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준비됐냐?
[학생들에게?]
나는 한 교감에게 강문고만의 장학 제도가 필요함을 설명했다.
“현재 우리 강문고에게 부족한 부분은 ‘진정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 복지를 해 주고 있느냐’입니다.”
[으음.]
“이번에 입시 결과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학부모님들로부터도 입시 준비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은 생겨 가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점을 나온 녀석들이 나를 피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신뢰와 무서움은 반비례하는 것 같지만.
“그러면 학교는 과연 학생들에게 좋은 학교 입학만을 해 주면 되는가. 그건 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왜지?]
“학생들이 좋은 대학교에 입학을 해도 대학생 때 사고를 치면, 예를 들면 폭행이나 성추행 같은 것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일 첫 타겟은 대학교가 될 것입니다. 그 다음 타겟은 어디가 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음… 출신 고등학교가 된다 이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어 갔다.
“네, 자칫 잘못하면 대학만 잘 보냈지, 인성 교육이 엉망이라는 비난만 받습니다.”
며칠 전 학부모들에게도 했던 이야기를 한 교감에게 그대로 말했다. 한 교감은 음, 음, 하면서 내 말을 경청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우리 학교는 학생들의 입시와 함께 인성 교육도 겸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럼 그걸 어떻게 보여 주어야 하지?]
“그래서 저는 장학금 제도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전, 류 선생이 기획한 GGS는 스카이에 합격한 학생들에 한해서 상패와 함께 30만 원 치의 문화상품권을 졸업식 날 증정해 주는 제도였다.
이 제도를 이번에는 조금 변화를 줄 생각이었다.
“스카이를 비롯한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에게는 최신형 노트북과 30만 원 문화상품권을, 고3이 되면서 자신의 목표 대학을 작성하고 이를 성공할 경우에는 30만 원의 상품권을, 전교생의 투표와 교사 투표까지 포함해서 가장 인성적으로 뛰어난 학생 다섯 명에게는 최신형 노트북 같은 대학생 필수 전자기기를 하나 지급하는 형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학교의 예산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도 걱정하지 않았다.
-노트북을 그냥 지급하는 게 아니라 장학생처럼 주자고요?
-네, 이사장님. 그냥 지급하면 세간의 눈에 띄었을 때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죠. 그럼 그런 의심도 피할 수 있고,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리고 소수에게만 주지 말고 여러 학생들에게 나눠 줄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동의해요. 그럼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들과 함께 학생들로부터 인성적으로 가장 고평가를 받은 학생도 선물을 주도록 하지요.
-네 그리고 예산은 선생님들 성과급을 줄이거나….
-호호, 우리 강 선생님이 예산을 걱정하고 그러네요. 걱정마세요. 이번 자기소개서 준비 때 노트북 누가 지급했는지 벌써 잊었어요?
이미 이사장과는 강문고 장학 제도에 대해 이야기가 끝나 있었다. 노트북을 비롯한 선물들도 모두 이사장의 사비를 쓰기로 했다.
이렇게 보면 이사장의 경제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라도 강문고를 바꾸고 싶겠지.’
그래야 미래에 있는 비리 폭로 사건에서 밀려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괜찮을 것 같네. 이사장님은 알고 계신가?]
“제가 전화드려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지난 번에 장학제도에 대해 언급해드린 적은 있었으니 좋아하실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 교감에게는 이사장과 미리 이야기를 한 사실은 비밀로 했다. 혹시나 한 교감이 오해라도 하면 복잡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럼 강 선생만 믿겠네.]
한 교감과 전화를 끊고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이제 은장이와 명천이를 비롯해 우리 반 학생들이 하나 둘 합격하고, 정시 컨설팅만 잘 해주면 되었다.
그렇게 되면, 이번 2010년에 해야 할 일들은 대부분 마무리가 된다.
성공적인 2010년의 마무리. 그 노력을 위해 오늘도 학생들의 입시를 도와주면서 보냈다.
