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17화 (117/252)
  • 117화. 이사진 회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일식집에 다섯 명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한 가닥 하던 사람들로 보이는 듯 종업원들이 그들을 맞이할 때마다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래서, 신자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개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성이 반찬으로 나온 회를 한 점 씹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니까요. 지금도 은퇴하라고 집에서 난리예요. 애들도 엄마 고생 많이 했으니까 그만두라고 할 정도니.”

    강문고 이사진 중 한 명인 조신자는 테이블에 놓아둔 물컵을 소리 나게 위로 탁! 내리쳤다.

    “망할 개자식들.”

    “남편분이 이번에는 제대로 못 했나 봐?”

    그렇게 물어본 사람은 강문고 이사진인 한무회였다. 조신자는 한무회를 쏘아보며 코웃음을 날렸다.

    “그쪽 남편보다는 더 뛰어나니까 신경 끄시죠.”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남편이 더 뛰어난데. 동생 남편이 잘하는 게 뭐가 있지?”

    “그러는 언니네도 그리 잘하는 게 없지 않나요? 벌써 퇴직한 지 십 년이 넘은 평검사 따위….”

    “그만 그만!”

    조신자와 한무회는 서로를 노려보던 눈을 돌리고는 앞에 놓인 초밥을 집어 먹었다. 그런 둘을 보면서 한숨을 쉰 주현서가 옆에 앉은 곽형조를 돌아봤다.

    “이사진이 오늘 긴급 회동을 한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까?”

    주현서의 물음에 곽형조가 눈을 감고 천장을 향해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서 말다툼을 하던 두 사람을 노려봤다.

    “싸우라고 모인 건 아니지 당연히.”

    그 말에 뜨끔한 조신자와 한무회가 불만을 속으로 삼키면서 음식들을 입에 욱여넣었다.

    “안건은 다른 게 아니다.”

    곽형조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강문고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강명문이 강원도에서 학생들과 스키를 타고 있을 무렵, 강문고 이사진은 긴급 회의를 열었다.

    다름 아닌, 조신자의 은퇴와 관련된 소문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 이사 바뀐대.

    -진짜? 근데 이사 바뀌면 우리한테 좋을 게 있나?

    -더 좋은 사람 오면 수학여행 유럽으로 보내주고 그러지 않을까?

    -대박. 이번에 이사장님이 입시에 쓰라고 노트북도 주셨던데.

    -그거 빌려준 거임. 준 거 아님.

    -어쨌든 이사장님 사비 썼다더라. 그 정도면 통 큰 거 아닌감.

    -좋은 사람 = 부자 이거 아니냐 그럼?

    그런 이야기들이 SNS를 통해 돌고 있었다. 곽형조는 이 사실을 손자를 통해 전해 들었다.

    손자는 올해 강문고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와 관련된 정보들을 찾아본 것인데,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어서 할아버지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곽형조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조신자가 최진원 원장의 설명회 망신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사실 확인차, 향후 대응 방향 설정차 이 자리를 만들게 되었다.

    “신자야. 진원이 일은 사실이냐.”

    “그… 원래 제가 그렇게 한 건 아니고 남편이, 그리고 은숙이 이년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 듣고 싶지 않다며 손을 휘휘 내젓는 곽형조를 보며 조신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입니다.”

    “은퇴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도?”

    “맞습니다.”

    “그 시기가 설명회 망친 직후라는 것도?”

    “…네.”

    조신자의 대답을 들은 곽형조는 크흠, 헛기침을 했다.

    “한명심이는 뭐 하나?”

    “그… 지금 강원도에 있다고….”

    “강원도?”

    주현서가 곤란하다는 듯 말하자 곽형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판국에 놀러다니는 건가?”

    “방금 전화로 듣기로는 워크샵을 갔다고 합니다. 한목대 입학사정관, 의과대학장과 미팅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누구와 갔다고 하나?”

    “강명문이라는 교사를 비롯한 몇몇 교사들과 갔다고 합니다.”

    “강명문?”

    곽형조는 강명문의 이름을 듣자마자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하다며 인상을 썼다.

    “왜, 그 있지 않습니까. 내신 5등급 연천대 합격 신화.”

    “아아아! 생각났네. 그 젊은 교사랑 같이 갔어?”

    “네.”

    “그러고 보니 진원이도 강명문? 그 교사랑 같이 설명회 했다가 개망신 당한 거 아닌가?”

    조신자는 남편의 일이 다시금 언급되자 표정을 굳히면서 겨우 답변했다.

