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01화 (101/252)
  • 101화. 좀 다른데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친구들의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동석, 명천은 물론이고 3학년 3반 친구들의 합격 결과가 나오면서 은장은 불안했다.

    나만 떨어지면 어쩌지?

    만약 정석과 정아, 태성 등 친한 친구들이 모두 합격하고 자신만 떨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런 기분을 시뮬레이션 하면서 은장은 괜히 불안에 빠졌다.

    ‘분명 그때 답변은 나쁘지 않았어. 인문학과 광고의 연결고리를 물어봤을 때도….’

    은장은 자신이 면접 때 했던 답변들을 복기해 보았다. 다시 떠올려봐도 너무나 선명했다.

    긴장은 했지만, 그 과정에서 은장은 할 수 있는 말들은 다 했다.

    게다가 마지막 질문으로 나왔던 문학의 현실성과 허구성 질문.

    -문학의 허구성과 현실성은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의 현실성은 우리가 현실에서 이야기하는 현실성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앞뒤 연결, 즉 인과관계가 매끄럽다면 현실성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허구적 요소 역시 환상적 요소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허구성이 과하게 나타나거나 인과관계가 미흡하면 독자들로부터 거부감을 느끼게 합니다. 따라서 문학은 현실성과 허구성이 적절히 융합한 형태로 작성되어야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 내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쁘지 않은 답변이었다고 생각했다.

    끝난 뒤에는 두 평가자가 고개를 마주보며 웃기도 했다.

    담임선생님도 분위기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도 불안했다.

    왜 계속 불안한 걸까.

    동석이나 명천이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은장의 핸드폰이 우웅- 울렸다.

    “여보세요?”

    [언니, 내일 시간 있어요?]

    “어, 민주야. 내일 있어. 왜?”

    [죄송한데, 내일 설명회 준비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학생회장인 민주는 이번 정시설명회 준비도 학생회에서 맡게 되었다며, 부족한 일손을 채워달라 요청했다.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다른 학생회 인원들은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기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도 밝은 모습을 유지하는 민주의 모습에 은장은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괜찮아. 나도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끝났으니까.”

    [진짜죠? 와 다행이다. 살았어요 언니! 고마워요!]

    내일 오전 일찍 민주와 만나 설명회 준비를 하기로 한 은장은 핸드폰을 침대 위에 대충 던졌다. 그리고는 털썩- 자리에 누웠다.

    ‘그래 뭐든 하자.’

    후배의 일을 도와주면서 시간을 보내면 금세 합격자 발표도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한국대 합격자 발표까지는 앞으로 1주일 남짓.

    은장은 그때까지 더는 신경 쓰지 않도록 노력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 * *

    아침부터 민주와 은장이는 설명회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실 그렇게 준비할 게 많지는 않았다.

    다만, 퓨쳐컨설팅에서 미리 학교로 택배를 보내두어서 관련 자료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그런데 퓨쳐컨설팅에서는 사람 안 왔어요?”

    “내 말이. 자기네들 자료 준비하면서 왜 지들이 안 오고 그런데?”

    박 선생과 지석 선배가 투덜댔다. 그 말을 들으면서 은장이와 민주가 퓨쳐컨설팅의 홍보 책자와 정시 요강 안내집을 종이백 안에 넣었다.

    “진짜 이상하기는 해요. 왜 자기네들은 안 오고….”

    “이유가 있겠지. 지금 이렇게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거도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은장아.”

    “네 쌤.”

    나는 은장이에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무실 멀리로 가라고 이야기했다.

    “찍어.”

    “네!”

    은장이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설명회 준비를 하는 우리 모습을 촬영했다. 내가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자 이번에는 어떤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보일 정도로 가깝게 촬영했다.

    흐뭇한 얼굴로 은장이를 바라보면서 나한테도 사진을 보내라고 이야기했다.

    “이건 왜 찍는데?”

    “나중에 혹시나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내가 빙긋 웃으면서 답하자 지석 선배는 그럴 수도 있으려나, 하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이제야 좀 낫네.’

