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졸업 여행 계획
시간은 흘러 어느새 방학식이 다가왔다.
이제는 대입 결과가 나온 학생들도 제법 있었기에, 대학생 때 어떻게 살까 고민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돌았다.
“자취해야 하지 않겠어?”
“맞아 이제는 독립을 해야….”
“그거도 부모님한테 돈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거지. 우리 부모님은 둘이 나갔다가 셋이 온다면서 절대 안 된대.”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학생들은 3학년 마지막 방학식을 앞두고 있었다.
“흠….”
나는 어수선한 교실에 앉아 미간을 좁히며 오른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쌤 무슨 일 있으세요?”
은장이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아, 아니야. 내년 입시 준비를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고민 중이었지.”
“후배들이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런저런 내용들을 메모해둔 용지들을 펼쳐 보였다.
“민주는 행사 준비 같이 하고 그러면서 내가 상담도 해 줬으니까 괜찮은데….”
과거 기억들을 떠올려 보면서 내년에 맡을 반의 학생들에 대해 생각을 해두기는 했었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다. 당시의 나는 학생들과 그렇게 친한 편이 아니었기에 정보가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제 한 교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에 조금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강 선생, 이번 년도 실적이 뛰어나서, 내년에도 좋은 반을 맡겨 볼까 해!
즉, 과거 내가 맡았던 반과는 다른 반을 맡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과거 정보들을 토대로는 내년 입시 준비를 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도 있었다. 내가 맡게 될 학생들이 과거와는 달라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은장이에게 일부라도 정보를 얻기로 결정했다.
“민주 말고, 은장이 네가 봤을 때 좀 인상적인 후배라든가 있었니?”
“어… 있기는 있었어요.”
학생회장도 하고, 후배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은장이는 역시나 여러 후배들의 정보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나 그 학생들 중 내가 가장 궁금해했던 학생은 없었다.
“흠… 알겠어. 정보 고마워. 그런데 은장아, 혹시 걔 누군지 알아?”
“누구요?”
“가끔 영양사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러 오는 학생이 한 명 있거든.”
나는 평소 교직원 식당에서 밥을 자주 먹었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정도, 영양사 선생을 만나러 교직원 식당에 들르는 학생이 있었다.
“아 혹시 은솔이 아니에요?”
“은솔이? 어떤 앤데?”
“네, 배은솔이라고 하는데,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후배예요. 공부는 그렇게 잘 하는 편은 아니고요.”
뭔가 느낌이 오는 것 같았다. 요리를 좋아하는데 공부는 잘 하는 편이 아니다?
“대충 4등급 정도 나오나?”
“네, 대충 그 정도인데… 바로 맞추시네요.”
은장이가 맞다면서 내 대답을 신기해했다.
나는 은장이가 알려 준 배은솔이라는 학생에 대해 떠올려 보았다.
배은솔, 배은솔… 요리… 4등급대 성적… 대학…강문고….
“아.”
“네?”
“아, 아니야. 은솔이 정보 좀 더 알려 줄래?”
“저도 근데 이 정도밖에는 몰라요. 활동을 같이 하거나 하지는 않았거든요.”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는 은장이에게 빙긋 웃어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큰 도움 되었다. 고맙다.”
다시 자리에 앉는 은장이를 보면서 배은솔이라는 2학년 학생에 대해 떠올렸다.
‘내가 생각하는 배은솔이 맞다면….’
2025년쯤의 미래에 배은솔이라는 요리사가 있었다. 그녀는 호텔 요리사로 어렵게 취업을 했지만, 학벌주의 세태 때문에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호텔을 나왔었다.
그리고 10여 년을 고생하면서 식당을 했고, 나름 인기도 많아서 언론에도 노출되었었다. 하지만, 젊은 날 고생하며 악화된 건강이 발목을 붙잡았고 공황장애까지 겹치면서 식당을 타인에게 넘기고 잠적한 요리사였다.
그리고 그 배은솔 요리사의 출신 고등학교가 강남서초권이었다는 것도, 학벌주의 이야기를 할 때 언급된 적이 있었다.
만약 요리를 좋아하는데 대학을 높은 학교로 가지 못한 배은솔 요리사가 지금 강문고의 배은솔이라면?
‘확인해 봐야겠네.’
나는 배은솔의 정보를 정리한 후 곧 방학이라는 사실에 들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자, 조용! 이제 곧 방학식 시작한다!”
