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19화 (119/252)
  • 119화. 차석기 선생

    “고생하셨습니다.”

    오 선생의 연락을 받은 나는 펜션 밖에서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학생들은 지석 선배의 픽업을 받고 리조트로 돌아갔다. 남은 교사들도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

    나는 차디찬 날씨에서도 오 선생의 전화를 받기 위해 밖에 나와 있었고.

    “으 추워.”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류 선생에게도 전화가 왔다. 모든 사항들을 전달받은 나는 웃으면서 궁금한 걸 물었다.

    “그래서 그쪽이랑 우리쪽이랑 다 준비한다 그랬습니까?”

    [뭐!? 아, 아니, 그게, 이중으로 들어가면 더 스파이처럼….]

    “제가 그런 스파이 안 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내가 목소리를 굳히자 류 선생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 그래도 안 할 수가 없잖아. 지금까지 했던 부정사례 다 신고한다 그러고, 자네도….]

    “사이트 문제도 있으니까요. 잘하셨습니다.”

    어차피 류 선생은 그쪽에도 붙고 이쪽에도 붙을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예견했던 상황이라 피식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대신 선생님이 자발적으로 이중으로 활동하시는 만큼 스파이 역할도 제대로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아, 알았어! 제대로, 제대로 할게! 메인은 언제나 강 선생 팀이지 하하하!]

    그가 호기로운 척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누구예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깐 바람을 쐬러 나왔는지 패딩을 입은 박 선생이 옆으로 다가왔다.

    “비밀연애라도 해요?”

    “그런 거 안 합니다. 다음 주에 예비고3 학생들 상담해 줄 생각하면서 전략 구상 중이었죠.”

    “벌써 잡아뒀어요?”

    박 선생은 나를 향해 대단하다고 말하면서 입김을 호 불었다.

    “박 선생님도 준비해 주세요. 민주 영어 세특 잘 적혀야 합니다.”

    “아… 입시가 끝난다 싶었더니 또 이렇게….”

    “입시에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끝나면 또 오고 끝나면 또 오고, 돌고 도는 거죠.”

    나는 2011년의 일정들 중 방학 때의 작업들을 떠올렸다. 많은 부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나는 내년에 어떤 학생들을 맡게 될지 결정이 나지 않았다.

    류 선생의 말에 따르면 내가 고3 담임을 못하게 막으려고 한다고 하는데, 그건 한 교감과 이사장이 다 커버 칠 테니 괜찮을 거고.

    “아무튼,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한숨만 나오네요. 나 피곤해서 병원 입원하거나 하면 병원비 다 강 선생님한테 청구할 테니 그렇게 아세요.”

    “보험사한테 하시면 되지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펜션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먼저 잠이 든 교사들을 보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 * *

    “아…뻐근하다….”

    “너무 열심히 돌았어.”

    우리는 일요일에도 학생들과 합류해서 같이 스키와 보드를 탔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모두가 근육통을 호소했다.

    “아직 팔팔한 놈들이 죽는 소리는. 정신들 차려.”

    나는 조수석에 앉아서 뒤에서 징징대는 녀석들에게 타박을 주었다. 차량에는 총 8명의 인원이 타고 있었다.

    한 교감은 학교 일 때문에 먼저 들어가겠다면서 아침 일찍 출발했다. 명천이와 채영이는 부모님이 데리러 오신다면서 스키장까지 찾아왔다.

    물론 녀석들은 강하게 저항했지만, 등록금 안 내준다는 협박에 꼬리를 내렸다.

    대신 명천이 어머니인 학부모회장 차량에는 태성이가, 채영이 아버지 차에는 정아가 같이 탔다.

    그래서 우리가 렌트한 승합차에는 아홉 명이 탑승한 상태였다.

    방금 징징댄 녀석들은 정석이와 은장이였다.

    “그러고 보니 미술쌤도 엄청 잘 타시던데요?”

    “몰랐어? 홍 선생님 수영선수 출신이잖아.”

    “네!?”

    놀란 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홍 선생을 돌아봤다. 홍 선생은 부끄럽다면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니 뭐, 그냥… 보드는 취미로 타기도 했었고… 지금은 수영 안 해.”

