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오금의 의미
“이제 이번 입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학생들이 달려왔고, 저희 교사들도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말을 잠시 멈추고 교실 위에 걸려 있는 액자를 바라봤다. 학부모들도 내 시선을 따라 그 액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한자성어입니다.”
액자에 급훈으로 적혀 있는 그 한자성어를 강조하자 학부모들이 다시금 나에게 집중했다. 나는 교탁에 양손을 올리고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지금까지, 그리고 남은 기간 동안에도 저희는 저희의 방식대로 학생들을 지도할 겁니다. 그러니 학생들과 강문고 교사들을 믿고 기다리십시오. 이후에는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입시라는 건 한 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렵기에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올해는 2등급 대의 학생이 연희대에 합격해도, 내년에 또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다. 모의고사가 항상 1등급이 나와도 수능을 망쳐서 3등급을 받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작년에는 1등급만 들어갈 수 있었던 학교에 2등급이 합격하기도 한다.
즉, 예측할 수 없는 싸움에서 운으로 대학 가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학생들에게 운이 아닌 실력으로 합격 가능성을 최대로 끌어올려 왔다.
그건 입시 코디 시절에도, 다시 강문고 교사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동석이의 합격을 기반으로 앞으로 은장이, 정석이, 명천이, 태성이. 거기에 채영이와 정아 등.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지도해서 성과를 내려고 최선의 노력을 해왔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고, 더 많은 입시 전략을 세워 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학부모님들이 집에서 자녀들과 입시 이야기 어설프게 나누다가 싸우고, 학교에 와서도 제대로 집중 못 하고 있으면 어떨까요?”
하지만, 학부모들이 집에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끌고 가면 될 일도 안 되었다.
“….”
“반대로 묻겠습니다. 학부모님들의 직장 일 관련해서 자녀들이 인터넷 어딘가에서 알아 온 정보로 이래저래 잔소리를 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내 말에 학부모들은 입을 다물었다.
“입시는 학생과 교사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내신 5등급의 신화? 거기에 저의 노력도 있었지만, 동석이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석이 부모님은 저에게 이런 자리를 일절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건 학부모회가 아니어서….”
“아니요. 동석이 부모님은 저와 강문고 교사들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아직 동석이 부모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동석이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그랬다.
-엄마가 쌤만 믿고 다 알아서 하래요.
부모가 자기 자식과 교사를 믿고 맡겼기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최적의 방법으로 동석이를 가르쳤다. 그 덕분에 동석이에게 맞는 최적의 입시 전략을 취할 수 있었다.
녀석을 상담해 주던 때를 떠올리면서 잠깐 웃음을 지었다가 다시금 표정을 진지하게 돌렸다.
“이미 학생들의 전형과 상황에 맞춰 상담 및 수업 모두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감 프로젝트’는 오늘도 감금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건 오석상 선생님이 웃자고 던진 농담이었습니다.”
뭐, 그 농담에 학생들은 진짜 오금을 지릴 뻔했지만.
“진짜 오.감.의 의미는 ‘오늘부터 감투 벗기’입니다.”
감투. 그것은 금수저 마인드를 의미했다.
지금의 강문고 학생들이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는 마인드.
언제까지고 캥거루처럼 부모의 주머니 안에서만 살아가려고 하는 녀석들.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해 주는 것만 받아먹으면서 성장했던 녀석들.
그래서 세상 물정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적응하지 못해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안타까운 청춘이 되는 학생들.
강문고에는 그렇게 될 녀석들이 수두룩 빽빽했다.
은장이, 정석이, 명천이, 채영이를 비롯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강문고에서는 그런 학생들에 속했다.
부모의 직업, 학벌, 혈연 등이 좋은 학생들. 부모의 휘광에만 기대서 지금까지의 좋은 일들이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녀석들. 게다가 부모의 휘광이, 자기에게도 당연히 있을 거라 여겨서 감투처럼 특권의식을 갖고 있던 녀석들.
그런 학생들이 이번 내 수업과 상담을 통해 깨질 대로 깨졌고, 혼날 대로 혼이 났다.
“그리고 학부모님들도 자녀들로부터 금수저라는 감투를 벗겨줄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에는 학부모들의 영향이 가장 컸다. 자식만은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거나, 내 자식도 나처럼 키워야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나는 대표적인 피해자들인 3학년 3반 학생들을 떠올렸다.
