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믿어 보십시오
이제는 대다수의 고3이 떠난 학교 교실. 한명심은 그 교실을 하나둘 돌아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퓨쳐컨설팅이라….’
민지정이 얼마 전 이야기한 퓨쳐컨설팅. 그곳이라면 한명심도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소꿉친구가 운영하는 학원이기 때문이었다.
퓨쳐컨설팅은 원장이 집에 있는 돈으로 적당히 유학을 다녀와서, 그 경험을 기반으로 유학컨설팅을 해 주는 학원이었다.
친구인 학원장과는 가끔 술도 한 잔씩 하는 등 지금도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애매한 학생들에게는 그곳을 추천해 주었다. 소개비를 조금씩 받아가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 정시설명회도 친구를 믿고 맡기려고 했다. 지금까지 실적이나 금전적인 면에서의 도움도 많이 받아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 선생은….’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강명문의 태도였다.
특히, 기말 시험 전, 이정석의 어머니와 상담을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거기는 돈 받고 없는 원서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지나가면서 들었지만, 분명 퓨쳐컨설팅에 대한 강명문의 평가였다.
한명심은 퓨쳐컨설팅 원장인 친구가 어떤 형태로 상담을 하고, 수업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강명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럴 리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최근 학원장과 민지정의 태도가 이상했다.
-교감 선생님, 퓨쳐컨설팅에서 정시설명회를 열었으면 합니다.
-거기는 유학 전문 아닌가?
-좋은 컨설턴트들을 많이 모시고 왔다고 합니다.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학원장과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자신보다도 더 보증할 수 있다니.
그 부분이 우선 이상했다.
그래도 한명심은 친구와 교무부장을 믿으려 했다.
-어이구 우리 한 교감님. 잘 지내셨는가.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믿어 보려고 했다.
-잘 지내지. 이번에 국내입시로도 판 벌렸다며?
-그렇지. 민지정 부장에게 이야기 들었나? 이번에 강문고에서 하게 되면 그만큼 학원 홍보에도 쓸 수 있을 거야.
-선수가 누구인가?
-아 당연히 내가 해야지! 누가 있긴 누가 있겠나! 하하하!
즉, 민지정의 이야기와 달리 퓨쳐컨설팅의 학원장이 직접 정시설명회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괜찮겠나? 자네 국내 입시 잘 모르잖나.
-괜찮아, 괜찮아. 내가 이거 준비하려고 주변에 있는 대형학원 입시전략실장들이랑 대학 교수들 만나서 술도 마시고 했어. 들은 이야기랑 자료들이 많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네!
학원장의 호언장담에 그날은 별 생각 없이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마무리될 때 즈음 학원장이 한명심에게 말했다.
-이번에 우리 학원 이름 쓸 수 있게 해주면, 내가 두둑하게 챙겨줄게.
그리고 학원장은 목소리를 낮추고 손가락을 두 개 들어 보였다. 한명심은 그 손가락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웃어 보였다.
-…고맙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전문 입시 컨설턴트가 아니라 원장이 와서 설명회를 하는 거라면 걱정도 되었다.
혹시 학부모보다도 정보가 부족하다면? 자문을 구했다는 대형학원의 입시전략실장들이 잘못된 정보만 주었다면?
그런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한명심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짜증과 답답함이 오가는 동안 해답이 나오지 않자, 한명심은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방금 전에 온 문자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교감 선생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강명문의 문자였다.
정시설명회에 대한 일일지, 아니면 미래교육에 대한 일일지. 어쩌면 그 이외의 다른 일일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필요한 게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강 선생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천천히 핸드폰의 자판을 눌렀다.
* * *
정석이의 논술시험이 끝나고 다음 날, 학교 교무실은 취재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최동석 학생, 로봇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생겼나요?”
“이번 입시를 준비할 때 합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나요?”
“학교 선생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부분을 도움 받았나요?”
동석이는 이제 두 번째라 그런가 나름 침착하게 답변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이사장이 미뤄두었던 동석이의 취재 허용일이었다. 수능 이후에 취재를 했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이사장은 약 한 달간 동석이의 취재를 미뤄왔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취재진에게 허락된 인터뷰 날이었다.
물론, 동석이의 동의도 받았고 말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어느새 인터뷰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오늘 취재에도 어김없이 참여한 신미나 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신 기자를 보면서 동석이가 여전히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말했다.
“학교 다니기 싫을 때,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꼭 담임 선생님과 상담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담임선생님이요?”
“네. 저희 3학년 담임쌤이요. 쌤이 없었으면 저는 연천대는 꿈도 못 꿨을 거예요. 하고 싶은 분야가 있어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알려 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순진하게 웃는 동석이의 모습에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찔려 왔다.
“그런데 담임쌤이 저한테 길을 알려 주시고 모든 걸 도와주셨어요. 가정 형편도 생각해서 장학금 나오는 곳으로요.”
“맞아요. 동석 학생은 이제 우리나라 최고 대학 중 하나라는 연천대로 가게 되었잖아요?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아뇨, 저는 연천대에 입학하게 된 것도 기쁘지만, 그것보다는….”
동석이는 자신의 모습을 구경하러 온 정석이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입시 준비하면서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게 된 거.”
“네?”
“저는 그런 것들이 가장 좋았어요.”
나는 동석이의 인터뷰를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인터뷰 마무리까지 도와주었다. 기자들이 나에게도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지금은 거절을 했다.
언젠가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될 날이 올 것이었다.
지금은 지난번 은장이 취재 때의 인터뷰 한 번이면 충분했다.
‘너무 많이 노출되면 그것도 좋지 않아.’
