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무엇입니까?
강은숙 이사장은 이사장실에서 이제 막 출발하는 승합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상을 짚었다.
[아니 그래서 너는 안 온다고?]
핸드폰으로부터 서윤수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장은 핸드폰을 고쳐잡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번에는 좀 어려울 것 같아.”
[왜?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
출발 전에, 이사장은 강명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분간 학교 이사진이 시끄러울 것 같아요.
-조신자 이사님 때문입니까?
-네. 최진원 원장님이 자주 은퇴 이야기를 꺼내고 있나 보더군요.
이사진에서 한 명이 나가는 건 문제 될 건 아니었다. 다만, 조신자의 경우에는 그 외 다른 이사진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걱정되는 측면도 있었다.
-이사장님은 평소처럼 행동하시면 됩니다.
-평소처럼요?
-학교와 학생, 교사를 위해 ‘균등하게’ 힘쓰시는 그 모습 자체가 이사장님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강명문의 말을 되새기면서 이사장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괜찮은 거야?]
“아마도. 강 선생이 조언도 해 줬으니.”
[크하하하! 강 선생 조언이면 믿을 만하지! 뭐라고 했는가?]
서 교수는 강명문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심히 궁금했는지 계속해서 그 이야기에 대해 물었다. 강은숙은 태연하게, 하지만 할 말을 고르고서 말했다.
“균등한 시선으로 나만의 무기를 계속해서 만들어 가라고 했어.”
[은숙이만의 무기? 그게 뭔데?]
이사장은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있어, 그런 게.”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승합차는 이제 강원도를 향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교수 친구가 있는 한목대에 같이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준비 좀 해둬야겠어.”
강명문은 균등을 강조했다. 앞으로 이어질 다른 이사진들로부터 들어올 추궁에서 균등을 무기로 삼으라는 뜻이라고 판단했다.
“선생님들 출발했으니까 잘 좀 봐 줘.”
[암, 내가 초청했는데 당연하지! 좋은 교류로 이어졌으면 좋겠구먼 껄껄!]
* * *
강명문이 교사들과 강원도로 출발한 금요일 이른 새벽.
은장은 사당역에서 스키장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으, 추워.”
아직 오지 않은 친구들을 밖에서 기다리느라 은장은 얼어붙기 전인 발을 동동 굴렀다. 콩콩 뛰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은장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거.”
은장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명천이 따뜻하게 데워진 캔커피를 건넸다.
“와, 고마워!”
“추울 거 같아서 샀어. 손에 쥐면 덜 추울 거야.”
명천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면서 살짝 미소 지었다. 명천의 뒤에서는 정석이 그 모습을 보며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뭐야 언제 왔어?”
“방금 명천이랑 같이 왔지. 다른 애들은?”
은장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정아와 태성은 도착 5분 전, 동석은 거의 다 왔다고 문자가 와 있었다.
“채영이도 셔틀 출발 전까지는 올 것 같아.”
“이거 놓치면 답 없는데. 제때 와라 제발.”
그렇게 잠시 있다 보니 동석과 채영이 도착했고, 정아, 태성도 도착했다.
“야 무슨 짐이 이렇게 많아?”
“우리 1박2일 할 거 아냐?”
당연하게 1박2일로 생각했던 친구들과 달리 동석은 놀라서 물었다.
“뭐? 진짜 자고 와?”
“당연하지. 이미 아버지한테 콘도 예약도 잡아달라 해서 잡았는데?”
정석의 아버지는 정석이 성실성대에 합격하자마자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준다면서 선뜻 VIP콘도를 예약해 주었다. 친구들과 재밌게 놀다오라면서 용돈도 두둑이 챙겨주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정석은 괜히 기분이 좋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넌 여친 놔두고 1박2일 놀다와도 되냐?”
“대학생 되면 M.T도 가고 그럴 건데 사전연습이라고 생각하지 뭐.”
정석은 지금도 여자친구인 미란과 문자 중이라면서 자랑을 했다. 그 모습에 은장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말했다.
“버스 왔다. 타자.”
학생들의 첫 여행이자 고등학교 졸업여행 목적지는 강원도 홍천에 있는 비발스 스키장이었다. 비발스 스키장으로 한 번에 가는 셔틀버스가 도착하자 각자 짐을 싣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탄 학생들은 수다를 잠시간 떨다가 이내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에 빠져 있는 동석이의 핸드폰으로 문자 하나가 진동을 울리며 날아왔다.
