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98화 (98/252)

98화. GGS

내가 던진 추가 질문에 은장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정석이와 동석이를 쳐다봤다. 마치 답을 아느냐고 묻는 듯한 눈길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둘은 모른다며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생각 좀 해 볼래요?”

“자,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래요 생각해 보세요.”

나는 싱긋 웃으면서 인자한 척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5초, 10초, 15초가 넘어가는 순간 내가 말했다.

“답변을 못하는 것 같네. 수고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쌤 그거 진짜 뭐라고 답해요?”

은장이는 마지막에 던진 질문의 답변을 나에게 알려달라고 재촉했다. 옆에서 은장이의 답변을 정리하던 정석이와 동석이도 마찬가지로 궁금증을 보였다.

“일단 피드백부터. 동석아 노트북.”

동석이에게 노트북을 받아들고 은장이의 면접 답변을 확인했다. 전반적으로 잘 말을 했지만, 중간중간 설명이 꼬이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자료를 확인하는 사이에 몸을 가만 놔두지 못하는 모습도 적혀 있었다.

나는 그런 부분을 은장이에게 설명해 주면서 면접 시의 주의점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주었다.

“네, 주의할게요.”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특히 수신료 인상 이슈는 중요해. 광고, 방송에 관심이 많은 학생 컨셉이니까. 남은 건 면접에서 답변 잘 하는 거야. 특히 마지막 질문은….”

답변을 궁금해하는 녀석들에게 나는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노트북을 동석이에게 도로 밀어두었다.

“너희끼리 고민해서 준비해 봐.”

“네에!? 쌤 치사해요!”

“면접에서 강조한 거 있지? 아무리 좋은 답변이어도 스스로 준비한 게 아니면 무의미하다. 준비해서 나한테 물어보면 보완해 줄게.”

서울한국대의 지역균형 인문광역 면접에서 많은 학생들이 시사 문제 질문을 받았다. 그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FTA나 인공위성, 남북관계 등 평이한 주제들을 이야기했다.

그런 답변들 사이에서 은장이가 자신의 관심 분야와 연결된 시사를 이야기하는 건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던진 것처럼, 전공 분야와 관련된, 혹은 관심이 있을 것 같은 분야에 대한 본인의 해석을 이야기해 보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정해진 답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학생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면 되는 것이었다.

만약 은장이가 질문의 의도만 잘 이해했다면, 어렵지 않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면접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는 그걸 떠올리지 못해 헤맨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되는 문제도 발생했다.

“서울한국대는 이런 식의 질문이 많이 나오는데, 정해진 답이 있는 건 아니야. 친구들하고도 토의 주제로 삼아서 이야기 나눠 봐.”

이어진 몇 번의 모의면접에서도 은장이에게 비슷한 질문들을 던져 주었다.

“회장 같은 리더를 많이 했던데 다수결과 소수의견 중 어느 쪽에 더 집중해야 할까?”

“사회 분위기에 맞추는 광고와 학생의 소명의식에 맞추는 광고 중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어야 할까?”

“광고를 배우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려 하는데, 인문학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인문학과 공학을 합친다면 어떤 일이 가능할 것이라 보는가?”

“고전은 왜 고전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외에도 기타 등등, 여러 질문들을 던졌고, 은장이는 이 질문들을 받는 내내 어안이 벙벙해서 횡설수설했다.

“자 지금까지 던진 질문들 위주로 답변 준비하고, 내일 또 연습하자. 이제 개별 연습!”

은장이는 추욱 어깨를 내리고 기출문제가 적혀 있는 종이를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동석이와 정석이는 다음 연습자를 기다리면서 물었다.

“쌤, 저렇게 어려운 질문들을 물어봐요?”

“당연하지. 괜히 서울한국대겠어?”

다음 학생이 들어오자 잡담을 멈추고 다시 모의면접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있을 명천이 면접 준비 방향을 확정하고 박 선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 * *

한명심과 민지정은 다음 주에 있을 정시설명회를 위해 퓨쳐컨설팅 원장과 미팅 중이었다.

한명심은 정시설명회 준비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확인해야 했기에 참석 중이었다.

민지정은 강명문에 이어서 이제는 오석상까지 무언가를 꾸미는 듯 움직이니 답답한 마음에 지금 자리에 있었다.