    “…맞아요.”

    “허허, 그렇구만. 강명문이란 말이지?”

    초임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을 대치동 학원가에서 판을 벌렸던 최진원을 망신 주고, 지금은 한명심과 함께 다닌다?

    곽형조는 그 그림으로부터 몇 가지 추측성 해석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강명문, 그자를 견제 해야겠어.”

    그 말에 주현서와 한무회가 동시에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왜 그 선생이 갑자기 인기가 많아졌지?”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올해 실적도 좋았을 겁니다. 당장 5등급 학생을 연천대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곽형조의 질문에 답한 건 천우원 이사였다. 천우원은 이미 강명문에 대해서도 조사를 많이 해두었었다.

    “또 어떤 실적이 있다고 하나?”

    “서울한국대, 한목대 의대, 성실성대 인문논술 등 최상위 학교들은 기본이고 중위권 학교들도 학생들이 많이 합격했다고 합니다.”

    조신자가 자세한 대입전형을 알지 못해 천우원에게 되물었다.

    “벌써 수능 발표가 났어?”

    “정시가 아니고 수시. 아직은 수시만 결과가 나왔어.”

    “수시가 뭔데?”

    “공부 좀 하자, 신자야. 내가 이 자리에서 다 알려 줄까?”

    천우원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답하자 조신자가 몸을 움츠렸다.

    “그럼 정시까지 합치면 합격실적이 꽤 되겠군.”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큰일이구만. 이 동네에서는 대입실적이 전부인데….”

    곽형조가 걱정을 하자 주현서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그래도 이 동네는 수능을 더 중요하게 보니까 좀 낫지 않을까요?”

    “자네, 전국에서 몇 %가 수능 1등급 받는다고 생각하나?”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이사진 네 명 모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곽형조는 그들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이런 인간들과 작전모의 중이라니. 전국 4% 안쪽 애들만 1등급 받아. 그런데 강남서초 애들이라 해서 다 1등급, 2등급 받나?”

    “그건 아닙니다.”

    “그래. 그런데 부모들 눈은 어디에 가 있어. 스카이랑 의대에 있잖아. 근데 자기 자식은 4%에 못 들어가서 스카이에 못 가. 어라? 그런데 수능 등급이 안 돼도 다른 방법으로 스카이를 갈 수 있다? 그리고 그걸 해주는 교사가 강문고 초임교사다? 경력자도 아니고? 지금 이거 쪽팔릴 일 아니냐 이거야.”

    곽형조는 강문고에서 자신이 돌봐주었던 교사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는 앞에 앉아 있는 조신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민지정에게 연락해. 지금 당장.”

    조신자는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두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걸리자마자 곽형조는 조신자의 핸드폰을 빼앗아서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적막감이 감돌던 일식집 안쪽으로 곽형조의 사자후가 퍼져나갔다.

    “5분 이내로 김영호도 데리고 와. 할 얘기 있으니까.”

    * * *

    김영호와 민지정이 일식집에 도착한 건 곽형조와 통화가 끝나고 십여 분이 지난 뒤였다.

    “앉아.”

    곽형조의 위압적인 모습에 두 사람이 몸을 벌벌 떨며 자리에 공손하게 앉았다.

    “김영호 너. 고3 담당 아니었어?”

    “네? 네 맞습니다.”

    “넌 이번에 실적이 어때.”

    “아직 정시 발표가 나지 않아서….”

    그 말을 들은 곽형조가 앞에 놓여 있던 초밥을 마구잡이로 들고 김영호에게 집어 던졌다.

    “수시는?”

    “가, 강문고 학생들 아시지 않습니까. 다들 정시만 공부하는 거. 그래서 아직 수시는….”

    곽형조는 속이 답답하다며 가슴을 퍽퍽 쳤다. 그리고는 다른 이사들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했다.

    “대체 어떤 식으로 관리했길래 이 자식 태도가 이 따위야!!”

    “혀, 형님 잠깐 진정하시고….”

    말리려는 주현서의 팔을 뿌리치며 곽형조가 김영호에게 침을 튀겨 가며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정신머리 없는 놈아. 강명문이라는 초임교사는 내신 5등급 학생 연천대 보내고 서울한국대 생각도 못 할 학생을 서울한국대 보냈다. 그런데 3학년 부장이라는 새끼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뭐? 정시만 챙겨? 입시 똑바로 준비 안 해?”

    “죄, 죄송합니다!”

