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100화 (100/252)
  • 100화. 실적 대비

    핸드폰을 들고 연천대 지성호 교수는 선배인 K과기원 하동기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오래간만이다. 요즘 입시 때문에 고생이 많지?]

    “하하, 뭘요. 선배님도 한창 바쁘시지 않습니까.”

    [우리야 뭐 수시 위주니까 지금은 좀 낫지 껄껄.]

    하동기는 후배의 전화를 받아 즐거운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성호는 몇 분간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가 선배님, 하면서 말을 잠시 멈췄다.

    [왜? 갑자기 불안하게.]

    “죄송하지만 그 천재는 저희가 데려갑니다.”

    지성호의 말에 하동기가 아이고, 아이고 하며 한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거기로 가는구나.]

    “네. 선배가 말한 천재. 걔죠?”

    하동기는 전국로봇대회에서 봤었던 일반고 학생을 떠올렸다. 사실 기회만 된다면 K과기원으로 스카웃 해 오고 싶을 정도였다.

    다만, 그런 스카웃 형태로 데리고 올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기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뿐이었다.

    [네가 제대로 키워라. 대신 나중에 우리 학교에서도 연구시킬 거니까 대학원은 여기로 보내.]

    “무슨 말씀을. 얘는 뿌리부터 연천대니까 나무가 되고 열매가 맺힐 때까지 연천대에서 키울 겁니다. 그리고 얘 석박사 다 하는 전형으로 지원했는데요?”

    [뭐야!? 그 창의 어쩌고 전형으로 간 거야!?]

    지성호가 맞다면서 하동기의 의문에 답을 주었다.

    [아이고, 정말 아까운 인재가 내 후배한테 가는구나.]

    하동기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지성호도 핸드폰에 대고서 소리내어 웃었다.

    [그럼 나중에 합동연구라도 하자. 이건 괜찮지?]

    “그건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그거 아십니까?”

    [뭘?]

    지성호는 꽤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면서 들뜬 기분으로 말했다.

    “그 천재가 나온 고등학교 있잖습니까?”

    [어, 강문고?]

    “네. 그 강문고에서 이번에 일 좀 낸 거 같답니다. 천재의 담임선생이 말이죠.”

    그 말에 하동기는 잠시간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퍼뜩 생각이 났다면서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높였다.

    [아! 혹시 저번에 언론에 뜬 그 사람인가?]

    “제가 생각하는 기사가 맞다면 그 사람이 맞을 겁니다.”

    지성호는 하동기가 생각하는 기사와 함께 서울한국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교수로 있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천재 로봇공학자부터 해서… 아주 난리났다고 합니다.”

    * * *

    나는 학생들과 함께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명천이가 신중하게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야 근데 굳이 여기서 확인하는 이유가 있냐?”

    내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명천이가 키보드를 입력하다 말고 나를 째려봤다. 명천이의 그 시선을 은장이가 막으면서 말했다.

    “쌤도 궁금하시잖아요.”

    “그래도 굳이 교무실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명천이가 쌤이랑 같이 확인하고 싶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김은장 조용히 안 할래?”

    명천이가 고개를 빠꼼 내밀면서 으르릉거리자 은장이가 헤헤 웃으며 몸을 살짝 비켜섰다.

    “됐으니까 빨리 입력이나 해봐.”

    명천이가 다시 숫자를 입력했고, 천천히 <합격자 조회>버튼으로 마우스 커서를 들고 갔다.

    <한목대 입학사정관제 합격자 발표>

    <지원학과: 의예과>

    <합격을 축하합니다!>

    모니터에 결과가 뜨자마자 명천이의 머리를 잡고 마구 헤집었다. 그러자 명천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내 손을 뿌리쳤다.

    “아 왜요!”

    “축하한다고 인마!!”

    명천이가 한목대 의예과에 합격했다.

    그 사실 하나로 교무실이 떠들썩해졌다.

    옆에서 같이 구경 중이던 박 선생과 지석 선배도 함께 기뻐해 주었다.

    명천이는 나에게 화를 내면서도 어안이 벙벙한 듯 모니터와 우리를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명천아 축하해! 내가 멘토링 해 준 보람이 있네!”

    은장이가 자기소개서 멘토링 이야기를 꺼내자 명천이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하긴 부끄러울 만도 하지. 그때 명천이의 맞춤법은 정말 형편없었으니 말이다.

    “뭐, 한목대 의대 정도는 붙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녀석은 그런 부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 허세를 부렸다.

