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내기라도?
퓨쳐컨설팅 설명회가 있기 전날, 이사장은 서윤수 교수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은숙이, 이번 주에 시간 좀 되나?]
“몇 번 연락 좀 했다고 너무 친하게 연락하는 거 아니야?”
[거 우리 사이에 섭섭하게 왜 그래. 아직도 대학생 때 앙금이 남아 있어?]
“그런 건 아니지만.”
강은숙 이사장은 창밖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2011학년도 입시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라 강문고 교정은 꽤 한가로웠다. 고3 학생들 중 입시가 마무리된 학생들은 학교를 일찍 끝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아직 최선을 다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도 많았다.
강명문의 주도로 이루어진 <오금 프로젝트>. 이 특강에 잡혀 있는 학생들 만큼은 아직 입시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내일 휴가 내서 놀러 갈까 하는데.]
“강남 와서 놀다 가려고?”
[껄껄 좋지! 우리도 젊음의 거리 좀 돌아 볼까?]
서윤수의 농담에 이사장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일 올 거면 일찍 올래? 학교에서 설명회 하는데.”
[설명회? 무슨 설명회?]
“정시 설명회와 내년도 입시 전략 설명회.”
[그 친구도 들어가나?]
서윤수가 물어본 그 친구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챈 이사장은 옅게 웃으면서 말했다.
“강 선생이라면 뒤에 내년도 입시 전략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부연설명을 해 주기로 했어.”
[강 선생이 메인이 아니야? 강문고에 그 사람만 한 입시전문가는 없을 텐데?]
이사장도 서윤수의 말에 답하지는 못했다. 퓨쳐컨설팅과 하게 되는 이유가 한 교감, 민 부장 때문인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대놓고 막을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강명문이 잠깐이나마 섹션을 담당해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만약 퓨쳐컨설팅에서 잘못된 이야기를 하더라도 강명문이 잡아 줄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사장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서윤수는 흥미롭다면서 한 가지를 제안했다.
[나도 그거 들어도 되나?]
“안 될 거야 없지.”
[그럼 내가 들어가서 그 퓨쳐컨설팅인지 풋춰핸접인지 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잘하나 봐 봐야겠구만 껄껄.]
* * *
이사장으로부터 일련의 이야기들을 들었기에 서윤수 교수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적당히 태클을 걸 거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듣다가 아니다 싶으면 딴지 좀 걸어 볼게.
서 교수가 내 앞에서 이렇게 말을 하기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렇게 대놓고 저격을 날릴 줄은 몰랐다.
뭐, 솔직히 말하면 속이 시원하기는 했다.
[하, 한목대 의과대학장 교수님?]
[그렇습니다. 통성명은 이 정도로 하고, 아무튼 우리 한목대는 이번 입시 결과를 두고서 긍정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난데없이 벌어진 논쟁에 당황해하며 웅성거렸다. 그런 좌중을 미리 대기하던 오 선생과 지석 선배가 진정시켰다.
[이번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강당이 조용해지자 서 교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공부만 잘 하는 학생을 뽑는 데에 이제는 질렸다는 표현이 맞겠군요.]
최 원장은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결국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겁니다. 이번 5등급 학생이 합격한 건 꼼수로 들어간 거죠. 그런 전형을 계속 놔둘 정도로 교육부가 바보는 아닐 거라는 예측입니다.]
서 교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으로 해석한 최 원장이 신이 나서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니 지도 교사도 그렇습니다. 가장 정직하다고 할 수 있는 수능, 논술, 내신 교과 전형. 이 전형들이 아니면 입학한 학생도, 입학시킨 선생도 신뢰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는 강당 한쪽에서 대기중이던 나를 가리켰다. 나는 ‘나?’ 하는 눈빛을 하면서 스스로를 지목했다.
[저기 있는 저 선생이 이번 입시에서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입학사정관제라는 요행으로 합격시킨 거라 믿어서는 안 된다는….]
[지금 강연자 분은 수시와 정시가 현재 어떤 전형들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서 교수의 갑작스런 질문에 최 원장이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역정을 냈다.