<연천대 입학생들에게 공지합니다!>
입학생 대상 오리엔테이션 공지문자였다.
정말 연천대에 합격했구나, 다시금 실감을 하면서 자는 사이에 와 있던 다른 문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 문자를 읽은 동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흠… 응? 동석아 왜 그래?”
옆에서 자고 있던 정석이 잠에서 깼는지 당황해하는 동석에게 물었다. 동석은 팔을 휙휙 휘저으며 정석에게 아무 일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 난 더 잔다… 흐아암.”
다시금 고개를 뒤로 기대며 잠이 든 정석을 보면서 동석은 조용히 핸드폰을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절대 이 문자는 들키면 안 돼.’
그 생각을 하면서 동석은 콩닥거리는 심장을 자기도 모르게 움켜쥐었다.
* * *
한목대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사람은 서윤수 교수와 김철웅 입학사정관이었다.
“강 선생!”
“오래간만입니다, 교수님.”
나를 향해 달려오던 서 교수가 내 손을 맞잡고 위아래로 붕붕 흔들었다. 김철웅 사정관은 그 모습을 보면서 난처한 듯 웃으면서 서 교수를 나로부터 떼어냈다.
“거, 간만에 봤는데 인사 표현도 못 하나!”
“다른 분들과도 인사하셔야지요. 안녕하세요, 한목대 입학사정관 김철웅입니다.”
“의과대학장 서윤수 교수입니다. 다들 먼 길 오시느라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서 교수는 우리를 쭉 훑어보더니 나를 보며 묘하게 웃었다.
“분명히 강 선생 포함해서 네 명이라고 들었는데, 인원이 많지 않나?”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추천해 주십시오.”
나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사실 이 자리는 한목대 입학자문위원 추천인들과의 식사자리이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교사 생활에 있어서의 인맥형성의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한목대의 김철웅 입학사정관과 서윤수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로서도 강남서초의 명문고등학교의 교사들과 친해지는 게 나쁜 조건만은 아니었으니까.
“윤 선생님도 잘 오셨습니다. 별고 없으셨지요?”
“사정관님 덕분에 작년에 참 좋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지난 설명회 때 제법 친해졌던 윤 선생은 김철웅 사정관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반가워했다.
지석 선배와 박 선생, 차 선생, 홍 선생은 이렇게 서 교수와 가깝게 인사를 한 적이 없어서 내 주변을 서성였다. 그 모습을 발견한 김철웅 사정관이 말했다.
“그럼 자리를 이동하실까요? 오늘은 딱딱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서로 알아가는 자리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긴장 푸셔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다른 교사들을 안내하는 김철웅 사정관을 보면서 참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구면이네요. 잘 지내셨나요, 교감 선생님?”
“아, 아이고 교수님, 네 그럼요. 그, 그때 설명회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하하하.”
“제가 교감선생님을 난처하게 해드리지는 않았나 걱정입니다.”
“아이고,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랑 강 선생은 그날 설명회가 참 통쾌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걸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학교 수행평가 방식도 그렇고, 입시 준비 방향도 모두 변경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 교감은 있는 힘껏 나의 업적을 자신의 업적으로 포장하며 말했다. 그 말에 서 교수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려다가 내 눈치를 보고는 표정을 풀었다.
“확실히, 그런 덕분에 실적도 좋았다면 더할 나위 없겠군요.”
“실적도 아주 좋았습니다. 강 선생도 그렇고,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선생님들 모두가 뛰어난 실적을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들을 하던 중, 김철웅 사정관이 말했다.
“그럼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교수님, 빨리 오세요!”
“어이쿠, 알았네 알았어.”
서 교수가 김철웅의 차에 탑승했다. 김철웅은 나보고 자기네 차를 따라오라고 신호를 했다.
나는 인원들이 모두 잘 탑승했는지를 확인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탑승한 걸 확인하고는 선배에게 알려 주었다.
“이탈자 없습니다. 빨리 가시죠.”
“아주 운전기사다? 엉?”