“이제 걔네들도 곧 성인입니다.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다만, 학부모들은 내가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잠시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금수저라는 수저 계급론이 유행하기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기들끼리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의견을 나누던 중 학부모회장이 무언가 알게 되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그 금수저라는 게….”
“맞습니다.”
나는 학부모들 한 명 한 명을 번갈아 노려보며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향상. 그 마지막 단계가 바로 이번 프로젝트에 있습니다.”
학부모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자녀들에게 어떤 형태로 교육을 해 왔는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 그런 건 대학교 가서 하면 되니까 일단 입시를….”
“그런 걸 원하시면 이 동네, 대치동 학원으로 가십시오. 거기에서는 돈만 내면 지불한 금액에 맞춰서 지원 전략 짜 줍니다.”
질문을 한 학부모가 기분이 상했는지 더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나는 학부모의 말을 끊으면서 추가로 설명했다.
“여기는 학원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인성까지도 성장시켜 주어야 하는 학교입니다.”
그러자 학부모는 입술을 씰룩거리면서도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저는 제 제자들이 취업 병신이 되어서 오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저희들이 다 추천해 주고 할 수 있….”
“그 추천 받은 직업, 1년 안에 때려치우고 해외여행 간다에 제 10년치 연봉을 전부 걸겠습니다.”
질문을 한 수정이의 아버지는 내 대답에 말을 잇지 못했다.
“수정이는 지금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습니다. 아버님 사업인 대형 영화 기획사 업무, 수정이가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요?”
수정이 아버지는 짧게 신음했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 기획사 업무가 수정이 정도의 끈기와 노력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수정이는 영화 기획사에 부모 추천으로 취업을 하지만, 6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게 된다. 이후에는 세계여행 다녀와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한다고 돈을 꽤 날리게 되고 말이다.
어쨌든, 이런 학생들이 매년 나오게 된다면, 나로서도 좋지 않았다. 사실상 인성 교육 실패라며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대학만 잘 보냈지 인성교육은 형편없는 교사, 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학비리 폭로 때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게 뻔했고.
“이렇게 오실 시간에 자녀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이라도 사다 주십시오.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믿음과 격려입니다.”
속내를 숨기고 살짝 웃어 보였다. 학부모들은 내 의도는 모른 채 투덜대며 교실 밖으로 발을 옮겼다. 학부모회장만이 잠시간 나를 바라보다가 제일 마지막으로 이동을 했다.
* * *
“….”
“….”
매점 앞에서 두 남학생이 우두커니 매점 입구를 보며 서 있었다. 항상 같이 밥을 먹던 은장과 정석은 강명문의 면접 시뮬레이션에 투입되었다.
“그… 정석이는 면접 조교로 그런 거 해야 한대.”
“… 알아.”
“….”
“….”
태성도 논술 기출 답지 첨삭을 오석상에게 받고 있었다. 정아는 박은환에게 첨삭을 받고 있었다.
이제 진짜 시험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다들 긴장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꽤나 진중해진 탓이다.
“…나는 왜.”
“은장이도 면접 준비를 해서….”
“나도 알아! 그런데 나도 면접 준비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있냐고!”
명천이 소리를 꽥 지르자 동석이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 모습에 명천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표를 내지는 않았다.
“후… 아무튼, 뭐 먹을 거야?”
“아! 난 김밥 먹을 거야. 명천이 너도 김밥 좋아하지? 내가….”
동석은 미리 준비해둔 김밥 세 줄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리고 명천에게 두 줄을 건넸다.
“너는?”
“난 한 줄만 먹으면 돼.”
남은 한 줄을 들고 매점 문을 여는 동석의 뒤로 명천도 따라 들어갔다.
둘은 매점의 빈자리에 앉아 김밥의 호일을 풀었다.
“….”
“….”
침묵 속에서의 식사가 계속되었다. 지나가던 학생들은 둘이 눈싸움이라도 하는 거냐며 구경을 하기도 했다.
몇 분쯤 더 지나자 동석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명천아, 저기…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해 봐. 기자들 앞에서도 말 잘 하던 애가 왜 나한테만 어려워해?”
“어? 진짜?”
“그래. 내가 뭐 널 때리기를 했어 뭘 했어?”
“약간 말로 맞는 거 같기는 했는데….”
동석이 헤헤 웃으면서 순진하게 말하자 명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화 안 낼 테니까 말해. 괜찮으니까.”