    홍 선생의 말에 학생들이 신기하다면서 질문을 쏟아냈다. 수영을 배웠는데 왜 미술 선생님이 되었는지, 수영선수여서 체력이 그렇게 좋은 건지 등.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민망했는지 홍 선생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의 질문에는 성실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그런 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은장이가 나에게 물었다.

    “쌤, 이제 내일부터 또 학교 가세요?”

    “그래야지. 너희 후배들 생기부 정리 때문에 가야 해.”

    은장이가 누군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로 한 서울한국대 붙었으니까 은장이도 자격이 있지. 너도 올래?”

    “네!”

    마침 방학이라 딱히 할 일도 없었다면서 은장이가 흔쾌히 내 부탁을 수락했다. 차 선생, 홍 선생이 무슨 일인지 눈을 껌뻑이자 박 선생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학생들 피 말리게 하면서 대학 입시 도와준다는 이상한 표현을 쓰면서 말이다.

    “아무튼, 차 선생님과 홍 선생님도 준비해 주세요. 앞으로 학교에서 할 게 많을 겁니다.”

    “저희가요?”

    나는 둘을 돌아보면서 씨익 웃었다. 두 사람은 불안한 듯 아닌 듯 박 선생과 지석 선배를 번갈아 바라봤다.

    * * *

    시간은 흘러 목요일, 나는 당직도 아니었지만 학교에 나와 있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공식을 이렇게….”

    “오…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민주와 은솔이는 방학을 이용해서 멘토멘티활동을 했다. 요리 공부한답시고 공부를 다소 소홀히 했던 은솔이는 학원도 하라는 숙제만 하는 정도만 공부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기초가 잡혀 있기는 했으나, 응용력이 지나치게 부족했다.

    “개념은 내가 설명해 준 것들 있지? 3학년 때 배울 교과목들도 선행해 두면 좋기는 한데, 일단은 개념부터 다시 잡아 보자.”

    민주는 그런 은솔이의 실력에 맞춰서 멘토링을 해 주었다.

    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확실히 괜찮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열심히 하네요.”

    내 호출에 응한 박 선생이 옆에서 에너지드링크를 마시며 말했다. ‘오금 프로젝트’ 때 남은 음료였다.

    “네. 박 선생님이 민주랑 은솔이 영어 세특 저 잘 적어 주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민주는 서울한국대 경영학과, 은솔이는 연희대 외식경영학부라고 하셨죠?”

    나는 박 선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올 초부터 일이 많이 생기네요. 며칠 전에 놀러갔다온 게 꿈만 같아요.”

    “입시는 또 현실로 다가오니까요. 지금부터 예비고3들 잘 챙겨줘야 합니다.”

    옆에는 오늘 당직인 차 선생이 은솔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차 선생에게 다가가서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엇, 강 선생님!”

    “선생님이 동아리 선생님이시니 은솔이 학생부 내용 잘 적어 주셔야 합니다.”

    “은솔이를요?”

    “네. 은솔아 너 역사동아리에서 하라고 했던 숙제 했냐.”

    한참 멘토링을 받던 은솔이가 고개를 돌리고는 했다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녀석이 꺼낸 종이를 확인했다.

    “오 잘 했네.”

    종이에는 <역사 속 우리나라 전통 음식의 영양성분 알아보기>, <수라상의 현대화와 궁중요리 경영> 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해 보니까 어때?”

    “솔직히 재밌었어요. 쌤 이런 주제는 어떻게 생각하신 거예요?”

    은솔이가 나에게 대단하다면서 말했다.

    <우리나라 전통음식의 영양성분을 분석해서 나름의 주제 찾아보기. 수라상 같은 걸 조사해보고 외식경영과 엮어 보면 좋을 것.>

    이런 내용을 체크리스트 종이에 적어 주었으니, 은솔이가 그렇게 말할 만도 했다.

    나는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는 녀석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 내용에서 느낀 점을 정리를 좀 해야겠다.”

    “느낀 점이요?”

    “그래. 차 선생님, 준비되셨죠?”