    ‘저게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 응?’

    무언가 수상함을 느끼려는데 동석이가 의아한 듯 명천이에게 물었다.

    “명천아 저번에 밥 먹을 때는 떨어질 거 같으니까 재수한다고… 읍!”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명천이가 동석이의 입을 부여잡았다. 입이 막힌 동석이가 나를 보며 도와달라며 손짓을 했다. 정석이와 태성이가 대신 달려가서 명천이를 떼어내고, 은장이는 깔깔 웃으며 그 장면을 핸드폰 카메라로 마구 찍어 댔다.

    “명천아 이제 뭐 해야 하지?”

    한바탕 소동이 진정되고 나서야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명천이는 내 질문에 한치의 고민도 없이 정답을 말했다.

    “<오늘도 감금> 도우미 말하는 거죠? 할게요.”

    “그렇지! 남은 기간 조금만 더 힘내 보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명천이의 옆에 다가가서 속삭였다.

    “마지막까지 잘 도와주면 은장이랑 데이트하게 만들어 줄게.”

    “진짜요? 아니, 잠깐만,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자식이 선생님한테 당신이 뭐냐 당신이.”

    명천이가 화를 낼 새도 없이 종이몽둥이를 마구 휘둘러서 허벅지며 허리, 어깨를 탁탁탁 쳤다. 명천이는 끄응 신음소리를 내며 얻어맞은 부위를 손으로 마구 문질렀다.

    “왜? 은장이 싫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인마, 창피하면 혼자 가지 말고 친구들이랑 다녀오면 되잖아. 아니면 고백하는 법이라도 알려 줄까?”

    “아 쫌!!!”

    명천이는 씨익씨익 대면서 더는 대꾸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휙 돌렸다.

    ‘짜식이 부끄러워하기는.’

    그런 명천이를 보면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키득거리며 다시 교무실 자리에 앉는 나를 보며 지석 선배와 박 선생이 대단하지만 이상한 사람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 * *

    학부모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나서였다.

    [선생님, 잠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7월, 나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있을 때와는 달리 이제 학부모회장은 교무실로 오더니 나를 교감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강 선생, 정말 잘 했네!”

    교감실의 주인인 한 교감이 밝게 웃으면서 내 등을 두드렸다.

    과거와는 다른 그들의 반응에 나는 속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겸손하게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한 거죠.”

    “자네가 물심양면으로 학생들을 위해 힘쓴 걸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나! 그런 말 말게!”

    한 교감은 동석이가 합격했을 때보다도 훨씬 얼굴이 밝아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명천이는 동석이와 달랐다. 학부모회장과 한 교감, 그리고 류 선생까지 이어지는 어두운 거래들이 있었던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선생님이 계신 줄 알았으면 진즉 강 선생님께 과외라도 부탁드릴 걸 그랬어요.”

    학부모회장이 신이 나가지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그 시선을 회피하면서 한 교감을 향해 물었다.

    “그럼 저 이제 나가 봐도 되겠습니까? 내일 정시설명회 서포트 준비도 해야 해서….”

    내 말에 한 교감 본인이 나에게 요청했던 게 생각났는지 암, 암, 하며 교감실 문을 열어주었다.

    “준비 잘 하고, 설명회까지 끝나면 한번 보세! 내 밥 한번 크게 사도록 하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나는 한 교감의 질문에 곧장 대답하지 않고 시간을 살짝 끌고서 답했다. 뒤에서 학부모회장이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명천이 합격 자랑 전화인 것 같았다.

    둘의 모습을 보며 교감실 문을 닫았다.

    ‘퓨쳐컨설팅의 정시 설명회라.’

    퓨쳐컨설팅은 회귀하기 전 삶에서는 유학을 전문적으로 하다가 국내 입시로 돌린 직후 유학 비리로 신고를 당했었다.

    따라서 지금처럼 국내 입시로 눈을 돌린 것도 예견된 수순이었다.

    다만, 그 과정이 조금 빨랐다.

    “원래는 2년은 있어야 국내로 눈 돌리는데.”

    유학의 유행이 조금씩 떨어질 때가 되어서야 국내 입시로도 방향을 옮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무려 2년이나 빨라졌다.

    ‘이것도 회귀한 뒤의 영향인가?’

    내가 미래를 앞당기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사람들이 변하고 있는 걸수도 있고.”

    “뭐 인마?”

    “아, 선배 오셨습니까.”

    교무실에 앉아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나에게 지석 선배가 다가왔다. 그의 옆에는 오 선생도 같이 있었다.

