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은퇴 권고
다음 날, 학교로 최진원 퓨쳐컨설팅 원장이 찾아왔다.
수요일에 진행할 설명회의 자료를 준비하는데, 한 교감과 최 원장이 교무실로 함께 들어온 것이다.
“강 선생과 할 말이 있다고 하더군.”
한 교감은 자신이 해 줄 것은 다 해 주었다며 교감실로 들어갔다. 최 원장은 내 앞에서 입술을 씰룩거리며 분노를 참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 드리려 했는데 먼저 오셨네요.”
나는 그를 향해 코웃음을 치면서 다시금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무시당한다고 생각되었는지 최 원장이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
“잘 안 들립니다만.”
“…시발.”
그의 반응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숙이고 연신 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최 원장의 얼굴 아래로 몸을 숙였다.
입을 열심히 중얼거리는 그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었다.
“이전에 내기한 거 기억하십니까?”
설명회가 끝나기 직전, 나와 최 원장은 누구의 분석이 더 맞는지 내기를 했었다.
“이기는 사람의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했었는데 말이죠.”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목소리를 더 낮춘 나를 향해 그가 고개를 들고서 똑바로 노려봤다.
“누굴 노려보실 입장이 아닐 텐데…. 알겠습니다. 그게 최 원장님 뜻이군요.”
그 말에 그가 당황했는지 손을 휘저었다.
“아, 아니, 아니야 그런 거. 나도 이번에 강 선생에게 배우….”
“제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설명회에서의 망신.
학생들에게 어설프게 유학 뽐뿌를 넣은 컨설팅 업체.
게다가 그 유학을 대필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보낸 일들.
그 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 반 학생들을 끌어들이려고 했던 일들.
나는 그 일들을 떠올리면서 눈에 독기를 품고 그를 노려봤다.
그가 강문고에서 힘을 쓸 수 있었던 이유.
한 교감과 어릴 때부터 친구여서? 물론 그것도 있다.
민 부장과 모종의 거래를 해서? 당연히 그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조신자 이사님이 이사진에서 퇴진하시도록 이야기해 주십시오.“
“뭐, 라고?”
“못 들으셨습니까? 조신자 이사님이 이사진에서 퇴진하시도록 이야기하십시오.”
최진원이 강문고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그건 강문고의 이사진 중 한 명인 조신자 이사의 남편이기 때문이었다.
“너, 너… 어떻게 그걸….”
정석이 어머니와 학부모회장의 정보를 토대로 알게 된 건 찬오 어머니의 행보였다.
찬오 어머니는 학교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뒤에서 알게 모르게 행동하면서 조금씩 속을 갉아먹는 사람이었다.
촌지를 학부모회에서 계획하도록 학부모들과 사적으로 만나는 것. 조금 친한 사람에게 지인의 사업을 소개해 주고 소개비를 받는 것.
찬오의 어머니는 그런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하면서 자주 언급되었던 기업 중 하나가 바로 퓨쳐컨설팅이었다.
찬오 어머니가 조신자 이사의 대학 후배이자, 직장 후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눈에 품은 독기를 여전히 빼지 않은 채 그를 지그시 노려봤다. 최 원장이 몸을 살짝 움츠렸다.
“나,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나는….”
“최진원 원장님.”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똑바로 섰다. 최 원장은 이제 정신을 차리기도 벅찬 모양새를 보였다.
“당장은 이사진 퇴진을 요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압니다.”
나는 그의 어깨 옆까지 다가가서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그게 또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렇죠?”
“왜, 왜?”
“사모님께서 이사진을 그만두셔도 최 원장님이 계시니 대치동 학원가 정도는 장악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최 원장의 떨림이 잠깐 멎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띠었다.
“이미 대치동에서 유학컨설팅으로 나름 자리를 굳건히 세우셨고, 더 나가면 대치동 유학 전문은 최진원! 이라는 타이틀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굳이 국내 입시로 눈을 돌리실 필요도 없을 거고….”
