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09화 (109/252)
  • 109화. 편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한 배라뇨!?”

    정신을 차린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동시에 복도에서 소리를 질렀다. 지나가던 학생들이 그 소리에 놀라 우리를 돌아봤다. 나는 녀석들에게 별일 아니니 얼른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학생들 앞에서 창피하게 소리를 왜 지릅니까 소리를.”

    “아니, 야, 잠깐만. 입학자문위원이라고? 진짜?”

    “네, 뭐 말이 자문위원이지 하는 일은 학교 전형 조언해 주거나 분석 해주는 정도….”

    “간다. 나 무조건 간다. 아니, 안 가겠다고 했던 윤 선생님, 오 선생님 모두 데리고 가야 하는 거 아냐?”

    지석 선배의 호들갑에 좀 진정하라며 타박을 주었다.

    “그것도 서 교수님이 마음에 들어 하셔야 입학자문위원으로 초대하시겠지만요.”

    “이게 의과대학장이랑 친분 있다 이거지? 두고 봐라. 나도 자문위원 받는다 진짜.”

    지석 선배가 양팔을 걷으면서 의지를 내비쳤다. 박 선생은 손바닥을 펼쳐서 자문위원, 자문위원… 이라며 계속 중얼거렸다.

    ‘이 둘은 확보했고….’

    서 교수에게 말했던 추천 인원은 나 포함 총 네 명. 여기에 한두 명 더 추가해서 서 교수와의 식사 자리에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2학년 때부터 작업하려면 그 둘이 필요해.’

    홍 선생과 차 선생은 입시를 잘 모르기에 자문위원으로 데리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같이 스키장을 다녀오면서 친분을 쌓을 생각이었다.

    내년에 고2가 되는 예비고2 학생들 중 두 사람이 담임을 맡는 반의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에 구체적인 미래 설계도를 그리면서 주먹을 쥐며 웃었다.

    “큭…크크큭… 끌끌.”

    “저거 또 이상한 계획 세우나 보네.”

    지석 선배가 그런 나를 보며 혀를 찼다.

    * * *

    다음 주 월요일, 정아의 핸드폰이 수업시간 도중에 울렸다.

    “죄, 죄송합니다!”

    급히 전화를 받으러 복도에 나가는 정아를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 시간에 전화라면, 그 전화일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아는 복도에서 연신 소리를 지르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교실 문을 세차게 열며 들어왔다.

    “저 추합됐대요, 쌤!!”

    숭민여대 논술전형 추가합격이 되었다는 연락이었다.

    “잘 됐네! 축하한….”

    “정아야!!!!!!”

    은장이가 정아에게 달려가서는 정아를 껴안았다. 기쁨에 몸서리치는 둘을 향해 걸어가서는 은장이의 어깨를 잡고 뒤로 빼냈다.

    “수업 중이다.”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로 돌아가는 은장이를 보며 다른 학생들이 키득거렸다. 정아는 평소와 달리 양쪽 입꼬리가 귀에 걸려서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은 수업 시간을 채우기 위해 책을 펼쳤다.

    “그런데 쌤, 저희 기말도 끝났는데 더 나갈 게 있어요?”

    정석이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어봤다.

    하긴, 보통 이 시점에서는 영화를 보여 주거나 자습 시키거나 하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제 없지.”

    “그쵸? 그럼 우리 놀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마냥 놀 수도 없잖아?”

    “네…?”

    불안해하는 정석이에게 한쪽 입꼬리만 올리면서 웃어 보였다.

    “그래서 지금부터 작문 미니 수행시간을 가진다.”

    “미친.”

    “야 이정석! 너 때문이잖아!”

    “아니 아까 나한테 총대 메라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녀석들의 이야기에 나는 팔짱을 끼고는 칠판을 쾅! 쳤다.

    그 소리에 놀란 학생들이 몸을 빳빳하게 세웠다.

    “오호, 그런 작당모의가 있었단 말이지~?”

    “죄송함다.”

    “아니, 아니야. 오히려 내 약해지는 심지에 불을 지펴 줘서 고맙다. 너희들 지금부터 편지를 쓴다.”

    “편지요?”

    그게 무슨 편지냐는 물음을 들으면서 칠판에 큰 글씨로 적었다.

    <너에게 쓰는 편지>

    칠판의 글씨를 본 학생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멀뚱멀뚱 눈만 뜨고 있었다.

