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치동 클래스-97화 (97/252)

97화. 이 정도는 해야지

“야, 내가 생각해봤어.”

“응? 뭘?”

“그, 어제 말하던 그거 있잖아. 기술이랑 의학.”

“아!”

아침부터 명천이와 동석이는 열띤 토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출석부를 들고 오감 프로젝트 교실에 들어서고서도 둘은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둘을 보면서 나는 씨익 웃었다.

-쌤, 명천이가 공부해 올 거 같아요!

어제 동석이에게 받은 전화 내용이었다.

내가 지시한 대로 동석이는 명천이와 단둘이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그때의 대화 주제로 가급적 공학과 의학을 합친 주제로 토의를 해 보라고 이야기했었다.

동석이의 반응과 함께 지금 명천이의 태도를 보니 나름대로 잘 전달이 된 것 같았다.

‘명천이는 됐고.’

지금까지 명천이에게 부족했던 것. 그건 의대를 준비하지만 정작 의학 분야 시사 이슈나 전반적인 사회 상식의 부족이었다.

물론 단순히 공부로도 채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보의 측면이었다.

명천이에게 필요한 건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정보의 지식화였으니까.

“자, 조용조용. 이제 수시 2차 접수마감도 코앞이고, 면접 전형도 얼마 안 남았다.”

내가 책상을 출석부로 두드리며 소리를 내자 동석이와 명천이도 이야기를 중단했다. 둘을 살짝 바라보면서 다시금 말을 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입시다. 그래도 다른 반에는 정시 전형에서 면접 준비하는 애들도 있을 테니까 언행들 조심하자. 그리고 은장이는 오늘 첫 번째로 연습 시작할 거니까 준비하고.”

“네!”

은장이에 이어서 각 학생들의 입시 준비 일정과 방법들을 알려 준 뒤 교실을 나갔다.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지석 선배가 나와 바톤터치를 하고 학생들을 지도했다.

“오늘 추천할 기사는 이거다.”

지석 선배는 이번 오감프로젝트에서 매일 아침마다 시사상식을 키울 수 있는 기사를 추천하기로 했다. 내 요청도 있었지만, 선배가 유독 이번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있었다.

-찬오 상담 준비 도와줘서 고맙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앞으로 있을 입시 실적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합격하는 사례가 나와서는 안 되었다.

한번 더러운 사람은 끝없이 더러워져도 티가 나지 않지만, 한번 깨끗한 사람은 구정물 한 방울만 튀어도 지저분해 보인다.

만약 사학비리 폭로를 하게 되는 시점에서, 내가 구정물 한 방울이라도 튀긴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나와 친한 교사들도 마찬가지로 평가되는 것이다.

때문에 조금의 허점도 나에게는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석 선배나 박 선생, 윤 선생 같은 교사들에게도 구정물이 튀어서는 안 되었다. 찬오는 올해 입시에서 지석 선배의 실적에 오점을 남기게 되는 학생이었다.

그걸 이번 삶에서는 막아두어야 했다.

‘잘 해야 할 텐데.’

다만, 찬오 부모님이 보통 강성인 게 아니어서 지석 선배가 밀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는 했다.

‘조만간 상담이 있을 테니 그 전이든, 당일이든 도와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면접 준비 교실로 들어갔다.

“….”

“왜 이리 똥 씹은 표정이야?”

문을 연 교실에는 정석이와 동석이가 입을 꾹 다문 채 앉아 있었다.

표정이 거의 썩은 채로 말이다.

“쌤 때문에 미란이랑 데이트 다 취소했어요.”

“그랬어? 잘 했다.”

“잘 했다, 가 아니라요! 아 진짜!”

정석이가 발을 구르면서 날뛰기 시작하자 옆에서 동석이가 말렸다.

“백날 그래 봐야 소용없어. 입시 대부분 끝날 때까지는 오늘도 감금이야.”

“이거 진짜 청소년인권위에 신고해야 해. 수능 끝난 고3들이 이러고 있는 거 알면 부모들도….”

그 말에 나는 손으로 전화를 하는 시늉을 하며 괜히 비아냥거렸다.

“너희들 망나니처럼 놀러 다니지 않게 잡아 줘서 고맙다는 전화만 하루에 몇 통을 받는지 모르겠는뒈에?”

