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07화 (107/252)
  • 107화. 정시컨설팅

    현주의 성적표는 균등한 성적을 보였다. 어느 한두 개 영역의 성적이 뛰어나기보다는, 정말이지 고루 분포되어 있는 성적.

    어떻게 보면 이런 학생들이 더 전략을 짜기 어려운 케이스이기는 했다.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3등급이군요.”

    “그나마 다행이지. 4등급으로 내려가지는 않았으니. 백분위도 딱 중간이야.”

    오 선생의 말대로, 백분위, 표준점수도 딱 3등급의 중간 정도 레벨이었다.

    “수시 2차는 안 썼습니까?”

    “부모가 그때까지만 해도 정시 성적 좋을 수도 있다면서 극구 거부했어. 그러다 성적표 받고 난 뒤에야 방금 전화가 온 거야.”

    “뭐라고요?”

    “재수 없이 바로 대학 보내서 유학을 보내든 가업을 잇든 할 거니까 지방 국립대라도 보내달라고.”

    정말이지 그놈의 유학, 그놈의 가업.

    “목표하는 대학이 있습니까?”

    내 물음에 오 선생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부산광역대를 보내달라고 하더군.”

    부산에 있는 대표대학.

    그 지역 학생들을 비롯해 전국에서 나름 수능 상위 성적을 받는 학생들이 지원하는 학교.

    지금 현주의 성적으로는 택도 없는 학교였다.

    “현주가 내신이 몇 등급인가요?”

    한숨을 쉬는 오 선생과 달리 나는 부산광역대라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며 질문을 했다. 오 선생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전체로 보면 2.1등급 정도. 그래서 본인도 많이 속상해하고 있지.”

    이전에 오 선생이 예시로 들었던 학생보다는 등급이 높았다. 아마, 이번 수능이 난이도가 높아서 긴장을 많이 한 탓에 등급이 평소보다 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내신이 2.1등급? 그렇다면 부산광역대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학과는 아무 데나 상관없는 겁니까?”

    “상관없어. 그래서 지금 나는 철학과를 생각하고 있어. 그래도 성적이 가장 낮으니까.”

    오 선생의 판단은 당시로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느 학교든 가장 배치표 컷이 낮은 학교들이 있다. 부산광역대의 경우에는 철학과가 그런 학과 중 하나에 속했다.

    그러니 오 선생의 판단은 당연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2011학년도 입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부산광역대를 지원할 거면 반드시 가군으로 하고 중어중문학과를 넣으라고 해 주세요. 나군으로 넣거나 그 외의 학과를 지원하면 안 됩니다. 특히 철학과는 더더욱 말이지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내 말을 들으면서 오 선생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왜 다른 학과도 아니고 중어중문학과인가?”

    “이번 수능은 역대급 난이도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뭐, 그 전에도 어렵기야 했지만, 이번에 유독 애들이 어려워했던 것도 있었고.

    오 선생은 내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N수생들의 약진이 예상됩니다.”

    “N수생들이?”

    “네. 고3 학생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 N수생 학생들. 그 학생들이 나군에 많이 몰리게 될 겁니다.”

    N수, 즉 재수, 삼수 등을 하는 학생들이 모두 스카이를 비롯한 최상위권 학교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일 애매한 학생들이 2등급부터 3등급 사이에 끼어 있는 학생들이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은 슬슬 지방국립대로도 눈을 돌리곤 했다.

    부산광역대는 지방국립대를 노리는 학생들의 목표이기도 했다.

    “부산광역대는 나군에서는 수능만 100% 반영합니다. 반면 가군은 내신 점수가 20% 반영됩니다.”

    “내신 20%가 변별력이 있을까?”

    “있습니다. 그렇기에 내신이 좋지 않은 N수생 학생들은 부산광역대를 가군으로 절대 넣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오 선생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리고 철학과는 최고 경쟁률 기록할 겁니다.”

    “그 정도로? 그럼 추가합격 인원이 많이 돌지 않을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심지어 가군에서는 재수 없으면 겨우 한두 명 빠지고 말 겁니다.”

    이건 미래 부산광역대의 입시 정보였다. 학생들이 안정지원을 하다 보니 철학과에 지원한 학생들은 불안한 마음에 등록을 하게 된다.

    반면, 원하는 학과에 소신껏 지원한 학생들은 부산광역대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가 추천했던 중어중문학과는 가군에서만 추가합격인원이 열 명을 훌쩍 넘었었다.

