명심은 아, 하며 짧게 탄식했다. 외부로 보이는 모습은 명문사립고등학교 재단이었지만, 내부에서는 아니었다. 강은숙 이사장이 실세이기는 했으나, 나머지 이사진의 눈 밖에 나 있는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고민 좀 해 보겠네.”

    [알겠습니다. 저는 교감선생님께서 저희와 함께하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한명심은 그 말을 들은 후 통화를 끊었다.

    강문고 이사진이 움직였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온갖 부정을 저지른 교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정을 저지른 교사에는 자기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신의 부정한 일을 숨기기 위해 민지정, 김영호쪽과 함께 하면, 제대로 된 실적을 내기가 어렵다. 그건, 이번 1년을 강명문과 보내 보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강명문만큼 입시를 잘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게 한명심의 판단이었다.

    그렇다고 강명문과 강은숙 이사장 편에만 선다면, 나머지 인원들에 의해 자신의 부정이 외부로 알려질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자신의 교사 인생은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될 게 뻔했다.

    “으으으음….”

    고민을 거듭한 한명심은 핸드폰을 들어 강명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교감선생님.]

    “지금 바쁜가?”

    한명심의 질문에 강명문은 잠깐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 대답에 안심이 되었는지 한명심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방금 민지정 교무부장에게 연락이 왔네.”

    그는 최대한 강명문이 오해를 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돌려서 전달했다. 강명문은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그래도 난 자네가 3학년 담임을 맡아 줬으면 좋겠어. 괜찮겠나?”

    한명심은 솔직한 그의 본심을 이야기했다.

    한명심이 구상하고 있는 그림의 중심에는 강명문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게 어떤 그림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강명문은 한명심의 속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올해도 제가 3학년 담임을 맡게 되면, 교감선생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알고 있네.”

    [그리고 교장선생님 도움도 필요합니다.]

    “강철면 교장선생님도 나와 막역한 사이이니 그것도 걱정 말게.”

    [또한, 다른 선생님들의 질투로부터 저를 보호해주셔야 합니다.]

    한명심도 느끼고는 있었다. 초임교사 강명문에게 쏟아지는 관심. 그로 인한 수많은 교사들의 시기와 질투. 그와 친한 몇몇 교사들은 모르겠지만, 다른 교사들 중에서는 강명문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보호해 주겠네.”

    [마지막으로, 이번에 함께 강원도에 갔었던 차석기 선생님과 홍유진 선생님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왜?”

    [차 선생님은 3학년, 홍 선생님은 2학년 담임으로 배정을 고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명문은 그렇게 말하면서 조용하지만, 진중하게 뒷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해 주시면, 저도 교감선생님께 많은 조언과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한명심은 이번 한목대 방문 건을 생각하면서 강명문의 말을 깊이 되새겼다.

    “좋아, 이번 건은 내가 힘 좀 써 보겠네. 한목대 건에 대한 답례라고 생각하게나.”

    그 말을 끝으로 강명문과의 통화를 끝낸 한명심은 곧장 강철면 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장선생님, 한명심입니다. 2011년 담임배정건에 대해 논의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 * *

    “이게 뭐야!?”

    김영호는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보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거, 이거 봤어?”

    “…소리 지르지 마. 나도 봤으니까.”

    옆에 있던 민지정이 이빨을 까득 깨물었다. 임대원은 기사 내용을 찬찬히 살피면서 어떤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지 확인했다.

    “민 부장님, 김 부장님.”

    “왜?”

    “기사 내용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민지정은 임대원이 내미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강문고 학생들은 3학년 국어 강명문을 찾아라! 모든 학생에게 명문대의 기회는 열려 있다!>

    마치 대치동 학원가의 홍보전단문구라도 되는 것처럼. 기사는 요란한 문구와 함께 강명문의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실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임대원이 가리킨 곳에는 다음과 같은 인터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번에 수시와 정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셨다고 하던데요?>

    <네, 정시는 어제 발표가 났는데, 벌써 가군에 지원한 학생들 합격소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선생님은 어떤 학생들을 보고 계신가요?>

    <사전에 저를 찾은 예비고3 학생들을 봐주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졸업생이 도와주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구상 중입니다.>

    민지정은 내용들을 읽으면서 핸드폰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금방이라도 핸드폰을 집어던질 것처럼 노려보던 민지정이 임대원에게 다시금 핸드폰을 넘겼다.

    “더 중요한 건 이 댓글들입니다.”

    임대원은 댓글이 달려 있다며 일부를 읽어 주었다.

    “내년에 강문고 입학하는데 이 선생님을 꼭 찾아가야겠다. 올해 강 선생님과 상담한 덕분에 목표한 대학교에 입학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진로도 찾지 못하고 방황했을 텐데, 덕분에 목표를 갖게 되었다. 후배들아, 대입 고민되면 오대천왕 중 시간의 마왕을 찾아라.”

    “그만, 그만!!”

    김영호가 손사래를 치면서 임대원의 입을 틀어막았다. 민지정 역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격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되면 고3이든 고2든, 담임이든 아니든 모두 강명문을 거쳐 간다는 게 되잖아!”

    “이대로 가면….”

    “3학년 실적 올려도 담임 덕이 아니라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임대원의 말에 민지정과 김영호 두 사람이 주먹을 꽉 쥐었다.

    “교감선생님은?”

