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우리들의 세상
지금 시점에서 차 선생은 교사로서 본인의 자질을 고민하게 된다.
그가 강문고 사학비리 폭로 사건 때 한 발 빠져 있었던 이유는 학교 내에서의 직장 내 따돌림이나, 교직에 대한 적성 부족 따위가 아니었다.
쉽게 말해, 그는 당시의 나처럼 이렇다 할 입시 성과를 내지 못했었다. 여기까지만이었으면 경력을 쌓으면서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맡은 반의 학부모들은 그가 공부할 생각을 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2013년쯤이었나? 한 학부모가 차 선생을 찾아와서 항의를 했었다. 입시 결과에 대한 항의였다.
그리고 그때, 차 선생은 교사 인생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역사 따위나 가르치는 나부랭이가 담임을 맡으니까 이딴 꼴 나는 거 아냐!
차 선생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던 학부모가 어떤 학생의 학부모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때 차 선생의 표정만큼은 기억에 선명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차 선생은 주요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부러워했다.
-저도 국영수를 담당했어야 했나 후회가 됩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와 술 한 잔 걸치면서 나눈 이야기였다. 차 선생은 이전부터 역사 교과를 가르친다는 이유만으로 강문고 학부모들에게 무시를 받아왔다. 특히, 수능 공부를 주로 하는 학생들이 많았기에 그런 이야기들을 한 번씩 들어왔었다.
그리고 학부모에게 험한 소리를 들은 그날, 차 선생이 가지고 있던 열등감이 절정에 이르렀고, 그의 성격과 태도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우리 편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내년도 입시를 휘어잡기 위해서는 차 선생과 홍 선생의 도움이 필요했다.
정의감 넘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차 선생이 말이다.
“차 선생님은 변하시면 안 됩니다.”
“네?”
그가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나는 손을 모아 호 불며 입김을 냈다. 입김이 사라질 때쯤 천천히 그에게 말했다.
“오석상 선생님 존경하시죠?”
“그건 어떻게….”
“같은 역사 선생님이시니까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건물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서 차 선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가 차 선생님을 제2의 오 선생님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강문고 사학비리 사태는 전생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것이었다.
이사진의 이번 모임과 김영호, 민지정 부장의 움직임만 봐도 그렇다.
그렇기에 나도 더 많은 교사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특히, 전생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으나, 현실의 문제 때문에 날개를 피우지 못했던 교사가 필요했다.
강문고의 교풍에 때 묻지 않은 교사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차 선생과 홍 선생을 내 편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차 선생은 원래 성격만 잘 유지하면 정의감 넘치는 인원이 되어 줄 것이다.
홍 선생은 수영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또 다른 측면에서 활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둘에게는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다.
바로 강문고 교사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경험. 입시실적이었다.
아무리 인성이 좋고 실력이 좋아도, 대학을 제대로 못 보내면 도태되는 곳. 그게 강남서초 명문이라 불리는 강문고의 현실이었으니까 말이다.
“저, 정말입니까?”
“차 선생님, 역사는 좋은 과목입니다.”
“네?”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오석상 선생님도 역사 담당이시지만 입시 실적이 뛰어나시지 않습니까.”
오 선생의 사례를 들자 차 선생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 선생님은 뭐, 사실상 제 롤모델이기는 합니다만… 저와 급이 다르시지 않습니까. 그분은 강문고 사대, 아니 오대천왕 중에서도 최고 실력자라고 불리니까요.”
뭔가 의도하지 않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모른 체했다. 몸을 돌리는 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번 3학년 실적 이야기는 들으셨죠?”
“네 들었습니다. 정말 강 선생님을 비롯해 3학년 선생님들은… 대단하시다 생각합니다.”
그가 진심으로 존경한다면서 말했다.
“사실 저 말고 다른 선생님들은 입시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게 무슨….”
“박 선생님, 지석 선배 모두 저와 입시 준비 같이 하시면서 실력이 오르셨다는 뜻입니다. 지석 선배가 정시 이야기만 했던 거 기억하시죠?”
네 질문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던 선배도 지금은 수시와 정시를 모두 보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 것 같습니까.”