* * *
그리고 다음 날, 명천이가 면접을 치렀다.
“어땠냐?”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명천이는 옆에서 면접 후기를 같이 듣고 있던 동석이를 살짝 흘겨보더니 말했다.
“…최동석과 이야기한 게 문제로 나왔습니다. 야, 고맙다.”
“어? 어? 어어, 아냐, 아무것도.”
동석이가 당황해하며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내가 시켜서 그랬다는 것처럼 바라보기에 명천이에게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잘했어! 답변 못 한 건 없고?”
“한 개 있었어요.”
“어떤 거?”
“전염병 관련된 문제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정부 방침에 대한 제 생각을 제대로 설명 못 한 거 같아요.”
명천이가 어떻게 답변했는지 들어보니 명천이 말대로 조금은 본인의 의견이 부족한 답변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괜찮아, 잘했다. 이제 쉬면서 결과 기다리자.”
명천이의 면접이 끝난 다음 날에는 은장이가 면접을 치렀다.
“쌤 대박. 현실성과 허구성 물어보시던데요?”
은장이는 면접이 끝나자마자 학교로 와서는 친구들과 과자를 먹으면서 말했다. 나는 은장이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당연히 기출문제 중에 물어봤겠지.
내가 물어본 내용들이 실제 출제 문제였으니까.
“준비한 대로 말했지?”
“네! 친구들하고, 쌤하고 같이 이야기 나누었던 대로, 문학의 허구성과 현실성은 같이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문학의 현실성은 앞뒤가 연결이 되는 형태면 되고, 허구성은 허구적 요소로 환상요소가 들어갈 수 있지만, 과할 경우에는 독자들로부터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할 수 있는 말들은 다 했네. 반응은 어땠어?”
“제가 마지막 질문까지 다 답하니까 두 교수님이 서로 얼굴 마주보고 웃으셨어요! 이거 좋은 징조 맞죠?”
한 명은 교수, 한 명은 입학사정관이었겠지만.
“분위기 나쁘지 않네!”
아무튼 은장이의 면접도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다. 이어서 이틀 뒤에는 채영이의 면접이 있었고, 다른 학생들의 논술도 이어졌다.
채영이 역시 내가 미리 준비해둔 기출문제들이 나왔다고 해서 답변을 어렵지 않게 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이번 주부터 결과 나오니까 조금만 더 긴장하자.”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무슨 소리야. 수시 다 떨어질 거 대비해서 정시도 생각해야지?”
물론 지금까지 들은 내용들을 봤을 때 녀석들의 결과는 괜찮을 것으로 보였다.
다만, 만에 하나라는 걸 간과할 수는 없었다.
‘미래가 그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미 내가 관여한 것 때문에 많은 학생들의 공부 방향, 진학 방향이 바뀌었다. 동석이가 전국대회에서 수상을 했고 연천대에 합격한 사실이나 은장이의 언론 보도 등도 모두 원래 미래에는 없는 사건이었다.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동석이가 합격한 대신에 정석이가 불합격할 수도 있거나 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긴장을 풀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정석이와 정아로부터 불평불만도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한….”
“얘들아, 그래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힘내자 응?”
동석이가 중간에 내 말을 덮으면서 학생들에게 말했다. 합격한 지 시간이 한참 지난 동석이가 저렇게 말하니까 설득력이 더 있어 보였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우린 뭐가 되냐.”
“알았어, 까짓거 한 달만 더 참지 뭐.”
“그래그래. 끝나면 제대로 놀러 다니자!”
그런 녀석들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학생들의 변화가 눈에 보였기에 기특한 탓이었다.
“쌤 지금 비웃었어요?”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안 보인 듯했지만 말이다.
“그래. 네들이 잘도 한 달 버티겠다. 2주 버티면 칭찬해 주마.”
“와 너무하네. 2주 버티면 진짜 맛있는거 사 주셔야 해요.”