강문고의 이사진 중 한 명인 조신자 이사. 그녀와 최진원 원장은 부부이기는 했지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최 원장이 조 이사에게 열등의식을 갖고 있었다.
-최 원장님 학벌이 별로 좋지는 않죠.
-집안은 조 이사님네 집이 훨씬 부자고 권력도 있을 거예요. 아 근데 최 원장님도 잘 살기는 해요.
정석이 어머니와 학부모회장은 찬오 어머니에게 들었던 최 원장의 정보를 나에게 귀띔해주었다.
-그래서 본인도 미국이었나 영국이었나? 유학 다녀와서 컨설팅 업체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많이 합격시켰으니까 또 많이들 가기는 하죠. 대치동에서 유학 준비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 찾기가 힘들어요.
두 사람의 정보를 토대로 정리하자면, 최 원장은 학벌은 좋지 않고, 어느 정도 사는 편이지만 조 이사만큼은 아니었다.
“슬슬 사모님도 은퇴를 하실 나이가 됐는데….”
최 원장의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그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는 이제 나에게 숙였던 고개를 들고 눈을 살짝 감은 채 서 있었다.
“유학 분야는 은퇴가 따로 없으니.”
이쯤에서 이제 결정타를 날리면.
“이제는 최 원장님이 가정 내에서 목에 힘주고 다니실 일만 남은 겁니다.”
연금을 받는다 해도, 돈을 많이 비축했다 해도, 결국 집안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이 최 원장이었다.
그건 미래의 퓨쳐컨설팅을 생각해 봐도 그랬다. 여기저기 사업을 과하게 펼쳤고, 불법으로라도 실적을 올리려 하다 보니 문제가 터지기도 했고 말이다.
전에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었는데, 정석이 어머니와 학부모회장의 정보 덕분에 퍼즐이 풀린 것이다.
예상대로 최 원장은 내 말이 끝나자 긴장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그게 될까?”
최 원장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짧게 신음했다.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계신 분이니 조 이사님은 아쉬울 것 없으실 겁니다. 오히려 남편이 많이 벌어오면 더 편하실 수 있죠.”
“자, 자네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나?”
나는 그의 반응에 침착하게 답했다.
“그렇습니다. 자고로 남자는 바깥에 나가야 집에서도 인정받는 남편이지 않겠습니까.”
결국 최 원장이 원하는 건 그것이었다.
집에서 인정받는 남편.
돈도 잘 벌고, 성과도 좋은 남편.
그런 사람으로 집에서도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녀분들도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최 원장이 가려워하는 부분을 살살 긁어주었다.
-자식은 있습니까?
-아들 하나, 딸 하나. 둘 다 미국이랑 유럽으로 유학 갔죠. 그런데 최 원장과 사이가 좋지는 않을 거예요.
-이유가 있나요?
-자녀들 유학 보낸다고 컨설팅해주고 서류 다 만들어주고 그랬는데, 엄마가 보내 준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무능력한 아버지는 아무 것도 안 해주고, 능력있는 어머니가 다 해줬다, 뭐 이런 형태 같아요.
학부모회장은 찬오 어머니와 티타임을 나누면서 들었던 가십거리 같은 내용들도 알려 주었다.
최 원장은 나에게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침착함을 되찾았는지 덜덜 떨던 어깨를 멈추었다.
슬슬 그도 생각이 많아질 타이밍이었다.
“남들은 은퇴할 때 집에서 가장으로서 무게도 잡고, 인정도 받고.”
“….”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조 이사님이 자연스럽게 최 원장님보다 빨리 은퇴하시도록 하셔야 하고.”
“…그건 그렇지.”
“이것보다 좋은 미래 설계가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살짝 다리를 꼬고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최 원장은 잠시간 고민을 하더니 궁금한 게 있다면서 물었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최 원장님은 원장님 나름대로 노후 준비를 꾸준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100세 시대, 100세 시대 하지 않습니까? 연금만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옵니다.”