대신 신 기자에게 나에 대해 어떻게 적으면 좋을지 알려 주었다. 신 기자는 내 말을 듣더니 음흉하다면서 눈을 흘겼다.
“뭔가 속셈이 있는 것 같은데….”
“학교 선생이 언론에 자주 나와봐야 좋을 거 없습니다. 인터뷰는 다 거절했고, 공직자의 마인드에 집중한다는 식으로 정리해주세요.”
신 기자는 알겠다면서, 적절한 설명을 본인이 추가한 후 기사에 넣겠다고 말했다.
동석이 인터뷰가 끝난 직후에는 학부모회에서 나를 찾아왔다.
학부모회장을 포함해 스무 명 남짓한 학부모회 회원들이었다.
“강명문 선생님?”
“아, 이분이 내신 5등급 연천대에 합격시킨….”
미래교육 기사를 빠르게 없앤다고 했지만, 역시나 알고 있는 사람은 알고 있었다. 학부모들이 정신없이 달려와서는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을 내뱉었다.
“선생님, 저희 애가 수시 2차 준비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정시로는 인서울 좀 어려울까요?”
“내신 4등급인데 5등급 연천대 학생보다는 낫잖아요. 어떻게 안 될까요?”
학부모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나는 그 뒤에 서 있는 학부모회장의 태도를 살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학부모회장이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얼마 기간이 남지 않았는데, 저희가 할 수 있는게 없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지도해 주고 상담해 주세요. 저희 애도 더 좋은 학교로….”
나는 쏟아지는 질문들 사이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질문들을 듣고만 있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학부모들의 질문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우선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나는 미리 준비해둔 빈 교실로 학부모들을 안내했다. 학부모들은 빈 교실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오시면 저도 당황합니다. 무슨 일 때문에 단체로 찾아오셨습니까?”
전혀 당황하지 않았지만, 당황했던 것처럼 얼굴에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학부모회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면접 연습하는 학생들 대상으로 특강을 열어 주세요.”
“지금 하고 있는데요?”
나는 무슨 소리를 하냐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학부모회장이 잠깐 말을 멈추었다. 주변의 학부모들 중 한 명이 대신 물었다.
“지금 하는 거 그거 아닌가요? 오감 프로젝트.”
“맞습니다.”
“그건 관리만 해 주는 거 아니에요?”
“관리도 해 주면서 학생들 개개인에게 필요한 것들도 봐주고 있습니다.”
수능이 끝나면서 제일 먼저 우려가 되었던 부분은 수능 이후 입시 전략에 맞춘 특강 문의였다.
학기 중에는 방학도 있고 해서 시간 할애하기에도 좋았기에 특강을 열기에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관리형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수능 이후의 준비사항들 대부분은 상위권 학교들 아니면 논술 정도였다. 적성고사도 많이 치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전형들은 시간 맞춰서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있는지, 정확하게 풀이를 했는지 등을 체크해 주면 되었다.
따라서 남은 건 면접 정도였는데, 이건 이미 면접 캠프를 통해서 학생들이 훈련을 했기에 걱정이 없었다. 이제 학생들은 각자 꾸린 조별 특징에 맞춰서 면접 연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면접 전형이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MMI나 교직인적성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거죠?”
“네 맞아요.”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말라는 내 말에 학부모회장이 불안한 마음을 비쳤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 모여 계신 학부모님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나는 학부모회장의 말을 무시하고 교실에 모인 학부모들을 둘러봤다.
“다들 그 자리에 앉아 계시니까 어떻습니까?”
“네?”
“뭐…학창 시절 생각나네요.”
“잘 말씀 주셨습니다. 그럼 여러분의 학창시절은 어땠습니까?”
내 질문에 학부모들은 당시에 있었던 추억들을 하나둘 이야기했다. 잠시간 그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가 헛기침을 한번 했다.
“지금 여러분이 앉아 계시는 이 교실은 이번 ‘오감 프로젝트’에서 사용하는 ‘정신과 시간의 방’입니다. 집중력이 떨어진 학생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해둔 공간입니다.”
강문고를 비롯한 강남서초권 학교들의 학부모들의 특징이 있었다. 바로 학생과 교사를 믿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거기 앉아 계신 아버님.”
“네, 네.”
“아마 수정이 논술 관련해서 특강 열어달라고 말씀하고 싶으셨을 겁니다. 맞죠?”
“네, 맞습니다.”
“어제 수정이가 이 방에서 논술 기출문제 풀고 박은환 선생님께 첨삭 받고 갔습니다.”
그 말에 수정이의 아버지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명천이 어머님, MMI 밀착 마크 해달라고 요청하려 하시지 않았습니까?”
“다 알고 계셨어요?”
“빤히 보입니다. 하지만, 명천이에게 필요한 건 이제 그런 형태의 특강이 아닙니다. 상식을 키우고 그 지식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랑 더 수업을 해야….”
나는 그런 학부모회장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직까지도 저런 소리를 한다는 데에 실망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을 숨기고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녀들과 저희를 믿어 보십시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
나에게 각종 부탁을 하러 오면서도 말하는 무리한 요구들.
이 모든 것들에는 학생과 교사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어설프게 학생과 교사를 ‘믿는 척’하는 불신이었다.
“자녀를 믿기 어렵다면 저를 믿어 보십시오.”
내 말에 학부모들이 숨을 삼켰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그들을 향해 나는 경멸 섞인 웃음을 날렸다.
강문고의 고질적인 문제.
이제는 그걸 서서히 잡아나가야 했다.
**본 글에 나오는 용어, 사건, 학교명, 기관명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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