[지금 그게 왜 중요합니까!]
[말해 보세요. 어떤 전형들이 있습니까? 자기소개서는 총 몇 문항이죠? 면접에서 서류기반면접과 심층논술면접, MMI면접은 각각 어떤 특징을 갖고 있습니까? 정시 지원 마감은 언제까지죠? 올해 정시로는 몇%나 선발합니까?]
서 교수는 의과대학장 교수였지만, 입시 전형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렇기에 저런 질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질 수 있었다.
반면, 최 원장은 서 교수의 질문을 받으면서 머리를 쥐어짜냈지만, 답을 내지는 못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가 설명하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만들어진 대본을 읽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본적인 입시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을 우리가 이 자리에서 듣고 있어야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그는 은장이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더는 최 원장과 할 말은 없다는 뜻이었다. 은장이는 마이크를 받아들고는 나에게 쥐어 주었다.
[그, 잠깐 해프닝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아무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겁니다. 결국 제대로 된 실력으로 학생을 합격시킨 적 없는 사람을 믿기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최종 주장을 정리하려던 최 원장의 말은, 강당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남학생에 의해 한 번 더 중단되었다.
“쌤!!!!!!!!!!!!!!!!”
정석이가 강당 문을 활짝 열고 소리를 쳤다. 강당에 모여 있던 학부모들, 학생들이 이번엔 또 뭐냐면서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저!!! 성실성대 논! 술! 붙었습니다!!!!!!!”
그러더니 녀석은 쏜살같이 내 옆으로 달려와서는 나를 껴안았다.
“야! 정석아 축하한다! 근데 좀 떨어져라, 야 인마!”
“쌤 진짜 감사합니다!!!! 이걸로 연애도 더 할 수 있고 대학도 갔어요!!!!! 감사드림다!!!”
정석이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내 얼굴에 볼을 마구 비벼댔다.
“아 좀 떨어지라고!”
오 선생과 지석 선배가 붙어서야 겨우 나에게서 떨어진 정석이에게 말했다.
“지금 설명회 중이니까 조용히 해. 끝나면 전화할 테니까 교무실로 오고.”
은장이도 정석이에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면서 빨리 저리 나가라고 말했다. 정석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강당 구석에 자리해서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쌤 됐죠?
정석이의 문자를 확인하고 나는 녀석을 향해 웃어 보였다. 정석이가 활짝 웃으면서 기뻐했다.
이미 정석이의 합격 소식은 설명회 도중에 문자를 받아서 알고 있었다.
교실에서는 동석이, 태성이를 비롯한 친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방금 막 합격한 정석이에게 강당으로 쳐들어와서 소란 좀 피우라고 전달했다.
‘그래도 얼굴 비빈 건 좀 징그러웠다.’
으으, 소름이 돋는다는 듯 팔뚝을 쓸어내리는데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수근대는 소리가 나왔다.
“방금 논술로 합격했다고 하지 않았어?”
“이번에 인문논술 특강도 오픈했던데.”
“그거도 저기 저 선생이 연 거 아냐?”
“와 국어쌤 쩐다. 나도 내년에 특강 들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새어나오자 최 원장이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해했다.
“껄껄! 저기 강명문 선생님이 논술로 합격시켰으니 실력은 증명이 된 것 같군요.”
서 교수가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내면서 최 원장을 노려봤다.
“당신 제대로 알고 온 거 맞아?”
“지금 우리 상대로 사기치려는 건 아니지?”
몇몇 학부모들이 최 원장에게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최 원장은 당황해서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어버버했다.
“원장님, 잠시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강단 위로 올라가 최 원장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최진원 원장님이 설명하신 부분에서 바로잡아야 하는 내용이 몇 가지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만한 단어 사용이 조금 있으시기는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잠깐 말을 멈추고 은장이를 향해 신호를 했다. 은장이는 내 신호를 받자마자 새로운 PPT 화면을 노트북상에 띄웠다.