    “내신 등급이 괜찮은 편이니 추가합격까지 고려하면 중어중문학과가 더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 선생은 내 이야기를 경청하더니 바닥에 세워둔 엑스칼리버를 다시금 들었다.

    “좋아. 그럼 강 선생 믿고 부산광역대는 가군, 중어중문학과로 지원하지.”

    그의 말에 나도 웃으면서 손을 호호 불었다.

    “날이 추운데 슬슬 들어가실까요?”

    “그러지. 강 선생 고견 정말 고맙네. 전부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야.”

    남은 건 정말 현주가 내신이 2.1등급인지, 그리고 학부모를 오 선생이 잘 설득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었다.

    “현주 꼭 합격했으면 좋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들어가는 그를 보면서 나는 학생들 정시 상담도 이제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가군이랑 나군이 전형 방식이 다르잖아. 그리고 계열마다 다른 거 몰라? 넌 수리 나형이니까 이공대로 못 넣어.”

    “올해 여기 경쟁률이 1:10은 넘을 거야. 다들 하향지원만 하려는 거 안 보여? 이런 때일수록 공격적인 지원을 해야 해. 특히 여대 중에서는….”

    “아냐, 의외로 충청북도대는 행정이 경쟁률이 낮아. 넌 내신도 안 좋으니까 수능100% 보는 곳으로 가야지?”

    “다군에서는 캠퍼스를 찾는 것도 방법이야. 배치표를 토대로 설명을 하자면….”

    오 선생에게 현주 대학 지원 상담을 해 준 후 나는 곧장 3반 학생들의 정시 지원 전략 상담을 해 주었다. 학생들 대부분은 예상했던 대로 하향지원만을 생각하고 왔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올해 정시 경쟁률 지식을 총동원해서 학생들에게 적합한 학교와 학과를 선정해 주었다.

    반신반의하던 녀석들에게는 내가 입시전형 모두 맞춘 거 기억 안 나냐면서 너스레를 떨었더니 단번에 설득이 되었다.

    “진짜 쌤만 믿고 지원해요 그럼!”

    성욱이가 나에게 상담해 줘서 감사드린다면서도 재차 지원 전략을 확인했다.

    “지원해 인마. 적습이니 뭐니 할 일 없어. 그 학교 학과들이 가장 경쟁률 적게 나올 거야.”

    졸다가 친구들에게 일대기 숙제를 내게 했던 일들이 떠올랐는지 녀석이 쑥스럽게 웃으면서 교실로 돌아갔다.

    “후.”

    “다 끝나셨어요?”

    옆에서 내 상담 내용을 듣고 있던 박 선생이 물었다.

    “네, 그래도 수시 합격한 애들이 많아서 그런가, 금방 끝났네요.”

    “그러게요. 학생들한테 고마워해야겠어요.”

    박 선생도 오늘 상담을 해 주었는지 책상 위에 정시 배치표가 올려져 있었다.

    “준기 상담 하셨나 봅니다.”

    유독 배치표 중에서도 연천대 인문어문계열 학과들에 동그라미가 쳐 있는 배치표가 눈에 들어왔다. 박 선생이 맞다면서 황당하다는 듯 턱을 괴며 말했다.

    “네. 아니 근데 준기 얘는 진짜 올 1등급 받아오는 거 있죠?”

    “역시, 기본 머리가 좋은 녀석이네요.”

    “그러니까요. 게다가 백분위랑 표준점수도 제법 높아서, 상위권, 최상위권 위주로 상담했어요.”

    대충 보니 가군은 연천대 불어불문학과, 나군은 성실성대 자유전공학부였다.

    그런데 다군은 조금 달랐다.

    “일부러 저런 거죠 저거?”

    “네. 그쪽이 나중에 준비할 때도 돈이 많이 들어서 부모님에게 복수하기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말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준기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연희대 호텔경영학과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모님에게 복수할 생각만 가득한 녀석. 그렇기에 일부러 등록금이 가장 비싸고, 관련 전공으로 취업 준비할 때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 학과들만 선택한 모양이었다.

    근데 저 성적이면 일부라도 장학금 받지 않나? 아니면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나.

    “한결같네요.”

    “맞아요. 그래도 준기는 강 선생님 덕분에 상담 잘 마쳤어요. 감사드려요.”