    곽형조는 씩씩대며 손에 물컵을 들었다가 다시 말리러 온 주현서의 만류에 컵을 내려놓았다. 민지정은 그 옆에서 손을 벌벌 떨고만 있었다.

    “민지정.”

    “네, 네네네, 네!”

    “자네도 마찬가지야. 교무부장이라는 사람이 애들 입시 하나 제대로 못 봐 줘? 진원이도 네가 제안한 거 아냐?”

    “그, 그건 맞, 맞습니다만….”

    이번에는 민지정에게로 회 두 점이 날아갔다. 그녀는 뺨으로 날아온 회를 피하지 못하고 철썩 얻어맞았다.

    “똑바로들 해. 지금까지 너희들 편의 봐준다고 우리 손자 과외도 시키고 소개도 많이 해줬는데, 이딴 식으로 나와?”

    김영호와 민지정은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이사진의 소개를 통해 받아온 과외비만 수억이 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초임교사가 왜 한명심이도 구워삶고, 이사장이랑도 친하게 지내는 거 같냐?”

    “자,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살… 후,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렇다. 지금 강명문이라는 녀석은 부정을 최대한 피해 가고 있는 거야.”

    곽형조의 말에 김영호와 민지정의 눈이 커졌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이사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무슨….”

    “아직도 모르겠냐? 강은숙이는 우리랑 다르게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애야. 우리가 각종 부정을 저지른 걸 눈감아주고 있을 뿐이지.”

    “그건 알고 있습니다, 형님. 은숙이는 힘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강명문이 그걸 어떻게 알고….”

    “난들 아나? 강은숙이랑 친하다고 하니 은숙이가 알려 줬을 수도 있고.”

    곽형조는 고개를 숙이면서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생각했다. 강명문이 지금처럼 계속해서 실적을 쌓아간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초임교사의 패기나 열정 같은 걸까.

    생각을 하다가 곽형조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패기, 열정 때문이었다면 지금처럼 강은숙 이사장이나 한명심과 긴밀한 관계를 맺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이 목적이기에 강문고에서도 가장 힘이 있다고 여겨지는 교감과 이사장에게 접근했을까.

    만약 그가 강문고에 부정부패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고름이 하나씩 터지려고 하는 걸 목격했다면? 그리고 그 사례 중 하나가 최진원의 퓨쳐컨설팅 설명회 사건이었다면?

    여기까지 생각한 곽형조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강명문 그자는 부정부패를 피하면서 설령 문제가 터졌을 때 자기 몸을 건사하기 위해 그러는 거야.”

    “문제가 터지다뇨? 아직까지 문제가 없었….”

    “신자야. 아직도 모르겠니.”

    조신자의 말에 반박을 한 천우원은 곽형조를 보며 말했다.

    “지금 형님은 퓨쳐컨설팅 망신 사건이 강문고 부정부패의 말로 중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천우원의 말에 그녀는 얼굴이 벌게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강문고의 치부를 그녀 남편이 보여 준 꼴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끼리는 솔직해지자.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일들이 부정한 일도 많았다. 그렇지?”

    한무회가 양심선언이라도 하듯이 손을 들며 말했다. 그녀를 보면서 다른 인원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지만, 서로 눈치를 봤다. 한무회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더 불거져서 만약 이런 이야기들이 외부로 더 퍼지면?”

    “강문고는 사립고이기 때문에 이사진 퇴진이다. 그럼 지금까지 누려 왔던 부와 명예도 끝이야.”

    그러자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모든 인원들이 숨을 삼켰다. 그들에게 있어 작금의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임을 인지한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움직여 줘야 해.”

    “저, 저희가 말입니까?”

    멍청하게 되묻는 김영호에게 곽형조가 흐흐, 웃으며 말했다.

    “이제 학년이 바뀔 거다. 그렇지?”

    김영호와 민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명심은 박쥐 같은 인간이고 가족들만 건드리면서 돈 좀 쓰면 다시 돌아올 거다. 강은숙이는 강명문이 없으면 힘을 키우지 못할 거고.”

    그 말에 모두가 그럴 거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럼 문제는 강명문이야. 녀석이 가장 무서운 건 초임교사임에도 입시 분석력이 뛰어나고 합격생도 많이 배출하는 거다. 그러니 애초에 싹을 끊는다.”

    테이블 위에 손을 올리며 턱을 괴는 곽형조는 교활하게 씨익 웃었다.

    “지금부터 십 년간, 강명문에게 고3 담임을 맡기지 마라.”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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