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08화 (108/252)

108화. 너희는 끝!

강문고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기본적으로 입시, 대학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과하게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었고, 사설 학원을 어디를 다니면 좋을지 상담해달라는 말도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학생, 학부모들이 지천에 깔린 강문고에서, 동석이는 참 예외적인 케이스였다.

녀석의 부모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학교를 찾아오지 않았었다. 다리가 불편해서 찾아오시기 어렵다고는 해도, 보통은 전화라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동석이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는 점에서 신기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아, 동석이 어머니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먼저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죄송합….”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동석이 어머니는 내 말을 끊고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우리 아들이 선생님 덕분에 연천대에 합격했습니다.”

“아니요, 동석이가 열심히 한 겁니다. 저는 그저 물꼬를 터 줬을 뿐입니다.”

“그 물꼬를 우리 부모가 제대로 터 주지 못해서… 항상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고, 아들에게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는 동석이 어머니를 겨우 말리고 행정실을 후다닥 나가기로 했다. 대화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한 직원들이 수군수군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잠깐 이동하실까요?”

나는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동석이 어머니를 이동시키며 행정실을 빠져나왔다.

이동한 장소는 학교 매점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수업 시간이어서인지 매점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럴 거면 아까 음료 사지 말걸.’

이미 식을 대로 식어 버린 음료수를 꺼내며 아쉬워하자 동석이 어머니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감사히 마실게요, 선생님.”

“아닙니다. 제가 감사하죠.”

“네?”

음료를 받으면서 눈을 동그랗게 뜬 동석이 어머니를 향해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동석이 입시, 저를 전적으로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문고의 학부모들은 대체적으로 강성이라면 강성이었다. 그 사실은 학부모회의 행동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나마 올해는 명천이의 입시를 기반으로 학부모회장의 움직임을 막았기에 이 정도였지, 이전에는 이것 이상이 기본이었다.

그런 학부모들 사이에서 동석이 어머니처럼, 자기 자식의 입시에 관여하지 않는 학부모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동석이는 나와 적절한 상담을 할 수 있었다.

만약 동석이 어머니도 강문고의 여타 학부모들과 비슷했다면?

공부도 못하는 애한테 쓸데없이 대회 준비 시킨다며 교무실을 찾아왔을 것이다. 공부도 못하는데 굳이 공학을 전공할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가 동석이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동석이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덕분에 올해 제대로 된 실적 만들었습니다, 하하.”

“감사라면 저희가 해야지요. 참, 그렇지. 이거 받으세요.”

동석이 어머니는 품에서 검은 봉지에 싸둔 물건을 꺼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마땅치가 않네요…. 부끄럽지만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편의점에서 주는 검은 봉지 안에는 하얀 봉투가 하나 들어 있었다. 빳빳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여러 번 사용했는지 여기저기 구겨져 있고 색도 노랗게 바랜 봉투였다.

그리고 그 봉투 사이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가 두어 장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봉투를 동석이 어머니에게로 다시 밀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이러려고 동석이 가르친 거 아닙니다.”

“…혹시 액수가 너무 작아서 그러신 건가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학생들에게 자판기 커피 한 잔 받지 않습니다.”

“그래도 뭔가 보답을 드려야….”

“그건 동석이에게 부탁할 겁니다.”

“그, 그렇죠. 그럼 우리 아들이 과외라도 해서….”

강문고에서는 흔히들 교사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고 촌지를 돌렸다. 그 촌지를 학부모회에서 만들어서 전달하기도 했고, 때로는 담임교사가 학부모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동석이 어머니도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1학년 때쯤에는 전화를 받았을 수도 있다.

지금의 반응도, 강문고의 일반적인 정보를 토대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돈이 아니고, 내년에 졸업생의 합격 수기라던가 졸업생 멘토 같은 형태로 동석이를 좀 부려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동석이 어머니가 잠깐 그 의미를 생각했다. 그러더니 손에 쥐고 있는 검은 봉투를 떨어뜨렸다.

“그, 그 정도만으로… 괜찮은 건가요?”

“그 정도라니요. 동석이의 합격 케이스는 저에게도 앞으로 몇 년은 우려먹을 사례입니다.”