차 선생은 여전히 내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선뜻 답을 내지는 못했다.
“차 선생님도 저와 같이 하시면 오 선생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내 소문은 학교 전체에 퍼져 있었다. 차 선생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내 이야기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러니 올 한해 같이 실적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저로서도 차 선생님이 꼭 필요합니다.”
은솔이의 경우에도 차 선생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새로 맡게 될 반의 학생들 중에도 차 선생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특히, 학생들과의 관계가 좋아서 동아리나 발표, 토론 활동 부분에서 말이다.
“저도 강 선생님이 꼭 필요합니다. 정말 오 선생님처럼 키워 주시는 겁니까?”
“그럼요. 작년에 다른 선생님들이 어떻게 준비하셨는지는 대충 들으셨죠?”
차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가슴을 탁 때렸다.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전일 참가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목적지로 이동했다.
* * *
“그래서 오늘 이렇게 뵙게 되었는데요.”
차 선생과 길을 달리한 나는 교무실의 내 자리로 향했다.
“지금 시점에서 인터뷰를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내 앞에는 신미나 기자가 녹음기와 노트, 펜을 테이블에 두고서 인터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에, 평소 궁금했었다면서 말했다.
“작년에는 은장이랑 동석이 인터뷰 제한도 걸고, 동석이 인터뷰 풀렸을 때도 선생님이 나서서 하시지는 않았잖아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별것 아니라며 미소를 지은 후 바깥을 바라봤다.
“그냥… 기회를 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기회요?”
고개를 갸웃하는 신 기자는 퍼뜩 생각난 듯 펜과 노트를 들었다. 손가락은 벌써 녹음기에 가 있었다.
“신 기자님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가능성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제법 많습니다.”
신 기자는 내 말을 들으면서 열심히 메모를 했다.
“동석이나 은장이처럼 사실은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입시 체제 안에 갇혀 있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강문고등학교, 강남서초의 명문고등학교 중 하나인 이곳에서, 자신이 도태되었다 생각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너에게도 장점이 있다. 나는 그런 기회를 너희에게 주고 싶다. 그러니 궁금한 게 있을 때는 언제든 교무실에서 ‘3학년’ 국어 선생님을 찾아라.”
일부러 ‘3학년’을 강조하자 신 기자가 잠깐 녹음기를 멈추고 이유를 물었다.
“아, 제가 지금 3학년 담임이라 그렇습니다. 자연스럽게 3학년이라 했네요 하하.”
나는 다른 속내를 숨기고서 아무것도 모른 척 멋쩍다는 듯이 웃었다. 신 기자는 의심스럽게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금 녹음기를 켰다.
“선생님의 교육 철학은 무엇인가요?”
“동석이와 은장이처럼 작년에 합격한 학생들 중 또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기회를 주고 싶은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인가요?”
“입시분석력이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신 것 같아요. 본인만의 분석방법이 있을까요?”
신 기자는 이런 류의 질문들을 나에게 던졌고, 나는 그 질문에 능숙하게 답변을 해나갔다.
그리고 신 기자는 마지막 질문이라며 운을 뗐다.
“정시 상담도 잘 해 주시나요? 아직 정시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아 그거요.”
내가 팔짱을 끼며 잠시 말을 멈추자 신 기자가 뭔가 또 있냐면서 기대에 찬 눈을 했다.
“다음 주면 나올 겁니다.”
그 말에 신 기자는 알겠다면서 날짜를 메모했다.
“결과 나오면 알려 주시는 거죠? 어차피 이거 다음 주에 올라갈 기사라서 따로 알려주셔도 괜찮아요.”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했다. 신 기자와 마지막으로 인터뷰 내용을 한 번 더 정리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 * *
방학이라 비어 있는 학교에서 김영호는 민지정, 임대원을 만나고 있었다.
지난주에 만났던 오석상, 류지훈 중 오석상은 함께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류지훈 한 명을 확보한 건 그들에게 있어 큰 수확이었다.
“역시 비슷한 부류로 모집해야 해.”
강문고에서 부정을 저지른 교사들로 모집을 하자는 민지정의 의견에 김영호는 적극적으로 임대원 성적처리연구부장을 추천했다.