어제도, 그제도, 한 번씩 학부모들로부터 문자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덕분에 저희 아들이 집에서는 쓰러져서 자기만 하네요. 감사합니다.

-애들 수능 끝나면 통제가 안 된다고 하던데, 어디 허튼 데 안 가서 너무 좋네요. 내년에도 하시나요? 중3 동생도 있는데.

수능 끝나면 특히나 공부를 좀 열심히 하던, 혹은 막혀 있던 녀석들은 모든 걸 내려놓고 놀러 나가기 일쑤였다. 게다가 어떤 학교는 점심 전에 마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오금 프로젝트는 학부모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거기에 학생들도 아직 입시가 끝나지 않은 친구들을 덜 자극하였기에, 입시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빨리 준비한 것들이나 꺼내.”

내 말에 동석이가 이사장으로부터 지급받은 보급용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카메라의 전원을 켰다.

“오늘 너희들은 면접 내용을 타이핑하고 영상 촬영하는 조교 역할이다.”

“하… 하기 싫다….”

“손가락에 땀 나게 자판 두들겨서… 하아? 하기 실타아?”

순식간에 정석이의 뒤통수로 종이몽둥이가 휘둘러졌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정석이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아야….”

“정신차려. 친구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녹음하고 기록해서 철저하게 보여 주고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 다들 기본기와 간단한 심화는 연습이 끝난 지 꽤 됐으니까.”

지금까지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해온 만큼 녀석들의 기본기는 꽤나 성장해 있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각자에게 필요한 심화 질문이 필요했다. 오늘부터는 그런 질문들을 위주로 한 번씩 시뮬레이션을 해 주고, 개별 연습으로 유도할 계획이었다.

잠시간 향후 계획을 떠올리는 사이 닫혀 있던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쌤! 저 왔어요!”

힘차게 들어오는 채영이를 보면서 혀를 찼다.

“문 부서지겠다. 여기 와서 앉아.”

헤헤 웃으며 들어오는 채영이에게 나는 면접의 기본에 대해 알려 주고, 미리 준비해둔 기출문제집을 전달해 주었다.

이전에 면접 캠프를 할 때도 사용했던 기출문제집이었지만, 채영이에게 필요한 기출문제들도 추가한 버전이었다.

“나중에 혼자 연습할 때는 그 책 보면서 연습해. 그리고 채영이는 분야가 분야다 보니 조금은 다른 질문들도 준비를 해야 한다.”

채영이가 눈을 빛내면서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내가 말하는 내용들을 노트에 열심히 적었다.

이제는 눈 붓기도 많이 빠져 있었다. 친구들도 ‘스튜어디스 할 건데 그 정도야 뭐’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채영이가 처음에 걱정했던, 그런 놀림은 전혀 없었다. 항공관광학과는 성형수술도 해야 갈 수 있다, 라는 오해가 좀 생기기는 했지만, 아무튼.

지금 채영이는 전문대가 아닌, 항공관련 학과에 특화된 한항대에 입학할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들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모의 면접 시작하겠습니다.”

“네!”

“항공기 비상탈출장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네, 항공기가 지상 또는 물 위에 불시착 등의 착륙을 했을 시 승객의 탈출을 도와주는 장치로….”

추석 때의 사건 이후 채영이는 꾸준히 은장이와 연습을 해 왔었다. 그리고 항공 관련 상식을 키우라고 했던 내 지침도 나름대로 지켜왔다.

그래서 여러 관련 상식을 키웠고, 답변하는 연습도 간단하게나마 해 왔다.

그 덕분인지 확실히 채영이는 자신감이 있었고, 목소리도 크고, 발음도 또렷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차렷자세. 항공관광학과는 면접 자세를 정말 많이 본다.”

“손발은 가지런히. 단정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어허, 다리를 왜 꼬려고 해. 제대로 내려놓고 자세 똑바로!”

이런 식의 자세 교정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전공 관련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어느 정도 자세 교정도 되었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Evacuation Slide에 대해 설명하세요.”

직관적으로 물어보는 것에는 답을 잘 하였기에 반대로 물어본 것이었다.

“이… 네?”

“Evacuation Slide. 몰라요?”

채영이는 당황해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입술에 손 떼고.”

“네, 네!”

“Evacuation Slide. 몰라?”