애초에 동석이나 은장이 같이 스토리가 있는 녀석들을 도와준 건, 내년 입시설명회나 졸업생 강연 같은 걸 기획하기 위함이었다.

보통 그런 기획은 초임교사에게 맡기지 않지만, 내년에는 나에게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초임교사가 가르친 학생들이 전부 언론을 타고 유명해졌다면, 이것만큼 학교를 알릴만한 게 없겠지.’

이런 걸 기획했다 하면 한 교감과 강 교장이 어떤 얼굴을 할지 떠올려봤다. 그리고 동석이 어머니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니 내년에 제가 동석이를 좀 귀찮게 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부리려면 제대로 부려 주세요! 우리 아들이 3년 동안 학교에서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 은혜 정도는 갚아야죠!”

이제 동석이 어머니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맺혔다. 나는 동석이 어머니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잠시간 동석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상담 겸 수다를 떨었다. 이제 마음을 안정시킨 동석이 어머니의 웃음소리와 그에 맞장구를 치는 내 목소리가 텅 빈 매점 안에서 계속 울려 퍼졌다.

* * *

학생들과 나를 비롯한 교사들은 오늘 아침에도 오금프로젝트를 위해 교실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인원이 모였을 때, 은장이가 고구려대 불합격 소식을 들고 왔다. 예비번호도 너무 멀어서 기대할 수가 없었다.

“쌤 죄송해요….”

“뭐가?”

“고구려대도 붙어서 골라가겠다고 했었는데….”

나는 은장이의 이마를 종이몽둥이로 한 대 탁! 때렸다.

“아야! 왜 때려요!”

“자만도 자만도 이런 자만이 없겠다 인마. 이미 서울한국대 붙어 놓고 고구려대가 어쨌다고?”

“히잉….”

은장이가 이마를 부여잡고 인상을 찡그리자 명천이가 다가와서는 말했다.

“아쉬워할 수도 있지 그걸 왜 때리고 그래요.”

“명천아. 이런다고 은장이가 관심이나 줄 거 같냐? 자고로 남자가 여자한테 관심 받으려면….”

내가 명천이 귀에 대고 속삭이자 명천이가 미쳤냐면서 양손을 휘저었다.

“왜요? 뭔데?”

“아냐, 아무것도. 아무튼!”

나는 명천이를 옆으로 밀어내면서 말했다.

“예비대학생이 된 녀석들은 공부들 열심히 하고 있지?”

“네에.”

“아직 정시 접수 막 끝났거나, 면접 남은 녀석들도 있을 거고.”

교실에 모인 오금프로젝트 신청자들. 이제는 많은 학생들의 입시 일정이 마무리가 되었다. 남은 학생은 3반 안에서는 채영이 정도였다.

“좋아. 그럼 열심히 달려 온 너희들에게, 오금프로젝트 종료를 선언한다.”

“네!?”

녀석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나와 은장이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쌤 진짜요?”

“그래.”

“크리스마스까지는 한다고….”

“당연히 농담이지. 이제 입시 다 끝나가는 너희들에게는 관심 없어. 너희 후배들이 더 중요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민주를 비롯해 내년에 내가 맡을 학생들을 생각했다.

이전에 짬을 내어 과거 기억을 되짚어서 싹수가 있을 학생들을 선별해 놓았다.

각자 개성이 넘쳤고, 그랬기에 강문고에서는 본인들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녀석들이었다.

이미 민주는 여러 행사들을 준비시키면서 내년 입시 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예비고3 학생들을 찾으러 다닐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대신 채영이는 매일 1시간씩 면접 연습 도와줄 거니까 그렇게 알아.”

“정말이죠 쌤?”

“그럼. 그리고 동석이랑 정석이, 은장이도 도와줄 거야.”

내 말에 동석이는 당연히 도와야죠! 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정석이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은장이는 한숨을 쉬는 정석이를 보면서 혀를 찼다.

“채영이 면접은 12월 29일이야. 그때까지는 면접 준비 감 떨어지지 않도록 매일매일 연습하자. 그래도 많이 좋아졌으니까 걱정하지는 말고.”

