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악마
“연희대요!?”
은솔이는 내 말이 다소 충격적이었는지 입을 뻐끔뻐끔거렸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도 제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다고요.”
“목표는 연희대학교 호텔경영학부에 있는 외식경영학과.”
보다 구체적인 목표 설정에 은솔이가 한 번 더 놀랐다.
“쌤, 그게 말이 되는 거예요?”
“최동석이랑 김은장 알지?”
“네, 두 선배님 모두 기사에서 봤어요.”
동석이와 은장이가 언론에 노출이 된 게 이런 점에서는 참 다행이었다.
“덕분에 이야기는 빠르겠네. 동석이 성적 몇 등급인지 알고 있니?”
“… 5등급?”
“잘 아네. 그런데 4등급인 네가 연희대에 못 갈 건 뭐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꺼내두었던 <연희대학교 2012학년도 전형계획> 인쇄본을 펼쳤다.
“목표로 해야 하는 전형은 입학사정관전형 중에서도 르네상스 전형.”
“그게 뭐예요?”
“연희대에서 만든 입학사정관 전형을 르네상스 전형이라고 불러. 그냥 그 학교만의 네이밍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이걸 봐봐.”
나는 인쇄된 전형계획 종이 중 <르네상스 전형(입학사정관 전형)> 이라 명시된 내용을 펼쳤다.
“모집인원은 관광학부와 호텔경영학부 모집으로 총 40명 모집.”
미래에, 연희대는 일찍부터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한 대학교로 유명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입학사정관제 전형 시절부터 연희대만의 특색있는 전형을 만들고자 노력했기 때문으로 분석되었었다.
지금의 연희대는 자신들만의 전형을 만들어가는 과도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나름대로 다른 대학교들과는 차별화된 전형을 만들어 나가면서,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는 점이 그러한 사실을 반증했다.
“우선, 수능 최저는 없다.”
내 말에 은솔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종이에서 ‘최저 없음’ 이라는 부분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교육과정연계전형으로 지원하면 안 돼. 인원도 적게 뽑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성적 우수자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연희대의 입학사정관 전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르네상스 전형, 또 하나는 교육과정연계전형. 교육과정연계전형은 학교장추천을 받는 학교장추천전형으로,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지원하는 전형이었다.
‘그렇다고 성적만으로 뽑는 건 아니지만….’
모집인원이 겨우 6명밖에 안 된다는 점도 큰 리스크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연희대의 입학사정관 전형 중 르네상스 전형을 추천한 것이다.
“르네상스 전형은 1단계 3배수로 선발된다. 이때의 평가는 모두 서류평가야.”
“서류평가요?”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거야.”
은솔이는 어느새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2단계는 면접. 1단계 성적 60%와 면접 40%로 평가된다.”
외부에서 무료 급식 봉사활동을 할 정도로 붙임성이 있는 은솔이라면 면접 준비도 걱정할 게 없었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연희대의 면접 문제였다.
“대신, 연희대는 면접에서 서류기반 질문과 함께 시사문제 풀이도 들어가. 기사 안 보지?”
“아… 저 그런 건 잘 모르는데….”
나는 은솔이에게 면접전형 특징이 적혀 있는 페이지를 보여 주었다.
“준비시간만 30분이야. 여기에 답변, 질의응답 포함해서 10분 안쪽으로 끝나. 이때 답변 제대로 못 하면 불합격이겠지?”
“네.”
“그래서 미리 준비가 좀 필요해. 특강도 오픈하겠지만, 그 전부터 상식을 공부해두는 게 좋아.”
여기까지 말한 후 나는 은솔이에게 전형계획 인쇄지들을 건넸다. 은솔이가 떨리는 손으로 그 종이를 받았다.
“준비하고 안 하고는 네 마음이야.”
은솔이는 나에게서 종이를 건네받고 고개를 숙였다. 아마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겹쳐오고 있을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호텔경영학부 중 최고봉이라는 연희대 호텔경영학부에 입학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래도 괜찮을까, 라며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은솔이 부모님은 이 동네에서 살고 있지 않으세요.
차 선생은 나에게 은솔이 부모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딸을 좋은 학교 보내겠다고 지방에서 식당 운영하고 계시는 분들이죠. 딸 사랑이 지극하십니다.
그렇다면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은솔이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적어도 성인이 되면 더 이상 부모님께 폐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저는….”