여전히 우물쭈물거리며 답을 하지 못하는 채영이를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항공기 비상탈출장비 영어로 뭐라고 쓰는지 칠판에 적어 봐.”

채영이는 시무룩해져서는 칠판에 글씨를 천천히 적었다.

“뭐야, 둘 다 알고 있네?”

“어? 저거네요?”

놀란 토끼 눈을 하는 채영이에게 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Entrance가 아닌 Transit의 목적으로 통과하는 걸 줄여서 뭐라고 부르지?”

“어… 그건 또 뭐지….”

“TWOV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에이 쌤 그건 알죠! 입국이 아니라 통과의 목적으로 비자 없이… 아!”

채영이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이제 감을 잡은 듯했다.

“지금처럼 질문 방식이 조금만 바뀌면 헷갈려 하는 학생들이 많아. 채영이는 특히 전공지식을 물어보다 보니 공부한 내용이랑 다른 식으로 질문 방향을 바꾸면 질문 자체를 이해 못 할 때가 꽤 있을 거야.”

항공 상식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는 했으나, 그건 암기식 공부였다. 시사적인 부분에 대한 공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채영이는 이 모든 것들을 ‘공부’라고만 인식하고 있었다.

“정해진 매뉴얼대로 외우기만 해서는 면접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다.”

암기식으로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최대 단점이 바로 이때 나타난다. 암기를 할 경우에는 응용능력이 현저히 부족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변형에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오늘부터는 정석이, 태성이한테 말해둘 테니까 같이 면접 스터디라도 해. 질문 방식도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해 보고. 정석아 알겠지?”

“네….”

한숨을 푹푹 쉬는 정석이에게 채영이가 잘 부탁해! 라며 순진하게 웃었다.

“좋아. 그럼 가서 개별 공부, 연습해라.”

채영이의 연습이 끝나고 다시 교실이 조용해지자, 정석이가 책상 위에 엎어졌다.

“정석이 넌 점심 때까지만 해. 대신 채영이 면접 연습 태성이랑 도와주고.”

“진짜요!? 아….”

잠깐 기뻐하던 정석이가 다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누가 오대천왕 아니랄까 봐.”

“뭐라고 했냐?”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정석이는 계속해서 중얼댔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모른 척하고 천천히 열리는 교실 문에 집중했다.

“들어와.”

지석 선배의 시사상식 강의가 끝나고 개별학습을 하던 은장이가 면접 준비 교실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은장이는 지금까지 면접 준비를 하면서 지원동기를 포함한 기본 질문들은 완벽하게 준비를 끝냈다.

거기에 학교 활동과 이후의 계획까지 연계하는 기본 심화까지도 마스터 해둔 상태였다.

물론 은장이가 평소 말을 잘 하고, 응용력도 좋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서울한국대에 합격하기에는 부족하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학생들이 지원하는 우리나라 최상위 대학교인 서울한국대. 게다가 이 전형을 지역균형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보다 차별화된 답변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평가자들도 때로는 어려운 질문을 던질 때가 있었다. 학생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말이다.

처음 연습은 수월하게 흘러갔다.

서울한국대 지역균형 인문광역 면접의 특징은 전반적인 학생의 역량에 대해 물어보는 것. 그렇기에 처음에는 지원동기나 롤모델, 입학 후 하고 싶은 활동 등을 물어보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사항들을 이야기하던 중, 이제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학생이 최근에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시사 문제는 어떤 게 있나요?”

은장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최근 방송 수신료 인상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수신료 인상은 공영방송이….”

관심이 있는 분야가 광고, 방송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은장이에게도 관련 이슈를 공부하라고 일러두었었다. 그 덕분에 이 질문도 어렵지 않게 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서울한국대 인문광역 면접의 진짜 문제는 이런 게 아니었다.

“학생은 책을 다양하게 읽었던데.”

“네 맞습니다. 문학, 에세이, 자기계발서, 고전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었습니다.”

“문학도 좋아해요?”

“네, 좋아합니다!”

“그러면 학생이 생각할 때 문학의 현실성과 허구성은 모순되는 개념이라고 보나요?”

“허구… 네!?”

내가 던진 질문에 은장이는 물론이고 정석이, 동석이까지도 입을 벌리고는 나를 돌아봤다.

‘이 정도는 준비해야지.’

당황해하는 은장이를 보면서 나는 하회탈처럼 웃고만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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