내 신호를 시작으로 학생들이 하나씩 주목하기 시작했다.
“먼저 방학식 하기 전에 너희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녀석들은 또 무슨 꿍꿍이냐면서 장난 섞인 투덜거림으로 물었다.
“너희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아니다. 청소년을 벗어나는 거야.”
지금 시점에서 강문고 학생들이 많이들 간과하고 있는 측면이 있었다.
학벌, 공부, 학원, 시험. 이러한 단어들이 익숙한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놀아야 재미있게 노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성인으로 넘어가기 전에, 너희들끼리 당일치기로 바다를 보고 오든, 다 같이 모여서 놀러가든, 꼭 해 보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대학생이 되기 전에 ‘잘 노는 법’을 익혀둘 필요가 있었다.
아직은 고등학생이기에 제약이 있을 때, 그 부분을 명확히 이해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알아두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성인 되어서 막돼먹은 행동을 하다가 뉴스 타. 이건 진심 어린 조언이니까 꼭 지금 시점에서 잘 노는 법을 연구해 봐라.”
정석이와 태성이가 눈을 빛내면서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손을 든 녀석들에게 고갯짓을 했다.
“쌤 그럼 1박2일 여행 갔다와도 됩니까!”
“동성끼리는 괜찮아. 대신 남녀 같이 1박2일 여행 가거나 그러지는 말고. 걸리는 순간 뒤질 줄 알아. 가족 펜션으로 놀러 가도 내가 다 수소문해서 찾아낸다.”
손에 들고 있던 종이몽둥이로 교탁을 탁탁 두드리면서 정석이와 태성이를 가리켰다. 녀석들은 내 종이몽둥이를 보며 몸을 움츠리고는 ‘치’ 하며 자리에 앉았다.
“방학 잘들 보내고 와라!”
* * *
정석은 방학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있었다.
담임인 강명문이 강조했던 것처럼, 놀러 갈 계획을 구상하기 위해서였다.
“어디 갈까?”
“어차피 다 같이 가려면 1박2일은 못 갈 거고….”
정석과 태성이 으으음, 하며 고민을 하는 사이, 은장은 새로 구입한 스마트폰으로 서울 여행을 검색하고 있었다.
“마땅한 곳이 없기는 하다. 서울에서 방 잡고 놀면 그거도 1박2일 들어갈 거고.”
“아니면 눈 딱 감고 갔다 올까? 우리 아버지 공장 근처에 펜션도 소유하고 계시기는 한데.”
정석의 말에 동석이 그러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담임쌤이 남녀동반으로 1박2일 여행 가면 지구 끝까지 쫓아간다고 하시잖아.”
“에이 무슨 지구 끝까지야. 수소문하신다고 했지.”
“그게 그거지 인마. 무리한 계획 짜지 말고 놀이공원이나 가자.”
동석의 말에 태클을 거는 정석에게 명천이 제안했다. 은장과 정아, 동석도 좋은 생각 같다면서 명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럼 놀이공원으로 결정?”
“난 괜찮아. 너희는?”
“어차피 여행도 못 가는데, 놀이공원 좋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친구들을 보면서 정석은 못내 아쉽다는 듯 팔짱을 꼈다. 고개를 숙이고 고민을 이어 가다가 순간 눈이 반짝였다.
“야! 스키장 가자!”
“스키장?”
“강원도 스키장 하나에 우리 부모님 VIP회원이시거든. 렌탈도 엄청 싸게 받을 수 있어!”
정석의 말에 친구들이 눈을 빛냈다.
“강원도면 당일치기도 가능하고.”
“1박 2일 하면 어때. 버스 놓쳤다고 뻥치면 되지.”
정아의 말에 정석이 걱정하지 말라며 말했다.
“맞네맞네. 그럼 방값도 싸게 가능해?”
“싼 게 뭐야. 그냥 공짜로 갈 수 있을걸? 여쭤볼게.”
태성도 정석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는지 만세를 불렀다.
“그럼 스키장으로 가는 거다?”
“어… 난 타 본 적 없는데.”
“괜찮아. 동석이는 내가 가르쳐 준다. 숙련된 조교만 따라오면 금방 탈 수 있다!”
정석이 가슴을 팡팡 치면서 호언장담을 했다. 동석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런데 명천의 얼굴만이 조금 어두워 보였다.
“명천아 왜 그래?”
“…둘 다 가면 안 되려나?”
알고 보니 명천은 놀이공원도 가고 싶고, 스키장도 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 명천의 속내를 알게 된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 왜!”