고민을 끝낸 은솔이가 종이를 다시 나에게 건넸다.
“대학교에 갈 수 없어요.”
그 말에 나보다도 천사급식 대표가 놀라서 말했다.
“은솔아! 연희대 호텔경영학부면 우리나라에서도 제일 좋다고 하는 곳이잖아!”
“저도 알아요! 저도 아는데….”
은솔이는 고개를 천장을 향해 들면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나를 똑바로 보면서 이야기했다.
“저는 갈 수 없어요.”
“부모님 때문에?”
“!!”
내 말에 놀란 은솔이가 나를 이제 노려보면서 다가왔다.
“어디까지 알고 계세요? 아니, 애초에 왜 담임도 아닌 분이 저한테 와서 이러세요?”
“지방에서 식당 운영하시는 정도까지만 알아. 그리고 나도 좋아서 온 줄 알아? 부탁받아서 왔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린 은솔이에게 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양조민 영양사 선생님 알지?”
“네, 당연하죠.”
“그분 부탁이야.”
강문고 영양사인 양조민 선생은 은솔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리랑 식당 경영이랑 다 좋아하기는 하는데, 현실적인 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차 선생과 이야기를 나눈 후 한 교감의 도움으로 양 선생과도 연락이 닿아 은솔이 이야기를 조금은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양 선생은 은솔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 식단에 들어있는 영양에 대해 물어보기도 하고, 예산에 대한 것도 물어보더라고요.
-예산도요?
-네, 예산은 당연히 말 못 해 준다고 하기는 했지만요.
그래서 나는 은솔이가 조리서비스학과가 아닌 외식경영학과로 진학 준비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으면 은솔이의 준비가 중구난방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양 선생님이 은솔이가 대학도 잘 가고 호텔 요리사로 일하는 모습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차석기 선생님도.”
둘의 이야기는 조금 과장된 말이기는 했지만, 은솔이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석기시대 쌤도요?”
“차 선생님 앞에서는 그 별명 부르지 마라.”
은솔이가 입을 살짝 틀어막았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도 대학 가고 싶어요, 하지만….”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나는 은솔이에게 무료 급식을 모두 먹고 일어나는 어르신들을 보라며 고갯짓을 했다. 어르신들은 은솔이와 천사급식 대표를 향해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급식 봉사? 좋지. 그런데 그것도 돈이 있어야 하는 거야.”
천사급식 대표가 괜히 찔렸는지 고개를 숙였다.
“부모님 식당 일 도와드리는 것도 좋아. 하지만 그것도 몇 년 지나면 진로 고민으로 이어질 거야.”
은솔이 부모님의 식당은 지방에서 큰 규모로 하는 식당이 아닌, 작은 백반집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직장인들 대상으로 장사를 했다. 딱 가게를 유지하면서 딸에게 용돈을 보내주고, 서울의 친척에게 감사인사를 표할 정도로 버는 정도였다.
그렇기에 은솔이는 추후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
“그때 가서 다시 공부할래? 수능을 처음부터? 아니면 밑천 하나 없이 식당 차릴래?”
결국, 은솔이가 생각해야 하는 건 현실과 미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교를 나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호텔 요리사를 하다가도 뛰쳐나와.”
미래의 은솔이가 그런다는 이야기는 뺐고.
“네가 아무리 요리 실력이 좋아도, 분야의 네트워크가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고 홍보도 어려워.”
그 말에 천사급식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고 호텔경영학부라는 연희대를 나오면 어떻게 될까?”
은솔이는 고개를 살짝 들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대학교 다니면서 방학 때는 부모님 식당 일 도와드릴 수도 있어. 운이 좋으면 졸업하자마자 호텔 요리사로 취업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되었을 때는 학벌 때문에 무시당하는 일도 없을 거고, 오히려 네트워크도 탄탄해지고 경제적인 문제도 풀리면서 더 즐겁게,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다.”
미래의 은솔이의 모습. 그건, 결국 학벌에 대한 기반이 없는 상태로 뛰어들었다가 좌절하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만약 그때 은솔이가 연희대 호텔경영학부를 졸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호텔 요리사를 계속 하면서 그 경력을 살려 자신의 식당을 오픈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경력으로 후배들을 교육하는 요리 강사가 되었을 수도 있다.
슬프지만,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때 되면 더 많은 분들을 위해 급식봉사 같은 활동들도 할 수 있을 거야.”