임대원은 예상대로 이사진 회의 때의 이야기를 전하자 입에 거품을 문 것처럼 화를 냈다.
-이제 와서 그러자면 어쩌자는 겁니까! 여태 아무 말 없이 뒤를 닦아준 주제에 무슨….
흥분한 임대원을 진정시키면서 김영호와 민지정은 이후의 작전을 도모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일이 바로 오늘이었다.
세 사람은 양재역 인근의 조용한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추천할 사람들은 또 누가 있지?”
“전체 3학년 반 구성을 생각하면… 열 명 정도 추천할 수 있겠습니다.”
“업무 분장 확실하게 해야 해. 잘못해서 부장들한테 담임이라도 하라 하면 안 되잖아.”
김영호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현실적인 여건도 고려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실적을 만들기는 어려워. 업무분장 확실하게 해야 해. 아무리 베테랑 교사라 해도 사람 몸은 하나니까.”
“그럼 초임교사도 넣어 보는 건 어때?”
민지정의 제안에 김영호가 눈을 빛냈다.
“하지만 강명문이 이미 손을 뻗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반대로 임대원은 한층 조심스러웠다.
그런 임대원을 향해 한심하다며 민지정이 이야기를 했다.
“약점이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우리쪽으로 유혹해야지. 갑자기 3학년 담임을 전부 경력자들이 맡게 되면, 외부에서도 말이 많을 거야. 생각을 좀 하자고.”
셋은 이사진의 부정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서로 의형제 같은 존재가 되었다. 민지정의 신랄한 비난에도 임대원은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지 않고서 좋은 의견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일리가 있네.”
민지정 역시 신중하게 판단을 하고서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까지 초임교사들이나 기간제 교사가 담임교사를 해왔던 강문고에서 갑자기 경력자 교사로만 담임을 배치한다? 학부모들이 이상하게 바라볼 가능성이 있었다.
“쓸데없는 잡음은 최대한 피하는 게 맞기는 하니까. 게다가 학부모들에게 강명문의 인기가 꽤 높은 것도 조심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인원을 추천하실 겁니까?”
임대원의 물음에 민지정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비주류 교과목 담당들을 꼬셔야 하지 않겠어?”
“비주류?”
민지정이 입가에 비열한 웃음을 띠고서 김영호와 임대원을 번갈아 바라봤다.
“미술, 음악, 체육, 역사, 정보 같은 교과목 담당 교사들 중 초임교사가 있는 교과목을 먼저 파야지. 약점이 있어야 우리가 쉽게 데리고 올 거 아냐.”
그녀의 말이 또한 맞다고 생각했는지 김영호가 손뼉을 쳤다.
“좋네! 어차피 우리 학교에서는 입시실적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 기간제 교사면 실적만 좋을 경우 내년에 재계약도 해 줄 수 있다고 꼬실 수 있고!”
그는 즐거운 듯 소리를 질렀다. 임대원이 목소리를 낮추라며 주의를 주었지만, 김영호는 여전히 신이 나서 민지정에게 물었다.
“아주 좋아! 그럼 누가 있을까?”
“기간제 교사 중에는 미술에 홍유진 선생이 있고, 정교사 중에는 역사 담당인 차석기 선생이 있지. 접촉해 볼까?”
김영호는 민지정에게 당장 내일 아침에 접촉해보라고 지시했다. 민지정이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고 답했다.
“저는 다른 인원들이 누가 있을지 물색해 보겠습니다.”
“그래. 말했듯이 업무가 과중되면 안 되니 베테랑이나 초임 중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인원을 추려 봐.”
임대원에게도 지시를 내리던 김영호가 비열하게 웃었다.
“누가 보면 네가 리더인 줄 알겠다.”
민지정의 말에 김영호가 잔을 들었다.
“우리끼리 리더가 무슨 의미가 있나. 교무부장님이 리더 하셔도 되고!”
그 말에 민지정도 피식 웃으면서 두 사람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민지정이 건배사를 말했다.
“강명문을 학교에서 끌어내리고, 우리들의 세상을 제대로 만들어 보자고.”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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