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06화 (106/252)
  • 106화. 아군부터

    강문고 근처의 시댁집 식당.

    한 여성이 뜨거운 뚝배기 한가득 들어 있는 순댓국을 보며 앞에 앉아 있는 다른 여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들어선 여성은 옷도 빼어나게 입었는데, 쉽게 말해 부티가 난다, 라는 게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은 자연스럽게 순댓국에 새우젓갈을 넣고 있었다.

    “네가 이런 것도 먹고 웬일이냐?”

    노년의 여성은 앞에 앉은 여성이 새우젓갈을 넣자 그걸 따라하면서 물었다.

    “학교에 계신 어떤 선생님에게 추천을 많이 받아서 요즘은 종종 오지요.”

    “우리 은숙이 이런 음식은 다 끊은 줄 알았는데, 천성은 못 버리나 보네.”

    강은숙 이사장은 새우젓갈에 이어서 깍두기 국물까지 넣고는 국물을 후-후- 불어 가며 한 모금 마셨다.

    “제가 천성이랄 게 있습니까. 그나저나.”

    그녀는 먹던 숟가락을 밥공기에 꽂고 앞에 앉은 노년의 여성을 향해 얼굴을 세웠다.

    “오늘 보자고 하신 건 어떤 연유인가요?”

    노년의 여성도 이사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그런 두 사람 앞에 순댓국밥 정식 세트로 나오는 미니 순대가 놓였다.

    “맛있게 드세요.”

    점원의 말을 신호로 노년의 여성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너한테 서운하게 한 일이라도 있었니?”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애 아빠한테 나 퇴직하도록 유도한 거. 그거 모를 거 같아?”

    이사장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혹시 설명회 때문인가?’

    퓨쳐컨설팅의 최진원 원장이 앞에 앉은 조신자 이사의 남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신자도 이번에 어떤 사건이 터졌는지도 알고 있었다.

    “설명회 때문에 그러시나요?”

    “내가 지금 그걸 몰라서 이러는 걸로 보여? 갑자기 애 아빠가 와서는 나한테 이사진에서 나오고 정식으로 은퇴하는 게 어떻겠느냐 이야기하잖아!”

    작은 순댓국집에서 소리를 빼액 지르는 그녀를 향해 시선이 집중되었다. 조신자는 다소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면서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왔나요?”

    “끝까지 모른 척할 거야?”

    “저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이사장은 조신자의 말을 무시하면서 순댓국을 떠먹었다. 조신자는 이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고 씩씩대기만 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진원 원장님 말입니다만.”

    평소처럼 남편분이라며 친근하게 최진원을 부르던 이사장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조신자는 그 목소리에 긴장을 했다.

    “지난번 설명회 사건 때문에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따끔하게 혼 좀 내 놨어.”

    “아뇨,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학 의대 교수님에게 찍혔습니다. 더 이상 우리 학교와 연루되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불길하기만 합니다.”

    이사장은 언젠가 강명문과 이야기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퓨쳐컨설팅은 강문고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입니다.

    -왜 그렇죠?

    -실력은 없고 적당히 서류를 위주해서 유학 보내는 업체이기에 위험성이 매우 큽니다.

    그런 평가를 했었기에 이사장은 이번 설명회를 기점으로 퓨쳐컨설팅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 했었다.

    그러다 이렇게 사건이 터지면서, 이사장은 마음을 굳힐 수 있었다.

    ‘강 선생이 의도한 것 같기는 하지만.’

    이사장은 티 나지 않게 웃으면서 조신자를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러니 이제 퓨쳐컨설팅은 강문고에 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신자는 이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주먹을 꽈득 쥐었다. 반지들이 끼어 있는 손가락들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말이지?”

    “말씀 그대로죠. 아무리 이사님 남편이라지만, 이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솔직히 우리 강문고를 무시하는 것도 같았고요.”

    그러면서 그녀는 순대 몇 개를 집어서 공깃밥 위에 올렸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지요.”

    올려둔 순대를 입에 넣고 꼭꼭 씹어먹으면서 조신자를 바라봤다. 음식을 다 씹고 삼킬 때까지 조신자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이렇게 된 게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네요. 이사님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는 게 어때요?”

    “뭘?”