“야, 솔직하게 말하지. 그럼 두 개 다 가자! 내일 크리스마스니까 내일은 놀이공원?”
“아, 미안. 난 내일 미란이랑 데이트라 못 가.”
정석이 손을 들며 미안함을 표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크리스마스 놀이공원은 정석을 제외한 인원들만 다녀오기로 결정되었다.
“스키장은 언제 가려고?”
“1월 둘째 주 어때? 신정 다음 주면 다들 괜찮지 않나.”
“그때면 될 듯? 어차피 이제 학원도 안 다니고.”
“야야야, 나 3일에 합격자 발표인데 합격하면 나도 갈래!”
뒤에서 듣고 있던 채영이가 나타나서 은장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은장이 채영에게 좋다면서 긍정의 표시를 날렸다.
“진짜 합격했으면 좋겠다. 합격 못 해도 뭐 어때! 가자가자!”
이렇게 학생들은 자기네들 딴의 졸업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이 향후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 * *
“뭐? 신정 바로 다음 주?”
지석 선배는 내 말에 캘린더를 보면서 일정을 가늠해 보았다.
“아슬아슬하게 괜찮을 것 같다. 근데 좀 급한 거 같은데?”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질러야죠. 그나마도 크리스마스랑 신정 때문에 밀린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박 선생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도 이때 괜찮으시죠?”
“네, 괜찮아요. 그럼 이때 펜션비나 렌탈비, 리프트이용권, 저녁 바비큐 비용, 차량 렌트 등등은 전부 우리 위대하신 강.명.문. 선생님께서 돈 내 주시는 거죠?”
이때다 싶었는지 박 선생은 야실거리면서 내 얼굴 앞에다 대고 손가락을 접으며 항목들을 정리했다. 나는 그 손가락을 옆으로 치우면서 억지웃음을 지었다.
“제가 바비큐 정도는 제공해드리겠습니다만, 전부 다는 좀 과한 처사가 아닐런지요?”
“말했죠. 시즌 끝나기만 하라고. 아주 벼르고 벼르던 거 이번 스키장 여행으로 싹 다 풀어낼 거니까 두고 보세요. 그쵸?”
박 선생이 윤 선생과 지석 선배에게 동의를 구하자 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1박2일은 어려워서 당일치기야. 그러니까 소고기는 당일에 바로 먹자고. 당연히 강 선생이 사고.”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스키장을 갈 때의 역할분담이 결정되었다. 차량은 승합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차량 렌트를 제외한, 펜션비와 장비 렌탈비, 바비큐 재료비를 내가 지불하는 걸로 결정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손해 보는 장사였지만, 그들에게 도움을 받은 것 역시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번 실적으로 인센티브도 꽤 두둑하게 챙길 수 있을 테고.
그래서 선심쓰는 척 렌트비용 모두 오케이를 내렸다.
“그럼 1월 둘째 주에 가는 겁니다. 그때까지 펜션이랑 예약 다 해둘 테니까 지금 참가하시겠다고 하신 분들은 빠지시면 안 돼요.”
이야기 도중 합류한 홍 선생과 차 선생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의 얼굴이 선배들과의 여행으로 다소 긴장한 듯 보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기대감을 갖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박 선생이 옆에 슬쩍 다가와서 넌지시 말했다.
“두 분한테 부담 주시면 안 돼요. 아시겠죠?”
“누가 들으면 제가 호랑이 교사라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강문고 오대천왕이 무슨….”
“방금 이상한 단어가 들린 것 같습니다만.”
한숨을 쉬는 박 선생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다가 나는 배은솔에 대해 박 선생에게 물었다.
“박 선생님. 혹시 배은솔이라는 학생 알고 계신가요?”
“배은솔… 아뇨, 잘 모르겠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역시 박 선생도 모르는 건가. 그때 차 선생이 손을 번쩍 들면서 나에게 말했다.
“저 은솔이 알고 있습니다.”
“차 선생님? 가르쳐 본 적 있으세요?”
“네, 가르쳤다기보다는… 동아리 부원이니까요.”
차 선생이 담당하는 동아리는 돌다돌다 동아리에 가입하지 못한 학생들이 억지로 들어간다고 하는 역사공부동아리였다.
동아리 담당이었다는 차 선생의 말에 나는 씨익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어떤 학생인지 아는 만큼 상세하게 알려 주시겠습니까?”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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