한 차례 투덜댄 지석 선배가 엑셀을 밟자 승합차가 부웅- 앞으로 나갔다. 선배는 김철웅 사정관의 승용차를 따라가면서 물었다.
“그런데 오 선생님이랑 지훈이는 정말로 왜 안 오는 거야?”
“네, 두 분은 다른 일이 있으시다고 하셔서….”
나는 아쉽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특히 오 선생님은 할 일이 따로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목적지까지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우와… 진짜 고급져 보인다….”
건물 앞에 선 홍 선생이 입을 벌리고 감탄을 했다. 차에서 막 내리는 박 선생과 차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도 내리면서 좀 놀랐다.
‘비싸 보이는데!?’
내 반응을 살핀 지석 선배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자자 다들 들어가시죠. 오늘 소고기는 강 선생님이 쏜다고 했으니까 다들 걱정 말고 들어들 가세요.”
선배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우리보다 앞서 도착한 서 교수에게 다가갔다.
“교수님, 이번에 입시 평가는 어떻습니까?”
“이번 MMI도입이 아주 효과적이었다는 평가가 자자해. 강 선생이 알려 준 내용들 토대로 우리끼리 더 보완을 했거든 껄껄!”
한목대의 입시 전형 중 면접은 제법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건 MMI면접 이전부터 유지해 왔던 한목대 입시 전형만의 특징이었다.
“자세한 건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지.”
서 교수가 나를 이끌고 들어왔다. 한 교감이 다른 교사들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자기는 이런 가게는 자주 와 봤다면서 허세를 잔뜩 부렸다.
“작년 1년 동안 고생들 정말 많으셨습니다.”
메뉴를 주문한 서 교수는 우리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이번에 강 선생님을 통해 여러분을 뵙고자 했던 건 다름이 아니라, 자문위원 건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 교수는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곧장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시원시원한 이야기에 다들 긴장을 하면서 그를 바라봤다.
“저희 한목대는 의대와 간호대, 보건대를 제외하면 크게 두각을 드러내는 학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이런 학과들을 살릴 수 있는 방안들을 입시 전형을 통해 구상해 보고자 합니다.”
서 교수가 말을 잠시 멈추자 고기가 익는 소리만이 홀을 가득 채웠다. 지석 선배 혼자만이 고기가 타지 않도록 열심히 집게를 놀렸다.
“그래서 여기 계신 강명문 선생님께 입학자문위원을 요청드렸고, 주변에 추천하실 만한 인재가 있으시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뵙게 된 겁니다.”
그가 말을 끝내고 나를 돌아봤다.
나는 그의 시선을 받으면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입학자문위원은 대부분 경력이 많은 교사들이 추천을 받아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젊은 교사들은 입학자문위원을 하기에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서 교수는 젊은 교사들에게도 입학자문위원을 하고 있다. 그것도 나를 메인으로 세워서 말이다.
그렇기에 이 제안이 교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에 대해서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한 교감도 이런 자리를 별도의 대가 없이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크흠,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
“제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오늘은 그런 이야기와 함께 순수하게 얼굴 익히자는 의미로 만난 자리니까 부담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윤 선생을 제외한 다른 선생들 얼굴이 잔뜩 긴장된 얼굴이기는 했지만.
“비싼 소고기 다 타겠습니다. 얼른 드시죠.”
김철웅의 말을 신호로 다들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나저나 교감선생님께서 오늘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느 정도 식사 자리가 무르익어 가자 서 교수가 입을 열었다. 한 교감은 먹으려고 집은 고기를 다시 내려놓고는 서 교수에게 말했다.
“하하, 아무래도 요즘은 입시 정보를 잘 알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흐음… 그때 민지정? 류지훈? 그 두 분과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까?”
한 교감은 가슴 한구석이 찔리는지 몸을 살짝 움츠렸다.
“아, 아닙니다. 그 두 사람이 유능하기는 하나… 저희와는 결이 좀 맞지 않습니다.”
“결이라 하시면?”
서 교수가 탄산음료를 원샷하고는 한 교감에게 물었다. 한 교감이 답변하기를 조금 곤란해하자 그가 질문 내용을 바꾸었다.
“그럼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교감선생님은….”
한 교감은 그의 입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어진 서 교수의 질문에 놀라서는 나를 살짝 돌아봤다.
“교사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입니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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