    은장이의 표정이 조금 안 좋아진 건 명천이 축하를 해 주고 헤어지는 시점에서였다.

    그때 은장이는 어딘지 모르게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얼굴이었다.

    친구들이 합격하면서 갖게 되는 불안감.

    나만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게 되는 쓸데 없는 걱정.

    은장이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갖게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민주한테 이야기해 두기는 했는데.’

    다시 자리로 돌아와 민주와 깔깔 웃으며 설명회 준비를 하고 있는 은장이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은장아.”

    “네 쌤.”

    “설명회 할 때도 옆에서 민주 도와줘. 중간에 내가 PPT 띄워 달라고 하면 띄워 주고.”

    “쌤도 발표하세요?”

    “그럼. 내가 강문고 입시 일타 강사인데 당연히 해야지.”

    어깨를 한껏 들어 올리면서 잘난척을 하자 박 선생이 어련하시겠어, 하며 혼잣말을 했다. 그런 소리를 모른 체 하고서 은장이에게 말했다.

    “이번 설명회에서는 민주와 은장이, 둘의 역할이 중요해.”

    “어, 진짜요?”

    “그래. 민주는 이번 활동을 토대로 깨닫는 거도 있을 거야. 내년 활동 기반으로도 삼아 볼 수 있을 거다.”

    민주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은장이도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민주와 서로 마주볼 뿐이었다.

    퓨쳐컨설팅의 원장인 최 원장은 설명회 시간이 다 되어 갈 때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조금 늦었네요.”

    혼자 등장한 최 원장을 보면서 민 부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원장님, 10분 전입니다. 빨리 준비하셔야 합니다.”

    “아, 걱정 말라니까 그러네. 내가 민 부장 실망시킨 적이라도 있나?”

    능청스럽게 민 부장에게 농담을 던지는 최 원장에게 내가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시작 10분 전에 도착하시면 일정에 차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준비 자료 빨리 저한테 주십시오.”

    최 원장은 USB든 이메일이든 빨리 자료를 주라고 재촉하는 나를 보며 인상을 썼다.

    “누구인가?”

    “3학년 국어 교과 담당인 강명문 선생입니다.”

    “아, 그 강명문?”

    “저를 아십니까?”

    “알고말고. 강문고에서 요즘 유명하지 않나. 반갑네. 퓨쳐컨설팅의 최진원 원장일세.”

    그가 내민 오른손을 억지로 잡고 짧게 악수를 했다.

    “한명심이랑 민지정이로부터 이야기 많이 들었지?”

    “네, 많이 들었습니다.”

    “그치, 내가 유학에 이어서 국내 입시로 이번에….”

    “시간 없으니 빨리 오시죠. PPT 준비해야 합니다.”

    나는 그의 말을 끊고서 스탭 대기실로 끌고 갔다.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하는 최 원장을 민 부장이 따라왔다.

    “은장아, 민주야. 적당히 5분만 끌어줘.”

    “네!”

    둘이 힘차게 답하면서 단상위로 올라갔다. 이미 강당에는 많은 학부모들,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벌써 시작 시간까지 5분도 남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학생회장인 2학년 오민주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 학생회장인 3학년 김은장입니다!]

    둘은 인사를 하고서 지금 강문고에서 일어나는 변화, 올해 있었던 재미난 일들을 이야기했다.

    특히 방학 특강부터 해서 입시 특강들을 나열하면서 이야기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 특강이 꽤나 괜찮았다며?”

    “지금도 하고 있다는데 좋은 거 같아요. 재종반 학원처럼 봐준다던데, 돈도 안 들고, 선생님들 실력도 괜찮다고.”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마다 은장이가 좀 더 과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한창 분위기가 과열되어 갈 때쯤, 은장이에게 신호를 했다. 은장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청중을 향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퓨쳐컨설팅, 강문고 환상의 콜라보레이션! 정시 및 2012학년도 입시설명회를 진행하겠습니다!]

    [첫 번째 연사로 퓨쳐컨설팅 최진원 원장님 모시겠습니다!]

