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18화 (118/252)
  • 118화. 연합 모의

    일식집을 나오면서 김영호와 민지정은 생각이 많아졌다.

    -강명문에게 고3 담임을 맡기지 마라.

    곽형조는 두 사람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한명심 교감과 이사장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한심한 새끼야. 내가 경력자들이 입시 실적 부담 때문에 일부러 고3 피하는 거 모를 줄 알아? 민지정이 너도 그래서 애들 입시 안 봐준 거잖아.

    -그건….

    -그 따위 마인드로 우리와 같이 일이나 해보겠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년에 경력자 선생들로 올해 고3 판 다시 짜. 그리고 강명문보다 더 많은 실적을 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명심이랑 강은숙이한테는 강명문에게 감명받아서 경력자들이 열심히 더 실적 올리겠다, 뭐 이런 핑계 대면서 대충 둘러대고. 알아들어?

    그래서 두 사람은 대체 누구와 손을 잡고 준비해야 그게 가능할지 고민했다.

    사실 지금까지 고3 담임을 경력자 교사들이 피해왔던 이유는 입시 실적 때문이 맞았다. 대학교를 제대로 보내지 못하면 결국 그 부메랑은 담임교사에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동네 학부모들이 좀 강성인가. 매년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하나는 생각에 일부러 피해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망할 영감탱이 같으니.’

    그런데 이번에는 이사진의 눈을 쉽사리 피해갈 수가 없었다.

    -이번에 잘만 하면 지금까지의 부정은 다 덮어주도록 하지.

    -정말이십니까?

    -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는 말 안 해도 알 거라 생각하네.

    사실상 교사 인생이 걸린 문제가 걸리기도 했기 때문에 더는 무시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

    “난 류 선생을 부를까 해.”

    “괜찮네. 이번 수리논술 합격생도 좀 있지 않았나?”

    “맞아. 류지훈 선생 정도면 경력도 있고, 실력도 있으니….”

    민지정은 류지훈과 입시실적 작업을 해나갈 생각이었다. 현재 그녀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그나마 류지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도 최근에는 류지훈이 강명문과 같이 다니는 듯했기에 불안하기는 했지만, 류지훈의 성격을 알기에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후… 나는 석상이밖에 없는데.”

    “얼마 전에 교무실에서 싸우지 않았어?”

    “그래서 고민이야. 음….”

    “아니면, 올해 고3 학생들은 진정한 교사 마인드로 진로진학을 도와주겠다고 꾸며 보는 건?”

    민지정의 조언에 김영호가 무릎을 탁 쳤다.

    “그거네! 좋아, 그럼 지금 당장 두 사람에게 연락하자고.”

    * * *

    오석상과 류지훈은 노량진으로 넘어갔다. 공무원시험과 수능시험을 대비하는 학원들이 즐비한 건물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 근처 어디일 텐데….”

    오석상은 근처 학원에서 만든 로고송을 들으면서 주변의 가게를 탐색했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이라며 노래가 울려 퍼지는 건물의 뒤편으로 돌아가자 김영호가 말한 가게가 보였다.

    오석상은 류지훈에게 한 바퀴 돌고 오라고 신호를 준 후 호프집 문을 열었다.

    “여기 있었네. 뭐야, 민 부장도 있었어?”

    오석상은 김영호와 함께 앉아 있는 민지정을 보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 왔어?”

    “오셨습니까.”

    교무부장이기는 하지만 선배인 오석상을 향해 민지정이 깍듯이 인사를 했다. 김영호와는 달리 친하게 지내는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도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학교 근처도 있는데 굳이 여기로 부르고.”

    “있어 봐. 곧 류지훈도 올 거야.”

    김영호는 학교 관계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이 동네까지 나온 건 비밀로 했다.

    “류 선생이?”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김영호에게 되물었다. 김영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호출벨을 눌렀다. 곧이어 적당히 주문을 한 김영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류지훈을 발견했다.

    “왔군.”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어쩐 일로….”

    류지훈은 옆을 돌아보며 오석상을 발견하고는 잠깐 놀란 척 연기를 했다.

    “일단 한 잔 마시고 이야기하자고.”