<2012학년도 대입 전형계획 예상도>
[전체적으로 수시 모집 인원은 늘어나고, 정시 모집 인원은 줄어들 것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62% 정도를 수시로 선발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중 입학사정관제도 소폭 증가할 겁니다. 최 원장님 말씀처럼 요행으로 합격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우려가 있기에 대학이 조심스러워할 수는 있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최 원장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최 원장은 아직도 상황 판단이 안 되었는지 PPT 화면과 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내년에는 학생부가 훨씬 중요한 형태로 자리잡을 겁니다. 특히 서울한국대의 경우에는 지역균형선발 전형에서 내신으로 1차 합격자를 정하던 과정을 생략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잠재력을 평가하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들이 많았으니까요.]
내 말이 이어지자 최 원장의 얼굴이 점차 시뻘겋게 변해 갔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서 마이크를 훽 빼앗으려 했다. 그의 손을 가볍게 피하고는 은장이에게 마이크를 하나 갖다 달라고 신호를 주었다.
은장이는 다소 찜찜해하면서 마이크를 들고 올라왔다. 최 원장이 씩씩대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자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아나!]
최 원장은 침을 튀겨 가며 소리쳤다.
[나도 여러 대학 입학사정관들이나 명문대 교수들이랑 술자리 하면서 보고 들은 게 있어!]
이제 최 원장은 강당에 모인 학부모들,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오 선생과 지석 선배에게 신호를 주고는 좌중이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했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분석을 해서 추론을 합니다. 그 결과 내년부터는 충원기간을 별도로 정해둘 것으로 생각되는데, 원장님도 직접 분석해서 내린 결론이 있으십니까?]
최 원장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마이크에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시는 축소! 정시는 확대! 왜? 자네처럼 요행으로 학생들 보내고서는 사기 치는 사람들이 생길 테니까! 그리고 국내 입시가 이렇게 엉망이니 유학으로도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지!]
[사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원장님이야말로 퓨쳐컨설팅에서 내년에 논술 수업, 정시 수업 오픈한다고 이렇게 홍보하려는 거 아닙니까? 유학이야 말할 것도 없고요.]
나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들고 있는 서류봉투를 가리켰다.
[저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걸 보면 왜 이런 내용의 설명회를 하시는지 이해가 딱 되는데요.]
내가 학생들, 다른 교사들과 함께 정리했던 자료들. 거기에는 퓨쳐컨설팅의 각종 프로그램들을 홍보하는 포스터가 들어 있엇다.
유학컨설팅, 논술 수업, 수능 특강 등. 이번을 기점으로 퓨쳐컨설팅은 전문분야를 확장시키려 했던 것이다.
[뭐, 뭐야!]
[정 그러시면 저랑 내기라도 하시겠습니까? 제 분석이 더 잘 맞았는지, 원장님의 분석이 더 잘 맞았는지 말이지요.]
의기양양한 내 말에 최 원장이 잠깐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그도 당당하다는 듯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좋아, 어디 해 보자! 내가 이기면 명예 훼손부터 시작해서 각종 소송을 다 걸 테니까 두고 보라고!]
[네. 제가 이기면, 소. 원. 하나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그를 향해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소원 하나, 그 소원이 어떤 소원일지 알지 못하던 최 원장은 못마땅해 하다가도 분위기에 휩쓸려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 자리에 계신 모든 학부모님들, 학생들이 증인이 되어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설명회가 다소 매끄럽지 못해 정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과 논의해서 추후 별도의 설명회를 소정의 선물과 함께 오픈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강단에서 인사를 하자 서 교수가 참 재미있어졌다면서 껄껄 웃었다.
몇몇 학부모들이 지금의 사태에 항의를 하려고도 했다. 다행히 오 선생과 지석 선배가 중간에 막아 주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추후 다시 오픈하겠다며 그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이틀 뒤, 언론에 여러 기사들이 보도되었다.
<2012 대학입학 전형시행계획 발표!>
<정원 62% 수시선발>
<입학사정관제 소폭 상승>
<6일간의 충원기간 설정>
<서울한국대 파격 변화. 내신 선발 1차 없이 서류와 면접만으로 종합 평가>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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