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뿌리 뽑기
정시설명회가 끝난 직후 나는 윤 선생, 지석 선배, 오 선생으로부터 온갖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심 선생은 안 말리고 뭐 했어?”
“저도 말리고 싶었는데 학부모들 동요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 그거부터 막았죠. 인마! 너는 진짜, 내가 너 때문에 제 명에 못 산다 못 살아!”
“나도 이번 일은 예상 못 했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깽판을 쳐서야 쓰나?”
그리고 잔소리를 하지 않아서 의외라고 생각했던 박 선생도 한마디 거들었다.
“사고 치는 게 당연하게 느껴져서 잔소리할 생각도 안 드네요.”
교활하게 웃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아무 대답 없이 씨익 웃어 주었다. 그러자 박 선생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입을 중얼거렸다.
저거 아무리 봐도 욕한 거 같은데.
그런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이 월요일이 되자 나를 둘러싸고는 청문회를 하기 시작했다.
“너 솔직히 말해.”
“뭘 말입니까?”
“교육부에 아는 사람 있냐?”
지석 선배의 의심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말이 됩니까. 제가 무슨 연고가 있다고.”
“그럼 그런 정보 어디서 얻은 거예요? 강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들 전부 다 들어맞았잖아요!”
박 선생도 말이 안 된다면서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나는 두 손을 위로 들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며 시치미를 뗐다.
“아니 정말 저의 분석력과 추론 능력으로 이야기를 했던 것뿐인데, 다들 왜 그러세요?”
“수상해….”
“수상해요….”
“수상하단 말이지….”
내 주변을 둘러싼 교사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한목대 의과대학장, 서윤수 교수였다.
“네, 서윤수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내가 인사를 하자마자 교무실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튀어나왔다.
[역시!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니까! 족집게 맞잖아! 껄껄!]
서 교수도 아침에 언론보도를 확인했는지, 설명회 때 내가 이야기했던 부분을 되짚었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교무실이라 목소리 조금만….”
[아이쿠, 미안하네 미안! 크흠, 아무튼 말이야, 이번에는 둘 다 경황이 없었어서 식사도 못 했는데, 어떤가, 올해가 가기 전에 한번 밥은 먹어야지?]
그러면서 넌지시 한목대 주변으로 한번 오라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자주 가는 소고기 맛집으로 안내함세.]
“정말이십니까!?”
[그럼그럼. 자네가 추천하고 싶다고 했던 선생님들도 모시고 와. 아마 은숙이도 가자고 할 거야.]
서 교수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조만간 다시 연락하자는 인사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미 내가 서 교수와 통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교사들이 나를 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했다.
궁금증 어린 눈빛의 그들을 보면서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서 이야기했다.
“우리 입시 끝나면 휴가 다 같이 가자고 했죠?”
“응 그랬지.”
“강원도로 가시죠. 소고기 맛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 * *
보도가 나오고 나서 학교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퓨쳐컨설팅? 거기랑 하기로 한 거 누구예요?
-이상한 업체가 와가지고 시간만 날렸네요.
-앞으로 업체 가리고 여십시오. 강문고라는 이름이 아깝습니다.
강문고 홈페이지에는 항의글과 함께 댓글도 수십 개가 달렸다.
평소 활성화되지도 않던 홈페이지가 활성화된 건, 그만큼 학부모들이 분노를 금치 못하였기 때문으로도 해석되었다.
그리고 홈페이지의 댓글을 하나씩 읽은 한명심 교감은 말을 멈추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다.
강은숙 이사장은 한명심의 말을 듣고는 미간을 좁혔다.
“최진원이면 교감 선생님 친구분이었죠?”
“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도 불안했던 터라 강 선생에게 특별히 요청을 해두기도 했었고….”
“교감 선생님을 나무라는 게 아니에요. 여쭤보는 겁니다.”
그 말에 한명심이 고개를 숙이고는 열중쉬어를 했다.
“네, 최진원이는 어릴 때부터 친구입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 소개도 많이 해 주었잖아요.”
“네, 맞습니다. 헙! 이사장님 알고 계셨습니까!?”
한명심이 놀라면서 입을 틀어막았다. 이사장은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명심을 돌아봤다.