    “2010년도 다 끝나가는 시점이고, 곧 방학이니까 3학년이 끝나기 전에 이런 활동도 해 두는 게 좋아. 그래야 후회가 안 남지 않겠어?”

    “무슨 후회요?”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졸업하는 후회.”

    내 앞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있는 집에서 태어나 대치동의 프리미엄 수업들을 받아 온 녀석들이었다.

    그런 학생들은 변하기 이전의 정석이나 명천이와 다름이 없었다.

    부모의 학벌과 권력, 재산을 어릴 때부터 경험했기에 공부만이 모든 것인 줄 아는 녀석들. 그러다 보니 한번 성적이 어긋나면 모든 걸 포기하는 녀석들. 그리고 그렇게 포기하려는 자녀를 본인들이 케어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대치동 학원이나 스타강사에 맡기려는 학부모들.

    그렇게 자란 녀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렇기에 고등학교 3년의 생활이 후회로 점철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 편지의 ‘너’는 누구든 될 수 있다. 10년 뒤의 내가 될 수도 있고, 5년 전의 내가 될 수도 있어.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친구나 선생님이 될 수도 있지.”

    학생들은 시간여행도 되는 거냐면서 저들끼리 키득거렸다.

    “정 쓸 사람 생각 안 나면 부모님에게 써. 그리고 원래는 엽서 크기 카드 정도로 짧게 하려고 했는데….”

    나는 말을 잠시 중단하고 정석이를 노려봤다. 정석이가 흠칫 놀라 몸을 움츠리고 내 시선을 피했다.

    “너희들의 작당모의가 밝혀진 순간 편지로 변경했다. 분량은 내가 나눠 주는 편지지 2장.”

    “너무해요, 우리도 놀 권리가….”

    투덜대는 태성이를 종이몽둥이로 가리켰다.

    “안태성. 넌 편지지 3장으로 써.”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태성이를 따로 용서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둔 편지지를 앞자리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자, 받아 받아.”

    편지지를 받으면서 누군가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근데 이렇게 세팅될 정도면 애초에 카드가 아니라 편지지였던 거 아냐?”

    “쉿, 조용히 해. 분량 더 늘어날라.”

    그런 의문과 불평을 무시하면서 편지지를 펼치고 말했다.

    “분량 꽉꽉 채워라. 제대로 쓰는지 안 쓰는지 다 체크한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

    역시나. 학생들은 곧장 펜을 놀리지 못했다. 심지어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편지라는 걸 처음 써 보는 녀석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 씨, 편지 한 번도 안 써 봤는데.”

    라며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유일하게 손을 움직이는 학생은 은장이였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이 꽤 많았는지, 사각사각 샤프 움직이는 소리가 꽤 선명하게 들렸다.

    이어서 동석이도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도 편지 받을 상대를 정한 모양이었다.

    슬쩍 좌우를 살피며 컨닝을 하려던 정석이는 내 시선을 느끼고는 본인 편지지에 집중했다. 그러더니 결심이라도 한 듯 편지를 써나갔다.

    … 뭔가 이상한데.

    “이정석.”

    “…넵.”

    “제대로 써라.”

    정석이는 편지지에 ‘뭐라고 쓰지’를 반복해서 적고 있었다. 펜 움직임이 어째 일정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 수상하게 여겼는데, 역시나.

    “넌 연애편지 써도 되잖아?”

    “오, 감사합니다.”

    내 조언을 듣고 정석이는 곧장 연애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명천이도 내 말을 훔쳐 들었는지 멈춰 있던 펜을 움직였다.

    수업시간이 끝날 때쯤 되자 편지를 다 쓴 학생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글을 다 쓰지 못한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됐다. 미니수행은 여기까지!”

    “아 다 못 썼는데!”

    비명을 지르며 편지지를 뒤집고 제출하려고 준비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건 따로 검사 안 할 거야.”

    “네!?”

    “제출하지 말라고. 내가 너희들 편지를 뭣하러 보냐? 편지 주인공한테 전달할 사람은 알아서 해.”

    “그게 무슨….”

    “편지 제대로 안 써 본 녀석들 많았지? 이참에 편지 주인공들에게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것도 좋은 거야. 초딩이나 할 법한 활동이라 생각하지 말고. 편지에 담긴 그런 마음이 있고 없고가 앞으로 너희 인생 색깔을 바꿔 줄 거다.”