    “최진원 원장이 ‘그걸’ 제안했다면서요.”

    조신자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려 쓰러지자 다시금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사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너, 너, 처음부터, 노린 거지?”

    “저는 정말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요즘 여기저기서 찾아 준다고, 기고만장하는 거 아니야!”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아마 강명문이 무언가 한 것 같기는 하지만, 이사장으로서도 확신은 없었다. 그저 소리를 지르는 조신자를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제풀에 지친 조신자는 숨을 고른 후 천천히 말했다.

    “좋아. 어디, 나 없이 잘 되나 보자.”

    조신자는 짐을 챙기고는 식당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이사장은 조신자의 자리에서 식어 가는 순댓국을 바라봤다. 자신의 그릇에 담긴 순대를 꺼내 쌈장에 찍어 먹으면서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깨끗하게 좀 먹지.”

    * * *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나는 이사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문자 보면 전화 줄래요?]

    주말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조신자를 만났으려나?’

    만약 조 이사를 만났다면, 최 원장이 빠르게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그로서는 최대한 조 이사의 은퇴를 부추기고, 외벌이가 되도록 유도해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가장으로서의 뛰어남을 입증하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의외였다.

    ‘생각보다 그런 마인드가 강했던 모양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최 원장이 움직였고, 주말에 이사장은 조신자를 만나고 왔다는 것이었다.

    [최진원 원장이 은퇴를 권고했다고 하더군요.]

    “아, 그랬습니까?”

    [강 선생님도 모르는 일인가요?]

    나는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이사장의 물음에 멋쩍게 웃었다.

    “사실 지난주에….”

    그리고 여태 숨겨왔던 최 원장과의 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사장은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호호, 웃었다.

    [그런데 왜 숨겼나요? 토요일에 바로 알려 줄 수도 있었을 텐데.]

    토요일에 은장이의 합격 소식을 이사장에게 전하면서 왜 최 원장과의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냐는 뜻이었다. 나는 거기에도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래야 이사장님이 아무것도 모르시지 않겠습니까.”

    [아하.]

    “만약 이사장님이 이걸 알고 계셨다면 조 이사에게 공격당할 빌미를 제공하는 거니까요. 이사장님이 직접 이사진을 정리하려 하시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중요한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적을 속이려면 먼저 아군부터 속여라, 인가요? 이번에는 아군을 속였다기보다는 숨긴 거기는 하지만.]

    “네, 그렇습니다.”

    적이라고 표현한 적은 없지만, 이사장이 먼저 적이라고 밝힌 걸 보면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과거 기억들을 토대로, 강문고 이사진들을 정리해보았다.

    강문고 이사진은 강은숙 이사장을 포함해서 총 여섯명.

    조신자, 곽형조, 주현서, 한무회, 천우원.

    이들이 향후 강은숙 이사장을 강문고 이사장직에서 퇴진시키게 만드는 주요 세력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이들이 가지고 있는 비리들이 있다면, 찍어 누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퓨쳐컨설팅의 설명회는 그런 내 계획에 있어 최적의 상황으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저는 그게 가장 의외였는데.]

    “어떤 점이 말입니까?”

    [최 원장도 설득해서 개과천선 시킬 줄 알았거든요.]

    이사장은 내가 류 선생을 협박한 사실은 모른 채 최근 류 선생의 행동 변화에 대해 말했다.

    [류 선생님도 전부 강 선생님이 개과천선 시킨 거죠?]

    그녀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교과서적인 답변을 했다.

    “과찬이십니다. 그냥 류 선생님이 마음을 곧게 잘 만드신 것으로….”

    [아무튼, 그래서 저는 최 원장에게도 그럴 줄 알았거든요.]

    최 원장은 사실 개과천선을 시킬 필요도, 그런 형태로 전략을 짤 필요도 없었다.

    유학 파트는 학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이기도 했고, 최 원장의 성격상 분명 사고를 크게 칠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라면….]

    내 설명을 들은 이사장이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이사장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를 했다.

    “다음부터는 무언가 하게 되면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강 선생님이 계획하시는 거라면 저도 믿고 가야지요. 그나저나 한목대에 방문하기로 하셨다면서요?]

