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05화 (105/252)
  • 105화. 울보들

    수요일에 열린 추가 설명회는 학부모들의 대성황에 마무리되었다.

    기존 신청 인원보다도 두 배가 넘는 인원이 강당에 모여들 정도였다.

    아무래도 내가 예견했던 입시 분석이 소문에 소문을 탄 모양이었다.

    “강명문 선생님이다!!”

    심지어 내가 강단에 올라서자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때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나를 보며 낄낄 웃는 모습을 사진이라도 남겨 놨어야 했는데.

    시기적으로도 완벽했다. 바로 오늘이 수능 성적표 배부일이기도 했기에 정시 지원 전략에 대해 궁금해하는 학부모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정시 지원 때는 어설픈 안정 지원은 더 큰 화를 낳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번 오 선생의 질문에 답했던 것처럼 나는 미리 알고 있는 미래 입시 정보를 적당히 설명회에 흘려 넣었다.

    학부모들, 학생들은 내 설명을 경청하고서 열심히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이어진 2012학년도 입시 준비 전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최 원장과의 내기에서 이긴 교사의 설명회였다는 점이 학부모들에게는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설명회는 예상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오늘 다시 와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준비한 선물 꼭 받아가세요!”

    한쪽에서는 홍유진 선생과 차석기 선생이 학부모들에게 지난 설명회 일을 사과드린다며 준비한 사은품을 나눠주었다.

    당연하게도 이사장 협찬이었다.

    -그분들을 빈손으로 가게 할 수는 없죠.

    최 원장의 행태를 모두 알고 있는 이사장은 학습다이어리와 볼펜세트를 사은품으로 주자는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선배님, 이거 진짜 해야 해요?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었던 홍 선생님이 왜 그러실까요?

    -그거 5월인가 6월인가 그랬는데 그걸 기억하시다니….

    -에이 잠깐 도와드리고 와. 뭐 얼마나 걸린다고.

    -차 선생님도 같이 도와주세요.

    -나는 먼저 들어갈… 네?

    미술 담당 홍유진 선생과 역사 담당 차석기 선생. 둘의 협조 아닌 협조를 받아 준비해둔 학습 다이어리와 볼펜 세트를 참석자 모두에게 뿌렸다.

    -쌤,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물론, 은장이를 비롯한 3반 학생들과 민주가 도와주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녀석들의 호의를 거절했다.

    -됐어. 이번 일은 교사들 선에서 마무리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불리할 때 또 학생들을 이용한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특하네.’

    멀리서 설명회를 지켜본 학생들을 향해 살짝 웃어 보이자 녀석들이 긴장한 채 몸을 바짝 세웠다.

    “동석아.”

    “네 쌤!”

    “채영이 면접 연습은?”

    “잘 하고 있을 거예요. 정석이가 전담마크 하고 있습니다!”

    설명회가 끝난 직후 나는 바로 채영이의 면접 연습부터 챙겼다. 이제 남은 인원들 중 면접이 있는 사람은 채영이뿐이었으니까.

    “좋아. 그럼….”

    “이봐요 강 선생님.”

    돌아보니 박 선생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설명회만 홀랑 하고 사라지면 어떡해요? 저기 질의응답 대기줄 안 보여요?”

    나는 학부모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지석 선배, 류 선생, 오 선생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잘 해 주고 계신 거 아니에요?”

    “강연자도 참석해야죠!”

    그 말에 나는 그런 거냐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만 하고 질의응답에서는 빠지기로 했습니다. 이미 교감 선생님과 말씀 나눴어요.”

    “그럼 뒷정리라도 도와주세요. 지금 홍 선생님이랑 차 선생님 둘이서 다 하게 생겼잖아요?”

    확실히, 사은품을 다 나눠준 두 교사는 낑낑대면서 의자를 정리하고 소품을 치우고 있었다. 나는 둘을 보면서도 가볍게 웃었다.

    “저 두 분도 슬슬 익숙해지셔야죠.”

    “네?”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묻는 박 선생을 향해 대답 없이 눈으로만 웃어 보였다.

    “눈웃음 하지 마세요. 기분 나쁘니까.”

    “박 선생님 눈웃음도 만만치 않은데 알고 계시죠?”

    또다시 티격태격하는 우리를 보며 카메라를 정리한 윤 선생이 다가와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우리 강원도로 놀러 가요 진짜?”