    출석부를 옆구리에 끼고 교실 문을 열기 전에 멍하니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아 맞다. 오늘 이 수행은 전적으로 정석이 탓이니까 욕하고 싶으면 정석이 욕해라.”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자 학생들이 정석이에게 ‘이게 다 너 때문이다’, ‘가만히나 있었으면 중간은 갔다’ 등 불평을 쏟아냈다.

    ‘다들 잘 전달했으면 좋겠는데.’

    녀석들이 누구에게 편지를 썼는지 슬쩍슬쩍 훔쳐봤기에 편지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는 얼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녀석들의 편지가 각각의 주인공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되면, 내 평판이 또 달라지겠지.’

    속으로 웃으면서 경쾌한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 * *

    명천은 수업시간에 작성한 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교실에 앉아 이걸 어떻게 할까 팔짱을 끼고서 고민했다.

    “야 명천아. 넌 누구한테 썼냐?”

    이번 사태의 주범인 정석이 다가와서 물었다. 옆에는 동석과 태성도 있었다.

    “알아서 뭐 하게.”

    “에이 물어볼 수도 있지. 넌 그 차갑게 말하는 태도부터 고쳐야 해. 만약 내가 미란이한테 너처럼 이야기했으면 진즉 헤어졌을 거다.”

    “… 좀 더 상냥하게 말해야 하려나?”

    명천의 반응에 정석과 태성이 서로 마주보며 놀란 눈을 했다. 그리고는 동시에 명천의 앞에 앉더니 고개를 쓱 내밀었다.

    “누구야?”

    “뭐가?”

    “이정석, 잠깐만. 이건 내가 물어볼게.”

    “넌 모쏠이잖아. 연애 상담은 내가 훨씬 잘 해 주지.”

    “모쏠이 뭐야?”

    “아 동석이도 모쏠이려나. 모태솔로.”

    “모태솔로?”

    “그… 연애 한번 못 해 보고 평생 살았다, 이런 뜻.”

    정석은 뜻을 물어보는 동석에게 단어를 설명해 주면서 다시 명천을 돌아봤다.

    “도와줄 거 있음 말해. 적극적으로 코칭해 주마.”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혹시 편지 고백?”

    태성의 질문에 명천이 화들짝 놀라 편지지를 교복 주머니 안으로 숨겼다.

    “헐 진짠가 보다.”

    “알았어, 알았어. 안 봐. 근데 그거 고백편지면 생각 잘 해야 하는 거 알지?”

    “…왜?”

    조심스럽게 묻는 명천에게 정석이 말했다.

    “요즘은 편지로 고백하는 시대는 끝났어. 얼굴 마주 보고 고백한 다음에 편지를 주면 모를까.”

    “그게 좀 다른가?”

    “당연하지! 소심하게 문자나 전화 고백하는 거랑 뭐가 달라! 고백은 무조건 얼굴 맞대고! 데이트 하면서! 분위기도 살짝 잡고!”

    열변을 토하는 정석의 말에 태성과 동석이 오오, 하며 경청했다.

    “아무튼 그런 거야. 그러니까 편지만 전달하는 고백을 생각 중이었으면 재고하길 바란다.”

    “…그래야겠네.”

    “뭐야, 연애편지 맞네 역시.”

    태성과 동석도 낄낄거리며 명천을 놀렸다. 명천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친구들과의 이런 대화에 자신이 껴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물론, 아직 말투라든가 태도를 바꾸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정석의 말대로 좀 더 상냥하지 않으면 이런 친구들이 아닌 이상 자신의 말투를 받아 줄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미란이랑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정석의 연애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교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 * *

    은장은 하교 후 부모님과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은장의 부모님도 일찍 퇴근해서 오래간만에 가족이 다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할까.’

    은장은 학교에서 작성했던 편지를 부모님에게 언제 전달할까 꼼지락댔다. 그 모습을 귀엽게 본 은장의 아버지인 김영훈이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이거.”

    결국 적절한 타이밍을 잡지 못한 은장은 식사를 다 할 때쯤 되어서야 편지를 건넸다.

    “이게 뭐니?”

    “그냥, 오늘 학교에서 편지 쓰는 수행평가를 해서, 엄마아빠한테 쓴 거야.”

    은장의 어머니 최예진이 편지를 받아서 내용을 빠르게 읽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고맙다 딸.”

    김영훈의 말에 은장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응!”

    그리고 다음 날, 강명문은 3반의 학생들 학부모로부터 여러 문자들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애한테 편지라는 걸 받아 봅니다>

    이러한 문자들을 수 통 받은 강명문은 집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편히 드러누웠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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