“이번 설명회 진짜 괜찮겠어?”

“걱정하지 말라니까. 어디 속고만 살았나?”

최진원 원장은 다리를 꼬고 둘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민지정은 밀려오는 담배연기를 손으로 휘저었다.

“이번에 정시 설명회 제대로 못하면 문제가 커질 거야. 강남서초권 학부모들 알지?”

“암, 걱정 말라니까. 내가 우리 한 교감이랑 민 부장 곤란하게 할 사람인가?”

최진원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민지정을 향해 말했다.

“이번에 우리 한명심이랑도 이야기 많이 했지만, 일만 잘 풀리면 두둑하게 챙겨줄게.”

“네, 감사합니다.”

다소 불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퓨쳐컨설팅이라면 유학 분야에서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여러 대학교들의 입학사정관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점들이 민지정에게 믿음을 주고 있었다.

“원장님께서 잘 해 주시면, 두둑하게 챙겨주시는 것 이상으로 저희도 챙겨드려야지요.”

“하하하하! 그거 좋지!”

최진원은 기분이 들떠 민지정과 이후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대부분 본인 자랑인 이야기였지만, 그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민지정에게 호감이 생기기도 했다.

‘강문고만 잡아내면.’

강남서초의 명문고 중 하나인 강문고와 업무협약을 진행하게 되면, 자신의 몸값도 더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만 되면 지금의 투자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번 정시 설명회가 성사된 것 자체에 그는 큰 성취감을 느꼈다. 벌써 여기저기에 본인이 강남서초의 명문고등학교에서 입시설명회를 하고 있다고 홍보도 하고 있었다.

“강문고는 정시가 정말 메인이거든요. 원장님만 믿겠습니다.”

반면, 민지정은 지금 내부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 했다. 올해 입시에서는 강명문이 수시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으니, 정시에서만큼은 그를 압도할 수 있어야 했다.

“내년 애들 준비할 사항들도 꼭 넣어 주시고요.”

예비고3을 위한 입시전략설명까지 추가한 것도 내년 입시실적을 위한 민지정의 밑그림이었다. 강명문보다 한발 앞서서 준비해야 미리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다만, 그런 의도를 이미 강명문에게 들킨 게 분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 알았어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말게!”

최진원과 민지정은 그렇게 서로의 목적을 숨긴 채 미팅을 마무리했다. 약간의 찜찜함은 남아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본인이 취하고자 했던 바는 취했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미팅이 끝난 후, 둘은 서로가 알아채지 못하게 입꼬리를 한쪽으로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한명심은 그 둘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민지정과 헤어지면서 한명심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핸드폰을 열고 며칠 전에 받은 문자를 확인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문자를 재차 확인한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 * *

명천이의 면접 연습은 나와 박 선생, 지석 선배, 윤 선생까지 총 네 명이 도와주었다.

시간 관계상 많은 연습을 해 보지는 못했다.

다만, 우리는 의료윤리와 새롭게 개발될 의료기술, 상황에 따른 인성 평가를 중심으로 명천이에게 다양한 질문을 했다.

“불치병을 앓게 된 환자가 의사에게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지원자가 주치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실험을 같이 하던 대학 동기들이 실습 도중 의료기기를 몰래 훔치는 걸 목격했다. 연습을 위한 거라면서 비밀로 해 주라고 한다. 이들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가?”

“친구 B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다. 반면 A는 가정형편도 좋고 공부도 곧잘 하는 학생이다. 그래서 B는 A에게 장학금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 이 상황의 문제점을 요약해서 말하고 A와 B의 감정이 어떨지 이야기해 봐라.”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면서 명천이는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하나씩 답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답변 양상을 보였다.

-쌤, 동석이랑 오늘은 기술과 의료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어요.

-오늘은 대학교 때 벌어질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나눴어요.

동석이와 매일 비슷한 주제들로 대화를 나눈 경험이 명천이에게 쌓여 있었던 덕분이었다.

나는 명천이에게 이대로만 쭉 가자며 독려를 해 주었다.

박 선생, 지석 선배, 윤 선생은 변한 명천이의 모습에 사뭇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한 거야?”

“뭘요?”

“나명천이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살았을 리가 없잖아. 너 뭔가 했지?”