    “고민해 보겠다 하시고는 연락이 없어. 아마 교장선생님과 이야기 나누시는 것 같은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지정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황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

    [야 이 병신새끼들아!!!!!]

    발신자는 곽형조 이사였다.

    “과, 곽이사님!”

    “헉.”

    민지정의 반응에 김영호와 임대원이 모두 숨을 죽이고 그녀를 바라봤다. 민지정은 양손으로 핸드폰을 부여잡고는 허리를 연신 숙였다.

    [이 기사 뭐야. 미래교육 이 기사 뭐냐고!!]

    “그, 그게….”

    [내가 강명문 힘 줄이라 그랬지, 날개 달아주라 그랬냐? 언론에 뭔가 나갈 거 같으면 부장이라는 년놈들이 미리 알아채고 커트를 치든 했어야 할 거 아냐!]

    “죄, 죄송합니다!”

    귀에 피가 맺힐 정도로 곽형조에게 수 분간 호통을 들은 민지정은 통화가 끝났는지 핸드폰을 턱 아래로 내렸다.

    “강철면 교장. 교장한테 연락해야 해.”

    “뭐?”

    “강철면 교장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역사든 미술이든 나부랭이들이라도 잡아야지!”

    민지정의 말에 김영호가 허겁지겁 강철면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김영호는 대여섯 번 통화를 시도하다가 아쉬운 대로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는 이빨로 손톱을 뜯는 민지정을 보면서 덩달아 두려움에 휩싸였다. 임대원은 두 사람을 보면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 * *

    “그렇게 하면 되겠죠?”

    “네, 좋다고 생각합니다.”

    강은숙 이사장은 강철면 교장, 한명심 교감과 함께 미팅 중이었다.

    “경력자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주신다는 건 정말 큰 변화입니다. 이 변화는 강명문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강문고에서 이런 바람이 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사장의 말에 강철면이 맞장구를 쳤다. 한명심은 그 둘이 이사진의 속내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사진, 민지정의 이야기를 따로 이들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

    “만약 베테랑 선생님들이 담임선생님이 되어 준다면 올해는 더 많은 실적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강문고의 위상도 보다 높아질 겁니다.”

    “교감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게다가 강명문 선생님을 비롯해 작년에 큰 활약을 한 선생님들도 담임선생님이 되어서 강문고 베테랑들이 힘을 합치면…. 정말 상상만으로도 멋질 것 같네요.”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이사장을 보면서 한명심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한명심은 이사진의 요구사항 일부와 자신의 필요사항 일부를 섞어서 강철면에게 제안했다. 강명문이 3학년 담임으로 가는 것은 필요하지만, 과거처럼 과하게 초임교사들 위주로 담임 배정을 하면 안 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이사장과 강철면으로부터 흡족한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음?”

    회의를 마치고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핸드폰을 확인한 강철면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방금 민 부장에게 문자가 왔는데, 초임교사 중 차석기 선생과 홍유진 선생을 3학년 담임으로 추가하자 그러는군요. 허허, 교감선생님과 의견이 비슷한 걸 보니 다들 참 잘 통하시는 것 같습니다.”

    강철면의 말을 들은 한명심이 이번에 한목대도 그 두 사람과 같이 다녀왔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 두 선생님들도 아주 의욕이 넘치는 멋진 사람들입니다. 3학년 담임을 맡으면 정말 열정을 다해서 가르칠 겁니다.”

    한명심은 미팅 전에 강철면과 전화를 하면서 차석기와 홍유진의 담임배정 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야기가 떠오른 듯 강철면은 한명심의 의견과 민지정의 의견 사이에서 고민했다.

    “홍 선생님이 미술 교사 맞죠?”

    “네, 미술입니다.”

    한명심의 말에 강철면이 눈을 감고 깊이 고민했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그를 보며 말했다.

    “이번 배정은 교감선생님 의견대로 홍 선생님은 고2 담임으로, 차 선생님은 고3 담임으로 하겠습니다.”

    강철면의 결정에 한명심이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이사장도 거기에 대해서는 큰 반대 의견이 없었다.

    “교감선생님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라겠습니다 허허.”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좋을 겁니다.”

    한명심은 강철면의 기대 어린 눈빛을 받으면서 교장실을 나갔다.

    결정된 담임교사 배정표를 보면서 이사장은 강철면에게 말했다.

    “올해도 괜찮겠는데요?”

    “예, 누님. 올해도 실적 챙길 수 있도록 판을 잘 짜야겠습니다.”

    “그 판이 오늘 이 담임배정에서부터 시작이니까요.”

    “사실 누님은 강명문 선생 한 명만 보고 가는 것 아닙니까?”

    강철면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이사장은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다음 날, 강문고 홈페이지에는 2011학년 담임선생님 명단표가 게시되었다.

    <강문고 2011학년도 담임선생님 명단>

    <3학년 1반 박은환>

    <3학년 2반 심지석>

    <3학년 3반 강명문>

    <3학년 4반 정태정>

    <3학년 5반 김영호>

    <3학년 10반 차석기>

    <3학년 14반 류지훈>

    <2학년 1반 홍유진>

    명단표를 확인한 민지정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컴퓨터 옆에 세워둔 머그컵을 집어던졌다. 유리가 박살나는 소리만이 서재 안에서 공허하게 들려왔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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