    나는 차 선생을 보며 물었다. 그는 노트와 펜을 꺼내고는 은솔이의 이야기를 받아적을 준비를 마쳤다.

    “그럼 정리해 보자. 두 주제로 공부를 해 보니까 어땠니?”

    “이전에는 그냥 요리가 좋았다?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어요.”

    “뭐가?”

    “음… 다 알아보고 나니까 다른 음식들도 공부해 보고 싶다?”

    그 말에 차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은솔아. 크게 다른 내용은 아닌 것 같아. 좀 더 이야기해 줄래?”

    차 선생의 물음에 은솔이가 손을 책상 위에 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런 둘을 보면서 넌지시 말했다.

    “전통음식 분석해 봤으니까 이제는 현대 음식 영양분도 생각해 보면서 현대인의 식습관이 어떠한지 분석해 보고 싶은 거 아냐?”

    “어, 맞아요! 그거예요! 패스트푸드나 편의점 도시락 같은 간편한 음식들! 그런 것들도 좀 알아보고 싶어요!”

    “그럼 현대인의 패스트푸드처럼 수라상도 그렇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서 이후 경영적인 측면으로도 만들어 볼 수 있겠네. 수라상의 도시락화, 같은 거.”

    내 말에 은솔이가 신이 나서는 요리에 대한 관심을 마구 쏟아냈다.

    “수라상의 도시락화… 저 이거 만들어 봐도 돼요?”

    은솔이의 질문에 나는 해 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솔이는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면서 노트에 이것저것 적어내려갔다.

    차 선생은 나와 은솔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을 열심히 움직였다.

    * * *

    “선생님은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십니까?”

    은솔이와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민주와 멘토링 시간을 가지게 한 후, 나와 차 선생은 잠시 교정을 한 바퀴 돌았다. 추운 날씨였지만, 각자 손에 따뜻한 캔 커피를 하나씩 쥐고 있었기에 조금 나았다.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학생들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감을 못 잡겠습니다.”

    차 선생은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지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차석기 선생. 학생들에게는 석기시대라고 놀림을 받는 교사였다. 그는 성격이 시원시원했지만, 학생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성격상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게 맞았다.

    그러다 보니 전생에서도 그는 학생들과 서글서글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막상 입시적인 측면에서는 도움을 많이 주지는 못했다.

    “학생들과 친하기는 하나…여전히 입시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냥 공부 잘 하는 애들이 스카이 가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선생님 보면 또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는 솔직하게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같은 초임교사임에도 나와 박 선생은 벌써부터 실적을 내고 있었다.

    물론, 박 선생의 실적에는 내 지분도 많지만 아무튼.

    그런 우리 둘을 보면서 나보다 1년 더 빨리 들어온 차 선생은 초조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 중에서는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이 없었으니까.

    “강 선생님은 입시 공부를 어디에서 하십니까?”

    “공부랄 게 있나요. 요즘은 인터넷 검색만 잘 해도 다 나오니 그걸로 공부하는 겁니다.”

    그러자 차 선생이 그럴 리가 있냐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얼추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비밀이요.”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 척 태연하게 물었다.

    “어떤 비밀 말씀이신지….”

    “교육청에 아시는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석 선생님께요.”

    그 말에 들고 있던 캔커피를 떨어뜨릴 뻔했다. 차 선생은 내 반응을 보면서 역시 맞지 않냐며 추궁했다.

    “아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튼, 저는 혼자서 공부합니다.”

    “전교 1등이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 라고 하는 것 같네요 하하하.”

    차 선생이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그 웃음을 따라 작은 소리로 웃었다.

    “사실 얼마 전에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요 교과도 아닌 주제에 입시를 잘 알겠냐, 이런 이야기 맞습니까?”

    “!!”

    차 선생이 흠칫 놀라면서 나를 돌아봤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놀라움이 서린 얼굴이었다.

    “그걸 어떻게….”

    놀란 차 선생을 보면서 나는 역시 그랬냐며 들고 있던 캔 커피의 뚜껑을 땄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그에게 말했다.

    “올해 입시실적만 제대로 내시면, 주요교과 이야기는 쏙 들어갈 겁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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