    “놀러 가는 건 아니고, 업무도 있을 겁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박 선생의 물음에 답하자 윤 선생이 너무나 익숙하다면서 어깨를 들어 올렸다. 박 선생도 내 대답에 별로 실망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입을 삐죽 내밀었다.

    “쳇, 역시 놀러 가는 게 아니었어.”

    “업무는 금방 끝나고 남는 시간은 다 놀러 다닐 겁니다.”

    “무슨 업무예요?”

    “그건….”

    나는 주변에 모여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말을 아꼈다.

    “나중에 다 같이 모였을 때 이야기하겠습니다.”

    아직 서윤수 교수로부터도 일정 확답을 받지 못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대답이기도 했다. 박 선생이 알겠다면서 설명회 마무리를 하러 돌아갔다.

    나는 그녀의 등을 보면서 속으로 씨익 웃었다.

    ‘추천 인원들에… 추가 인원….’

    내년도 입시를 위한 청사진이 내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다.

    * * *

    “준비됐냐?”

    오금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사이, 학생들은 이제 학교로 놀러오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어차피 친구들도 모두 학교에 있으니, 그냥 학교에 나와서 책도 읽고, 입시 준비도 도와주고 하면서 지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은장이의 합격자 발표일인 토요일에도, 녀석들은 어김없이 내 자리로 우르르 몰려왔다.

    “열자.”

    나도 그런 모습이 익숙했기에 은장이에게 내 자리를 내주었다. 은장이는 긴장한 손으로 수험표를 들고 와서는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후….”

    심호흡을 한 은장이가 서울한국대 입학처 홈페이지에서 합격자발표 페이지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수험번호를 입력해서 후다닥 합격자 조회 아이콘을 클릭했다.

    “….”

    “왜, 왜요?”

    마우스를 클릭하기만 했지 눈을 질끈 감은 은장이가 친구들의 반응이 하나도 없자 우리를 향해 물었다.

    눈은 여전히 감은 상태였다.

    “하고 싶은 공부 해라.”

    “네?”

    나는 은장이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잡고 모니터로 돌려주었다.

    “합격했으니까 가서 하고 싶은 공부 하라고!!”

    우와아아! 은장이가 눈을 뜨고 모니터를 확인하는 순간, 동석이와 정석이가 교무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쌔, 쌔, 쌤, 저 진, 진짜 서울한국대….”

    “그래. 이제 네 부모님 후배야.”

    그러자 은장이의 눈에서 동그란 물방울이 툭, 툭 떨어졌다. 그 물방울은 어느새 내 자리의 키보드 위를 적시고 있었다.

    “아, 야! 며칠 전에 산 건데!”

    “쌔애애애앰!!!!!!”

    은장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저, 저, 저….”

    “그래, 잘했어. 잘했으니까 울지 말고.”

    “저 합격했어요, 으허어엉!!!!”

    자리에 서서 울음을 터트린 은장이에게 정아가 달려가서 축하와 위로를 동시에 해 주었다.

    ‘하긴, 그간 고생이 많았으니까.’

    부족한 활동들을 챙기거나 내신을 올린 일들. 그리고 입시가 끝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친구들의 면접 연습을 도와주고, 가끔은 후배의 SOS에 달려가야 했던 일들.

    그리고 부모님과의 갈등과 이를 풀기 위해 했던 코스프레 전략들.

    그런 일들이 순식간에 몰아닥치면서 감정이 북받쳤을 것이다.

    “울음 그치고 부모님한테 바로 전화 드려. 알았지?”

    “훌쩍, 네 쌤 푸헹!”

    어느새 채영이가 휴지까지 줬는지 은장이는 코를 팽 풀었다. 이전에도 그렇고 눈물콧물이 많은 녀석이었다.

    “이제 대학 가서 당당하게 공부해라.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스카이다.”

    내 말에 은장이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훌쩍이면서도 핸드폰을 꺼내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던 은장이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야, 야 정석아, 채영아. 좀 가서 말려라.”

    그런데 정석이와 채영이도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너희는 왜 울어?”

    “훌쩍, 안 울었어요!”

    정석이는 나한테 그렇게 대꾸하고는 휴지를 들고 은장이에게 다가갔다. 채영이는 이제 은장이 어깨를 부여잡고 같이 울기 시작했다.

    “참나, 모르겠다.”

    나는 녀석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녀석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모니터에 여전히 떠 있는 합격 축하 메시지를 보면서 나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이제 쌤, 채영이만 남았죠?”

    은장이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정석이가 돌아와서는 나에게 물었다.

    “다 울었냐? 울보야.”