    서윤수 교수가 이사장에게도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일정이 많아서 다음에 가기로 했어요. 선생님들이랑 같이 가시나요?]

    나는 맞다면서, 이사장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사장님, 이번 한목대 일정에 교감 선생님도 참여하시게끔 부탁을 드릴 수 있을까요?”

    [교감 선생님을요?]

    “네. 제가 추천 인원을 몇 명 데리고 간다고 밝히기는 했는데, 교감 선생님을 포함시키고 싶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한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교감 선생님은 솔직히 실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는데요.]

    날카로운 이사장의 분석에 나는 몸을 살짝 떨었다. 모든 교사들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이사장 정도면 안 하는 게 이상한 거겠지만.

    “교감 선생님이 이사장님과 함께 계셔야 학교의 기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음….]

    “곤란하시면 다음번에 하셔도….”

    [아뇨. 서 교수한테 이야기해 볼게요.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이 붙을 수는 있어요.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서 교수가 제안할 조건들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그다지 어려운 제안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교감이 이번 한목대 일정에 합류한다면, 나로서도 이득이었다.

    “또 어떤 사고를 치시려나.”

    한 교감의 평소 행동을 돌이켜보면서 교정을 걸었다. 그때 태성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쌤! 왜 이리 전화가 안 돼요!]

    “넌 왜 이리 호들갑이야?”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태성이의 목소리로부터 멀어지고자 귀와 핸드폰 거리를 멀찍이 두고서 말했다. 태성이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말을 계속해서 더듬었다.

    설마 이 녀석.

    “너 추합 됐구나!”

    [네!!! 저 추합 됐어요!!!]

    “어디야, 어디 추합이야! 국인대? 아니면 숭일대?”

    [국인대요!!! 경영학부 붙었습니다!!!]

    태성이의 합격 소식을 들으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석이, 정석이, 은장이, 명천이, 태성이 등. 이번 수시 합격생만 봤을 때 우리 반인 3반에서만 총 10명이 넘는 합격생이 배출되었다.

    게다가 그냥 합격생이 아니었다. 부족한 스펙과 내신을 극복한 합격생이었다.

    ‘스토리 만들기 좋은 녀석들이 많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태성이에게 축하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태성이가 한 가지 더 생각났다면서 잠깐 시무룩해졌다.

    “이번에는 왜 그래?”

    [쌤, 정아는 떨어졌어요.]

    “벌써 발표 났어?”

    [네. 아까 9시에 조기발표 났거든요.]

    아쉽게도 정아는 논술로 지원한 학교들의 결과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예비 번호가 나쁘지 않아서 기다릴 법하다는 판단은 들었다.

    정아에게도 그 사실을 전달하라고 이야기해주고는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런데 어디서 확인한 거야? 내 자리는 컴퓨터 안 켜뒀는데.”

    [아, 그렇지 않아도 쌤 자리에 안 계셔서 박은환 선생님 자리에서 봤어요.]

    입시 끝나고 두고 보자고 벼르고 있을 박 선생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괜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한쪽 팔을 쓸어내리면서 태성이에게 한 번 더 축하한다 말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때, 딱딱한 무언가가 내 등 뒤를 꾹 눌렀다.

    마치 총구에라도 찍힌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

    내 뒤에는 오 선생이 서 있었다.

    “아니 무슨 암살자처럼 서 계십니까.”

    “크흠,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누가 침묵의 권왕 아니랄까 봐.”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아, 혹시.”

    언젠가 오 선생이 나에게 부탁했던 것.

    그가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학생인 현주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 성적표도 나왔고, 자네 생각도 들어볼까 싶어서.”

    오 선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들고 있던 엑스칼리버를 바닥에 세웠다.

    “아무래도 입시 판도를 잘 읽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는 언제 준비했는지 나에게 따뜻한 캔 커피를 하나 건넸다. 음료를 받아들고 겨울 바람에 차가워진 손을 녹였다.

    “제가 도움 드릴 수 있는 만큼 도와드리겠습니다.”

    입시 판도를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그저 열심히 분석해 보겠다면서 싱긋 웃었다. 오 선생이 그런 나를 보며 현주의 성적표를 보여 주었다.

    그걸 본 내 표정은 묘하게 변했다.

    “재밌는 성적표네요.”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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