    “그럼 이제 빚진 거 없는 겁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누가 더 빚 많이 졌는지 내기라도 하실래요? 선생님 내기 좋아하시는 거 같던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매섭게 노려보는 그녀로부터 시선을 피하고는 괜히 옆에 앉은 지석 선배에게 붙었다.

    “선배, 찬오 상담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들었다. 최 원장 완전 보내 버렸다며?”

    선배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최 원장과의 사건을 먼저 꺼냈다. 나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보내긴 뭘 보냅니까. 상호 합의 하에 각자 갈 길 간 거죠.”

    또 이상하게 소문이 퍼지려는지 내가 하지도 않은 표현들이 판을 쳤다. 지석 선배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찬오는 역시나 수능도 잘 안 나와서 유학 생각하고 있었어.”

    “역시 그랬군요.”

    “근데 유학 포기한대.”

    “진짭니까?”

    “그래. 이번 설명회 때 최 원장이 너한테 깨지는 모습을 학부모가 당일에 현장에서 지켜봤다고 하더라.”

    “찬오 어머니가요?”

    지석 선배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답했다.

    “그럼 게임 끝이군요.”

    “그래서 찬오는 스카이 가겠다면서 재수하겠단다.”

    결국 그렇게 되나.

    그래도 학교를 다니던 중에 지석 선배의 손에서 잘못된 일로 이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럼 됐습니다.”

    “되긴 뭐가 돼? 내년에 또 올 거 아냐.”

    “내년에 왜 봐 줘요? 졸업한 놈들은 알아서들 대치동 학원이나 가라고 하십쇼.”

    그 말을 들은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나를 손가락질하면서 비난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리 냉정할 수 있냐, 이렇게 차가운 사람인 줄 몰랐다, 학교 떠나면 우리도 쌩까겠다 등. 두 사람의 온갖 잔소리와 비난을 들으면서 귀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장난을 쳤다.

    “그래서,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강원도로 간다니까요?”

    “그니까 왜 갑자기 강원도야? 그리고 강원도가 지역이 한둘이 아니잖아.”

    지석 선배는 강원도의 여러 지역명을 이야기하면서 각각 특징들이 어떤지, 자기가 언제 여행을 다녀왔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내가 군대를 철원에서 나왔는데….”

    “심 선생은 또 군대 얘기해?”

    이제 막 지석 선배가 군대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윤 선생이 다가왔다. 선배는 윤 선생을 보더니 아쉽다며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강원도 가는 거야?”

    “네, 우리 강.명.문 선생님께서 업무도 보셔야 한다고 하거든요.”

    박 선생이 유독 내 이름을 강조하면서 투덜거렸다.

    지석 선배도 놀러 가는 게 아니었냐며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아직 입시 지나려면 시간 좀 남지 않았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예 연수 느낌으로 다녀오겠는데 잘못하면.”

    윤 선생도 한숨을 쉬는 쪽에 속하면서 나를 흘겨봤다. 나는 그 시선을 억지로 피하면서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튼, 확정된 건 아닙니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세요.”

    “알았어. 겨울이기도 하니까 강원도면 스키장으로 가면 되겠네.”

    “스키 좋군.”

    “전 보드요!”

    박 선생이 이제야 얼굴 표정을 풀면서 스키장을 가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며 기뻐했다.

    “저, 강 선생님.”

    그때 옆에 차 선생이 와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 있나요?”

    “그… 밖에 학부모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차 선생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 그게, 다리가 불편하신 것 같아서 1층 행정실에서 기다리시라 말씀드렸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세요?”

    “네, 휠체어 타고 오셨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를 찾아온 학부모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네, 곧 내려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지갑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 그리고 차 선생님.”

    “네?”

    “혹시 스키장 좋아해요?”

    “스키장이요?”

    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박 선생이 차 선생에게 입시 시즌 끝나면 다 같이 주말에 놀러 가자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괜찮으시면 홍 선생님한테도 물어봐 주세요.”

    나는 강원도 여행 이야기로 시끌벅적한 교사들을 뒤로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행정실에 들어가기 전에 매점에서 따뜻한 음료를 구매했다.

    그리고 행정실 문을 열어 빈 의자 근처에 세워진 휠체어를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강명문입니다.”

    휠체어에 앉은 여성이 나를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괜찮습니다. 앉아서 말씀 나누시죠.”

    중년 여성은 나에게 앉은 채로 인사를 꾸벅 하고는 말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동석이 엄마입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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