호언장담하는 정석이를 향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학생들은 2주를 버티지 못 한다. 열흘 뒤에 있을 정석이와 은장이 합격자 발표만 나면 오금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래도 그런 속내를 숨기고서 정석이의 내기를 받아주었다. 학생들끼리 이번 내기를 반드시 이기자며 뭉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있을 일들을 구상해나갔다.
* * *
“쌤….”
“그래.”
“떨어졌어요….”
태성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아쉽게도 국인대 입학사정관제 전형에서 불합격한 모양이었다.
“예비는?”
하지만, 태성이가 최초합격을 하지 못할 것 정도는 예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태연하게 예비번호를 받았는지 물었다.
“예비 31번이요.”
총 50명을 선발하는 경영학부에서 예비 31번이면 충분히 기다려 볼 만했다. 나는 태성이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
“그 정도면 괜찮아. 논술도 있으니까 추합 기다려 보고, 마저 마무리 잘 해 보자.”
지난 2011학년도 국인대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경쟁률은 총 5.5:1이었다. 그리고 인원이 많은 경영학부 특성상 예비 번호도 꽤 많이 빠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국인대는 당시 예비 번호 33번까지 추가합격자로 돌았었다.
‘태성이 국인대 잘하면 되겠는데?’
태성이까지 합격하면 또 하나의 입시 실적이 생기게 되었다.
입시 실적에는 최상위권도 좋지만, 인서울의 상위권이나 중위권도 중요했다.
결국 스카이를 많이 보내는 것만으로는 원래 잘하던 애들 보낸 거 아니냐, 소리를 들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거도 이거면 됐고….”
“뭐가 돼?”
혼잣말을 하고 있는데 오금 프로젝트 교실을 감시하던 오 선생이 다가와 있었다.
“아, 아닙니다. 학생 예비번호 생각했습니다.”
내 말에 오 선생이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를 향해 빙긋 웃자, 그가 엑스칼리버를 옆에 내려두며 말했다.
“자네 정시도 좀 보나?”
“네, 공부중입니다.”
당연히 가능했지만, 우선은 공부 중이라고 한발짝 물러났다. 오 선생은 잠깐 고민을 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나중에 성적표 나오면 다시 말하지.”
오 선생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했다.
오 선생에게 닥칠 문제. 그건 올해 오 선생이 심혈을 기울이며 가르친 학생의 입시 결과였다.
“현주 이야기입니까?”
“…현주는 아니야.”
“매일같이 현주 상담해 주시고 공부 가르쳐 주신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빈 교실 순찰하다가 가끔 봤거든요.”
순찰이라는 단어에 오 선생이 미간을 좁혔다.
“학생들이 다른 교실에서 농땡이 피우는 건 아닌지 감시를 해야 했으니까요.”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넘기자 오 선생이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로서는 웃어넘기자는 의미였겠지만, 보는 이로서는 꽤나 위압감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이러니 사대천왕이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오 선생이 말했다.
“수능이 잘 안 나왔어. 어디에 넣어야 할지 감이 안 와.”
“많이 안 나왔습니까?”
“아무래도 좀.”
“제가 도와드릴 게 있으면 편하게 말씀 주십시오.”
“그래. 성적표 나오면 그때 다시.”
오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교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지금 시점에서 현주 상담을 도와주고 오 선생의 호감을 얻을 수 있다면 일석이조였다. 정시컨설팅 실력도 있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고, 오 선생의 신뢰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다음 날.
“망했다….”
“와 한끗 차이로 등급 내려갔다. 이게 말이 되냐.”
“담임이 알려 준 등급이 다 맞았는데…?”
수능성적표가 배부되었다.
이미 학생들의 성적 상태는 대략 알고 있었기에 놀랄 부분은 없었다.
게다가 이미 학생들에게 예상 등급을 모조리 알려 주기도 했으니 녀석들도 충격이 덜 했다.
그런 내 분석력에 학생들이 감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나의 관심은 딱 하나였다.
“준비됐냐?”
“…네.”
명천이의 한목대 입시.
그 최초합격자 발표가 오늘 오후 2시에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