명천 역시 동석에게 궁금한 점들은 있었다. 입시 시즌을 준비하면서 알게 모르게 반 친구들과 유대감 비슷한 것도 생겼다.
그렇기에 명천은 지금 시간이 싫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단둘이서만도 다닐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기도 했다.
다만, 어떻게 말을 하고 행동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할 뿐이었다.
“그… 내가 나중에는 재활로봇을 만들어 보고 싶거든?”
“재활로봇?”
“응. 그거 만들어서 엄마 재활치료 도와주려고 하는데… 나중에 의료분야에서 이런 게 쓰일 수 있을까? 하는 게 궁금해서. 너 의대 준비하니까 좀 알지 않을까 싶었고….”
“…신기술의 의료 도입, 같은 거?”
“응응 맞아 그런 거!”
명천은 동석의 말을 들으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본인이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에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까지 의료 관련 기사를 찾아본 적은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아버지에게 가끔 전해 듣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거 하려면 결국 사람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 하잖아? 임상이라고 하나? 근데 그런 거 해도 좀….”
“좀 왜?”
“왜 있잖아. 부작용 같은 거라도 생겨서 만들었던 로봇 때문에 팔이 더 기형적으로 휜다거나 하면 어떡하나 해서….”
이어지는 동석의 질문에 명천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라고?’
평소 로봇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로봇을 좋아하는 단순한 덕후 정도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를 하는 동석은, 좋아하는 분야와 미래 희망하는 분야를 적절히 접목한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준비하는 데 필요한 윤리적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명천은 한 편으로는 동석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분하기도 했다.
“아마… 더 많이 쓰일 거라 생각해.”
“신기술들이?”
“어. 재활도 될 거고, 인공피부 같은 것들도 나올 수 있을 거야.”
“로봇뿐만이 아니라?”
“맞아.”
“그럼 재활로봇에 인공피부 같은 걸로 하면 진짜 다리나 그런 느낌으로도 만들 수 있겠다!”
“…기술이 발달하면.”
“그럼 진짜 사람 대상으로 임상해도 되나?”
“임상 전에 안전성 테스트 같은 거는 당연히 해야 할 거고, 피해는 최소화해야겠지.”
동석은 명천의 말을 들으면서 계속해서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봤다. 명천은 지금 자신이 답할 수 있는 부분까지는 답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빨을 까득 깨물며 테이블 밑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럼 나중에는 그런 거도 나오겠다, 인공 각막이라든가….”
“야 언제까지 밥 먹을 거야. 올라가자 이제.”
명천은 아직 다 먹지 않은 동석의 김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하느라 밥도 못 먹었잖아. 얼른 먹어.”
“아, 아냐. 이거 어차피 남기려고 했어.”
“남겨?”
“응. 엄마가 밥 준비하기 힘들어해서 이런 거 있으면 싸 가. 아까 담임쌤한테도 한 줄 더 받기로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동석을 보면서 명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매점 문을 열고 나가는 동석에게 음료를 하나 내밀었다.
“…마셔.”
명천이 내민 음료는 식사 대용으로 먹는 미숫가루 음료였다.
“어? 어, 어 고마워.”
“대신 어머니 드리지 말고 네가 마셔. 지금 당장.”
그렇게 말하면서 명천은 머릿속으로 여러 지식들을 떠올렸다. 로봇을 비롯한 공학 기술들, 세포기술, 의료 변화 등. 그러다 이내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못마땅한 듯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그새 음료를 꿀꺽꿀꺽 마신 동석이 크하! 소리를 내며 음료를 보여 들었다.
“다 마셨어!”
“…잘 했네.”
그날 오감 프로젝트가 끝난 후, 명천은 집에 가서 아버지의 방에 있는 의학서적, 신문들을 뒤적였다. 그리고 밤새 인터넷으로 향후 의료기술의 미래 등에 대해 검색하면서 공부를 했다.
‘내일은 꼭….’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명천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의학 분야에서만큼은, 의대를 준비하는 자신이 더 잘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조차도 동석에게 밀려서는 안 된다.
그런 마음이 고교 생활 내내 기사라고는 쳐다도 보지 않던 명천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 명천을, 강명문의 문자를 받은 학부모회장이 놀라움과 기쁨이 담긴 웃음을 띤 채 바라보고 있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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