“그 정도는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민 부장님과도 커넥션이 있다는 점도 알고 있고요.”
이사장은 강명문이 했던 이야기들을 조합해 보았다.
-민 부장과 최진원, 그 둘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교감 선생님은 이번 설명회에서 한 발 빠져 있으실 겁니다. 추궁하기보다는 빠르게 대처한 사실을 칭찬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사장은 한명심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했다.
“그래도 교감 선생님 덕분에 더 큰 화를 입기 전에 대처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저, 정말입니까?”
“네. 강 선생님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설명회는 엉망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보세요.”
물론 설명회가 끝난 직후에는 학교가 제법 시끄러웠다. 주말 동안에도 학교로 수많은 전화가 오고, 학부모들의 항의 이메일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판도가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확연하게 변화했다.
강명문이 예견했던 입시 전형 변화가 모두 들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퓨쳐컨설팅은 우리 학교와는 인연을 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친구의 학원이었지만, 한명심은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실세라고 할 수 있는 강명문과 이사장을 잡기 위해서는 그들의 방식에 맞춰 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한명심은, 오히려 지금의 사태를 만든 최진원을 속으로 비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정시 접수 기간입니다.”
이사장은 벽에 걸린 캘린더를 확인했다. 앞으로 열흘 뒤. 정시 접수가 시작된다.
“그 시기에 앞서서 강 선생님에게 추가 설명회를 잡아달라고 해야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 괜찮을까요?”
“만약 현실적인 여건이 어렵다면, 학부모들에게 정시 지원 전략을 짤 수 있는 자료라도 제공을 해 주어야지요. 지금 이대로 퓨쳐컨설팅 설명회를 넘기기에는 리스크가 지나치게 큽니다.”
강명문이 있었기에 그래도 이번 설명회에서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두었다가는 후속처리 미흡으로 인해 학부모들로부터 신뢰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어떻게 올린 신뢰인데.’
특히나 올해에는 입시실적, 분석력 등이 우수한 강명문 덕분에 학교 평판도 좋아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시점에서 학부모들의 신뢰를 깎아 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강 선생님에게 연락해 볼게요. 설명회 다시 여는 걸로 이야기는 현장에서도 했으니까 가능하기는 할 거예요.”
“앗, 아니요, 제가 하겠습니다, 이사장님!”
한명심은 다급하게 외치더니 핸드폰을 꺼내 강명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명문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던 한명심은 놀란 눈을 하고서 이사장에게 말했다.
“그… 이사장님.”
“네, 말씀하세요.”
“강 선생이 이미 준비되었다고, 당장 내일이라도 열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인가요?”
이미 이런 사태를 예견했던 걸까.
강명문의 용의주도함에 이사장은 속으로 혀를 두르며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들었다.
“그럼 수요일과 금요일 중 학부모님들에게 전화해서 일정 받아야겠네요.”
“어… 어, 그래. 그럼 그것까지 생각한다는 건가?”
한명심은 아직 강명문과 통화를 끊지 않았는지 통화를 잠깐 더 이어나갔다. 5분쯤 더 지나고서야 전화를 끊은 한명심이 이사장을 보면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리고 한 가지 추가 제안이 있었습니다.”
“어떤 건가요?”
“아무래도 평일에 오픈하면 보고 싶어도 못 보는 학부모님들이 계시니 동영상 촬영을 해서 원본을 홈페이지에 올리자는 의견입니다.”
그 말에 강은숙 이사장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항상 설명회를 개최할 때 겪는 문제 중 하나가, 직장인 학부모의 경우 참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항상 고민하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촬영장비 부족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걸 준비할 인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고1, 고2 학생들은 기말고사 준비를, 고3 학생들은 입시가 끝나서 다들 일찍 들어가거나 하는 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강명문이 직접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다면 3학년 3반 학생들 중 이미 합격한 학생들과 함께 준비하려나?
아니면 은장이를 통해 학생회나 방송부 인원들을 데리고 오려나?
온갖 가능성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면서 이사장은 올해만큼은 설명회의 동영상 촬영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좋아요. 네, 정말 좋네요. 장비는 다 있죠?”