말을 끝내고 나는 은솔이를 향해 준비해 왔던 또 다른 서류들을 꺼냈다.
“나는 네 담임도, 동아리 담당도 아니야. 하지만, 영양사 선생님과 차석기 선생님의 말씀도 무시할 수 없었어.”
은솔이는 여전히 대답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지금 시점에서 왜 그분들이 나에게 이런 부탁을 했을 것 같냐?”
“…왜요?”
“2학년 학생부 마감 전에 뭐라도 해둬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지원할 거 아냐.”
동아리 담당인 차 선생에게는 동아리 세특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좀 비협조적인 분이시지만, 동아리나 영어, 사회 세특만 잘 챙겨도 성공이야. 독서도 채우고.”
은솔이의 담임은 하필이면 나와 같은 국어 교사인 임대원 성적처리연구부장이었다. 강문고 오대천왕 중 한 명인 그는 민지정, 김영호처럼 학생들의 활동이나 성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변화하는 입시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 물론 성적은 올려야지. 적어도 1등급 후반까지는.”
“그게 되겠습니까, 선생님?”
“할게요.”
천사급식 대표의 질문과 동시에 은솔이가 말했다.
“올릴게요. 성적, 1등급 찍어볼게요.”
“할 수 있겠어?”
“미친 듯이 해 볼게요. 대신, 저도 조건이 있어요.”
당돌하게 말하는 은솔이에게 타박을 주기보다는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면서 무엇인지 말해보라 했다.
“3학년 때도 봉사활동 하게 해 주세요.”
은솔이의 제안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렸다. 그러자 은솔이가 기분이 상한 듯 입술을 앞으로 삐죽 내밀었다.
“왜요!”
“너, 내년 동아리 아직 안 정했잖아?”
“네. 안 하려고 했는데요?”
“안 하기는 무슨. 이제는 해야 해. 그리고 내가 미리 준비해둔 게 있어. 그게 뭔지 아니?”
나는 가방에서 <봉사 동아리활동 계획서> 종이를 꺼냈다. 이사장과 한 교감에게 허가를 받고 내년도에 개설할 자율동아리 계획서를 미리 준비해둔 것이다.
“이제 좀 입시 준비할 맘이 드냐?”
은솔이는 <봉사 동아리활동 계획서> 용지를 들고는 눈을 황소개구리처럼 떴다감았다를 반복했다. 예상 활동 안에 <무료 도시락 봉사> 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진짜 갈 수 있어요? 연희대 호텔경영이면 수능 1등급대 애들이 가잖아요.”
“갈 수 있어. 동석이랑 은장이 합격시킨 거 못 봤어?”
“내신 부족해도 괜찮은 거 맞죠?”
“괜찮아. 대신 3학년 1학기 성적 1등급 후반은 맞아 줘야 해.”
“연희대 등록금 비싸지 않아요?”
“전문대는 학비 싼 줄 아냐? 연희대 합격하고 과외를 하든, 장학금을 받든 하면서 해결하면 돼.”
옆에서 듣고 있던 천사급식 대표도 은솔이에게 다가가서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솔아 이건 기회다. 너 학원 하나도 안 다녔다면서.”
“그건… 그렇죠….”
“학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준비해 봐. 대학생 되면, 그때 우리 또 급식봉사 해 보자. 내가 다시 준비 잘 해 둘게.”
은솔이는 천사급식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묵묵히 빈 접시들을 치우러 갔다. 나는 하나씩 테이블를 정리하는 은솔이를 그저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봤다.
“저는….”
그러다 은솔이가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연희대에 가고 싶어요.”
녀석의 손에는 빈 그릇들이 쌓여 있었다.
“가자. 대신 그 과정은 엄청 빡셀 거다.”
내 말에 은솔이가 그릇을 트럭에 옮기면서 당차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맷집 하나는 좋거든요? 빡쎄게 굴려주세요!”
그 말에 나는 악마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흐흐, 웃었다.
“이건 1월 둘째 주까지 해 올 숙제다.”
그리고 가방에서 지금 시점의 은솔이가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서른 개쯤 적힌 체크리스트를 꺼냈다. 그걸 본 은솔이와 천사급식 대표가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빡쎄게 굴려달라며? 앞으로 기대해라.”
은솔이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나를 원망하듯 바라봤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