실제로 채영이는 과거에 비했을 때 훨씬 발음도 좋아졌고, 태도도 바르게 바뀌었다. 답변 내용도 이전과는 달리 더 자세하면서도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잘 했다.

다만, 약점이 있다면 역시나 전공 지식들이었다.

솔직히 채영이가 공부를 잘 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암기를 힘들어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영어로 이루어진 전공어들이 많다 보니, 이 용어들을 익히는 데 어려워하는 것이었다.

‘그 부분은 은장이에게 계속 맡겨두기는 했는데….’

은장이가 영어 단어 공부, 발음 공부를 도와주면서 채영이 실력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실전에서는 어떨지 미지수였던 것이다.

“남은 건 꾸준한 연습과 실전에서의 당당함이야. 조금만 더 힘내자!”

“네! 알겠습니다!”

파이팅을 외치는 채영이와 함께 오금 프로젝트가 끝난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구속에서 해방이라며 기뻐하는 녀석들, 뭔가 아쉽다고도 생각하는 녀석들. 그런 여러 감정들이 뒤얽혀 교실 안을 함성으로 가득 채웠다.

학생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오 선생이 나에게 말했다.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도 제 갑작스런 제안 받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박 선생도 기지개를 펴면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후아… 겨우 끝났네요.”

“남은 건 애들 결과 기다리는 건데, 벌써부터 좋은 소식들 들려서 예감이 좋네.”

윤 선생도 우리에게 올 한해 입시 수고 많았다며 격려를 해 주었다.

“참, 음료랑 커피, 간식 남은 거 원하는 사람은 가지고 가서 먹….”

““됐어요!!!!!””

학생들의 불만이 귀청을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나는 녀석들이 남긴 에너지 드링크 중 하나를 벌컥벌컥 마셨다.

이 맛있는 걸 왜 거절해?

* * *

오금프로젝트가 진행되었던 교실을 지석 선배, 박 선생과 함께 정리를 하고 교무실로 내려갔다.

“홍 선생님과 차 선생님도 스키장 가신다 하셨나요?”

이제 막 2층쯤 왔을 때 박 선생에게 물었다.

“네, 두 분 다 좋다고 하셨어요.”

“그럼 참석인원이 저, 박 선생님, 지석 선배, 윤 선생님, 오 선생님, 홍 선생님, 차 선생님, 류 선생님인가요?”

아직 한 교감도 간다는 사실은 비밀이었다. 한목대 방문할 때만 합류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가서 밝혀도 늦지 않겠지.’

“아, 그렇지 않아도 일정을 좀 조율해야 할 거 같아요. 윤 선생님과 오 선생님은 아무래도 가족들과 신년에 같이 있으셔야 할 거 같다 하셔서 빠지시는 걸로 됐어요.”

“하지만 신년쯤이 아니면 크게 의미가 없는데….”

나는 서윤수 교수와 약속했던 시기를 떠올리면서 고민했다. 사실 이번 자리에 두 사람이 빠지는 건 좋은 선택은 아니었으니까.

“아니면, 하루라도 괜찮으니 같이 가시는 건 어떨지 여쭤봐야겠군요.”

“업무라고 하는 그거 때문에요?”

“네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업무라는 건 뭐야? 구체적인 건 못 들었네.”

옆에서 같이 걷던 지석 선배가 물었다.

“아, 그거 별거 아닙니다. 한목대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한목대에서?”

“네. 지난번 의과대학장님 기억하시죠?”

선배는 설명회 때의 의과대학장이라면 당연히 기억한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테 입학자문위원 생각 없냐, 있으면 한번 놀러 와라,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추천인원들과 함께 놀러 가겠다고 말씀….”

“입학자문위원!?!?”

“뭐라고요!?”

이게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리액션을 보여 주어 고맙다며 밝게 웃었다.

“그래서 두 분을 우선 추천하려고 합니다.”

입을 멍하니 벌린 채 가던 길을 멈춘 둘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이거 받아들이시면, 우리 한배 타는 겁니다.”

이어진 내 말에 두 사람의 얼굴에서 핏기가 잠깐 가신 것처럼 보였다.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멍하니 서 있는 둘에게 말을 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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