    “울보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저기도 울고 여기도 울고. 아주 울보 파티네.”

    “아니 말 돌리지 마시고, 채영이만 남았는데 오금 프로젝트 계속 하시는 거예요?”

    정석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에게서 나오기를 바라는지 입술을 씰룩씰룩거렸다.

    “미란이랑 데이트 하려고?”

    “네!”

    너 어차피 졸업 직전에 깨져… 라는 말을 차마 입에 담을 수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제 많이 끝났으니까,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지! 대신!”

    나는 숨을 들이키고는 녀석들에게 당부했다.

    “오늘 하루만 놀아. 내일부터는 다시 공부야.”

    “아 왜요!”

    “왜긴 왜야. 너희들 대학교 가서 공부할 준비가 하나도 안 된 거 같으니까 그렇지.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갔다가는 ‘공부 못 하겠어요 쌤…’ 하면서 내년에 나 찾아올 게 뻔하잖아.”

    내 말에 녀석들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항변했다.

    하지만, 내가 말한 사례는 실제로도 존재했다.

    입시코디를 하던 시절, 어설프게 대학교에만 합격해둔 학생들은 꼭 다음 해에 나를 찾아왔었으니까.

    “책도 꾸준히 읽고, 다큐멘터리 같은 동영상도 열심히 보고. 고등 과정에서 내가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도 봐봐야지.”

    정석이는 내 말을 들으면서 이제는 다 틀렸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러다 헤어지면 쌤 책임이에요.”

    “왜 내 책임이야 인마.”

    그러다 흠칫 불길한 생각도 들기는 했다. 괜히 이러다 나 때문에 헤어졌다는 소리라도 들으면 어떡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연애하다가 한 번 헤어지는 게 대학 가서 공부 제대로 못 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알아서 생각해라. 아무튼, 오금프로젝트는 성탄절 직전까지는 이어질 거다.”

    “성탄절이요!?”

    정아가 놀라서 나에게 말했다. 은장이는 여전히 구석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채영이는 은장이를 챙기고 있었고.

    “아무튼 그렇게 할 거다. 마지막까지 긴장 풀지 말고, 친구들을 위해 계속 공부해나가자!”

    내 말을 들은 녀석들은 동석이를 빼고는 모두 절망에 빠졌다. 은장이와 채영이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동석이는 학교로 오는 게 어지간히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해 하기만 했다.

    “명천이도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는데, 너희가 그러면 안 되지.”

    명천이는 한목대에 합격한 이후로 전에 없이 협조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틱틱 대면서 협조를 했었다면, 이제는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고, 학급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그 덕분에 명천이를 사례로 이야기하면 다른 녀석들도 마지못해 활동에 참여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힘내자고. 화이팅!”

    밝게 웃으면서 명천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명천이가 쇼핑몰에서 가방을 검색하는 걸 발견했다. 녀석이 흠칫 놀라 핸드폰을 옆으로 숨겼다.

    “…왜요?”

    “여자애들은 생각보다 핑크 안 좋아해.”

    “아 진짜요? 아니 제 거 사는 건데요!”

    동석이가 뭔데, 뭔데, 하며 다가왔고, 명천이는 또 그런 동석이를 밀어내려 힘썼다.

    그런데 진짜 여자들이 핑크 안 좋아했던가? 남자의 색이 핑크라는 건 알고 있는데.

    나중에 박 선생이랑 홍 선생에게라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학교 근처 치킨, 피자집에 전화를 걸었다.

    * * *

    녀석들에게 치킨과 피자를 먹인 직후, 은장이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긴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은장이를 잘 봐주셔서 감사하다, 라는 것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성의라도 표시해야….]

    “아뇨,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계속 거절했었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그런 건 관심 없습니다.”

    은장이의 어머니인 최예진은 내 말에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는 고민했다.

    [그래도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

    “은장이가 고생해서 결과가 좋은 거니까 은장이 입학 전에 좋은 옷이라도 사주세요.”

    [우리 딸한테야 당연히 그러죠. 선생님께도 뭔가 해드리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럼 나중에 저 한 번만 도와주세요.”

    [어휴 선생님 부탁이면 당연하죠! 어떤 거 도와드릴까요?]

    “아직은 아니고, 나중에 필요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서야 겨우 감사 인사를 하면서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좋아.’

    은장이의 합격 덕분에 이제 녀석의 어머니인 최예진과 아버지 김영훈의 신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신뢰는 언젠가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었다.

    지금은 아닌, 몇 년 뒤의 미래에서 말이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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