뭐, 지금 시대에도 100세 시대니 뭐니 하기는 하지만, 미래에는 평균연령이 더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고.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원장님이 조건을 거실 입장이 아닐 텐데요?”
그의 얼토당토않은 말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제 제안을 따르지 않으신다면 이번에 있었던 모든 일을 강문고 이사회는 물론이고 학부모회, 학생회 등을 통해 공식 문제화 시킬 겁니다.”
“뭐, 뭐라고!?”
“그렇게 되면 조 이사님이 원장님을 어떻게 볼지 참 궁금하군요.”
이미 지난번 설명회 때의 이야기는 조 이사 귀에도 들렸을 것이다. 그 정도로 시끄러운 사건인데 이사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조 이사는 향후 강은숙 이사장과 경쟁해서 이사장 자리를 꿰차려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이번 최 원장의 실책은 똥볼 중에서도 똥볼이었을 것이다.
“오늘 제 소원만 들어주시면, 우리는 지금 바로 적당히 화해하면 됩니다.”
책상 위에 손을 뻗자 이제는 아예 항상 말아서 가지고 다니는 종이 몽둥이가 손가락 끝에 닿았다. 그걸 손가락으로 굴리면서 책상을 톡톡, 시곗바늘처럼 건드렸다.
침묵 속에서 최 원장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제 소원 들어주시면서 적당히 마무리하시고 각자 갈 길 가거나.”
그는 입을 벌린 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고 뻐끔뻐끔 하기만 했다.
“원장님 혼자 똥통에 빠져서 온갖 모욕이란 모욕은 다 받고 가거나.”
손가락을 하나씩 펼치면서 말하는 나를 보며 최 원장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생각 좀 해 보고.”
“아뇨. 생각할 시간은 지금 이 자리뿐입니다. 1분 드릴 테니 그 안에 결정 못 하시면 바로 교감, 교장, 이사장님에게 연락드릴 겁니다.”
“가, 강은숙 이사장!?”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거기에는 <강은숙 이사장님>이라는 연락처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그리고는 훽 핸드폰을 돌려 스톱워치를 켰다.
“강 선생,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는 건….”
“벌써 10초 지났습니다.”
“자, 잠깐! 생각을 좀….”
“20초가 흘렀군요.”
“그, 그래! 내가 자네에게 용돈이라도 챙겨 줄 테니….”
“30초.”
“아, 아무래도 이건 우리끼리 정하기가….”
“그럼 교감 선생님하고 의논이라도 하실 겁니까? 45초 지났습니다.”
핸드폰 스톱워치는 속절없이 움직였다. 최 원장은 그 숫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결정을 했는지 고개를 있는 대로 숙였다.
“하, 할게!”
“제 소원 들어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내가 들어줄게!”
그의 말에 씨익 웃으면서 스톱워치를 멈췄다.
“57초네요. 알겠습니다.”
이제 오늘부로 강문고에서 퓨쳐컨설팅이 설 자리는 없어졌다.
“오늘 약속하신 것 잊지 마시고.”
그리고 강문고를 좀먹는 존재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가끔 연락이나 하고 지내시죠.”
강은숙 이사장을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의문. 이사진으로부터 왜 퇴진을 요구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
“조 이사님께 제 말은 하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풀어주세요. 자연~스럽게.”
이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진.
“그렇지 않으면, 원장님만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은퇴하실 겁니다.”
사학비리 폭로 사건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
그중 이사진을 손보는 일도 포함되게 되었다.
거래를 위해 내민 내 손을 그가 슬로우모션처럼 잡았다.
그는 여전히 두려움 가득한 눈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지 입을 뻥긋거리기도 했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는 냉정하게 악수하던 손을 놓으며 몸을 돌렸다.
“허튼짓하면… 대치동 바닥에서 사장되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실 겁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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