“하긴 뭘 합니까. 그냥 잘 가르쳐 준 것뿐이죠.”

다들 의심의 눈초리를 나에게 보냈지만, 짐짓 모른 체 하기도 했고.

어쨌든, 학생들의 입시가 슬슬 끝나가고 있었다.

목요일이 되자 태성이와 정아가 논술을 보고 왔다. 녀석들에게도 학교별 기출문제를 미리 알려 준 덕분에 어렵지 않게 풀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어떤 내용으로 썼는데?”

하지만 역시나 미덥지 못해서 녀석들이 작성했다고 하는 내용을 구두로나마 확인해 봤다. 다 듣고 난 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으으음….”

“이상해요?”

“핵심을 하나씩 빠뜨렸네.”

내 말에 정아와 태성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마 여러 번 봤던 주제였기에 더 잘 썼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둘을 향해 나는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일단 기다려 보자. 논술은 허수도 많고, 최저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변수가 많은 전형인 만큼 추가합격도 생각해 봐야 한다.”

태성이는 지문 하나의 대답을 제시문의 내용이 아닌 개인 의견을 덧붙여 버렸다. 특히,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에 대한 제도를 바탕으로 경제현상을 설명해야 하는데, 제시문에 있던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한 이야기를 쏙 빼먹었다.

정아는 사랑에 대한 여러 관점을 해석하는 데 있어 제시문에 있던 문학작품의 인물 한 명을 놓쳤다. 해당 인물이 이야기하는 사랑과 표류, 건전한 주체의 담론이 들어가지 못해 알맹이가 일부 빠진 답변이 적히게 되었다.

그렇기에 합격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준비를 안 한 것보다는 훨씬 잘 본 수준이었다.

그래서 추가합격 정도는 노려 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데 녀석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왜?”

“아뇨, 쌤이 이렇게 말씀하실 때도 있었나 해서….”

“맞아요, 최근에는 우리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 줄….”

헛소리를 하는 태성이와 정아에게 종이몽둥이를 펑펑 때렸다. 각각 한쪽 어깨를 부여잡고 끙끙대는 둘에게 남은 친구들 면접이나 도와주라며 교실로 올려보냈다.

‘이쯤이면 올 때가 됐는데.’

투덜대며 계단을 올라가는 둘을 보면서 생각을 하는 도중,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네, 교감 선생님.”

[강 선생, 잠깐 괜찮나?]

“네, 말씀하십시오.”

핸드폰 너머에서 잠시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방금 민 부장과 퓨쳐컨설팅 최진원 원장을 만났는데 말이야.]

그는 이후에 말할 내용이 다소 조심스러웠는지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괜찮습니다. 저 혼자만 있으니 말씀하십시오.”

[아, 그, 그래. 고맙네. 아무튼, 그 둘과 미팅을 하고 왔는데, 나도 좀 불안해서 말이지.]

한 교감은 퓨쳐컨설팅이 갖고 있을 법한 위험성을 이야기했다.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대필 문제라든가, 이번 설명회 선수도 전문 컨설턴트가 아닌 본인이 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씩 모두 쏟아낸 한 교감이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설명회 때 자네가 좀 도와줄 수 없겠나?]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그… 혹시나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야 할 수 있지 않겠나.]

핸드폰을 붙잡고 있는 귀까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열심히 참으면서 한 교감의 말을 기다렸다.

[자네도 설명회 일부를 참여해 줬으면 좋겠네.]

그리고도 여전히 나는 그 대답을 하지 않고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십여초간 정적이 흐르자 한 교감이 추가로 설명을 이었다.

[이번에 제대로 해내면, 내가 인센티브 톡톡히 챙겨 주겠네.]

“저한테는 안 주셔도 됩니다.”

[그럼?]

나는 매점 건물에서 나오고 있는 명천이와 동석이, 은장이, 정석이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내 시선을 느낀 녀석들이 나를 보면서 인상을 팍 쓰는 모습을 보면서도 끓어오르는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교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주시면 됩니다. 단.”

한 교감이 핸드폰 너머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장학 제도를 만들어서 지급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GGS(Gangmoon Great Student) 장학생 선발. 앞으로 3년 뒤에나 류 선생을 통해 나올 강문고의 장학 제도를,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진행할 계획이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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