    “이놈의 오감 프로젝트는 언제 끝나나. 이제는 우리도 지친다.”

    “나는 아직이다만. 심 선생은 심지가 약한가 보구만.”

    “네? 아, 아뇨, 아닙니다.”

    괜히 눈치를 보는 지석 선배를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내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람들이 변한 영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그럼 괜찮겠죠.”

    “뭐가 괜찮아? 요 며칠 휴일도 없이 달리고 있는데.”

    “거의 다 끝나가잖아요. 조금만 더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지석 선배와 오 선생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학생들 주려고 사둔 사탕을 몇 개 집어서 건넸다. 지석 선배는 투덜대면서도 사탕을 받아들고는 입에 넣었다.

    “그나저나 내일 설명회 지원 나간다며?”

    “네, 퓨쳐컨설팅에서 진행하기로 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강문고에서도 한 명이 나가야 한다 해서요.”

    “그걸 왜 너한테 시켜?”

    “초임교사가 힘이 어디 있습니까? 까라면 까야죠.”

    지석 선배가 걱정하듯 말하다가 내 태도를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네가 하는 건데 뭐가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좀 도와주십쇼.”

    “우리가 도울 게 뭐가 있냐?”

    “우리가 도울 게 뭔가 있나?”

    지석 선배와 오 선생이 해석하기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는 말을 동시에 했다. 나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몇 가지를 요청했다.

    “내일 퓨쳐컨설팅 설명회에서는 분명 문제가 하나 터질 겁니다.”

    “어떤 문제?”

    “설명 내용이 지극히 일반적이어서 강문고 학생, 학부모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둘을 보면서 나도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퓨쳐컨설팅의 설명회가 1부라는 점입니다.”

    “먼저 그쪽이 문제를 터트리면 우리가 수습해야 하는 거 아냐? 그게 왜 다행이야.”

    “우리가 먼저 하면 우리의 이야기를 까내리려는 이야기만 할 게 뻔하니까요. 퓨쳐컨설팅은 그런 업체입니다.”

    아무리 팩트를 이야기해도 자기네들의 사업적 이득에 맞지 않으면 선동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컨설팅 업체.

    바로 퓨쳐컨설팅이 그러한 업체의 대표격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먼저 하는 게 우리로서는 편합니다.”

    “그럼 그때 어떻게 도와주면 되나?”

    오 선생을 향해 나는 엑스칼리버를 가리켰다.

    “청중들이 동요하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분노를 이기지 못하거나 할 때 좌중의 분위기를 잡아 주시면 됩니다.”

    “좋아, 애들을 좀 패면 되겠….”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분위기만 잡아 주시라니까요.”

    오른 주먹은 꽉 움켜쥐고 왼손으로 엑스칼리버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오 선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오 선생이 실망이라며 꽉 쥔 주먹을 풀었다.

    “퓨쳐컨설팅이 이번에 이를 갈고 준비했다던데 아무 문제도 없으면?”

    “문제가 없으면 좋은 거 아니겠나. 그러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겠지.”

    오 선생의 말에 지석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다.

    그러나 이어진 내 말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반드시 터질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퓨쳐컨설팅은 전문 컨설턴트들을 데리고 왔다고 하지만, 사실 그건 관계자들과 술자리나 한두 번 같이 한 정도에 불과합니다.”

    지석 선배가 내 말을 듣다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설마, 설명회 선수가 원장 본인이야?”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와… 그 인간 국내입시 쥐뿔도 모를 텐데?”

    “퓨쳐컨설팅 원장이라면 나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네. 믿을 만한 사람은 아니던데.”

    우리보다 강문고에서의 경험이 더 길었던 오 선생은 역시 최진원 원장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

    “강 선생이 들어가는 게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닌 거 같구만.”

    오 선생에게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오 선생도 살짝 웃는 것 같았다. 물론, 남들이 봤을 때는 사악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럼 그렇게 분위기만 좀 잡아 주고 하면 되나?”

    “네, 도움 주실 분이 또 있습니다.”

    그게 누구인지 지석 선배가 추궁했지만, 거기에 답하지는 않았다. 대신, 교무실을 나서면서 핸드폰의 캘린더를 열었다.

    <12월3일 금요일 정시설명회>

    내일 진행될 정시설명회.

    거기에서 퓨쳐컨설팅의 입지를 줄여야만 강문고에 불법 입시 실적이 생길 일을 줄일 수 있다.

    그 근절 계획이 곧 실행되려 하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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