    김영호가 맥주잔을 들고 건배를 외쳤다. 오석상과 류지훈은 떨떠름한 표정을 한 채 잔을 부딪치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사실 오늘 이사진 회의가 있었어.”

    “그건 아까 전화로도 말했네.”

    “그래. 가서 진짜 호되게 깨지고 왔다. 뭣보다….”

    김영호는 이사진 회의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학교를 위하는 척하면서 말했다. 초임교사 한 명에게 입시를 맡기는 게 말이 되냐, 베테랑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여 봐라, 따위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번에 너희 둘을 부른 거야. 내가 강문고에서 가장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입시 전문가는 자네들 두 사람 아닌가.”

    “강 선생은 어쩌고?”

    “초임교사에게만 맡긴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는데, 어떻게 부르겠나. 선배들끼리 뭉쳐서 하나 해 봐야지.”

    오석상은 김영호의 말을 들으면서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 웃음이 마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비웃는 것 같기도 했고, 화가 나서 일그러진 것처럼도 보였다.

    “왜? 뭐 이상한가?”

    “아니, 아니야. 민 부장도 같은 생각인 거야 그럼?”

    오석상의 질문에 민지정이 들고 있던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강 선생 한 명에게 너무 몰아준 것 같아서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볼 땐 얼굴에 반성의 기미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기분 탓인가?”

    갑작스러운 오석상의 말에 김영호와 민지정이 깜짝 놀라며 당황해했다. 그러나 그 당황스러움도 잠시, 김영호가 침착하게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자네가 나나 민 부장에게 실망하고 있는 건 알아. 그래도 오늘은 정말 반성을 많이 했네.”

    “그러면 둘이서만 개과천선해서 잘해 보게. 난 이 이상한 작당 모의에서 빠지겠어.”

    오석상은 맥주잔에 남아 있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테이블 위에 쾅 잔을 내리쳤다. 그 기세에 김영호가 몸을 움찔했다.

    “뭐? 여태는 그런 생각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학생들을 생각해? 반성을 했어?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건가? 지금 내가 볼 때 자네의 모습이 어떤지 알고 있나?”

    그는 옆에 세워둔 엑스칼리버를 손에 쥐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마음 같아서는 탈선한 학생에게 잔소리를 하듯 온갖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희가 강원도에 가 있는 사이 전화가 올 겁니다.

    -누구에게?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민지정 교무부장, 아니면 김영호 3학년 학년부장.

    -그들이 왜 우리한테 전화를 하나?

    -최진원 원장은 강문고 이사진인 조신자 이사의 남편이었습니다.

    -뭐!? 진짜야?

    -그렇기에 이사진에서는 꽤 난리가 났을 겁니다. 강은숙 이사장님을 빼고 저들끼리 회의든 식사자리든 가지겠지요.

    -그렇겠군. 그래서?

    -아마 저를 견제하려고 할 겁니다.

    오석상은 출발 전날, 강명문이 자신을 불러두고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네를 왜?

    -부정한 방법 없이 입시실적을 수능이 아닌 수시로도 내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곧 발표될 정시 결과까지 나오면….

    -초임교사가 키워 갈 힘을 경계할 거다?

    -네, 비슷합니다. 아무튼, 그쪽에서는 내년에 3학년 담임을 경력 5년 이상, 아니 10년 이상의 베테랑 교사로만 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강명문이 이야기했던 지금의 상황들이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만약 대면 미팅이라도 하자고 했을 때는 꼭 가셔야 합니다.

    -굳이? 난 김영호 그 자식 꼴도 보기 싫어.

    -그래도 가셔야 합니다. 무엇을 제안하든지 간에 김 부장님, 민 부장님의 눈과 표정을 살피세요.

    그리고 지금 그는 김영호의 눈을 보고 그의 말이 거짓되었음을 파악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지금까지의 김영호가 학생들을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었다.

    교사 생활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김영호가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건 둘 중 하나였다.

    협박이거나, 대가를 약속받았거나.

    -꼭 직접 보시면서, 그들의 속내를 알아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한 오석상은 김영호의 눈을 빤히 바라봤던 것이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 있는 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점을 잃고 떨리는 눈동자. 무언가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행동에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다른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눈이었다.