    은장이와 민주가 번갈아가면서 진행 멘트를 날렸다. 그리고 그 멘트를 기점으로 은장이는 마이크를 내려두고 노트북 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민주에게 계속 진행 잘 해 주라는 수신호를 날리고는 은장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중간에 엎어질 수도 있으니까 준비해.”

    “네? 그게 무슨….”

    “일 터질 거야. 내가 신호하면 여기 들어 있는 PPT 열고.”

    은장이는 내가 건넨 USB를 받아들고 알겠다고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퓨쳐컨설팅 최진원 원장입니다.]

    최 원장의 인사에 좌중에서 박수가 터졌다. 여기저기 퓨쳐컨설팅의 흔적이 있는지, 학부모들은 최 원장에게 신뢰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이어지는 최 원장의 설명회는 일반적인 정시 설명회와 다름이 없었다.

    주요 대학교의 평가 요소 설명, 거기에서의 지원 전략 등은 모두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할 수 있으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역시 별거 없네.’

    그렇게 생각하는데 최 원장이 그런데 말입니다, 라며 헛기침을 했다.

    [저희는 이번에 국내 입시를 다각도로 분석해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지금 교육부에서는 입학사정관제라는 이상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이미 진행이 된 제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인 입시전형이죠.]

    최 원장은 좌중을 한번 둘러보더니 PPT 화면을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동석이에 대한 기사 장면이 이름만 모자이크한 채 나와 있었다.

    [이번 강문고에서 한 선생님이 입학사정관제로 내신 5등급 학생을 연천대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내신 5등급이 연천대? 수능 5등급이라고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수능 5등급이면 어느 지역 정도 넣어 볼 수 있을까요?]

    그의 말에 학부모들이 웅성거렸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충청도권도 어렵습니다. 그런 학생이 연천대?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요?]

    나는 그가 뭐라고 말하는지 유심히 들었다. 그러다 이어진 말을 듣고 실소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건 다 요행에 불과합니다.]

    “풉.”

    그가 내 쪽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지만 모른 척했다.

    [그냥 특출난 능력 하나만 있으면 합격하는 전형. 만들어지는 스펙.]

    최 원장은 좌중을 둘러보더니 소리쳤다.

    [우연으로 합격시킨 학생 하나를 두고서 그렇게 업적인 마냥 자랑하는 선생을 어떻게 믿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자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저희 학원, 아니 저는 그런 식의 요행만을 두고서 컨설팅을 하지 않습니다. 이번 정시 지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 각자의 실력에 맞는 솔직한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어느새 그의 PPT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펼쳐진 PPT 화면에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년 입시를 준비하시는 고2 학생들, 학부모님들. 주목하십시오. 올해 내신 5등급 학생의 연천대 합격으로 인해 수시가 대폭 줄어들게 될 겁니다. 정시 인원이 늘어나는 거죠. 성적도 안 되는 학생이 요행으로 명문대에 합격한다? 대학으로서 용인할 수 있는 일일까요?]

    그가 점차 목소리를 높여 갔다. 학부모들도 침을 꼴딱 삼키면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정시 공부가 중요합니다. 오늘 설명회가 끝나면 제가 알고 있는 좋은 컨설팅 전문가분들을 소개해드릴 테니….]

    최 원장이 이제 마무리 단계라 생각했는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좌중들 중 한 사람이 손을 들면서 중단되었다.

    “제가 알고 있는 거랑은 좀 다른데요.”

    최 원장을 비롯해 강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희 학교는 내년에도 수시 더 확장하려고 했는데.”

    손을 든 사람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으로, 나이가 꽤 있는 중년 신사였다.

    그가 나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이고는 다시 강당의 최 원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저희 학교? 대학 교수님이십니까?]

    최 원장이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중년 신사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털었다.

    눈치 빠르게 은장이가 무선 마이크를 들고 가서 남성에게 건넸다. 그가 마이크를 들고 잠깐 만지작거리더니 아, 아, 하고는 말했다.

    [저는 한목대학교 의과대학장인 서윤수라고 합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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