“네, 기본 장비는 다 있고, 그냥 세워두고 찍어두기만 하면 되니까 비싼 카메라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이사장은 한명심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금 캘린더를 확인했다.
“그럼 수요일에 바로 오픈하시죠.”
“수요일에 바로요?”
“네. 오시기 힘든 분들에게는 동영상과 설명회 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린다고 말씀 주시고요.”
만연하게 웃고 있는 이사장을 보면서 한명심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퓨쳐컨설팅이라는 위험으로부터 나는 한발 먼저 빠졌다. 책임은 민 부장에게 넘길 수 있다.
그 생각만이 한명심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 *
학부모회장은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강명문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잘 쉬고 계셨어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면서 근황을 물었다. 학부모회장은 요즘 아주 기분이 좋아 미칠 것 같다며 기뻐했다.
특히, 아들 명천이의 합격을 여기저기 알리면서 아들 자랑을 많이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한목대 의예과에 합격한 사실이 학부모회장으로서는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퓨쳐컨설팅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명천이를 유학 보내려고 했을 때 상담을 받았던 업체. 그렇기에 학부모회장도 이곳의 정보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저도 찬오 엄마한테 소개받은 곳이에요. 거기 이번에 설명회에서 제대로 망신 당했다면서요?]
“네. 그래서 위험한 컨설팅 업체들은 아예 강문고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교감 선생님과 이사장님의 뜻이 그렇고요.”
한 교감과 이사장의 이야기를 조금 하자 학부모회장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찬오는 어떤 아이인가요? 아니, 찬오네 집은 어떤 집인지 알려 주시겠어요?”
[찬오네 집에 대해서요?]
지금까지 찬오 학부모를 통해 유학을 고려하는 학생, 학부모들이 많았다. 우리 반인 3반만 해도 정석이, 명천이 두 명이나 그랬다.
그렇다면 전교로 따졌을 때는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네, 부탁드립니다.”
학부모회장과 얼마간 이야기를 나눈 후 전화를 끊었다. 그 후 곧장 정석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나, 선생님!]
“잘 지내셨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아들이 성실성대에 입학할 줄 알았겠어요 누가!]
정석이가 합격한 소식이 학교에 퍼지고, 학부모에게도 퍼지면서 논술 특강이 재평가 받았다. 논술전형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정석이 어머니는, 아들의 의지를 믿으려고 노력은 했지만, 역시 온전히 믿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석이가 특강을 잘 따라와 준 덕분입니다. 맛있는 거라도 사 주면서 격려해 주세요.”
그렇게 잠시간 우리는 정석이의 합격 이후의 태도 변화라든가, 아들이 어떤 목표를 갖게 되었다거나 하는 잡담을 했다.
거의 대부분 정석이 자랑이기는 했다.
‘자식 자랑하기 딱 좋은 시점이기는 하지.’
소리 내지 않고 웃으면서 나는 정석이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은 걸 말했다.
“그런데 어머님, 찬오네에 대해 좀 아십니까?”
[퓨쳐컨설팅 때문이죠?]
“네. 알고 계셨군요.”
[요즘 강문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거기 모르면 강문고생 아니라는 소리 들어요. 아들 말로는 선생님이 크게 한판 하셨다면서요?]
이놈 자식이 어떻게 설명했길래.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 종이몽둥이로 정석이 뒤통수를 때리는 상상을 하며 태연한 척 말했다.
“하하, 뭐 한판까지는 아니고요. 아무튼 어떤가요?”
정석이 어머니는 찬오네가 어떤 집인지, 그리고 퓨쳐컨설팅과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들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아니에요. 이참에 뿌리 뽑으셔야죠. 저희도 당할 뻔했으니까요.]
그녀는 지난날이 생각났는지 몇 번 화를 내면서 다시 일하러 들어가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의자 뒤로 몸을 뉘이며 생각했다.
‘그렇단 말이지.’
퓨쳐컨설팅과 조찬오의 관계. 학부모회장과 정석이 어머니의 정보.
“제대로 뿌리 뽑아 줘야겠네.”
그 내용을 정리하면서, 나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참을 수가 없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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