    그건 민지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알아서들 잘 해보라고.”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엑스칼리버를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떨림은 앞에 있는 둘이 자신들의 목적만을 위해 학생들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이었다.

    “자, 잠깐만!”

    “할 말 더 남아 있나? 딱 보니까 실적 올리려고 실력 있다 생각하는 선생들 꼬드기려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거 안 통하네. 나를 아직도 모르나?”

    오석상은 류지훈과 민지정을 한 번씩 돌아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호프집을 빠져나갔다.

    김영호는 그런 오석상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류 선생은 같이 하겠지? 그렇지 않으면 자네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 모두 까발려질 수도 있어.”

    류지훈은 민지정의 말에 긴장한 채 입을 다물었다.

    -류지훈 선생님에게도 제의가 갈 겁니다.

    -어, 어떤 제의?

    -다가올 2012학년도 입시 실적 잘 만들어 보자, 뭐 그런 제의일 겁니다.

    강명문은 오석상과 먼저 만난 후 류지훈에게도 연락을 했었다. 류지훈에게 민지정이 연락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강명문은 한 가지를 당부했다.

    -뭘 하자 그러든 하겠다 하십시오.

    -어떤 일일 줄 알고?

    -안 하겠다 하시면 선생님의 과거 행적들을 모조리 밝히겠습니다.

    강명문의 협박 아닌 협박을 떠올리면서 류지훈은 몸을 덜덜 떨었다. 그 떨림이 자신의 말 때문이라 생각한 민지정은 흐뭇하게 웃었다.

    “하겠습니다.”

    표정이 좋지 않던 김영호는 류지훈의 말을 듣고 화색이 돋았다. 수학교과와 수리논술에서의 실력파 교사가 같은 편이 되었다. 그 점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라 생각했다.

    ‘사이트 운영자였던 건 절대절대 숨겨야 해!’

    류지훈은 그것만큼은 숨기겠다고 다짐하면서 민지정에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간단해. 강명문이 올해 입시실적 못 내게 견제하면 돼.”

    그 말에 류지훈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학교 전체를 위해서는 실적이 다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 류 선생, 아직도 모르겠나?”

    이제 오석상도 나갔겠다, 김영호는 본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올해 입시실적 안 좋으면 자네나 우리나 다 모가지야. 강명문보다 실적이 좋아야 해.”

    “그러니까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까? 다 같이 열심히 만들어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류지훈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이야기했다.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강명문이 아닌 다른 이들과 얽히는 게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산업스파이처럼 활동하라는 게 아닙니다.

    강명문은 그에게 위장 가입을 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본 후 저에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선생님이 그들과 같이 하든 안 하든 저는 상관없습니다. 그건 자유롭게 하세요.

    -미팅이 생기면 오 선생님이 그들과 뜻이 맞지 않아 먼저 나가시게 될 겁니다. 그러면 김 부장과 민 부장은 본색을 드러낼 거고, 그때 넌지시 물어보면 됩니다.

    -이것만 제대로 해 오면 선생님의 치부는 얼마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류지훈은 김영호와 민지정에게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처음 그들은 입시실적이 초임교사보다 좋지 않다는 점을 이사진에게 지적받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렇다고 학교 실적을 깎아 먹을 짓을 할 이유는 없었다.

    개인의 역량이 더 키워지면 학교 전체로 따졌을 때는 오히려 이득이었으니 말이다.

    “이사진에서 초임교사보다 실적 못 내면 교사에서 잘라 버릴 거라 했어. 그러니 자네나 우리처럼 부정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그건 대충은 알겠지만… 이사진의 이사님들도 그런 겁니까?”

    류지훈의 질문에 김영호는 몸을 숙이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 자네도 알고 있는 게 움직이기 편할 테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이사진은 강명문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어. 그래서 그의 힘이 더 커지지 않도록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김영호의 말을 경청한 류지훈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저는 투트랙으로 준비해도 되겠습니까?”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류지훈이 둘에게 물었다. 김영호와 민지정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서 호프집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세팅된 맥주잔을 들고 한 번 더 건배를 외치며 술판을 벌였다.

    무르익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류지훈만이 불안한 듯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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